이경미 화가의 네버엔딩스토리


 

반려문화 문화 속 반려동물 이야기
고양이 | 이경미 화가의 네버엔딩스토리
조회2,046회   댓글0건   작성일4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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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고, 그리고, 치유하다

이경미 화가의 네버엔딩스토리

 

상상하고 생각하는 것, 누군가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을 때 그것을 표현하는 방식은 다양하다. 이경미씨는 어렸을 때부터 화가가 된 지금까지 '그림'으로 또 다른 세계를 구축해왔다. 소우주의 느낌을 고스란히 간직한 작품들 속 유난히 눈길을 끄는 고양이는 그녀의 오랜 친구이자 분신이다. 유년시절, 동물과 자연에 대한 애착 때문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한 사람의 이야기 속에는 인생이 담겨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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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이 가장 쉬웠던 이경미 화가

 

빼어난 문화유산이 살아 숨쉬는 경상북도 경주. 이곳에서 화가 이경미씨는 유년기를 보냈다."어린 시절부터 눈으로 한번 본 것은 잘 잊어버리지 않았어요. 특히 자연이 만들어내는 빛과 선이 좋았고, 동물들과 식물들을 관찰해 그림일기를 쓰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사춘기 이후부터 화가가 되기로 결심한 이경미씨는 주변에서 그 재능을 인정받았고, 꿈을 이루는 데 더욱 몰두할 수 있었다. 그림이 가장 쉬웠다는 그녀지만, 지방에서 홍익대학교로 입학하기란 만만치 않은 도전이었을 것이다."경주는 시, 군 관할 거주인구가 20만 정도 밖에 안 되는 소도시예요. 입시학원이 대도시처럼 체계화되어 있지도 않았고 지금도 그렇습니다. 대구까지 가서 입시 준비하는 친구들도 있었지만, 저는 학교 미술 선생님의 추천으로 작은 화실을 다니며 그림을 그렸어요. 지금 생각하면 그 힘든 일들을 어떻게 극복했는지 잘 모르겠어요."


미대에 진학한 후에도 이경미씨는 학비를 벌기 위해 학원에서 입시생들을 가르치고, 새벽까지 과외를 했다. 집에 돌아오면 그야말로 녹초가 돼 쓰러지는 나날들이 이어졌다.그런 그녀에게 친구이자 위로가 된 고양이 '나나'가 있었다."불이 꺼진 집으로 들어설 때 나나가 늘 반겨주었어요. 저에게 바라는 것 없이 편하게 해주어서 오히려 미안할 정도였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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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해 겨울, 비로소 하루에 6시간 정도는 잘 수 있게 되었을 때 나나가 방광결석으로 시름시름 앓기 시작했다. 어머니의 반대로 병원에 데려가는 시기가 늦어져,병원에서는 안락사를 권할 정도였다. 그렇지만 그녀는 포기하지 않고 한 달 넘게 나나를 병원에 데리고 다니며 세 번의 수술 내내 곁을 지켰다.

 

나나는 알콜중독이었던 아버지가 갑자기 세상을 떠난 그 해 태어났다."나나가 아플 때 아버지 생각이 났어요. 병실에서 거추장스러워 보이는 기계들 속에 누워계시던 아버지의 마지막 모습은…. 그 땐 기울어진 집안 형편 때문에 실컷 울지도 못했습니다. 아버지가 어떤 모습이건 살아있기만이라도 했으면 좋겠다고, 목구멍으로 내뱉지도 못하고 속으로 삼켰던 기억이 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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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속의 나나

 

이경미씨는 나나의 병원비 때문에 어머니와 충돌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만 그녀가 그림을 그리는 일이라면 모든 것을 이해했던 어머니였기에, 이경미씨는 나나를 화폭에 담기 시작했다."나나는 저에게 지켜야 할 의미였어요. 그래서 나나를 꼭 그려야만 한다고 어머니를 설득했고, 치료도 계속했습니다."

 

고통스런 날들을 함께 헤쳐 온 한 마리 고양이는 이경미씨에게 있어 절대적인 그 무엇이다. 그래서 그녀는 나나를 '그린다.'

 

상처가 아물면서 나나는 그녀에 말에 따르면 '타자의 상징'으로 작품 속에 계속해서 등장했다. 2011년 9월, 이경미씨의 여섯 번째 개인전 <You don’t own me>에서도 나나는 어김없이 그림 속에 있었다.전시회 타이틀은 더스티 스프링필드의 동명의 노래 제목에서 가져왔다."페미니즘 성향의 가사이지만 저는 세상을 살아가는 과정의 일부로 받아들였습니다. 작은 시골마을에서 알콜중독인 아버지 밑에서 자란 제가 사회의 관문들을 하나씩 통과할 때마다 느낀 단상을 그림으로 표현했어요.단칸방에서 온가족이 생활하던 시절에는 자연의 정취를 화폭에 담는 소박한 향토작가가 꿈이었습니다. 그 꿈이 커지고 변하면서 더 발전하기 위해 여전히 노력하고 있지만, 때때로 '삶의 무위'를 느낄 때가 있어요. 그런 저의 마음을 그림에 드러냈죠."이경미씨는 생략과 단순화보다는 화려함과 완성도를 추구하는 편이다. 그래서 그녀의 테마는 '그럼에도 불구하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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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미씨는 그림에서부터 설치작업까지 다양한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그 안에서 나나는 고양이 그대로의 모습뿐만 아니라 우주인 같은 상징적인 존재로도 나타난다."인류의 오랜 꿈이었던 달 탐사가 결국 그 목표를 잃은 후, 우주사업은 쇄락의 길을 걷고 있습니다. 명분도 실리도 없는 냉전시대의 퇴락한 유물이 되어버렸죠. 우주복을 입은 나나는 이런 공허함 속에서 사소한 존재로서의 인류를 표현한 것입니다."


단체전부터 개인전까지, 10년이 넘는 동안 수많은 전시회를 거치면서 그녀가 매번 느끼는 감정은 무엇일까."오랜 준비를 하고 막상 전시를 열게 되면 수많은 사람들을 맞이하고 정신없이 보내다가, 끝나고 나면 허무함에 우울해질 때가 많아요. 극복하는 방법은 빨리 다음 전시를 계획하는 것입니다. 아쉽거나 부족했던 것은 다음 기회를 기약해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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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프란시스코로 떠나다, 만나다


2009년, 이경미씨는 남편과 함께 미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사망으로 미국 유학을 포기해야만 했던 그녀에겐 남다른 기분이 들 수밖에 없었다.스무 살 서울에서의 그때처럼 다시 이방인이 되었지만 작업하기에 나쁜 환경은 아니었다. 그리고 이곳에서 새로운 묘연도 만났다.

 

"샌프란시스코의 동물보호소에서 주최한 입양의 날에 유기묘 한 마리를 데려오게 됐어요. 사랑스러운 성격과 우아한 몸짓에 구경만 하겠다는 결심이 무너져 덥석 업어오고 말았죠. 쥬디는 제가 처음으로 키운 여아예요. 수컷 냥이들만 기를 때 얼마나 힘들었는지 쥬디를 보면서 새삼 느끼게 됐어요. 남편도 쥬디를 무척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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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에 대해 긍정적인 시선, 아니 고양이를 가족구성원으로 생각하는 문화가 자리 잡은 곳에서 살고 있는 이경미씨가 부러웠다.

 

"미국에서 반려동물을 키울 땐 기본적인 접종의 의무를 지는 것은 물론이고, 월세에도 반려동물 주거비용을 추가로 지불해야 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이에 비하면 한국은 경제적인 부담은 덜한 편이지만 사회적인 편견 때문에 마음의 상처를 받는 것이 가장 힘든 점이 아닐까 싶어요."

 

살아가면서 즐겁고 행복한 일들만 있었던 사람은 없다. 저마다 상처를 갖고 있지만 이를 다른 사람에게 털어놓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이경미씨의 작품을 우연히 볼 수 있었던 것은 운명이라고 생각한다. 자신의 이야기를 진솔하게 들려 준 그녀에게 진심으로 감사한다. 올해 출간 예정이라는 작업과 일상에 대한 에세이집이 무척이나 기다려진다. 작품으로 말하는 그녀이기에, 전시회로 관객과의 만남도 꾸준히 이어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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