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경원의 길고양이 골목걷기 3화 전주 한옥마을


 

반려문화 문화 속 반려동물 이야기
고양이 | 고경원의 길고양이 골목걷기 3화 전주 한옥마을
조회3,121회   댓글0건   작성일4년전

본문


고경원의 길고양이 골목걷기

3화 전주 한옥마을

 

오래된 단층주택에 사시는 선생님을 뵈러 갔다가 터줏대감 고양이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선생님이 이사 오기 전부터 지붕 어딘가에은신처를 만들어 살고 있었다던 그 고양이. 고요히 집에 있으면, 머리 위에서 우다다 뛰는 소리도 들렸다지요. 딱히 고양이를 좋아하지는 않지만 내쫓지 않고 모른 척 내버려두었다 하시네요.

 

"나보다 이 집에 오래 살았는데 어쩌겠어."하며 웃는 모습에서 따뜻한 마음을 느낍니다. 내 돈 주고 산 집이니 이 땅엔 아무도 못 들어온다고 으르는 대신, 고양이의 살 권리도 인정해 준 것이니까요. 오래된 집에는 그렇듯 오래된 인연이 있습니다. 그런 인연을 또 만날 수 있지 않을까 싶어, 전주 한옥마을을 찾아가 봅니다.

 

 

2ee6dbd978087761041ec79d44f48326_1433463

 

 

한옥마을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오목대에 오르면, 까만 지붕을 이고 어깨를 나란히 맞댄 한옥들이 눈에 들어옵니다. 그 풍경을 보노라면 여기가 한옥마을이구나 싶다가도, 다시 거리로 돌아가 지붕 아래 풍경을 기웃거리면 한옥 지붕의 외형만 가져왔을 뿐, 알맹이는 음식점과 찻집이 대부분입니다.

 

그 거리를 걷노라면 내가 한옥마을을 보러 온 건지, 상가를 구경하러 온 건지 잠시 헷갈립니다. 가정집으로 잘 쓰던 건물을 하나둘 상업 시설이 잠식해버리는 현상은 전주 한옥마을에서도 예외가 없습니다. 전국 곳곳에 '한옥마을'이라 불리는 동네가 있지만, 경주 양동마을처럼 주민들이 전통가옥에 거주하면서 일상생활을 영위하는 곳이 아니라면 관광지와 다를 바 없이 변해가기 마련입니다. 오래된 동네가 개발되고 유동인구가 많아질수록 길고양이는 골목 안쪽으로 깊이 숨어듭니다. 그 골목마저 사라져갈 때, 길고양이가 조그만 몸을 기댈 곳도 점점 없어져버릴 것입니다.

 

 

2ee6dbd978087761041ec79d44f48326_1433463

 

 

관광객이 많이 다니는 번화가를 벗어나 골목 안쪽으로 들어가 봅니다. 골목마다 들어선 집 대문에는 유독 사자 모양 문고리가 많습니다. 큰 사자, 작은 사자, 쌍사자, 외톨이 사자, 순박한 사자, 무서운 사자. 한때는 저 문고리로 초인종을 대신해 문을 탕탕 두들기며 열기도 했겠지만, 이제는 형식적인 장식으로 남게 되었지요. 표정도 색깔도 제각각인 수많은 사자 얼굴에서 세월의 더께를 느낍니다.전주 한옥마을은 제게 한옥보다 '사자 문고리의 동네'로 오래 기억에 남을 듯합니다.그나저나 사자 얼굴은 잔뜩 만났지만, 길고양이는 꼬리도 보지 못했는데 어느새 짧은 해가 뉘엿뉘엿 저물어 갑니다. 고양이들도 사람 눈에 띄는 것이 조심스러워 어둠 속에 숨어버렸나 싶습니다.

 

오늘은 고양이와 인연이 없는 모양이다 싶어 슬슬 돌아가려 발걸음을 돌리는데, 어디선가 귀를 훅 잡아끄는 고양이 울음소리가 들려옵니다. 평소 같았으면 반가운 마음에 후다닥 다가갔을 텐데, 울음소리가 예사롭지 않습니다. 영역을 침범당한 길고양이가 흔히 내는, 경계하는 목소리.소리의 진원지는 삼색무늬 고양이였습니다. 담벼락 위에 웅크린 카오스 고양이가 땅으로 내려오지 못하게 위협하고 있었던 것이지요. 덩치는 작은데 기개만은 당돌하기 짝이 없습니다.

 

급기야 2미터에 가까운 담벼락 위로 훌쩍 뛰어오르더니, 카오스 고양이를 쫓아내고 담벼락 전망 좋은 자리에 떡 자리 잡고 앉았습니다. 목에 커다란 금방울을 단 것으로 보아 집고양이가 아닐까 싶어 동네 아저씨께 혹시나 하고 여쭤보니, 돌보는 사람이 있지만 길고양이인 걸로 알고 있다고 하시네요. 고양이의 사연이 궁금했지만 아쉽게도 더 이상의 정보는 얻을 수 없었습니다.

 

 

2ee6dbd978087761041ec79d44f48326_1433463

2ee6dbd978087761041ec79d44f48326_1433463

 

담벼락 앞을 서성거리다 까치발을 하고 카오스 무늬 고양이가 달아난 방향을 바라보니, 지붕 아래 그늘진 곳에 뭔가 꼬물꼬물 움직이는 형상이 보입니다. 제법 자란 새끼들을 거느린 젖소무늬 엄마 고양이였습니다. 엄마 고양이가 화들짝 놀란 표정을 지었던 건, 제 몸 걱정보다 새끼들 있는 자리를 들켰다는 불안 때문이겠지요. 얼음처럼 맑고 옅은 푸른빛 눈동자의 흰 고양이와 오드아이 고양이,그리고 코끝이 까만 젖소무늬 고양이가 한 마리. 동글동글 통통한 털 뭉치 네 개가 지붕 아래 빈틈에 살고 있었습니다. 오래된 집에는 그렇게 고양이가 있는 듯 없는 듯 스며들어 몸을 의탁할 빈틈이 있습니다.

 


2ee6dbd978087761041ec79d44f48326_1433463

2ee6dbd978087761041ec79d44f48326_1433463

 

 

골목에서 흰 고양이를 만나면 마음이 짠해집니다. 여느 가정에서 집고양이로 태어났다면 예쁨 받고 지냈겠지만, 이렇게 온 몸이 하얀 길고양이는 길에서 살아남기가 상대적으로 불리하다고 합니다. 얼룩무늬 위장복을 입는 다른 친구들과 달리 하얀 털 빛깔 때문에 눈에 잘 띄어 발각될 확률도 커지기 마련이니까요. 길고양이 만날 때마다 전해주려고 갖고 다니는 사료와 간식 캔을 담벼락 위로 올려주니, 고소한 냄새를 맡은 새끼고양이들이 지붕 밑 은신처에서 하나 둘 머리를 내밉니다. 좁은 통로를 따라 줄줄이 소시지처럼 나오는 녀석들이 귀엽습니다. 맛있는 것을 먹을 때 고양이들이 무의식적으로 내는'앙앙앙'소리를 달게 들으며 새끼고양이들 얼굴을 찬찬히 살핍니다.

 

콧잔등에 꼬질꼬질 까만 때가 묻었습니다. 엄마와 함께 지내는 어린 시절, 길고양이로 살아남는 지혜를 습득해서 혼자서도 골목에서 버텨나갈 수 있기를 응원해 봅니다.

 

 

2ee6dbd978087761041ec79d44f48326_1433463

 

 

길고양이 가족과 놀다 보니 어느덧 해가 지고 밤이 찾아옵니다. 길고양이들도 그제야 하나둘 모습을 드러냅니다. 고속버스를 타기 전에 요기라도 해야겠다 싶어 식당을 찾아가는 길, 기와로 곱게 무늬를 낸 황토담 앞에서 젖소무늬 길고양이를 만납니다. 음식 쓰레기가 모이는 곳이라, 길고양이도 저녁 한 끼를 해결하려 나선 모양입니다. 고양이도 사람도 먹어야 살지요. 담벼락 앞에 남은 사료를 털어주다가 혹시 몰라 한 줌 정도 남겨두었으니 다행입니다. 양껏 먹진 못했겠지만 입가심이나마 한 길고양이도, 저녁을 먹어야 하는 저도 각자의 길로 타박타박 걸어갑니다. 

 

 

CREDIT

글 사진 고경원

 

 

콘텐츠의 무단 도용, 전재 및 복제, 배포를 금합니다. 이를 어길 시 민, 형사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좋아요 1
http://www.petzzi.com/bbs/board.php?bo_table=ency_culture&wr_id=454&sca=%EA%B3%A0%EC%96%91%EC%9D%B4&page=4
URL을 길게 누르시면 복사하실 수 있습니다.
복사되었습니다. 원하시는 곳에 붙여넣어 주세요.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네이버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url복사
반려인의 의견   총 0

이 글에 첫 번째 의견을 남겨 주세요. 여러분의 생각이 궁금합니다.

문화/행사 더보기

이벤트 더보기

공지사항  
체험단이벤트  |   구독이벤트  |   포토이벤트
회사소개 |  이용약관 |  개인정보 보호정책 |  광고/제휴문의 |  구독문의 |  오시는길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삼평동 682 유스페이스 2동 507-1호(대왕판교로 670) | 대표전화 : 1544-8054 | 팩스 : 0303-0433-9971
회사명 : 펫앤스토리 | 대표자 : 황규형 | 개인정보관리책임자 : 이제원
사업자등록번호 : 239-88-00800 | 통신판매업 신고번호 : 제 2017-성남분당-1513호
(c) 2002-2019 petlove. All Rights Reserved
e-mail 문의하기
기사 : edit@petzzi.com
광고/제휴문의 : ad@petzz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