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경원의 길고양이 골목걷기 4화 태백 상장남부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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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 고경원의 길고양이 골목걷기 4화 태백 상장남부마을
조회2,475회   댓글1건   작성일4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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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경원의 길고양이 골목걷기

4화 태백 상장남부마을

 

"한참 잘 나갈 때는 지나가던 개도 만 원짜리를 물고 다녔지." 석탄 산업이 활황이던 시절, 탄광촌에서 전설처럼 전해져 내려오던 이야기입니다. 탄광 일은 고됐지만 그만큼 부를 가져다주었기에 이런 농담도 통했겠지요. 그때 그 시절, 탄광촌을 어슬렁거리는 개는 많았어도 길고양이는 드물었던 걸까요? 궁금한 마음을 안고 태백시 상장남부마을을 찾아가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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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백 상장남부마을의 벽화

 

마을 초입에 들어서자마자 광부들의 모습을 그린 대형 벽화가 눈길을 사로잡습니다.가만히 보면 다른 지역의 마을 벽화와는 사뭇 다른 모습입니다. 요즘 각 지자체에서 경쟁적으로 그려 넣는 벽화는 예쁘고 귀여운 그림이 대부분이지만, 상장남부마을에서는 탄광마을의 역사를 담은 그림들이 펼쳐져 있습니다.

 

아무 개연성 없이 예쁘기만 한 그림보다, 내가 사는 골목에 내 동네의 이야기가 담긴 것이 훨씬 더 좋아 보입니다. 골목골목 좁은 샛길이 있는 걸 보니, 길고양이가 숨어들기 딱 좋은 구조여서 더욱 마음이 끌리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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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고양이의 여유로움

 

길고양이와 만날 것 같은 예감은 어긋나는 법이 없습니다. 마을 초입 화단에서 시원하게 볼일 보는 녀석과 눈이 딱 마주칩니다. 등을 둥글게 세우고 발가락에 힘이 들어간 모습으로 보아 큰 볼일을 보는 게 분명합니다.

 

"아무리 인간을 만났기로서니, 내 사전에 '싸다 마는 법'은 없지!" 하고 선포하는 듯 결연한 의지가 보입니다. 시원하게 볼일을 본 길고양이는 정오의 햇볕이 강하게 내리쬐는 골목길로 저벅저벅 나섭니다.

 

사람을 따르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무서워하지도 않는 듯 적당한 거리감을 유지하며 저를 골목 안쪽으로 인도합니다. 느릿느릿 여유로운 걸음을 보니 제가 따라가도 별 신경을 쓰지 않는 모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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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곳에서 새로운 길고양이를 만나면 꼭 해보는 일이 있습니다. 제가 아는 고양이 말 중에서 몇 가지를 던져보는 것입니다. 스밀라와 함께 산지 만 6년이 넘어가면서 기초적인 고양이 말은 배울 수 있었으니까요.

 

고양이 말이란 별다른 게 없습니다. 고양이 울음소리의 높낮이와 억양으로 의사를 표현하는 것인데, 혹시 녀석에게도 통할까 싶어 "앵!" 하고 말을 건네 보았습니다. 한데 뜻밖에도 녀석이 무척 반색하며 "애앵~" 하고 답하는 게 아니겠어요? 보통은 제 인사가 무시당하기 일쑤인데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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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가운 마음에 "앵!" 하고 다시 말을 건넸더니 녀석이 "애앵, 애앵~" 화답하는 목소리가 더욱 크고 높아집니다. 그게 어떤 느낌이었느냐 하면, 외국인만 사는 나라에서 같은 나라 사람을 만났을 때 터져 나오는 격정적인 반가움과도 비슷했어요.

 

녀석이 엄청난 목청으로 떠들어대기 시작하는데 마치 "아니, 너 어떻게 고양이 말을 할 줄 알아? 어쩌고저쩌고…." 하고 수다 떠는 것처럼 들렸지요. 하지만 고양이 말을 짤막하게 흉내만 내는 실력으론 녀석의 말을 다 알아들을 수 없었습니다. 네이티브 스피커도 아닌데 외워 말한 문장이 어쩌다 통해 쑥스러워진 사람처럼 괜스레 미안한 마음까지 들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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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어. 나도 외워서 말한 게 어쩌다 들어맞은 거라고." 하며 고백하고 싶었지만, 그 긴 말을 어떻게 고양이 말로 해야 할 지도 모르겠고, 게다가 녀석의 우는 소리가 어찌나 컸는지 골목 끝에서 웬 아주머니가 막대기를 들고 다가오는 게 아니겠어요? 고양이 때문에 시끄러워 나오신 건지 그냥 지나가던 길인지 알 수 없지만, 고양이도 저도 화들짝 놀라 골목에서 일어서고 말았습니다.


녀석과 그렇게 서둘러 작별하고 다시 마을을 한 바퀴 돌아봅니다. 그려진 그림마다 친절하게 설명이 적혀 있어서 처음 방문한 외지인도 탄광마을의 역사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새로 광산에 온 신입 광부는 ‘햇돼지’라는 별명으로 불렸다고 하는군요. 그래서인지 마을 곳곳에 돼지 캐릭터가 그려져 있습니다.

 

황금을 뜻하는 벽화의 샛노란 바탕색은 과거의 영화로운 시절을 상징하는 것인데, 여기에는 점차 쇠락해가는 마을에 희망을 불어넣길 바라는 염원이 담겨 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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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에서는 아직까지 연탄난로를 쓰는 가정이 적지 않은지, 버려진 연탄재가 화단에 한 무더기나 쌓여있는 것이 눈에 띕니다. 도시 사람들 눈에는 쓰레기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시골에서 연탄재는 그냥 버리는 것이 아닙니다. 연탄재와 흙을 잘 섞어 비료 대신 쓰기도 하거든요.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라고 되묻던 안도현의 시 ‘너에게 묻는다’를 떠올리며 연탄을 유심히 보는데, 살구색 연탄재 더미 속에서 뭔가가 꼬물꼬물 움직입니다. 가만히 보니 아직 어린 삼색 길고양이입니다. 수북한 연탄재 더미가 보호색처럼 어린 고양이를 지켜주고 있더군요. 4월 중순이라고는 하나 아직은 찬바람이 쌩쌩 불던 태백에서, 약간의 온기가 남은 연탄재는 아기 고양이에게 따뜻한 보금자리가 되어주었는지도 모릅니다. 게다가 사람들이 버린 먹을 것까지 있으니 여기만한 명당(明堂)도 없었겠지요.

 

어린 삼색이는 연탄재 사이로 머리만 쏙 내밀더니 저와 눈이 마주칩니다. 낯선 사람이 무서웠던지 통통하고 짧은 다리를 열심히 놀려, 숨바꼭질하는 아이들이 그려진 담벼락 쪽으로 달아납니다. 녀석도 숨바꼭질하듯 골목 안쪽으로 숨어버리고 말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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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에서 볼일을 보고 들어가는 길에, 지붕 위에 우뚝 선 길고양이가 배웅하듯 얼굴을 내밀고 이쪽을 유심히 바라보고 있습니다. 세월이 흐르면서 한때 부유했던 탄광마을도 쇠락의 길에 접어들었지만, 길고양이가 숨어들 골목은 마을 곳곳에 넉넉합니다.

 

만 원짜리를 물고 다녔다는 강아지 그림 곁에 길고양이도 슬그머니 사이좋게 들어앉으면 좋겠다 싶어, 그런 풍경을 한번 상상해 봅니다. 

 

 

CREDIT

글 사진 고경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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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려인의 의견   총 1
풍뎅이  
벽화마을아래 길고양이 모습들이 정말 아름답네요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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