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있거라 짧았던 밤들아, 기형도 <빈집>

반려문화 문화 속 반려동물 이야기
강아지 | 잘 있거라 짧았던 밤들아, 기형도 <빈집>
조회904회   댓글0건   작성일2016-12-21 0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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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

잘 있거라 짧았던 밤들아

기형도 <빈집>

 

이해할 수 없는 것들 투성이였다. 왜 아침에 눈을 떠야 하는지, 왜 이 하루하루가 반복되어야만 하는지… 우울했다. 일상에 대한 근본 모를 우울함이 삶의 기쁨을 갉아먹었다. 내 속에서 기쁨은 잉태되는 법을 외면한 듯 고개를 들 생각을 하지 못했다. 우울함에 잠식된 것은 처음인지라, 그 우울함에 공손히 읍하는 방법도 몰랐다. 동일한 회의, 동일한 의문이 반복됐다. 스스로를 갉아먹으며 언제 끝날지 모를 시간을 보내는 것이 고통스러웠다. 앞으로의 삶도 이렇게 끊임없이 반복되다 끝날 것만 같은데 나는 어디로 가야 할지, 누구에게 마음을 건네야 할지 몰랐다. 어쩐지 길을 잃어버린 것 같은 멍청한 기분에 사로잡혀 있는 내 옆에는, 그래도 어린 강아지 한 마리가 있었다.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 

잘 있거라, 짧았던 밤들아 

창밖을 떠돌던 겨울안개들아 

아무것도 모르던 촛불들아, 잘 있거라

공포를 기다리던 흰 종이들아 

망설임을 대신하던 눈물들아 

잘 있거라,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열망들아 

장님처럼 나 이제 더듬거리며 문을 잠그네 

가엾은 내 사랑 빈집에 갇혔네 

 

1989, 기형도 <빈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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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밤낮을 헤아리는 사이


눈이 내리던 날, 귀가 접힌 황금색 어린 강아지가 우리 집에 왔다. 그 때까지 키워왔던 강아지들은 모두 마당개로 키웠으나, 어린 새끼를 눈이 내리는 밖에 내놓을 수는 없었다. 봄이 올 때까지는 강아지가 집에 함께 있기로 했다. 그렇게 결정하고서 이름을 지었다. 좋은 꿈을 많이 꾸라는 의미에서 몽이. 그렇지만 그 애는 잠드는 것을 거부하고 낑낑거리며 울었다. 어미 개가 그리운 건 아니었을까. 그렇더라도 나는 달리 해 줄 수 있는 것이 없었다. 미안해, 많이 울지 마… 그저 그 애를 안아들고 토닥거릴 뿐. 어느 순간 꾸물거리며 잠든 강아지를 보며 우리의 관계를 생각했다. 나는 곧 이 집을 떠날 것이기에, 머지않아 이 애에게 난 가족이 아니라 손님이 될 테지.

 

다음 날도, 그 다음 날도 그 애는 낑낑거리며 울었으므로 나는 그 애를 안아들고 잠자리에 들어야 했다. 품 안의 달뜬 온기는 낯설고, 참 간지러웠다. 나는 그렇게 사 개월을 그 애와 함께 잠들었다. 함께 낮밤을 흘려보내는 사이, 그 애는 낑낑거리지 않고도 내 머리맡, 혹은 발밑에서 여유 있게 잘 수 있는 어린 개로 자랐다.



가족의 이름으로


타향살이를 시작한 지 삼 개월쯤, 집 안에서 살던 몽이가 봄이 되어 마당으로 거처를 옮겼다는 소식을 들었다. 가족과 가까이 있고 싶은지 현관문 앞에만 있는다고 했다. 그리고 그 날 나는 우연히 인터넷 지도의 로드뷰로 우리 집을 검색하다가, 마당에 앉아 현관문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는 그 애를 발견했다. 외롭겠다…. 심장이 쿵, 쿵, 하고 어느 언저리를 찧는 느낌에 사로잡혀서 나는 고향으로 내려가는 차편을 예매했다.

 

다섯 시간인가 버스를 타고 내려간 고향집 앞에서, 그 애는 나를 발견하고는 헐레벌떡 달려왔다. 담벼락까지 훌쩍 뛰어 올라와 어쩔 줄 몰라 하며 낑낑거리는 그 애는 삼 개월 동안 부쩍 커져 있었다. 네가 외로워 보여서 왔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대신 언니도 너무 외로워… 라고 말했다. 그 자리에서 그 애를 붙잡고 한참 운 것은 가족들 비롯한 다른 사람들에게는 말 못할 비밀. 울고 나니 어쩐지 속이 후련한 한 편, 커다랗고 뜨끈뜨끈한 혀로 얼굴을 핥아주는 그 애는 그냥 너무 기뻐 보였다. 그 때야 나는 결코 이 애에게 손님이 될 수 없다는 걸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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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나의 걱정인형


그 뒤로도 종종 나는 몽이를 찾아 고향으로 내려갔다. 다시 만날 때마다 그 애는 훌쩍 커 있었고, 황금빛이었던 털은 크림색으로 천천히 여물었다. 나는 우울할 때, 외로울 때,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를 때, 너무 부끄러울 때, 지칠 때… 그 애를 찾아갔다. 가족들이 집을 다 비워 현관문이 굳게 닫혀 있어도, 그 애는 마당에서 자리를 지키다 나를 발견하고는 반갑게 꼬리를 흔들며 날아갈 듯 달려왔다. 나는 곧바로 집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마당의 계단에 그 애와 나란히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쏟아냈다. 잘 지냈냐, 언니는 지쳤는데 이젠 괜찮다… 그런 이야기들. 근본 모를 무력감, 우울함, 애증, 그런 이야기를 하며 그 애를 쓰다듬고 빗질을 했다. 발라당 누워 배를 보이는 그 애는 초롱한 눈망울로만 대답할 뿐이었으나, 그저 좋았다. 그렇게 이야기를 하고 나름의 대답을 들으며 감정들을 조곤조곤 닫아냈다. 허공에 흘려내기에는 아까워 어쩔 줄 모를 이야기들을 그렇게 그 애에게 밀어내고나면 우리의 빗질은 끝이 나 있곤 했다.



이불에서 과자를 먹는 어른


어느 날 이불을 덮고 과자를 먹으며 영화를 한 편 보고 있을 때, 그냥 문득 나는 내 슬럼프가 끝났다는 걸 알았다. 그 시기를 겨우 버텼던 것은 온전히 그 애 덕분이었다는 것도. 몽, 나는 그때만큼 힘들지도 않고 외롭지도 않아. 어딘가 가둬놓고 싶은 안쓰러운 감정들도 없어. 네 덕분인 것 같아. 나는 그 이야기를 하러 고향으로 다시 내려갔다. 꽤나 오랜만에 보는 얼굴인데, 기다리다 보면 미워할 만도 할 텐데, 몽이는 역시 온몸을 흔들며 달려왔다. 고맙다고 말을 걸었지만, 그보다 그 애는 산책 갈래? 라는 말에 펄쩍펄쩍 뛰며 기쁨을 표했다.

 

훌쩍 커버린 거대한 다섯 살 난 개. 내 품을 따뜻하게 데워줬고, 내 빈 집을 닫아주는 그 애는, 오늘도 마당에서 어쩌면 언제 돌아올지 모르는 내 생각을 하고 있지는 않을까. 내 행복을 빌어주고 있지는 않을까. 기운 냈으면 좋겠다고, 슬프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그럴지도 모르니, 나는 그 애에게 건넬 이야기를 잔뜩 가져갈 준비를 하는 거다. 즐겁게 놀고, 만족하며 일하고, 모자람 없이 사랑하고, 구김 없이 연대하는 그런 이야기. 그 애가 모자란 언니 생각에 걱정 않아도 될 이야기를 말이다.​ 

 


CREDIT

김나연 

그림 우서진

 

 

본 기사는 <매거진P>에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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