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을 싣고 | ① 그대 바라던 시간, 신년 용암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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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을 싣고 | ① 그대 바라던 시간, 신년 용암사에서
조회13,659회   댓글0건   작성일2016-12-30 11:06

본문

 

SPECIAL①

그대, 바라던 시간

신년 용암사에서

 

새해를 맞아 사람들이 가장 먼저 하는 일은 다짐이나 계획 따위의 약속을 하는 행위다. 다이어트에 성공하겠다는 개인적인 소망부터 회사 내 승진을 기원하는 원대한 포부까지. 때로 자신과 한 약속은 하루하루를 살아가게 만드는 원동력이 된다. <매거진C>를 꾸려가는 에디터들에게도 마찬가지다. 좋은 글, 아름다운 사진. 그리고 오롯한 마음가짐. 그들이 새해를 맞아 먼 여행길에 오른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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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함도 깊어져


용암사(聳巖寺)는 전남 화순의 유서 깊은 사찰이다. 이름 그대로 마치 용암이 솟아오른 듯한 거친 능선을 자랑하는 용암산 기슭 아래 위치하여 등산객들이 오고 가며 자주 찾는다. 1890년 조정기가 창건하여 임진왜란으로 폐사가 된 금오사(金鰲寺) 자리에 세워진 사찰이라는 설이 있지만 정확한 기록은 찾아보기 어렵다. 아침 안개가 유독 아름다운 곳으로, 잠시 복잡한 일상에서 벗어나 소박한 멋스러움을 만끽하기에 조금의 부족함이 없다.

 

에디터들이 용암사를 방문한 것은 한창 신년호 준비를 하고 있을 즈음이었다. 여느 때처럼 기사를 검색하다 신간 소식에 눈길이 갔다. 길고양이와의 우연한 만남을 계기로 용암사 주지 중현 스님이 깨달은 크고 작은 이치들을 묶어낸 불교서적 <길고양이의 법문>을 소개하는 글이었다. 무주상보시(無住相布施). 아무런 대가를 바라지 않고 베푸는 방법을 길고양이에게서 배우셨다는 스님의 이야기에 그만 마음이 동하고 말았다. 마침 정유년을 맞이하여 지난 일 년을 돌아보고 새롭게 잡지를 점검하는 데 짧은 성찰의 시간이 필요하던 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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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현듯 찾아온 인연


용암사에 도착한 것은 저녁 7시가 넘어서였다. 그때까지 중현 스님은 저녁을 드시지 않고 우리를 기다리고 계셨다. 짐을 채 풀기도 전에 부엌으로 우리를 안내한 스님은 콩나물 무침, 버섯조림, 동치미, 김치찌개에 김이 모락모락 나는 하얀 쌀밥을 가득 담아 주시며 몇 번이나 많이 먹으라는 말을 덧붙이셨다. 첫 만남이 서먹할 법도 한데 밥상을 앞에 두고 앉은 덕분일까. 어색함은 허기와 함께 금방 사라졌다. 

 

식사 후에는 맑은 차를 마시며 본격적인 고양이 토크가 시작되었다. 지난겨울 카오스 무늬의 고양이 한 마리가 다섯 마리의 새끼를 데리고 용암사에 들어선 것이 스님과 길고양이의 인연의 시작이었다고 한다. 한 눈에 보아도 삐쩍 마르고 허옇게 일은 털에 윤기도 없는 것이 제대로 밥을 챙겨먹지 못 한 티가 났다. 새끼들도 먹여 살려야 하는데 우짤꼬. 스님은 고양이의 밥을 챙겨주기 시작했다. 처음엔 사람을 경계하여 누가 쳐다보기라도 하면 부리나케 도망가기 바쁘던 고양이는 매일같이 밥그릇을 채워놓는 스님의 마음을 알았는지 눈치를 보면서도 슬금슬금 제 몫을 챙겨먹기 시작했다. 혹독한 추위 속에 오랫동안 고생한 새끼들 중 결국 두 마리 밖에 살아남지 못했지만, 이 교류를 계기로 용암사에는 길고양이가 자주 출몰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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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묘한 동거의 시작


대화 내내 카오스 무늬 고양이를 자꾸 ‘애 엄마’라 부르시기에 슬쩍 고양이의 이름을 물었다. 그러자 고양이 이름이 바로 '애엄마'란다. 올해 2월 또 새끼를 낳았기 때문이라는데, 이번에는 용암사에 드나드는 다른 길고양이 ‘덩치’가 아비로 추정된다고 했다. 덩치의 털색을 닮은 새끼가 세 마리, 애엄마의 털 무늬를 물려받은 새끼가 두 마리. 이를 빌미로 애엄마는 아주 용암사에 눌러 앉았다. 방 아랫목에 떡하니 배를 보이고 누워서 태연히 새끼 고양이들에게 젖을 물리는 애엄마의 능청에 스님은 그만 어이가 없어 웃을 수밖에 없었다. 나름대로 안전한 곳이라고 판단을 했는지 도무지 나갈 생각을 하지 않는 애엄마를 추운 산길로 내칠 수도 없고 해서 그렇게 함께 좁은 방에서 겨울을 났다. 

 

기묘한 동거가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스님은 애엄마를 조금 특별하게 여기게 되었다. 방 안에 앉아 책을 읽거나 글을 쓰다가 문득 유리창 너머를 바라보면 애엄마는 늘 툇마루에 앉아 멍하니 허공을 응시하고 있었다. 세상의 것에 마음을 두지 않고 언제든지 이곳을 훌쩍 떠날 수 있다는 무심한 표정으로. 스님은 그 모양새가 마치 수행에 정진하는 자기 자신의 모습과 꼭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나 나나 똑같구나. 지천에서 자라나는 풀을 보고도 깨닫는 게 있고, 불어오는 바람에도 느끼는 것이 있는데 그 중에서도 유독 길고양이에 착안하여 깨달음을 얻은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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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애틋한 중생


불교에는 따로 반려동물에 대한 교리는 없지만 중생(衆生)이라는 개념에서 모든 존재를 아우르는 기본 가치를 배울 수 있다. 중생이란 태어나 성장하고 다시 죽음에 이르는 생명을 뜻하는 유정(有情)과 바위, 산, 하늘, 달 같은 무생물인 무정(無情)을 함께 내포하는 말로, 인간과 동물을 나누지 않고 모든 존재를 똑같이 평등하고 의미 있게 여기는 불교 사상을 잘 보여주는 용어다. 

 

중현 스님은 한겨울에 새끼들이 딸린 몸으로 고생하는 애엄마를 방 안으로 불러들이고 따뜻한 이불까지 덮어주며 잠재웠던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가혹한 현실에 마주하는 것은 비단 사람들뿐만이 아니다. 길고양이들이 보내는 하루하루는 우리네보다 더 혹독할지언정 결코 만만하지 않다. 중생의 주어가 인간뿐이라고 생각하는 오만함과 측은지심(惻隱之心)의 덕이 부족한 마음은 동물을 상처 입힌다. 

 

애엄마는 스님이 불러도 가까이에 와 애교를 부리지 않는다. 배가 고플 때만 다가와 아는 척을 한다. 한때 고마움을 모르는 듯한 애엄마가 괘씸하게 느껴질 때도 있었지만 이제 스님은 아무것도 바라는 것이 없다. 하루 종일 뒹굴뒹굴 구르며 햇볕을 쬐는가 싶다가도 홀연히 사라져 제 모습을 보이지 않는 애엄마를 당연한 일상으로 받아들인 것이다. 그 어떤 기대도 바람도 없는 순수한 베풂이 바로 사랑이다.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방 저 안쪽에서 애엄마가 몇 번 기다랗게 울었다. 마치 스님의 말씀에 그렇다, 그렇다 맞장구를 치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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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하신년 바람을 싣고


아직 어둠이 내린 시간. 에디터들은 새벽 예불에 참여하느라 일찍 잠을 털고 일어났다. 점퍼 속을 파고드는 산 공기가 찼지만 기분 좋은 상쾌함이었다. 길고 어려운 불경을 노래처럼 읊으시는 스님들을 따라 함께 절을 하며 지난 밤 늦게까지 나누었던 대화를 곱씹었다. 이미 깨달음은 길고양이처럼 사뿐히 각자의 마음속에 들어서 있었다. 이제 이곳을 떠날 시간. 아쉽게도 어젯밤 외출하여 돌아오지 않은 애엄마는 만나볼 수 없었지만 대신 중현스님이 에디터들이 탄 차가 사라질 때까지 오래도록 손을 흔들어 주었다. 

 

2017년 정유년을 맞이하면서 바라건대, 모두가 행복한 새해가 되었으면 좋겠다. 길고양이가 배불리 먹고, 매서운 바람에 오들오들 떨지 않아도 되는 그런 날들이 당연했으면 좋겠다. 그 과정 속에 <매거진C>가 이정표의 역할을 할 수 있다면. 신년, 에디터들은 그런 약속과 결심을 품었다. 문득 지금 애엄마는 뜨끈한 방 안에서 늘어지게 잠을 자고 있을까, 아니면 툇마루에 앉아 스님께 그 동그란 뒤통수를 자랑하고 있을까 궁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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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FO

용암사

전라남도 화순군 한천면 용암길 149

 

 

CREDIT

장수연

사진 손한솔 

자료협조 중현 스님

 

 

본 기사는 <매거진C>에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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