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란의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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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란의 봄
조회3,558회   댓글0건   작성일2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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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란의 봄 

 

모란시장은 3월에서 5월까지 가장 성황이다. 4일, 9일마다 열리는 5일장이 주말에 서면 그야말로 발 딛을 틈 없다. 모란의 봄은 오래 전부터 마을에 내리는 축복이자 도시의 경사였다. 겨우내 한파에 몸을 떨며 상인들은 봄을 기다렸다. 그런데 올 봄 모란의 풍경은 예년과 사뭇 다를 것 같다. 모란의 상징이었던 개고기 취급 업소가 전면 철거를 앞두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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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남은 어떻게 모란을 바꿨나

 

모란시장 내 스물 두 개의 업소에서 한 해 8만 마리의 식용견이 거래된다. 개고기의 메카라 할 만하다. 그래서 모란시장은 오랫동안 동물보호 운동의 집결지이자 개식용 문화를 지키는 세력들의 든든한 벙커였다. 성남시는 혐오 시설로 질타 받는 이 지역을 탈바꿈하기 위해 단속과 협의를 거듭해 왔으나 실효는 크지 않았다. 2012년엔 5개부서 합동으로 집중 지도 단속을 벌였지만 도로를 점유한 우리를 철거하거나 소음을 방지하는 설비를 갖추는 등의 소극적 정비만 이끌어냈다. 아직 개식용을 긍정하는 사회적 인식이 무엇보다 넘기 힘든 장벽이었다. 그렇게 4년이 흘렀다.

 

작년 7월, 성남시는 11개 부서로 이뤄진 이른바 ‘개고기 문제 해결 태스크포스(TF)’를 꾸려 재차 해법을 찾기로 했다. 반려 인구가 천만 명을 넘어서고, 동물에 대한 인식과 고민이 더 깊어진 사회의 분위기를 감지한 것이다. 정계도 힘을 보탰다. 더불어민주당 표창원 의원은 도구나 열 등을 사용해 동물에게 상해를 입히면 안 된다는 내용을, 한정애 의원은 동물 관련 영업을 신고제에서 허가제로 전환하는 내용을 담아 동물보호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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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상인들이 한 발 물러섰다. 지난 12월 성남시와 가축상인회는 10여 차례 협의 끝에 <모란시장 환경정비 업무협약>을 체결하고 시장 내에서 판매 목적으로 개를 가두거나 도살하지 않기로 한다는 결정을 발표했다. 이제 모란시장에서 개 도살뿐 아니라 살아있는 개를 진열하는 행위까지 근절되는 것이다. 상인들이 자진 철거하는 대신 시는 업종 전환을 대폭 지원하기로 약속했다. 이 같은 대타협에 외신들이 즉각 반응했다. 한국의 개식용 철폐를 강력히 요구하던 영국 언론 ‘미러’는 이 합의가 “역사적 협약”이라고 특필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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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모란에서는

 

그러나 현장에는 아직도 냉랭한 공기가 흐른다. 모란시장의 주차장에 들어서니 한쪽 벽엔 시정에 반발하는 내용이 담긴 현수막들이 눈에 들어왔다. 카메라를 들고 차에서 내리자마자 개 유통장 내 상인들의 시선이 일제히 쏠렸다. 유통장 앞마다 도열한 거대한 철제 우리 안에는 수십 마리의 누렁이들과 듬성듬성 품종견까지 잔뜩 웅크리고 있었다. 풍문대로 짖음을 막기 위해 청력을 강제로 잃게 한 것인지, 아님 정말 짖을 기력조차 없어서인지 외지인을 보고도 조용한 녀석들이었다.

 

소리가 날아든 건 오히려 상인들 쪽에서였다. 경계심을 풀지 않던 그들은 조금 다가가려고 하자 곧바로 “사진 찍으면 안 돼요”라 외치며 취재진을 막아 세웠다. 자세히 보니 매장마다 ‘촬영 금지’ 문구가 큼직하게 박혀 있었다. 모란 시장은 장날이면 일대 교통이 마비될 정도로 활기를 띤다. 수많은 유동 인구가 활보하는 길목에 버젓이 위치했으나, 유통장의 풍경을 온전히 담은 사진을 쉽게 찾아볼 수 없는 이유가 여기 있었다. 외부 노출을 극도로 막아서며 외딴 섬처럼 명맥을 이어온 ‘전통’이었다. 이러한 상인들의 경계와 위협에는, 머지않아 내몰리듯 가게를 닫고 업종을 바꿔야 하는 처분에 억울한 심경 또한 담겨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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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거나 모란의 강아지들에겐 좋은 일이 아닌가 싶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직 언론에서 주의 깊게 다루지 못한 점이 있다. 성남시와 상인회의 업무협약을 살펴보면 시장에서 살아있는 개의 진열과 도살 행위는 중단되지만 개고기 판매를 금지하는 부분은 없다. 개고기 거래 금지에 대한 합의까지 도달하지 못한 것이다. 다시 말해 다른 곳에서 도살된 개고기는 여전히 모란 시장에서 거래될 수 있다. 미관을 해치는 개 진열과 도살 시설은 사라지겠지만, 잘 가공되어 포장된 개고기는 여전히 유통될 수 있다. 개들이 이제와 같은 잔혹한 방법으로 도살되는 것은 변함없다. 다만 가려질 뿐이다.

 

혹자는 혐오 시설의 셔터만 내리고 보는, 성남과 모란 시장의 ‘화장술’이라 여길 수도 있겠다. 누군가는 개를 먹지도 팔지도 않는 세상을 위한 위대한 첫 걸음이라 말할지도 모른다. 어떤 입장이든 이제 중요한 것은 다음 행보다. 작년 12월 동물보호단체와 수의사단체는 공동논평을 내어 성남 모란시장의 변화를 환영하며 전시 행정이 되지 않도록 철저히 감시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했다. 시설 철폐 이후의 움직임을 주시하겠다는 뜻이다. 시민들 사이에서도 유통 근절·불매 운동 여론이 모락모락 피어나고 있다. 모란시장의 유통장 업종 전환은 2월까지 이뤄지며, 5월까지 시설 환경 정비 사업이 완료될 예정이다. 모란 시장이 가장 번성하는 딱 그 시기다. 그러나 올해에는 봄날의 여유를 만끽하기보다 더 뜨겁고 치열해질 여름을 대비할 사람들이 필요하다. 모란의 봄, 그 다음 라운드를 말이다.



CREDIT

​글 김기웅   

사진 엄기태


 

본 기사는 <매거진P>에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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