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우리가 깊어지는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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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우리가 깊어지는 시간
조회406회   댓글0건   작성일3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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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고 양 이 는 1 0 살

11월, 우리가 깊어지는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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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하루가 아깝도록 좋은 계절이다. 햇살은 따뜻하고 바람은 시원한 가을날, 11년차 집고양이 희동이에게 허락된 나들이 공간은 미안하지만 베란다까지다. 작년 이맘때 희동이는 신부전 초기 진단을 받았다. 불안감에 밤낮없이 괴로워했던 걸 생각하면 별 탈 없이 흘러간 날들이 고맙기만 하다. 희동이만 괜찮으면 나는 괜찮아. 주문처럼 중얼거렸었는데 늘 그랬듯 이번에도 기특한 내 새끼가 걱정을 덜어 주었다.

 

해가 바뀌면 희동이와 함께 산 지 꽉 채운 10년이 된다. 세 번의 파양 끝에 갓 성묘가 되어 내게 왔던 희동이는 열한 살의 노묘가 되었다. 20대 대학생이었던 나는 곧 서른네 살이 된다. 이사를 좋아하는 나를 따라 안암동 옥탑방에서 천호동 주택, 원서동 한옥, 옥천동 스튜디오, 오금동 복층 집을 거쳐 지금의 후암동 언덕 집으로 이사를 오기까지 희동이의 생활도 많이 달라져 왔을 거다. 나에게 이사는 일상의 지루함을 떨치고 새로운 환경을 꾸리는 즐거움이었지만 자신만의 영역이 중요한 희동이에게는 어쩌면 스트레스였으리라. 그럼에도 희동 이가 더 나이 들기 전에 마당이 딸린 주택으로 이사를 가서 흙냄새를 맡게 해주고 싶다. 천천히, 하지만 빈틈없이 흐르는 노년의 시간을 조금 더 다사롭게 해 주고 싶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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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연말이 되면 희동이의 나이를 헤아리며 이런저런 걱정에 휩싸이곤 했는데, 올해는 그런 유난도 없이 가을을 맞는다. 햇볕에 데워진 희동이의 뒤통수를 쓰다듬거나, 쓰다듬는 김에 귓바퀴에 묻어 있는 귀지를 닦아주거나 하면서 열 번째 가을을 보내고 있다. 희동이만 괜찮으면 나는 괜찮아, 읊조리는 대신 같이 있어 너무 좋다, 하면서, 우리의 시간이 깊어지는 것을 가능한 한 즐기려고 한다.

 

집안 구석구석 햇살을 졸졸 따라다니고, 창문을 열어달라 쫑알거리고, 침대에 누워 손으로 이불을 툭툭 치면 내 곁에 와함께 뒹구는, 희동이와의 한결같은 나날이 얼마나 좋은지 모른다. 경험해 본 사람만이 알 수 있는 인생의 축복이지 싶다. 어제는 자기 전에 잠깐 보일러를 튼다는 게 집안이 후끈 달아 오를 지경이 되어 새벽에 숨이 막혀 잠을 깼다. 그 와중에 거실 한가운데 누워 뒹굴며 행복해하는 희동이를 보고 어찌나 웃음이 나던지. 아무래도 올해는 좀 일찍 보일러를 틀기 시작 해야겠다. 다가오는 겨울엔 베란다에서 같이 눈 구경도 하고, 여름 내내 열심히 키운 동백나무에서 예쁘게 꽃이 피는가 기다려 보자. 그리고 이 가을엔 ‘단이’도 가족을 찾을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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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암동의 가파른 계단 위에서 다 죽어가는 꼬물이를 구조해 치료하면서도 혹 예민한 희동이가 스트레스로 탈이 날까 싶어 서로 얼굴도 못 보게 했었다. 벌써 저만치 큰 걸 보면 아깽이의 시간은 희동이의 시간보다 빨리 흐르는 것 같다. 고양이와 함께 하는 삶은 그 자체로 기쁨이니까, 함께 하는 시간의 깊이를 아니까, 누군가에게 귀한 선물을 한다는 마음으로 단이의 가족을 기다려 볼 참이다. 나의 희동이도, 동생의 하울이도, 우리 자매가 구조한 단이도, 후암동 길고양이들에게도 더없이 너그러운 가을이기를.

 

 

CREDIT

글 사진 박초롱 

에디터 이승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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