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장 깨서 영혼 찾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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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장 깨서 영혼 찾기
조회600회   댓글0건   작성일2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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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 개 네 트 워 크

 

 

도장 깨서 영혼 찾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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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는 아침을 하고 있었고 늦잠을 잔 나는 꽃개를 보고 있었다. 안방 화장실 통로 문에 스핑크스처럼 기대앉은 꽃개는 해를 보고 있었다. 낮게 뜬 겨울 해는 눈높이에서 우리 집을 비추고 있었다. 꽃개는 회상에 잠긴 것처럼 가늘게 뜬 눈을 깜박거리며 그 자세를 유지했다. 갈색 눈동자는 촉촉하게 젖었고 눈 밑 털 역시 눈물이라도 흘린 양 젖어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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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개의 영혼


나는 일어나 화장실 통로 문을 여는 대신 꽃개가 언제까지 저러나 지켜봤다. 해를 마주보는 건 사람한테도 쉬운 일이 아니다. 내가 저런 식으로 봤다면 재채기를 했을 것이다. 꽃개는 뭘 하고 있었던 걸까? 정확히 무슨 생각으로 고층 아파트의 동쪽 측면을 가로지르는 황홀한 빛의 덩어리를 보고 있었을까?

인간은 언어의 동물이다. 내가 꽃개와 다른 유일한 점은 ‘언 어’를 사용하는 데 있다. 인간은 언어로 세계를 인식하며 우주의 기원까지 밝혀가는 중이다. 빅뱅부터 블랙홀까지. 개념을 언어에 담아 발성하는 순간 그것은 실제로 존재하는 사물이나 사건처럼 받아들여진다. 죽음이 두려웠던 인간은 신과 영혼이란 말까지 만들어냈다.

동물도 영혼이 있을까? 식탁에서 커피를 마시던 나는 문득 아내에게 꽃개한테는 영혼이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방금 식탁 밑을 지나간 꽃개한테서 그렇다고 말할 근거를 본 것같다고.



새벽 1시의 귤


식구가 모두 잠든 밤에 나는 갈증을 느꼈다. 생일 선물로 장만한 헤드폰을 끼고 독서 중이었다. 꽃개도 우리 사이에 끼 어 자고 있었다. 조용히 침대를 빠져나온 나는 주방 아일랜드 식탁에 있는 귤을 집어 들었다. 과일바구니는 주부들의 로망이다. 나는 침실에서 흘러나오는 독서등 불빛에 의지해 귤을 깠다. 한 조각을 떼어내 입에 넣는데 ‘털썩’ 하고 뭔가가 침대에서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척척척척’ 발소리와 함께 꽃개가 다가왔다. 내 앞에 차렷 자세로 앉은 녀석이 나를 봤다. 어둠 속에서 녀석의 갈망하는 눈빛이 레이저처럼 나를 지졌다. 남 먹는 거 쳐다보는 추잡한 녀석. 애견인 열에 아홉은, 아니 100명 중 99명은 아무런 내적 갈등 없이 귤을 내줄 것이다. 아까워서 안 주는 게 아니다. 여기서 귤을 주면 녀석은 귤을 먹을 때마다 나타나 달라고 할 것이다.

차렷 자세로 앉아 쳐다보면 내가 먹던 걸 줄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녀석의 머릿속에 ‘심게’ 된다. 좋은 버릇이라고 할수 있을까?

또한, 꽃개는 아로니아도 무척 밝힌다. 식구들이 아로니아와 요거트를 믹서기로 갈아 먹고, 나머지를 꽃개한테 주는데 이렇게나 밝힌다. 하루 2회, 2컵의 사료로 끝나는 극도로 제한된 배식을 받는 꽃개가 개껌을 무시한 장면은 충격그 자체였다. 다섯 가지 음식을 주면 꽃개는 맛있는 것부터 차례대로 먹을 것이다. 나만큼이나 명확한 ‘요구’를 지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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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장 깨기


주말마다 찾는 애견 공원은 대형견과 소형견 구역이 분리돼 있다. 소형견 구역에 있는 꽃개가 대형견 구역에 있는 보더콜리에게 도장 깨기를 제안하는 장면이다. 개(동물)는 인간과 달리 언어를 쓰지 않는다. 꽃개는 세차게 짖을 뿐이다.

그런데 알아들은 것처럼 꽃개의 요구에 응하는 개들이 있다. 결국 꽃개는 사진처럼 대형견 구역의 개를 자극해 달리는 데 성공했다. 울타리의 이쪽 끝에서 저쪽 끝까지 죽어라 달린다. 합이 잘 맞으면 3회, 4회까지 왕복한다. 보더 콜리를 시작으로 차우차우, 샤페이, 스탠다드 푸들, 진돗개, 시바견이 이 게임에 응했다. 둥이 아빠가 이것을 ‘도장 깨기’ 라고 한 것은 그 뒤로는 그 친구들을 보지 못해서다. 꽃개는 우리가 프리스비를 해주지 않자 이 게임을 고안해냈다. 뛰는 걸 좋아해 그런 거라면 드넓은 공원을 혼자 질주하면 됐을 것이다. 꽃개는 철조망을 사이에 두고 대형견과 경주하는 쪽을 택했다. 그 자신의 판단으로.

 

 

독수리


꽃개는 땅을 파듯 전력을 다해 이불을 판다. 이불에 숨겨진 독수리 인형을 꺼내고 있었다. 아내는 그 모습이 귀여워 인형을 이불 속에 일부러 감출 때도 있다. 먹이라도 포획한 걸까? 인형들의 수명은 길어야 사흘이었다. 배를 잡아 찢어 솜이 터져 나오면 버릴 수밖에 없었다. 프리스비를 마친 독수리는 구석으로 물고 가 핥아줬다. 어디 다치지는 않았나 보살피듯. 곁에 두고 잘 때도 있었다. 무엇이 더 애정하게 했는지는 몰라도 저 새 인형은 꽃개랑 2년을 함께 했다. 어쩌면 독수리 인형을 찾아 이불을 파는 꽃개의 모습은 먹이를 포획한 게 아니라 동료를 구하는 걸 수도 있다.



가족


꽃개가 스스로를 어떻게 인식하는지는 몰라도 우리를 ‘가 족’으로 인식하는 건 확실하다. 2년 전, 나는 A형 독감에 고생했던 적이 있다. 꽃개는 내가 죽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 는지 소파와 나 사이에 낀 채로 있었다. 이대로 보내줄 수는 없다는 듯 꼭 붙어있었다. 그뿐인가. 아내와 아들이 잠시 친정에 간 날이면, 꽃개는 가족이 돌아오기를 기다린다. 얼마나 애착이 강하고 간절한지 그 마음이 내게 고스란히 느껴 진다. 꽃개는 우리를 한 가족으로 생각하는 게 틀림없다.

반신반의하는 아내에게 나는 이렇게 말했다.

“꽃개는 소파에서 자기 집으로 갈 때 직선으로 가지 않아.

코로 내 발등을 찧거나 당신 다리 사이로 몸을 통과해서 가잖아. 삥 돌아서 가다가 멈추기도 하고, 뛰기도 하고, 발을 들기도 하고 발톱을 세워 말발굽 소리를 내기도 내면서 우리가 자신을 봐주길 바라지. 녀석이 소파에서 집으로 가는 과정엔 우리가 있어.”​ 

 

 

CREDIT

글·사진 BACON

에디터 윤태리, 이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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