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묘를 입양한다는 것

칼럼 전문가에게 듣는 동물 이야기
성묘를 입양한다는 것
조회 1577   2년전
고경원 길고양이 통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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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여행자의 일상여행기                      

#012 성묘를 입양한다는 것


유기묘였던 스밀라는 약 2살쯤 되었을 무렵 나와 처음 만났다. 성묘였지만 2.4kg의 비쩍 마른 몸에 털도 짧아 어딘지 모르게 빈한해 보였다. 그때 받은 첫인상을 “회색 쥐” 같았다고 적어놓은 것을 보면, 스밀라와 첫 만남에서 특별히 마음이 움직였던 건 아닌 모양이다. 안됐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내가 입양할 수 있는 처지도 아니었고, 스밀라를 구조한 친구 부탁으로 입양용 사진을 찍어주려고 만났을 뿐이니 의식적으로 정 주지 않으려 했는지도 모르겠다. 

 

처음 보았을 때 스밀라는 살가운 맛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고양이였다. 게다가 온몸으로 우울한 기운을 내뿜고 있었다. 하긴 갑자기 집을 잃고 거리를 떠돌며 굶기를 며칠씩 했다면 나라도 그랬겠지만. 자꾸 구석으로 숨는 녀석을 간신히 끄집어내 몇 장의 사진을 찍었다. 사진을 리사이즈하면서 원본마저 남겨두지 않은 걸 보면, 나는 첫 만남을 마지막으로 우리 인연도 끝났다고 믿었던 모양이다. 녀석이 홍대 근처의 어느 카페로 입양 갔다는 소식을 듣고도 ‘잘됐네’ 싶었지, 다시 못 보게 되어서 아쉽고 그립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한데 녀석이 근 일주일 만에 파양되어 돌아오고 말았다. 처음 고양이를 구조한 친구도 이미 길고양이를 데려와 키우던 터라 두 마리씩 키울 형편은 아니었고, 갑작스레 임보처를 구하기도 쉽지 않아 결국 실낱같은 인연이나마 있는 내가 임시로 스밀라를 맡게 되었다. 고양이를 무서워하는 어머니가 있는 집에서는 고양이를 키울 수 없었으니 며칠만 임시보호하는 조건이었다. 내 방은 서재로 쓰던 작은 베란다방과 이어져 있어서 창문을 가리면 방 너머가 보이지 않았다. 우선 급한 대로 그곳에 스밀라를 숨기고 며칠간 보살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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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음 왔을 때는 구석으로 숨기만 하더니, 요즘은 책꽂이 맨 위를 수시로 등정하는 스밀라.

 

 

아무리 잘 숨겨도 손바닥만 한 집에 고양이가 있는 걸 가족들이 모를 리가. 한데 뜻밖에도 어머니는 스밀라를 내 방에서만 키우는 걸 전제로 허락을 해주셨다. 며칠 멀찍이서 지켜보니 고양이란 동물이 생각보다 무섭지 않고, 파양까지 당한 스밀라의 처지가 딱했던 모양이었다. 그렇게 스밀라는 ‘모르는 고양이’에서 ‘우리 집 고양이’가 되었다. 

 

함께 살아보니 스밀라는 낯을 가리고 우울하기만 한 고양이가 아니었다. 마음의 상처가 깊어 사람에게 곁을 주지 못했을 뿐이었다. 처음 집에 왔을 땐 숨거나 멀찍이 떨어져 있던 녀석이,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내 곁으로 왔다. 내 냄새가 묻은 옷을 깔고 앉아 식빵을 굽고 있거나, 책상 곁에 앉아 잠자는 시간이 길어졌다. 새벽에 눈을 뜨면 나를 물끄러미 내려다보는 스밀라의 얼굴과 마주칠 때도 잦았다.

 

우리 집을 제 집이라 여기기 시작하면서부터 스밀라는 자기주장과 요구가 많아졌다. 요즘은 목소리의 높낮이로 원하는 바를 표현하고 인간을 조련하는 경지에 이르렀다. ‘놀아줘라’ ‘쓰다듬어라’ ‘베란다 문을 열어라’ 등 원하는 것도 다양하다. 그래도 침묵하는 스밀라보다 수다쟁이 스밀라에게 더 정이 간다. 뭔가를 당당히 요구한다는 건 나를 편하게 여기고 있다는 증거일 테니까.

 

출장이나 취재로 한동안 스밀라와 떨어져 있을 때면 목소리가 그립고 얼굴이 보고 싶어 인터넷을 뒤진다. ‘스밀라 고양이’ 키워드로 검색하면 스밀라의 지난 모습이 섬네일 사진으로 주르르 뜬다. 그 목록들을 처음 보았을 때 나도 모르게 뭉클했다. 스크롤바를 내리는 짧은 시간 동안, 스밀라와 함께 보낸 10년에 가까운 세월이 주마등처럼 스치고 지나가서. 앞으로 이 페이지에 얼마나 더 많은 사진을 더할 수 있을까? 남은 시간이 얼마 없을 거라 생각하면 매일이 소중하고, 그 시간이 흘러가버리는 게 아까워 자꾸만 스밀라를 찍게 된다. 이렇게라도 기억 속에 붙잡아두고 싶다.

 

요즘 아는 분의 부탁으로 새끼 길고양이 입양을 주선하다가, 문득 스밀라의 입양 초기 시절이 떠올라 적어본다. 아무래도 어린 고양이 쪽이 입양가기 쉽다 보니 성묘는 입양이 잘 되지 않는단다. 사실 내 고양이의 어린 시절을 모른다면 뭔가 소중한 추억을 빼앗겨버린 듯한 느낌이 들게다. 또 성묘로 입양한 고양이가 쉽게 마음을 열지 않는다면 언제 친해질까 생각하며 답답할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랜 시간 관계를 다져가다 보면 어느새 고양이가 우리를 가족으로 받아들이는 때가 온다. 너무 쉽게 얻은 마음보다, 그렇게 한 걸음씩 서로 다가가 마음과 마음이 만났을 때 얻는 기쁨은 더 크고 소중하다는 이야기를 전하고 싶다. 

 

 

CREDIT

글·사진 고경원

 

 

본 기사는 <매거진C>에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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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 소개

고경원 길고양이 통신
2002년부터 길고양이의 삶을 사진과 글로 전하면서 출판, 전시, 강연을 통해 고양이에 대한 이해를 돕고 있습니다. 블로그 ‘길고양이 통신’(catstory.kr)에서 다양한 지역의 고양이 여행기를 읽어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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