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고향, 동백섬 고양이

칼럼 전문가에게 듣는 동물 이야기
마음의 고향, 동백섬 고양이
조회 1481   1년전
고경원 길고양이 통신


고양이 여행자의 일상여행기                      

#013  마음의 고향, 동백섬 고양이​

 

언제 찾아가도 마음이 편안해지는 여행지가 있다. 내겐 부산 동백섬이 그랬다. 실제로 부산은 어릴 적 살던 고향이기도 하고, 그중에서도 동백섬은 초중고 학생들의 소풍지로 익숙한 곳이라 그곳에서 보낸 시간들이 유독 선하다. 소나무 숲에 돗자리 깔고 앉아 도시락 먹던 기억, 선생님이 나무 사이에 어설프게 숨겨놓은 보물찾기를 하던 기억이 생생하다.

 

하지만 동백섬이 지금 내게 의미가 있다면 역시 그곳에 고양이가 살고 있기 때문이다. 언제부터였는지는 모르지만, 고양이들은 언제나 그곳에 있었다. 동백섬 고양이와 인사하려면 찾아가는 시간대도 중요하다. 아침 일찍 혹은 한낮에는 먹이를 구하러 돌아다니느라 그런지 녀석들의 코빼기도 보기 힘들다. 하지만 오후 느지막한 시간대에 찾아가면 해안 산책로를 따라 조성된 나무 데크 옆 널따란 바위 위에서 배를 지지고 누운 녀석들을 발견하기란 어렵지 않다. 아마 이곳에서 하루 일과를 정리하면서 휴식을 취하고, 야행성인 녀석들의 특성 상 밤 마실을 나설 체력 회복을 하는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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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백섬 산책로 데크 옆 명당자리를 지키고 있는 노랑둥이 일족.

 

동백섬의 고양이 출몰장소 중에서도 이른바 명당자리는 해안 산책로 건너편의 암반 지대다. 고양이가 있는 이 바위터는 난간으로 가로막혀 있어 사람들이 다가올 수 없기에 안전이 확보된다. 또 고양이를 좋아하는 관광객과 눈이라도 마주치면 뭐라도 먹을거리를 얻어먹을 확률이 높다 보니, 고양이들도 한낮의 먹이사냥을 마치면 대부분 이곳에서 시간을 보낸다. 명당자리를 차지하는 건 무리 중 가장 세력이 강한 노랑둥이 일족이다. 한 영역 내에서 어떤 고양이가 왕고참으로 활동하는가에 따라 그 영역 고양이들의 털 무늬가 좌우되곤 하는데, 이 구역에선 노랑둥이가 우세를 차지하고 있다.

 

유명 관광지의 고양이가 대부분 그러하듯 동백섬 고양이들도 사람에 대한 경계심이 적은 편이다. 가까이 가면 달아나기는 하지만, 어느 정도 안전거리를 확보했다 생각하면 의뭉스러운 표정을 하고서 지나가는 사람들을 관찰한다. 뭘 해도 흔들리지 않을 것만 같은 표정으로 바위에 꼼짝 앉고 널브러진 녀석을 보노라면 고양이 선사의 기질이 보인다. 실눈을 뜨고 이쪽을 바라보는 눈매 앞에서는 어쩐지 먹을 것을 공양해야만 할 것 같은 생각이 불시로 든다. 그윽한 표정으로 사람의 마음을 조정하는 건 집고양이만의 특기가 아니다. 길고양이 역시 애묘인의 마음을 자유자재로 조련한다.

 

내가 갖다 바친 사료로 배를 불린 녀석들이 저녁 마실을 떠나러 흩어지고 난 자리. 슬슬 파장 느낌이 들어 나도 자리에서 일어서는데 어린 고양이 한 쌍이 뽈뽈 걸어왔다. 노랑둥이 집단의 기세에 밀려 나오지 못했다가, 자리가 비었으니 뭐라도 건져 볼까 싶어 소심하게 걸어 나온 것이다. 내게서 등을 돌리고 앉아 바다 건너 멀리 보이는 빌딩숲을 바라보는 녀석들의 등짝이 어쩐지 쓸쓸해 보였다. 젊어서 좋은 게 아니라 ‘젊어서 힘들겠다’던 노희경 작가의 말이 문득 떠올랐다. 아직 어려서 힘들구나. 조금만 기운 내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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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주의 푯말처럼, 어린 길고양이 앞에도 숱한숱한 위험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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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멀리 빌딩숲을 바라보는 어린 고양이 형제의 뒷모습이 쓸쓸해 보인다.

 

고양이에 관심 없는 사람들은 무심히 지나치는 한 지역의 길고양이 역사를 기록하다 보면 여러 가지 감정에 사로잡힌다. 몇 년 전 어머니와 함께 고양이 여행 차 찾아왔을 때 만난 얼룩고양이 녀석이 여전히 소심한 얼굴로 바위 사이를 걸어 다니는 걸 보면 ‘그동안 용케 견뎌 왔구나’ 싶어 기특해지고, 이번처럼 못 보던 새끼고양이가 불쑥 고개를 내밀면 이렇게 동백섬 고양이의 역사가 계속되는구나 싶어 애틋해진다. 다음 방문에서도 녀석들과 만날 수 있길, 그땐 부쩍 어른이 되었을 고양이 형제들이 당당하게 뛰어다니는 모습을 볼 수 있길 빌었다.

 

 

CREDIT

글·사진 고경원

 

 

본 기사는 <매거진C>에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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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 소개

고경원 길고양이 통신
2002년부터 길고양이의 삶을 사진과 글로 전하면서 출판, 전시, 강연을 통해 고양이에 대한 이해를 돕고 있습니다. 블로그 ‘길고양이 통신’(catstory.kr)에서 다양한 지역의 고양이 여행기를 읽어볼 수 있습니다.
반려인의 의견   총 3
미호미랑맘  
저도 수년전에 부산을 방문했다가 산책길에 맞닥뜨린 기억이 있습니다.
마침 약간의 간식이 있어서 있는대로 조공하고 왔는데 그녀석들이겠구나 싶네요. 기후도 따뜻하고 숨을 곳이 많아서 오히려 녀석들에게는 좋은 공간이겠구나 생각했다가도 파도가 많이치고 날씨가 험해져서 인적이 뜸해지면 어찌 살아날까 걱정도 되더라구요.
답글 0
야옹님  
부산 동백섬 자주 갔었는데....제가 갔던 시간대랑 맞지 않았는지 고양이 가족은 한번도 못봤어요 ㅠ 아쉽네요 다음엔 꼭 찾아봐야겠어요
답글 0
어리네  
저섬에 사는것아 도시보다 나을듯 싶기두하고~궂은날이 걱정이 되네여~
가끔 티비에서 방한칸에서 여러냥이들을 키우는걸보면~
진짜 위해주는것이 뭔지 쨘~할때가 있어여
저도 냥이둘 키우는데 뒷모습사진보니 쨘~
아프지말고 잘살기를 빌어요
답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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