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가 뛰노는 그림책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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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가 뛰노는 그림책 마을
조회 1485   2년전
고경원 길고양이 통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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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여행자의 일상여행기                      

#014 고양이가 뛰노는 그림책 마을 

 

고양이 여행을 떠날 때면 가급적 그 지역에서 벽화마을로 유명한 곳을 목적지에 포함시킨다. 벽화마을이 조성된 곳은 공공미술 프로젝트를 통해 관광객을 유입시켜 쇠락한 지역을 되살리려는 경우가 대부분이기에 오래된 마을이 많다. 개발 광풍을 살짝 피한 이런 마을에서는 사람을 대하는 길고양이의 태도도 사뭇 다르다. 도심이나 번화가에 사는 녀석들보다 한결 여유롭다고나 할까. 주민들도 ‘너나 우리나 살기 팍팍한 건 마찬가지구나’ 하는 식의 동병상련을 느껴서인지, 아니면 굳이 고양이가 곁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신경 쓸 필요를 느끼지 못해서서인지 길고양이를 만나도 데면데면하다. 적당한 무관심과 무신경이 밴 그 공기가 좋아서 나는 일부러 벽화마을을 찾곤 했다.

 

타이완 중부 윈린(雲林)현의 후웨이(虎尾)진에 있는 고양이 그림책 마을도 그중 하나다. 하지만 이곳까지 갈 수단이라곤 기차역 근처 터미널에서 띄엄띄엄 출발하는 버스뿐. 구글맵의 길 찾기 기능으로 계산해도 몇 십 분은 족히 걸리니 택시를 타기도 부담스러웠다. 택시비는 둘째 치고, 한적한 시골길을 달리던 택시기사 아저씨가 딴 맘이라도 먹으면 어쩌나 하는 소심한 걱정이 앞섰다. 혼자 여행하는 뚜벅이 여행자에겐 접근이 쉽지 않은 농촌 마을이었지만 포기할 수는 없었다. 허우통과는 또 다른 의미에서 이곳이 ‘제2의 고양이 마을’로 떠오르고 있다던 말을 직접 내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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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벽화 옆에 실물의자를 놓고 함께 티타임을 즐기는 것처럼 연출해서 사진을 찍을 수 있게 했다. ​

 

 

타이중에서 기차를 타고 더우류(斗六)역에 내려 타이시(台西) 객운 버스로 갈아타고 40분쯤 달렸을까, 논밭에 둘러싸인 조그마한 초등학교가 나타났다. 찾아가는 경로를 구글맵으로 수차례 예습했던 터라 처음 보는 거리지만 익숙했다. 학교 옆 좁은 길을 따라 200미터쯤 내려가면 고양이 벽화 거리가 시작된다. 처음 마을에 들른 사람은 벽화 거리 초입 왼편의 작은 마트에 먼저 들러보는 게 좋겠다. 마을 기념품도 구입할 수 있고, 경운기 운전석 앞부분을 고양이 얼굴 모양으로 개조한 커피 수레도 볼 수 있을 테니까.

 

마을에 그려진 벽화는 노란 고양이 ‘샤오미(小咪)’가 주인공인 그림책 <지붕 위의 고양이(屋頂上的貓)>의 내용을 담은 것이다. 마을 하나가 한 권의 그림책이 되는 셈이다. 벽화 거리 자체는 그리 길지 않지만, 구획을 나눠 오밀조밀 그려넣은 고양이 그림을 하나하나 찾아가며 기념사진을 찍는 재미가 있다. 특히 배경을 3D 착시회화로 그린 덕에 사진을 찍으면 마치 여행자가 그림 속으로 들어가 고양이와 나란히 선 것처럼 보인다. 착시미술을 좋아하는 타이완 사람들의 입맛에 딱 맞는 콘셉트다. 관광객은 그림 속 고양이를 어루만지기도 하고, 그림에 그려진 생선을 먹여주는 시늉도 하며 역할극 놀이에 푹 빠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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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반에 앉은 고양이를 쓰다듬는 시늉을 하며 즐거워하는 연인들. 벽화만 그린 것이 아니라 주변 시설물을 활용해 입체적인 느낌을 살렸다.

 

벽화 중 압권은 거대고양이의 모습으로 변신해 잠든 샤오미의 모습이다. 벽화 작가는 착시 효과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었던지, 고양이 앞다리와 뒷다리 부분을 따로 입체로 만들어 벽에 붙였다. 그래서 벽화에 몸을 기대고 앉아 사진을 찍으면, 3인용 소파만큼이나 큰 샤오미의 품에 폭 안긴 듯한 모습이 된다. 애묘인이라면 한번쯤 폭신한 고양이 품에 기대어 쉬고 싶다는 상상을 해봤을 텐데, 이를 현실로 옮겨낸 아이디어가 귀엽다. 바로 옆 자리에는 착시 효과를 이용해서 고양이와 함께 차를 마시는 듯한 모습을 연출한 것도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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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단 한쪽을 커다란 고양이의 앞발처럼 연출해 품에 안겨 있는 느낌이 든다.

 

 

고양이의 작은 키와 낮은 눈높이로 바라본 인간 세상이 벽화로 그려지고, 허름한 담벼락 위가 세상에서 가장 신 나는 놀이터인 양 뛰노는 샤오미의 모습 덕에 한적했던 농촌 마을에도 생기가 돌았다. 마을 한쪽에는 원목 데크로 장식한 고양이 공원도 생겼다. 주말이면 관광객을 대상으로 소시지와 냉차 등 주전부리를 실은 손수레가 이 공원에 일렬로 늘어선다. 노후한 주택이 벽화와 함께 새롭게 단장되고 주민 소득도 새롭게 창출되면서 고양이 그림책 마을은 타이완에서 성공적인 농촌 재생 사례로 손꼽히게 됐다고 한다. 그림책 속에서만 생명을 지녔을 고양이가 한적한 농촌 마을 하나를 이처럼 변화시켰다는 것이 놀랍기만 하다. 우리나라 땅 어딘가에 고양이를 테마로 한 벽화 마을이 하나 생기면 어떻게 될까, 한번쯤 상상해보게 된다.



CREDIT

글·사진 고경원

 

 

본 기사는 <매거진C>에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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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 소개

고경원 길고양이 통신
2002년부터 길고양이의 삶을 사진과 글로 전하면서 출판, 전시, 강연을 통해 고양이에 대한 이해를 돕고 있습니다. 블로그 ‘길고양이 통신’(catstory.kr)에서 다양한 지역의 고양이 여행기를 읽어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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