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카오에서 길 잃은 고양이 되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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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카오에서 길 잃은 고양이 되어보기
조회 2170   2년전
고경원 길고양이 통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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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여행자의 일상여행기                      

#015 마카오에서 길 잃은 고양이 되어보기

 

홍콩 여행자는 가까운 마카오와 묶어 여행하는 경우가 많다. 마카오는 홍콩에서 페리를 타고 한 시간 정도면 도착하지만, 엄연히 다른 국가로 분류된다. 특히 홍콩에서 현지 유심을 구매했어도 마카오에서는 쓸 수 없었다. 결국 홍콩달러 118불을 내고 마카오에서 40MB 데이터 로밍이 가능한 요금제가 포함된 유심을 사서 썼는데, 데이터 제한이 은근히 발목을 잡았다. 낯선 마카오에서 이동 경로를 수시로 확인하면서 중간 중간 데이터를 사용하다 보니 어느새 남은 용량이 거의 바닥 수준이었다. 원래 길고양이를 만나러 찾아갔던 꼴로안 빌리지에서 한 마리도 고양이를 만나지 못한 터였고, 아직 마카오에서의 일정은 좀 더 남아 있는 상태였다.

 

마카오 본섬으로 건너가 까몽이스 공원에 들렀다가 다시 세나도 광장 쪽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공원에서 광장까진 원래 도보 20-30분 거리라지만 방향을 잘못 잡아 길 찾기가 어려웠다. 관광산업이 발달한 나라라 공공기관이나 웬만한 가게 앞에선 와이파이가 잘 터진다고는 해도 혹시 모를 비상사태를 대비해 최후의 데이터는 남겨둬야 했다. 결국 조금 걷다가 방향이 헷갈리면 찔끔찔끔 데이터 사용을 하는 식으로 길을 찾기 시작했다. 남은 물을 최대한 아끼면서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찾을 때까지 헤매는 조난자의 심정이 이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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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립주택과 아파트가 빽빽이 들어선 마카오 골목길. 한 주택 베란다에서 고양이 전망대를 발견했다.​

 

 

그렇게 한참 걷다 들어선 골목에서 고양이를 만났다. 아파트 2층에 실고 있는 고양이 대가족이었다. 처음에는 한 마리만 있는 줄 알았는데 가만히 보니 다섯 마리가 넘었다. 고양이들은 반려인이 베란다 쪽에 전망대를 마련해준 덕분에 그 위에서 쉬고 있었다. 전망대라 해도 관광객을 위한 시설처럼 화려한 건 아니고, 구멍 뚫린 깔판 같은 것을 깔아뒀을 뿐이지만. 더운 날씨에 에어컨을 사용하지 않고 더위를 견디려면 그늘 있고 바람이 잘 통하는 쉼터가 필요할 테고, 고양이들에게는 베란다 전망대가 그런 곳이었다.

 

더위에 지쳐 잠자고 있던 고양이들이 찰칵찰칵 사진 찍는 소리에 눈을 뜨고 나를 내려다보았다. 대개 사람은 높은 데서 고양이를 내려다보고 고양이는 사람을 올려다보기 마련이지만, 지금은 상황이 역전됐다. 아마 고양이가 사람을 올려다보는 시점이 딱 지금의 내 시점 정도이리라. 길은 비록 헤맸지만, 마카오의 가정집 고양이들을 만나 눈인사할 수 있어서 내겐 행운이었다. 고양이를 만나 원기를 얻고 조금 더 걸어보다가, 결국 그날은 내 힘으로 세나도 광장까지 가는 길을 찾지 못하고 택시를 탔다. 마카오 택시 요금은 그리 비싸지 않고 안전한 걸로 유명하다. 여행지에서는 돈보다 시간이 더 중요한 법이니, 걸어서 목적지까지 찾아가보겠다는 오기를 버릴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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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방문객을 놀란 눈으로 바라보는 집고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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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카오의 더위를 견디려면 고양이들에겐 바람이 잘 통하는 그늘진 쉼터가 필요하다.​

 

 

마카오 골목길에서 길 잃은 고양이의 마음이 되어본 날, 문득 집을 잃어버리거나 거리에 버려진 고양이들을 생각한다. 내겐 길을 찾아줄 스마트폰과 택시비가 있었지만, 고양이들은 아무 대비도 없이 낯선 세상과 맞닥뜨렸을 것이다. 익숙한 반려인의 손길도, 따뜻한 잠자리와 밥도 없는 거리를 헤매는 일이 얼마나 막막하고 힘들까 생각하면, 내가 했던 짧은 고생은 고생 축에도 끼지 않는다는 걸 새삼 느낀다. 그러니 고양이를 키우는 사람이라면 한번쯤 낯선 거리에서 길을 잃어봤으면 좋겠다. 그래서 그 두려움을 직접 느껴보았으면 좋겠다. 그러면 한번 우리 곁에 들인 고양이를 마지막까지 지켜주어야 하는 이유를 몸으로 배우게 될 테니까. 그 막막함을 내 고양이에게는 겪게 하고 싶지 않을 테니까.

 

 

CREDIT

글·사진 고경원

 

 

본 기사는 <매거진C>에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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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 소개

고경원 길고양이 통신
2002년부터 고양이책 작가로 활동하며 ‘고경원의 길고양이 통신(catstory.kr)’에 국내외 고양이 취재기를 연재하고 있다. 2017년 고양이 전문 출판사 ‘야옹서가’를 창업해, 첫 번째 책 <히끄네 집-고양이 히끄와 아부지의 제주생활기>를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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