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물전을 지키는 청차우 섬 고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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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물전을 지키는 청차우 섬 고양이
조회 1169   1년전
고경원 길고양이 통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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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여행자의 일상여행기                      

#016 어물전을 지키는 청차우 섬 고양이

 

홍콩 고양이 여행에서는 주로 두 가지 방향으로 목적지를 나눠 다니곤 했다. 전자는 이 일대에서 소문난 고양이 명소나 길고양이 보호 활동가가 있는 곳을 찾아가는 쪽인데, 아무래도 목적지가 명확하기에 헛걸음을 할 확률도 적다. 후자는 인구수가 적거나 오래된 골목이 있는 마을을 찾아가는 여행이다. 홍콩은 워낙 쇼핑의 천국으로 유명한 까닭에 여름, 겨울 시즌 바겐세일이 시작되는 때를 노려 방문하는 사람이 많지만, 고양이 여행자에게는 오히려 그렇게 사람이 몰리는 기간이 피해야할 때다. 여행 성수기를 피해 홍콩을 찾은 것도 그래서였다.

 

돌이켜보면 이번 여행에는 주로 섬의 고양이들을 많이 만났던 것 같다. 홍콩 본섬도 섬이긴 하지만 흔히 생각하는 ‘고즈넉하고 사람 적은 섬’의 이미지와는 상당히 다르니 예외로 하고, 주로 규모가 작은 섬을 중심으로 하루씩 돌았다. 참고로 홍콩에서는 다른 여행지와 달리 섬 여행을 하기가 비교적 수월하다. 센트럴 페리 터미널에서 다른 섬까지 가는 배편이 다양하고 운임도 저렴해서다. 옥토퍼스 카드를 개찰구에 찍기만 하면 운임 결제가 가능하니 잔돈을 돌려받지 못할까 걱정할 필요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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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직 손님이 없는 가게를 떡하니 지키고 있는 청차우 섬의 어물전 고양이.


섬 고양이를 만나러 가는 날은 특별히 목적지를 정해놓고 떠나지 않았다. ‘하루에 한 섬씩, 고양이를 만나러 가자’라는 목표만 정해두고 숙소에서 페리 터미널까지 걸어간 다음, 터미널을 어슬렁거리며 시간표를 물색해서 가장 빨리 떠나는 배편에 올라탔다. 그렇게 무작정 도착한 청차우 섬은 ‘청차우 빵 축제’로 유명한 곳이었다. 축제 때는 섬 내의 팍타이 사원 앞에 ‘평안(平安)’이라는 글자를 적은 동그란 찐빵으로 약 15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탑을 쌓는데, 옛날 해적에게 희생된 이들의 원혼을 달래기 위해 만들기 시작한 것이 오늘날과 같은 축제 형식으로 굳어졌다. 맨 꼭대기에 있는 빵을 차지하는 사람에게 행운이 온다고 믿었기에, 축제 때면 빵 탑에 오르려는 사람들로 장관을 이룬다고 한다. 빵 축제의 위용이 궁금한 분은 홍콩역사박물관에 청차우 빵 축제를 재현해놓은 장소가 있으니 들러보시길.

 

관광이 목적인 여행 같으면 축제 기간에 맞춰 방문했겠지만, 그러면 고양이는커녕 사람만 잔뜩 보고 돌아올 게 뻔해서 일정을 조정했다. 다소 이른 편인 오전 10시에 찾아갔는데도 사람이 적잖은 상황이라 길고양이는 드물었고 가게에서 키우는 고양이가 대부분이었다. 그중 한 녀석이 내 눈길을 끌었으니, 바로 어물전 고양이. 아직 이른 시간이라 가게는 영업 준비 중이었지만, 천장에 매달아놓은 말린 생선 꿰미가 이 가게의 업종을 한눈에 보여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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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양이에게 생선가게 맡기랴’라는 우리네 속담과 달리, 녀석은 건어물에 관심이 없다. 오직 가게를 지키는 데만 신경 쓸 뿐.

 

 

‘고양이에게 생선가게를 맡기랴’라는 우리나라 속담이 있다. 고양이가 생선을 좋아하니, 가게를 지키기는커녕 날름날름 생선을 집어먹기만 할 거라고 여겨 이런 속담을 만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청차우의 어물전 고양이는 비릿한 건어물 냄새가 아무리 코끝을 유혹해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오히려 파리와 쥐로부터 건어물을 지키기라도 하려는 듯 매대를 떡하니 차지하고 앉아 있는 게 아닌가.

 

매대에 어물이 좀 더 쌓였을 때 다시 오면 좋겠다 싶어, 섬을 조금 거닐다 점심때쯤 다시 어물전으로 가 보았다. 녀석은 여전히 매대 한쪽 자리에 누워 가게를 지키고 있다. 주인이 없을 때도 가게를 보는 일에 익숙한 듯했다. 서당 개 삼 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던데, 어물전 고양이 삼 년이면 손님이 찾는 물건을 냉큼 입으로 물어 갖다 줄 것만 같았다. 어쩌면, 보는 사람이 아무도 없을 때 두 발로 일어나서 팔린 수량을 헤아리며 “오늘 매출은 얼마로군. 에휴, 얼마만큼 팔려야 내 간식비도 좀 나올 텐데…” 하며 한탄하는 건 아닐까.

 

 

CREDIT
글·사진 고경원
 
 
본 기사는 <매거진C>에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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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 소개

고경원 길고양이 통신
2002년부터 길고양이의 삶을 사진과 글로 전하면서 출판, 전시, 강연을 통해 고양이에 대한 이해를 돕고 있습니다. 블로그 ‘길고양이 통신’(catstory.kr)에서 다양한 지역의 고양이 여행기를 읽어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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