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고야 성 앞 공원에서 본 흔한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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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고야 성 앞 공원에서 본 흔한 풍경
조회 1486   2년전
고경원 길고양이 통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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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여행자의 일상여행기                      

#018 나고야 성 앞 공원에서 본 흔한 풍경

 

일본 고양이 여행을 떠나면 어김없이 목적지와 가까운 공원에 들른다. 사실 갈 곳 많고 시간은 부족한 여행자에게 ‘건너뛰어야 할 장소’ 1순위로 꼽히는 게 공원이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될 정도로 문화적 가치가 있거나 경치가 수려한 곳이 아니라면, 공원은 여행 가이드북에서도 별 다섯 개 만점에 한두 개를 받는 게 고작인 비인기장소다. 하지만 내게 공원은 특별하다. 낯선 도시에서 혼자 길을 찾는 부담감도, 어깨를 짓누르는 무거운 가방도 잠시 내려두고 쉴 수 있는 안식처가 되어주니까. 공원에 머물 때면 내가 그 나라에서 낯선 이방인이라는 사실을 잠시 잊는다. 그 도시에서 ‘받아들여진다’는 느낌을 받고 싶을 때 공원에 가는 것도 그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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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고야 성 앞 공원 잔디밭에 앉아 밥 주는 사람을 기다리는 길고양이의 눈망울이 처연하다. 

 

 

공원에 들르는 또 한 가지 이유는 그곳에서 만나는 반가운 얼굴들이 있어서다. 나고야 성을 찾았다가 돌아가는 길에 성 앞 공원에 들렀을 때도 어김없이 길고양이와 밥 주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공원에 어스름이 깔리고 사람들의 발길이 드물어지는 시각, 한낮에는 몸을 숨기고 잘 보이지 않던 길고양이가 본격적으로 활동하기 시작한다. 일본의 길고양이라고 해서 무조건 사람을 친근하게 여기고 따르지는 않는다. 어떤 길고양이가 사람과 만났을 때 피하지 않고 오도카니 앉아 뭔가를 기다리는 듯한 표정을 짓는다면, 그 고양이가 이미 사람에게 길들여져 있기 때문에 그럴 뿐이다. 나고야 성 앞의 공원 고양이도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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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바 ‘품종묘’로 불리는 고양이도 간혹 눈에 띈다. 이런 고양이들은 처음부터 길에서 태어나는 경우도 있지만, 대개 누군가 버렸을 확률이 높다.

 

어떤 녀석은 풀밭 위에 식빵을 굽고 앉아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제법 거리가 좁혀졌지만 그리 신경 쓰지 않는 눈치다. “우리는 따로 기다리는 사람이 있다옹” 하는 얼굴로 나를 힐끔 올려다보더니 우다다 놀이를 하며 시간을 보내는 데 집중한다. 투명인간이 된 것 같은 기분에 머쓱해져 있는데, 고양이들이 순간 동작을 멈추고 일제히 어딘가를 바라보았다. 끼익 소리 내며 자전거가 멈춘 자리에는 야구 모자를 눌러쓴 할아버지 한 분이 짐칸에서 뭔가를 꺼내고 있었다. 넓은 공원에 뿔뿔이 흩어져 놀던 고양이들이 일사불란하게 할아버지에게로 달려간다. 어떤 녀석은 묵묵히, 어떤 녀석은 꼬리를 치켜들고 반갑게 앵앵 울면서.

 

할아버지를 둘러싸고 밥을 재촉하는 고양이들은 열 마리가 훌쩍 넘었다. 캔 사료와 밥을 버무려주기 위한 그릇까지 챙겨 능숙하게 비벼 주는 솜씨를 보면 하루 이틀 해온 일은 아님을 알 수 있었다. 밥 주는 할아버지와 길고양이를 먼발치에서 응원하고 나오는 길에 본 담벼락 위에는 길고양이를 위한 캔 사료가 줄지어 놓여 있었다. 어둠 속에 길고양이 한 마리가 숨어 캔을 노리고 있다가 갑작스런 플래시에 깜짝 놀라 내 쪽을 바라봤다. 아마 캔의 숫자로 보아 친구 고양이들이 더 있을 듯했다. 녀석이 먼저 밥 냄새를 맡고 달려왔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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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를 몰고 나타난 캣대디 주변으로 길고양이가 모여든다. 사료에 캔을 비벼 나누는 솜씨가 능숙한 걸 보면 오랫동안 해온 일임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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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장 위에 놓여 있던 길고양이를 위한 캔. 까만 고양이 한 마리가 맛보러 왔다가 플래시에 놀라 몸을 숨겼다.

 

 

공원에서 밥 주는 사람이 한 사람은 아닐 거라는 짐작은 적중했다. 공원 길고양이와 작별하고 지하철역을 찾아 걷는데, 저만치 멀리서 묵직한 배낭을 메고 나타난 아가씨가 눈에 띄었다. 모른 척 벤치에 앉아 지켜보니 고양이들의 등을 토닥여주고는 다른 벤치로 가서 배낭 안에 든 사료를 꺼낸다. 캣맘과 만나자고 약속하고 찾아간 것도 아니건만 일본의 공원에서는 이런 풍경과 자연스럽게 마주치게 된다. 이곳에서는 특별할 것도 없는 흔한 풍경이다. 고양이를 좋아하는 당신이 일본을 여행한다면, 하루 일정을 마친 저녁 무렵 근처 공원에 한번 들러보시길. 그곳에서 뭔가 기다리는 눈빛으로 자리를 떠나지 않는 고양이를 만날 수 있을 테니까.

 

 

CREDIT

글·사진 고경원

 

 

본 기사는 <매거진C>에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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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 소개

고경원 길고양이 통신
2002년부터 고양이책 작가로 활동하며 ‘고경원의 길고양이 통신(catstory.kr)’에 국내외 고양이 취재기를 연재하고 있다. 2017년 고양이 전문 출판사 ‘야옹서가’를 창업해, 첫 번째 책 <히끄네 집-고양이 히끄와 아부지의 제주생활기>를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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