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이 되어준 파리의 집고양이

칼럼 전문가에게 듣는 동물 이야기
힘이 되어준 파리의 집고양이
조회 1102   1년전
고경원 길고양이 통신


고양이 여행자의 일상여행기                      

#019 힘이 되어준 파리의 집고양이

 

여행 중에 누군가의 집에 남는 소파 하나를 빌려 잠자는 것, 이른바 카우치 서핑은 가난한 고양이 여행자의 입장에선 꽤 매력적으로 느껴지는 여행 문화다. 특히 숙박비가 비싸기로 악명 높은 유럽에서 경비를 아끼며 다닐 수 있다는 점엔 마음이 끌렸지만, 그렇다고 생판 모르는 사람 집에 찾아가서 묵기엔 망설여졌다. 고양이 여행을 떠날 때 항상 염두에 두는 게 ‘경비는 아끼되 안전을 생각하자’는 점이었으므로, 나름 절충안 삼아 친구의 지인 집에 신세를 지기로 했다. 프랑스 고양이 여행 중 9박 10일은 그 집에서 카우치 서핑으로 머물렀는데, 말 그대로 거실에 있던 소파를 빌려 숙박을 해결했다. 

 

비교적 수월했던 일본이나 타이완 일대의 고양이 여행과 달리, 유럽 고양이 여행에서는 변수가 많았다. 목표했던 장소를 부지런히 찾아다니느라 바빴던 한낮에는 힘든 감정을 느낄 여력조차 없었지만, 원래 가려던 장소가 없어졌다거나, 갑작스러운 폭우에 일정이 꼬이기라도 하는 날이면 피로와 외로움과 짜증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그렇게 누군가를 향해 화를 낼 수도 없고 원망할 수도 없는 상황과 맞닥뜨리면 ‘여행이 원래 그렇지 뭐’ 하고 나 자신을 다독이며 일찍 숙소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그런 날이면 발걸음이 더 처지고 무거웠다. 그때 힘이 되어준 건 내가 묵은 숙소 앞집에 살던 집고양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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콧잔등에 아몬드 모양의 길쭉한 얼룩이 있던 파리의 집고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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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녀석은 해가 뉘엿뉘엿 질 때까지 마당에 나와 있곤 했다. 그 모습을 보며 돌아오는 저녁에는 어쩐지 마음이 안정되었다.​

 

 

앞집은 늘 철창 달린 문이 닫혀 있어서 안으로 들어가 볼 수 없었지만, 창살 너머로 앞마당에서 뒹굴뒹굴하는 고양이를 엿볼 수는 있었다. 그 고양이는 옆구리에 굵은 붓으로 쓱쓱 그린 듯한 굵직한 줄무늬가 있었고, 콧잔등에는 길쭉한 아몬드 모양의 갈색 얼룩이 있었다. 한국에서는 흔히 ‘코팩이’라고도 부르는 무늬인데, 내겐 코 부분의 얼룩이 꼭 코알라의 둥근 콧등처럼 보이기도 하고 어쩐지 코알라 무늬라는 말이 더 귀엽게 느껴져서 그리 부르곤 했다.

 

철창 너머로 나를 빤히 바라보기는 해도 절대 쓰다듬어 달라고 먼저 다가오지 않는 차가운 도시 고양이. 하지만 듬직하게 느껴지는 두툼한 뱃살, 콩자반을 연상시키는 발바닥 젤리를 보면 싱숭생숭했던 마음도 위로가 되었다. 오며 가며 녀석을 볼 때면 이상하게도 마음이 안정되었다. 진짜 내 집은 아니었어도, 고양이가 기다리는 곳에서는 내 집과 비슷한 안정감을 느낄 수 있었으니까. 이곳에 머무는 동안 코알라 무늬 고양이만큼은 변함없이 그 자리에서 놀고 있겠지 하고 생각하면 든든해졌다. 물론 날 기다린 건 아니고 당연히 집주인을 기다리고 있었겠지만 그건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이른 저녁에 숙소로 돌아오면 잠들기 전까지의 시간이 참 애매했다. 에어컨 없는 파리의 여름밤은 길고 더웠다. 나름대로 더위를 피하느라 외출하기 전에 냉동실에 2리터 생수병을 얼려뒀다가, 숙소에 돌아와 꽁꽁 언 생수병에 수건을 둘러 껴안고 더위를 식혔다. 그래도 더워서 잠이 오지 않으면 창문을 열고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꽤 늦은 시간에도 고양이가 마당에 누워 있는 걸 보면 ‘집주인이 아직 안 들어왔나?’ 생각하며 안절부절못했고, 이른 새벽 눈 뜨자마자 다시 창문을 열어 고양이가 나왔나 안 나왔나 확인하기도 했다. 한국에서 온 여행자가 내내 자기를 바라보며 힘을 얻었다는 걸 알면, 줄곧 무덤덤한 표정을 짓고 있던 고양이도 조금은 반가워할까.

 

 

CREDIT

글·사진 고경원

 

 

본 기사는 <매거진C>에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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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 소개

고경원 길고양이 통신
2002년부터 길고양이의 삶을 사진과 글로 전하면서 출판, 전시, 강연을 통해 고양이에 대한 이해를 돕고 있습니다. 블로그 ‘길고양이 통신’(catstory.kr)에서 다양한 지역의 고양이 여행기를 읽어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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