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 여행자의 일상여행기 #024

칼럼 전문가에게 듣는 동물 이야기
칼럼  l   고양이 여행자의 일상여행기 #024
조회 1437   2015-09-15
고경원 길고양이 통신

 

가파도에서 받은 여행 선물

    


제주 모슬포항 여객선터미널에 가면 가파도와 마라도 중에 어디를 먼저 가볼까 고민하게 된다. 매표소에 도착했을 때는 마침 가파도행 배가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짜장면 시키신 분~"이라는 모 통신업체의 광고가 유명해지는 바람에 덩달아 떠들썩해진 마라도보다는, 소담한 가파도가 마음에 끌렸다.


그날 아침 가파도행 배를 선택한 건 탁월한 선택이었다. 섬은 바랐던 대로 한적했다. 오전 11시 배를 타고 섬에 들어갔는데 배에 탑승한 사람은 모두 30명쯤 되었을까. 섬이 아담하고 산책로도 평지가 대부분이라 어머니와 걸으며 돌아보기에도 어려움이 없었다. 무엇보다도 제주를 여행하며 만난 녀석들 중에 가장 살가운 길고양이를 이곳에서 만났기에, 가파도는 나와 어머니에겐 ‘고양이 섬’의 추억을 안겨준 곳이 됐다.

 

해안선을 따라 한참을 걷다보면 고냉이돌이 불쑥 머리를 내민다. 고냉이란 제주 방언으로 고양이를 말한다. 돌 옆 표지판에는 바닷가를 바라보며 배고픔을 견디지 못해 돌이 된 고양이의 모습이라는 설명이 있다. ‘고양이보단 새를 닮았는데?’ 하고 생각하고 있는데 어머니는 “거북바위 아니야?” 하며 웃는다. 어떻게든 고양이와 닮은 구석을 찾아보려고 돌의 왼쪽으로 돌아가보니 그나마 식빵 굽는 고양이랑 비슷한 모습이 된다. 고냉이돌의 사연을 궁금해 할 분들을 위해 표지판에 있던 설명 내용을 아래 소개해본다.


가파도는 헌종8년(서기1842년) 대정읍 상모리 주민들이 출입하면서 마을을 형성하였다. 초기 가파도 주민들은 어업을 하지 않고 보리, 고구마로만 생계를 유지하여 주민들과 같이 들어온 육식동물인 고냉이들은 굶주림에 시달리게 되었다. 이 바위는 고냉이들이 폭풍에 떠밀려오는 생선을 기다리다 굶주림에 지쳐 바위가 되었다는 전설이 있다.


조선 시대라면 지금보다도 육지 물자가 들어오기는 더 어려웠을 테고, 서민들이 살았을 자급자족을 하는 섬이었을 테니 고양이 먹을 것까지 신경 써줄 사람은 없었으리라. 도시의 길고양이들처럼 굶주리며 생존을 위해 사투를 벌였을 녀석도 많았을 것이다. 얼마나 배고팠으면 망부석처럼 생선 있는 곳을 목이 빠져라 바라보다 그만 돌이 되었을까. 슬픈 전설이 담긴 고양이돌을 남겨두고 살아 있는 고양이를 만나기 위해 걸음을 옮긴다.

 

섬을 거의 반쯤 돌았을 무렵, 노랑 얼룩고양이가 나타났다. 섬 안에서 만난 다른 녀석들은 겁을 먹거나 눈치 보며 달아나기 일쑤였는데, 이 녀석은 내 집이라는 듯 아예 문 앞을 지키고 앉아 있다. 처음엔 현무암 돌담 뒤에 숨어 이쪽 동태를 살피더니, 안심해도 될 만한 사람으로 보였는지 입을 크게 벌려 아옹아옹 울며 뚜벅뚜벅 걸어 나온다. 사진을 찍고 있으면 나를 향해 뚜벅뚜벅 걸어오는 고양이를 가끔 만났는데 녀석도 그렇게 드물게 보는 행운의 고양이였다. 젖이 불어 부풀어있는 걸로 보아서 새끼를 낳은 지 얼마 안 되는 모양이다. 근처에 어린 고양이들을 숨겨놓고 키우는 중이구나 싶다. 수다쟁이 아줌마 고양이인지 대문 앞에 누워서도 쉼 없이 앵알거린다.


해녀 아주머니 한 분이 지나가면서 사진 찍는 나와 드러누운 고양이를 번갈아 보더니 “저 녀석이 사진 찍어달라고 저러나”하며 웃고 가셨다. 예전에 비양도와 가파도에 길고양이가 늘어 문제시되고 있다는 신문기사를 언뜻 읽은 적이 있었기에, 고양이에게 미운털이 박히지 않았을까 걱정도 했지만 다행히 고양이를 해코지하는 사람을 만날 수는 없었다. 


의연한 자세로 대문을 지키고 있는 고양이를 뒤로하고 다시 항구로 돌아갈 준비를 한다. 떠나기 전에 모델료로 갖고 다니는 사료를 봉지 째로 부어놓고 떠나려니, 녀석은 맛을 보고는 "아니 이게 웬 별미야?" 하는 듯 응냥거리며 사료를 와작와작 먹는다. 고양이 발아래 봉긋하게 쌓였던 사료가 순식간에 없어져간다.

 

어떻게 생각하면 특별한 관광지를 보러 다니는 것도 아니고 거의 온종일 걸어야 하는 여행인데, 혹시 나 혼자 좋았던 건 아니었을까. 어머니께 “오늘 재미있으셨어요?” 하고 조심스럽게 여쭤보았다. 그랬더니 뜻밖에도 아까 사진을 찍었다며 휴대전화 앨범을 보여주신다. 어머니와 함께 다니면서 나만 어머니의 전담 사진사로 활약하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실은 어머니도 내가 모르는 사이에 그때그때 휴대전화 카메라로 나를 찍어주고 계셨던 게다. 어머니께 받은 사진들은 제주도 여행에서 얻은 가장 소중한 선물이 될 것 같다. 내년 5월쯤 가파도를 다시 찾으면 청보리밭 사이를 누비는 길고양이도 만날 수 있을까. 그땐 꼭 길고양이를 만나지 않아도 좋겠다. 그때도 어머니와 함께 건강한 모습으로 올레길을 다시 걸을 수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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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파도에 있는 고냉이돌. 고양이가 배고픔을 견디다 못해 돌이 되었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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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뚜벅뚜벅 내게로 걸어오는 붙임성 많은 길고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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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께 받은 사진 선물. 잊지 못할 고양이 여행의 추억이다.

 

 

글·사진 고경원 (<길고양이 통신> 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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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 소개

고경원 길고양이 통신
2002년부터 길고양이의 삶을 사진과 글로 전하면서 출판, 전시, 강연을 통해 고양이에 대한 이해를 돕고 있습니다. 블로그 ‘길고양이 통신’(catstory.kr)에서 다양한 지역의 고양이 여행기를 읽어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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