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들의 안식처, 야나카 레이엔

칼럼 전문가에게 듣는 동물 이야기
고양이들의 안식처, 야나카 레이엔
조회 1520   1년전
고경원 길고양이 통신
프린트 리스트보기


고양이 여행자의 일상여행기                      

#026 고양이들의 안식처, 야나카 레이엔

 

‘처음’이란 말을 들으면 설렌다는 사람이 많지만, 실제로 그 처음이 눈앞에 닥쳐보면 마냥 좋기만 한 건 아니다. 2007년 7월 일본에서 첫 번째 세계 고양이 여행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도 그랬다. 새로운 곳으로 고양이를 만나러 가는 건 즐겁지만 ‘처음 가본 곳에서 차질 없이 잘 다녀야 할 텐데…’ 하는 걱정 탓에 출발일이 다가올수록 부담은 커져갔다. 영역동물인 고양이처럼 익숙한 환경에 머물 때 편안함을 느끼는 성향인지라 더욱 그랬다. 준비 시간도 빠듯했다. 그 달치 잡지 마감 끝내고 바로 다음날 아침 떠나는 일정이라, 출국 날 새벽까지 짐을 싸고 있자니 ‘항공권이고 숙박비고 포기하고 그냥 집에서 뒹굴뒹굴하며 보낼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만사가 귀찮은 마음을 꾹 누르고 비행기를 타고 나서야 ‘어떻게든 되겠지’ 하고 생각하니 조금 마음이 편해졌다. 처음엔 등 떠밀리듯 시작한 세계 고양이 여행은 고단했지만 즐거웠다. 그랬으니 그 기억의 힘으로 또 새로운 고양이 명소를 찾아 떠나게 됐겠지.

 

 

 

aec2aeff4852c37333a2aa41bbfc16d3_1447133


언제나 그 모습 그대로 도쿄의 길고양이들을 품어주는 야나카 레이엔.

 

 

일본 고양이 여행 에세이 <고양이, 만나러 갑니다>에 수록했던 내용 중 변경된 부분도 업데이트할 겸, 도쿄의 고양이 마을 야나카를 다시 찾았다. 2007년 여름 첫 방문 이후 1년 만에 다시 들렀을 때도 많이 바뀐 야나카 풍경에 놀랐는데 지금은 어떻게 변했을까, 그때처럼 모든 풍경이 낯설고 새로울까.

 

닛포리 역에 내려 야나카 레이엔으로 들어섰다. 공원묘지라 동네 사람들이 산책하러 종종 들르는 곳이지만 길고양이에게는 간섭할 사람 없는 안식처이기도 한 곳. 그래서 야나카에서 고양이를 만나고 싶다면 빼놓을 수 없는 곳이기도 하다. 처음엔 지도를 들고 있어도 방향 감각이 없어 출구를 못 찾고 뱅글뱅글 맴돌던 기억이 선한데, 이젠 발 가는 대로 걸어도 길을 잃지 않는다. 시간이 지나도 몸은 오래전 거닐었던 경로를 기억한다.


aec2aeff4852c37333a2aa41bbfc16d3_1447133


​고양이 아저씨를 중심으로 이곳 길고양이들이 모여들어 애교를 부리고 있다.

 

 

aec2aeff4852c37333a2aa41bbfc16d3_1447133


​고양이 아저씨는 검은 고양이를 품에 안고, 한손으로는 흰 고양이를 쓰다듬으며 한가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고양이 레이더를 켜고 길고양이들이 노닐 만한 곳을 찾노라니, 멀리서 돌바닥에 배를 지지며 뒹굴거리는 노랑둥이 한 마리가 눈에 들어왔다. 가만히 보니 녀석은 어떤 아저씨 앞에서 애교를 부리고 있었다. 아저씨는 묘비로 향하는 계단에 앉아 무릎고양이로 검은 고양이를 앉혀놓고, 왼쪽 손으로는 돌계단에 누운 흰 고양이를 가끔씩 쓰다듬어주고 있었다. 나이는 사십 대 초반쯤 되었을까. 평일 오후 4시 반쯤 고양이에 둘러싸여 한가로운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사람이라니,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일까 잠시 궁금해졌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에나 나올 법한, 고양이와 대화할 수 있는 능력자는 아닐까. 편의상 그 아저씨를 ‘고양이 아저씨’라 부르기로 했다.

 

내가 망상에 빠져 있는 동안, 흰 고양이는 기분이 좋은지 졸음이 오는 것인지 게슴츠레하게 눈을 뜨고 납작 엎드려 있었다. 고양이 아저씨가 보듬고 있는 검은 고양이와 흰 고양이 커플이 궁금했지만, 더 가까이 다가간다면 고양이와 함께하는 여유로운 시간을 방해할 것만 같아서 적당히 거리를 두고 얼룩고양이 곁에 앉았다. 먼저 고양이와 놀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나중에 찾아온 사람은 방해가 되지 않게 순서를 기다려야 하는 법이다.

 

 

aec2aeff4852c37333a2aa41bbfc16d3_1447133

 

​깊은 잠에 빠진 야나카 레이엔의 얼룩고양이.

 

 

aec2aeff4852c37333a2aa41bbfc16d3_1447133

 

​사람이 오거나 말거나 땅바닥에 배를 지지고 있는 노랑둥이 길고양이.

 

 

개중에는 다가가면 달아나는 경계심 많은 녀석도 있긴 하지만, 사람이 가까이 오거나 말거나 제 할 일을 야무지게 하는 건 야나카 레이엔 고양이들의 특징이다. 녀석들은 여전히 한가로웠다. 도심 개발로 야나카의 풍경 중 많은 곳이 바뀌어도 이곳만은 그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지 않을까. 도쿄에는 아무런 연고도 없지만, 떠나 있을 때면 마음의 고향처럼 여기를 그리워하고, 도쿄를 다시 찾아갈 일이 생길 때면 가장 먼저 떠올리게 된다. 고양이들의 세대교체가 이루어지고 이곳 고양이들을 돌보는 캣대디의 얼굴도 나이도 바뀌어가지만, 야나카 레이엔은 그 자리에 그대로 있을 테니까.

 

 

aec2aeff4852c37333a2aa41bbfc16d3_1447133

 

​동네 주민들이 일상적으로 다니는 야나카 레이엔. 묘지보다 공원에 가깝다.

 


CREDIT
글·사진 고경원
 
 
본 기사는 <매거진C>에 게재되었습니다.  
콘텐츠의 무단 도용, 전재 및 복제, 배포를 금합니다. 이를 어길 시 민, 형사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좋아요 1
http://www.petzzi.com/bbs/board.php?bo_table=opinion&wr_id=440&sca=%EC%B9%BC%EB%9F%BC
URL을 길게 누르시면 복사하실 수 있습니다.
복사되었습니다. 원하시는 곳에 붙여넣어 주세요.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네이버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url복사

칼럼니스트 소개

고경원 길고양이 통신
2002년부터 길고양이의 삶을 사진과 글로 전하면서 출판, 전시, 강연을 통해 고양이에 대한 이해를 돕고 있습니다. 블로그 ‘길고양이 통신’(catstory.kr)에서 다양한 지역의 고양이 여행기를 읽어볼 수 있습니다.
반려인의 의견   총 0

이 글에 첫 번째 의견을 남겨 주세요. 여러분의 생각이 궁금합니다.

문화/행사 더보기

이벤트 더보기

공지사항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삼평동 682 유스페이스 2동 507-1호(대왕판교로 670) | 대표전화 : 1544-8054 | 팩스 : 0303-0433-9971
회사명 : 펫러브(petlove) | 대표자 : 황규형 | 개인정보관리책임자 : 구윤회
사업자등록번호 : 131-12-50700 | 통신판매업 신고번호 : 제 2017-성남분당-0951호
(c) 2002-2017 petlove. All Rights Reserved
e-mail 문의하기
기사 : edit@petzzi.com
광고/제휴문의 : ad@petzz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