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르신 고양이와 함께 산다는 것

칼럼 전문가에게 듣는 동물 이야기
어르신 고양이와 함께 산다는 것
조회 1403   1년전
고경원 길고양이 통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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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여행자의 일상여행기 

#029​ 어르신 고양이와 함께 산다는 것

 

스밀라가 함께 산 지 10년째로 접어든다. 2006년 7월 우리 집에 왔으니 올 여름에 만 10년을 꽉 채우는 셈이다. 길에서 입양되어 처음 건강검진을 받을 때 최소 2살이라 했으니 지금은 12살. 사람 나이로 치면 70세 노인에 가깝다. 투병 생활을 시작하면서 풍성했던 가슴 털만 조금 듬성듬성해졌을 뿐, 스밀라는 처음 만났을 때나 지금이나 동안을 자랑한다. 그래서 내 곁의 이 녀석이 할머니란 사실을 가끔 잊는다. 잠깐 잡기 놀이를 하다가 헐떡이며 “아이고 힘들어”하는 표정으로 털썩 몸을 던지는 스밀라를 보면 ‘아니, 내가 어르신을 데리고 무슨 짓을 한 거지’ 싶어 자책하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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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가 나이를 먹으니 느는 건 식탐과 호통이었다. 내가 식탁에 앉아 무언가 먹고 있으면, 어느새 스밀라가 옆에 와 있다. 그러고는 앞발을 모으고 고개를 들어 내 얼굴을, 좀 더 구체적으로는 입술을 빤히 쳐다본다. “네 입으로 뭔가 맛있는 게 꿀떡꿀떡 넘어가고 있는데, 왜 그것을 나한테는 갖다 바치지 않느냐?”하는 표정으로.

 

“너, 사람 먹을 거 넘보는 고양이 아니었잖아”하고 타일러보지만 스밀라는 모른 척 나에게 텔레파시를 보낸다. 그렇게 눈치를 주는데도 기어이 아무것도 안 주면, 삐쳐서 캣타워로 단걸음에 뛰어오른 다음 발톱을 스크래처에 대고 팍팍 긁는다. “치, 너만 맛있는 것 먹고…. 나는 입도 아니냐?”하는 무언의 항변이다.

 

먹는 걸로 보채긴 해도 스밀라는 입이 짧아 간식을 줘도 한 번에 다 먹는 법이 없었다. 국물만 깔짝깔짝 맛보고, 건더기는 몇 번 핥으면 끝이었다. 그래서 파우치를 뜯으면 늘 남겨서 냉장고에 뒀다 줘야 하는데, 한번 뜯은 간식을 두 번째 먹을 때는 반응이 처음 같지 않았다. 그래서 혀를 차며 “네가 배가 불렀지, 길고양이는 이것도 못 먹어서 배를 곯는데…”하고 타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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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스밀라도 남김없이 먹는 것이 ‘마성의 간식’으로 불리는 튜브형 액상 간식이었다. 뜯기만 하면 순식간에 먹어치우곤 더 없느냐며 눈을 반짝였다. ‘남은 즐거움이라곤 먹는 낙밖에 없는데 간식이라도 잘 챙겨주자’ 싶어 북어 큐브며, 동결 닭가슴살이며 이것저것 사다 쟁여놓았다 조금씩 주곤 했다. 신장이 좋지 않기에 고단백 식사는 지양해야 하지만, 조금씩 주는 간식 정도는 괜찮겠거니 생각했다.

 

그러다가 얼마 전 정기 검진에서 스밀라가 단백뇨 진단을 받았다. 새벽부터 뽈뽈거리며 잘 돌아다니고 간식 달라, 놀아 달라 호통과 밥투정이 늘어 건강해진 것처럼 착각했지만, 남은 생애 동안 스밀라가 신장질환이나 그에 따른 합병증을 조심하며 살아야 한다는 건 변함없는 사실이었다. 그동안 큰 탈 없이 평화로운 시간이 이어진 탓에 잊고 있었다. 스밀라는 할머니 고양이고, 주의가 필요한 환자라는 걸. 내가 방심한 사이에 잘못한 일과, 잘못했었을 지도 모르는 일만 떠올라 마음이 착잡했다.

 

이미 앓던 지병과 노화가 겹치면서 건강이 조금씩 나빠지는 건 어쩔 수 없지만, 어르신 고양이를 모시고 산다는 건 그렇게 고양이의 건강 상태에 따라 일희일비하는 날이 늘어간다는 것이고, 언젠가 갑작스럽게 찾아올지 모를 이별을 미리 준비해야 한다는 뜻이다. 먹는 것처럼 사소한 일로 잘 삐치고, 앞발 한번 잡아보려 하면 신경질을 내며 확 빼 버리고, 새벽마다 “배고프고 심심하니 얼른 일어나라”하고 울어대는 통에 잠 설쳐도 좋으니, 우리 가족 곁에서 오래오래 건강하게 있어 줬으면. 매년 해가 바뀔 때마다 스밀라의 눈동자를 들여다보며 빌어보는 소원이다.

  

CREDIT
글·사진 고경원
 
 
본 기사는 <매거진C>에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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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 소개

고경원 길고양이 통신
2002년부터 길고양이의 삶을 사진과 글로 전하면서 출판, 전시, 강연을 통해 고양이에 대한 이해를 돕고 있습니다. 블로그 ‘길고양이 통신’(catstory.kr)에서 다양한 지역의 고양이 여행기를 읽어볼 수 있습니다.
반려인의 의견   총 2
치즈버터감자  
노화...ㅠㅠ...정말 오래오래 건강하게 있어줬으면!
답글 0
오늘뭐먹지  
건강해주세요 스밀라! ^*^
튜브형 간식은 모든 고양이들이 가리지않고 잘먹는것같아여 마법의 ...튭
답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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