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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ORY | 2021-09-27 09: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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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ORY | 2021-09-23 16:4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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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ORY | 2021-08-24 08:5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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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ORY | 2021-08-17 10:0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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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ORY | 2021-08-17 09:3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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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ORY | 2021-08-17 08:5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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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ORY | 2021-08-10 09:2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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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AGAZINE C. 어느 고양이가 사랑을 고백하는 법
- 어느 날 조니가 뚫어져라 데비를 쳐다보는데, 꼭 이렇게 말하는 듯했다. ‘엄마, 데비는 참 예뻐요.’ 데비를 향한 눈빛 우리 부부는 종종 조니와 데비를 보며 이렇게 말하곤 한다. “세상에서 가장 귀여운 사랑꾼들이 아닐까?” 그 이유는 첫째로 조니와 데비가 그 자체로 세상에서 가장 귀여운 존재이기 때문이고, 둘째는 아무런 계산 없이 내보이는 사랑의 몸짓들이 지극히 순수하고 아름답기 때문이다. 돌이켜보면 어릴 적부터 데비는 조니에게, 조니는 데비에게 무척이나 의지했다. 엄마인 내가 채워줄 수 없는 무언가를 서로를 통해 채움으로서 세상에 단 하나뿐인 사이가 됐다. 이 두 아이들은 어딜 가든 항상 붙어 다닌다. 꼬맹이 남매 둘이 손을 꼭 붙잡고 다니는 것처럼. 서로를 얼마나 의지하고 있는지 나는 매일 느낄 수 있는데, 잠을 잘 때는 더욱 그렇게 느껴진다. 어느 날은 조니가 데비의 어깨에, 또 어느 날은 데비가 조니의 어깨에 기대어 새근새근 잔다. 내가 불편해도 괜찮아요 얼굴이 짜부라져 불편할지라도 데비가 편한 자세를 찾아 움직일 때면 조니는 가만히 그 자리를 지킨다. 사실 조니는 데비가 어디에서 무엇을 하던 곁을 지켜준다. 가장 좋아하는 뜨개 스툴이나, 뜨개 담요가 덮인 해먹에 데비가 머무르길 원하면 기꺼이 자릴 내어준다. 어느 곳에 있든, 무엇을 바라보든 항상 같은 것을 하고 같은 곳을 바라보는 이 두 아이들의 사랑하는 마음이 고스란히 우리에 게도 전달된다. 꼭 조니는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 같다. ‘엄마, 데비가 너무 좋아요. 그리고 엄마 고마워요’. 데비 공주님 내가 너를 지켜줄게 데비는 우리 집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지알디아’기생충에 감염되어 아팠던 적이 있다. 아마 길고양이인 엄마와 돌아다니며 오염된 물을 마셨던 건 아닐까 싶다. 힘이 없어 축 늘어진 데비는 밥도 먹지 않았고, 제대로 걷지도 못했다. 울며불며 병원을 세 군데나 돌아다녔지만 원인을 찾지 못했다. 대신 주삿바늘을 꽂느라 아이의 얇은 발목에 핏줄만 터트려 놓았을 뿐이었다. 하지만 다행히 마지막으로 찾아갔던 병원에서 원인을 알아냈고, 데비는 3일간 입원을 해야 했다. 집으로 돌아온 뒤 우리 가족은 2주 동안 데비 곁을 떠나지 않고 정성껏 돌봤다. 그 덕분일까? 우리 데비는 완전히 건강을 되찾았다. 데비가 많이 아파서 병원에 입원했었고 어렵게 복했다는 사실을 알았는지, 지금까지도 조니는 살뜰하게 데비를 감싸고 배려한다. 데비는 조니의 소중한 공주님, 조니는 데비의 멋진 왕자님인 것이다. 도담도담 하우스에서 날마다 들려오는 기분 좋은 조니의 사랑 고백. ‘데비야. 나는 네가 참 좋아.’ 글·사진 김보미에디터 이혜수해당 글은 MAGAZINE C 2021년 1월호에 수록된 것입니다.불법 복제 및 사용을 금합니다.
- STORY | 2021-09-27 09: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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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AGAZINE C. 나의 쉼표
- 오랫동안 고양이를 좋아하다 보니, 어느새 내 주변은 자연스레 고양이를 좋아하는 이들로 채워졌다. 그리고 시간은 또 흘러 그들은 육아와 육묘를 함께 겪는 나의 소중한 동지가 되었다. 출산 전에는 그들도 나처럼 고양이와 아기를 함께 키우는 데 있어 기대보다는 걱정을 더 했었다. 하지만 출산을 겪은 후, 그들은 “육아 육묘, 직접 해보니 어때요?”라는 나의 질문에 “육아가 이렇게 힘든지 몰랐어요, 그런데 고양이가 없었다면 정말 버티기 힘들었을 거예요”라고 답한다. 신기하다. 내가 느꼈던 감정과 이렇게나 똑같다니. 엄마, 잠깐 쉬어도 괜찮아 육아는 내 상상 속 모습과는 참 거리가 멀었다. 종일 바쁘게 움직이지만 세수조차 못 하고 보내는 도돌 이표 같은 일상에 지치는 날도 많았다. 하지만 그때마다 고양이들은 나에게 쉼표가 되어주었다. “나도 예 뻐해 줘, 나도 관심이 필요해”가 아니라 “울 엄마 고생하네, 잠깐이라도 나 쓰다듬으면서 쉬어. 엄마 마음 편해지게 내가 골골송도 불러 줄게”라는 듯 푹신한 엉덩이를 들이밀며 온기를 나눠주었다. 꾹, 꾹, 서비스 안마까지 제공하면서. 발 동동거리며 하나라도 더 챙겨주는 엄마보다는 넓은 마음으로 함께 눈 맞추며 웃어주는 엄마가 더 좋은 엄마라는 걸 알면서도, 아직 부족한 나는 자주 마음이 조급해진다. 그때마다 나에게 쉼을 선물해 주는 네 아이- 용복이, 또복이, 행복이, 금복이는 진정한 나의 육아 스승님들이다. 금복이 이리 와바 한참 뛰놀아야 할 나이에 코로나로 어린이집도 못 가고 밖에도 못 나가는 답답한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 하지만 그래도 곧 잘 버틸 수 있는 건 흔쾌히 아기 집사 때때의 친구가 되어주는 금복이의 덕이 크다. 때때는 자동차가 잔뜩 나오는 ‘타요’ 애니메이션 시리즈를 참 좋아하는데, 그중 타요와 친구들이 우주 해적으로부터 공주를 지키는 장면이 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상황극을 하며 그 장면을 따라 하는 때때. 자신은 우주 해적, 금복이는 타요와 친구들, 엄마는 공주님으로 역할도 야무지게 정해주었다. 우주 해적 때때가 공주님인 엄마를 괴롭히면 나는 ‘금복아, 도와줘!’를 외치면 된다. 거듭되는 구조 요청에 지친 금복이가 캣폴로 도망가면 ‘굼보이 인니 와봐앙(금복이 이리 와봐)’하며 금복이를 쫓아 캣폴에 올라간다. 막상 때때가 찾지 않으면 금복이가 먼저 다가와 솜방망이를 툭툭 날리며 장난을 걸기도 한다. 우리 셋은 소파에서 한 몸이 되어 뽀로로를 보고, 또 다 같이 누워 낮잠을 자고, 일어나면 또 서로 장난을 치며 하루를 보낸다. 다정한 오누이는 아니지만 현실 남매 냄새가 폴폴 나는 귀여운 금복이와 때때다. 육아 육묘가 가장 쉬웠어요 육아 육묘의 난이도를 상, 중, 하로 나눈다면 지금은 ‘하’쯤에 해당하는 시기인 것 같다. 이제 때때는 고양이 모래로 장난을 치지도, 고양이 사료를 과자처럼 몰래 훔쳐 먹지도, 손에 잔뜩 묻은 털을 입에 가져가지도 않는다. 아침에 일어나면 어설프지만 밤새 나온 털과 모래를 함께 정리하고, 내가 화장실을 정리하고 있으면 옆에 쪼르르 와서 코를 막고 “똥 냄새나?”라고 물으며 말동무를 해 주기도 한다. 손에 묻은 털은 쿨하게 옷에 쓱쓱 문질러 떼어내고, 시키지 않아도 고양이들에게 먼저 장난감을 흔들어준다. 고양이 형, 누나, 동생 어떠냐는 나의 질문에 때때는 또또 (또복이)형아는 좋고, 행복이 누나는 멋있고, 금복이는 귀엽고, 용복이 형아는 잘 모르겠다고 답했다. 꼰대 성향(?)이 다분한 용복이는 고양이에게도 아기 집사에게도 인기가 참 없다. 발바닥을 만지며 ‘딸기 젤리 맛있다 냠냠’ 하며 놀아도 가만히 있어 주는 또또 형아를 좋아하고, 멋있는 행복이 누나 앞에서는 부끄러워 몸이 배배 꼬인다. 금복이만 보면 괜히 장난을 치고 싶어지는 때때는 2년 6개월이라는 제 나이만큼의 시간 동안 고양이 형제들의 성향에 맞춰 나름의 규칙과 선을 만든 듯했다. 출산 후 회복되지 않은 몸, 널뛰기하는 호르몬의 영향으로 동요만 들어도 눈물이 나던 시기도 지났고, 털과의 전쟁을 벌여야 했던 기어 다니는 시기도, 걷기 시작하며 종일 사고 치던 시기도 잘 지났다. 때로는 겨우겨우 버티는 게 고작이었건만, 시간은 결국 우리를 더 단단하게 만들어주었다. 또 어떤 일이 우리 앞에 기다리고 있을까, 펼쳐질 일상이 더욱 기대된다. 육아 육묘는 시간이 지난 수록 더 좋아요. 추천 꾸욱. 글·사진 강은영에디터 이혜수해당 글은 MAGAZINE C 2021년 1월호에 수록된 것입니다.불법 복제 및 사용을 금합니다.
- STORY | 2021-09-23 16:4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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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AGAZINE C. 연(緣), 마음 한편을 내어주세요
- 고양이들을 구해주세요 지난 6월 말 강원도 화천의 한 고등학교에서 온 연락. 몇 달 전부터 학교 뒷산에 고양이 세 마리가 나타나 학생들이 돌봐주고 있었다고. 어쩌면, 유기된 고양이들이 아닐까 하는 것이 학생들의 추측이었다. 그들 중 대다수였던 3학년 학생들은 졸업하기 전에 안전한 보금자리를 마련해 주고 싶다고 했다. 처음엔 강원도, 그것도 굳이 학교에까지 찾아가서 고양이를 버리고 갔다 생각하니 화가 났다. 실제로 고양이들을 만나러 가기 위해 화천군에 방문했다. 전화를 받고 얼마 지나지 않았지만 실제로 보게 된 개체 수는 네 마리. 통화했던 학생은 처음에 분명 고양이가 총 세 마리라고 했다. 개체가 늘어난 것으로 보아 아마 본디 학교 근처 마을에살고 있던 고 양이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국내에서는 길고양이라고만 하지만, 사실 모든 길고양이가 유기묘인 것은 아니다. 영미권에서는 보통 길고양이를 ‘stray cat’과 ‘feral cat’으로 구분한다. stray는 사람 손을 탄 고양이를 말하고 feral은 야생에서 태어나고 자란 고양이를 말한다. 처음 전화를 받고 약 3~4개월 정도 뒤,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세 마리 였던 고양이가 여섯 마리가 된 점, 최근 코로나로 인해 해당 지역엔 국내 여행객조차 줄어든 점과 한눈에 보기에도 어린 친구라는 점 등을 생각해 보니 원래 그 부근에서 사는 고양이들 같다는 생각을 굳혔다. 지키고자 하는 사람, 해하고자 하는 사람 유기된 고양이인지, 원래부터 그곳에 살고 있던 고양이인지 여부는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데 있어 아주 중요한 문제다. 첫째로, 프로젝트의 범위를 결정한다. 마을에 살던 개체일 경우 더 많은 고양이가 있다고 추측할 수 있다. 학생들이 밥을 계속 주는 이상 개체 수는 계속 늘어날 것이고, 안타깝게도 몇 마리의 중성화와 접종, 작은 보금자리를 마련하는 것으로는 문제 해결이 불가능하다. 캠페인의 크기가 달라진다는 뜻이다. 둘째로, 입양이 적합한지 생각해볼 수 있다. 사람 손을 잘 타지 않는 친구의 경우 입양을 함부로 보내는 것이 적합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다행히도 학생들의 보살핌을 받으며 살던 친구들이라 그런지 사람을 경계하거나 공격하지는 않았다. 곧 이어진 학생들과의 이야기 시간. 학생들은 자신들이 졸업했을 때, 이 친구들이 먹이를 구하지 못하면 어떡하나 걱정하고 있었다. 실제로 학생들이 등교하지 않는 주말이면 마을에서 음식물 쓰레기 봉지를 물어뜯는 고양이들이 있고, 그 친구들을 해하려고 약을 타 놓는 마을 어르신들도 있다고 했다. 학생들보다 고양이와 공존한 시간이 오래되셨을 텐데, 눈앞이 아득해졌다. 다행히 문제점을 알고 고양이들을 지키고자 하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에 안도하며 급하게 크라우드 펀딩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함께, 다 같이, 더불어 고양이가 인간과 함께 살기 시작한 건 5천 년도 훌쩍 넘었단다. 초기 농경사회이던 때, 당시 고양이 뼈를 분석해보면 고양이들은 쥐뿐만 아니라 사람이 주는 곡물도 먹었음을 알 수 있다고 한다. 우연히 고양이가 사람에게 온 게 아니라, 사람이 야생 고양이를 길들여가며 밀접한 관계를 맺었다는 증거겠다. 5천 년 전에도 고양이는 항아리를 깨고, 식탁 위로 올라와 생선을 훔쳐먹었을 터다. 먼저 손 내민 인간과 그런 인간에게 길든 고양이. 그리고 지금, 손 내미는 고양이와 해치고자 하는 사람. 아이러니하다. 2020년 9월 중순, 이 글을 쓰는 지금도 인천 길고양이 급식소에서 고양이 뼈가 발견됐다는 뉴스가 나온다. 항간에는 일부러 살점이 붙은 뼈를 두고 가 근처 고양이들이 먹게끔 유도했다는 소문도 있다. 뉴스에 나온 것이 처음이지, 이런 일은 전부터 꾸준히 있었다. 물론 나라고 해서 흠결이 없는 것은 아니다. 길을 걷다 비둘기가 다가올 때면 반사적으로 피하게 되고, 쓰레기나 토사물을 헤집는 모습을 볼 때면 거북한 감정도 든다. 그래서 고양이를 혐오하는 사람의 감정 자체를 부정하거나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나는 비둘기에게 돌을 던진 적도 없고, 죽이고 싶다고 생각한 적은 단연코 더욱 없다. 누군가는 현 사회가 ‘반려동물 세상’이라는데, 지금도 이 땅 어딘가에서 수많은 동물들이 죄 없이 버림받고 죽어가고 있음을 느낀다. 오천 년이라는 시간이 지난 지금, 어쩌면 우린 다른 생명과 어울려 사는 방법을 조금씩 잊어가고 있는 건 아닐까. 어제는 여섯 마리가 되었다는 전화가 왔다. 준비도 되지 않았는데, 참 빨리도 늘어간다.글 박찬우사진 박흥배에디터 이혜수해당 글은 MAGAZINE C 2020년 11월호에 수록된 것입니다.불법 복제 및 사용을 금합니다.
- STORY | 2021-08-24 08:5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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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AGAZINE C. 마음을 보듬는 그루밍
- 올여름 남편이 일주일간 시댁인 파리로 홀로 여름휴가를 다녀오고 싶다고 조심스레 얘기를 꺼냈을 때 나는 기꺼이 잘 다녀오라며 등을 떠밀었다. 남편이 집에 없다는 뜻은 곧 일주일 동안 나의 사랑스러운 고양이 노아와 폼폼과 함께 잠들 수 있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소소한 일탈 잠귀가 밝고 예민한 남편은 작은 소리에도 잠을 설치기 때문에 우리는 노아와 폼폼을 입양한 이후로 안방 문을 닫고 자야 했다. 호기심 많은 노아는 초반에는 온종일 열려 있던 안방 문이 밤에는 왜 굳게 닫혀 있는지 이해할 수 없는 듯, 방문을 긁으며 열어달라고 울어대서 내 마음을 참 아프게 했다. 함께 잠들고 싶은 마음에 여러 번 안방 문을 열고 시도는 해 봤지만, 고양이들의 작은 기척에도 남편은 잠을 설치곤 했다. 결국 제대로 잠을 못 자 수척해진 남편의 얼굴을 보며 안타깝지만 우리는 방문을 닫기로 결정하였다. 천방지축 캣초딩 시절을 지나니 노아도 곧 적응하여 밤에는 폼폼과 함께 거실에 있는 캣타워 침대에서 잠을 자게 되었다. 하지만 그 당시 노아가 같이 자고 싶어서 문을 긁고 야옹거리던 모습은 늘 내 마음속에 남아 있었다. 그래서 남편이 집을 비울 때면 무조건 방문을 활짝 열고 노아와 함께 잠드는 기쁨을 만끽하곤 한다. 밀려드는 외로움 스위스에서의 생활을 막 시작했을 때, 나는 남편이 집을 비우는 것을 무척이나 싫어했다. 맞벌이하는 부모님으로 인해 집에 홀로 있는 경우도 많았고, 대학, 직장에 다니면서는 독립도 했기 때문에 나는 집에 혼자 있는 것에 원래 익숙한 사람이었다. 그런데 스위스에서는 달랐다. 친구들도 가족도 없는 스위스에서 내가 믿고 의지할 사람은 오직 남편 한 명뿐이었다. 스위스에서 맞은 첫 번째 크리스마스. 남편은 가족들과 크리스마스를 보내러 프랑스에 가고, 사정이 있어 일주일가량 혼자 집을 지켰던 적이 있었다. 연휴 분위기와는 대조적으로 텅 빈 집에 홀로 있는 기분은 상당히 외로웠다. 평소에는 쾌적하다고 느꼈던 넓은 집이건만 어쩐지 황량하고 무섭게 느껴졌다. 말도 안 통하는 낯선 외국에서 나는 혼자 뭘 하고 있는 거지. 우울한 마음은 끝도 없이 깊어졌다. 그 이후로 나는 가급적 남편 없이 스위스 집에 혼자 남아있는 것을 꺼리게 되었다. 고양이가 불러주는 자장가 그때를 생각해보면 요즘 나는 참 많이 달라졌다. 남편의 등을 떠밀어 기꺼이 프랑스로 보낼 줄 알게 되다니, 이렇게나 사람이 바뀔 수가 있나? 이 모든 것은 역시 나의 두 고양이 덕분이리라. 노아와 폼폼이 우리 집에 온 이후로 나는 더 이상 집에서 혼자인 것이 두렵지 않았다. 일주일 동안 아침부터 저녁까지 밥 챙겨주고, 화장실 청소해 주고, 틈틈이 놀아주다 보면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아이들은 내가 어디를 가든 따라와 지켜봐 주고, 때로는 쓰다듬어 달라며 야옹거리며 울었다. 마치 빈 집에 활기를 불어넣어 주는 듯했다. 밥때가 되면 칼같이 내게 와서 머리 박치기를 하는 폼폼 특유의 애교는 매번 나를 웃음 짓게 했다. 노아는 오랜만에 밤에도 활짝 열려 있는 안방 문을 놓치지 않았다. 매일 밤, 잠들기 전 침대에 누워 있으면 어느새 노아가 슬쩍 내 이불 위에 올라왔다. 이마와 턱을 살살 긁어주면 노아가 불러주는 골골송을 자장가 삼아 함께 잠자리에 들 수 있었다. 겁이 많은 폼폼은 밤에는 침대 위에 올라와 함께 잠을 청하지는 않았지만, 아침에는 어김없이 침대 한 편에서 내가 일어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 덕분에 매일 아침 기분 좋게 잠에서 깰 수 있었다. 아이들과 함께 매일 함께 잠들고 일어나는 일상. 흔치 않은 일이다 보니 더 귀하고 소중하게 느껴졌다. 쭉, 서로의 곁을 지키며 혼자 있는 것이 싫고 외롭다고 느꼈던 나. 하지만 남편의 부재에도 힘들기는커녕 아이들과 즐거웠던 일주일을 보내며 문득 이런 생각을 했다. 고양이들처럼 나를 직접 핥아주는 것은 아니지만, 노아와 폼폼의 존재 자체가 나의 외로운 마음을 따뜻하게 그루밍해 주는 것은 아닐까? 앞으로도 나는 남편이 집을 비운다고 하면 기꺼이 환영할 것이다. 내 곁을 든든히 지켜줄 노아와 폼폼이 있으니까.글·사진 이지혜에디터 이혜수해당 글은 MAGAZINE P 2020년 11월호에 수록된 것입니다.불법 복제 및 사용을 금합니다.
- STORY | 2021-08-17 10:0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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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AGAZINE C. HEARTWARMING
- 자고 일어난 직후의 그루밍은 ‘잘잤다옹~’ 따뜻한 햇살이 내리쬐는 창가에서의 그루밍은 ‘뽀송뽀송해져라옹~’ 맛있는 간식을 먹고 난 후에는 ‘맛있게 잘 먹었다옹~’ 그리고 남 집사가 막 쓰다듬은 곳을 향한 재빠른 그루밍은 ‘내 스타일 망쳤다옹! 다시 다듬어야 한다옹!’ 그루밍의 소중함 나는 그루밍의 중요성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지금은 머나 먼 고양이 별로 떠난 나의 작은 천사 모찌. 모찌는 아프기 시작 한 날부터는 단 한 번도 스스로 그루밍을 한 적이 없다. 아픈 와중에 몸을 단장하는 것 자체가 무척 힘에 부쳤는지, 나의 작은 천사의 윤기 흐르던 털은 날이 갈수록 푸석해지며 뭉쳐갔다. 깔끔쟁이였던 모찌가 분비물과 함께 잔뜩 엉켜버린 자신의 털을 보며 얼마나 속상해할까 하는 마음에 물티슈로 닦아주고 빗으로 빗겨주었지만, 모찌의 꼼꼼한 그루밍 솜씨를 따라갈 수는 없었다. 처음엔 모찌가 스스로 그루밍만 시작한다면, 어쩌면 모든 것이 다 제자리로 돌아오지는 않을까? 하는 기대감을 품었다. 하지만 나는 끝내 그루밍하는 모찌의 모습은 다시 볼 수 없었다. 엄마, 우리가 있다옹 모찌의 죽음은 나를 아주 오랜 시간 슬픔에 잠겨 있게 했다. 삶의 의욕을 잃은 채 정지된 시간 속에서 하루하루 살았던 것 같다. 멍하니 누워만 지내던 그때, 내 곁으로 와서 까칠까칠한 혓바닥으로 정성껏 그루밍해주던 나의 다른 고양이들. 그때의 그 까칠하던 감촉은 나에게 호흡이자, 오늘 하루의 안녕이자, 희망이며 위로였다. 아마 그때 그루밍의 의미는 ‘엄마 힘내. 우리가 있다옹!’이었을 것이다. 오늘도 따뜻한 창가 아래에서 평온한 표정으로 그루밍을 하고 있는 나의 고양이들을 보며 안도와 행복을 느낀다. 길에서 만난 묘연 뚠뚠이 재작년쯤이었나, 퇴근길에 우연히 한 아파트 단지 안 정자에 들렀다. 그곳에서 나는 나무 팻말 하나를 발견했다. 그 팻말에는 ‘뚠뚠이네’라고 써 있었고, 귀여운 고양이 그림도 함께 그려져 있었다. 팻말을 유심히 들여다보고 있는데 어디선가 치즈 태비의 뚱뚱한, 아니 ‘뚱뚱’까지는 아닌 ‘뚠뚠’한 고양이 한 마리가 나타났다. 가방 속 사료를 뚠뚠이에게 주니 뚠뚠이는 내 두 번째 손가락에 코 인사를 해줬다. 그날부터 나는 매일 매일 퇴근길에 뚠뚠이를 찾아갔고 뚠뚠이는 기꺼이 내게 아는 척을 해 줬다. 그렇게 우리는 꽃이 피는 봄부터 무더운 여름, 단풍이 물드는 가을, 찬 바람이 부는 겨울을 모두 함께했다. 그러다 나의 임신, 출산 휴직으로 인해 뚠뚠이와 오랜 시간 만날 수 없게 됐다. 뚠뚠이가 출몰(?) 하던 정자는 우리 동네로부터 꽤 멀리 떨어져 있었던 터라, 갓난아기와 함께 그곳까지 뚠뚠이를 만나러 가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런데 며칠 전 갑작스럽게 회사에 가야만 하는 일이 생겼다. 나는 우리가 만나던 시간대에 뚠뚠이가 있던 정자로 달려가 “뚠뚠아~” 하고 이름을 불렀다. 그러자 상처 하나 없이 건강한 모습으로 뚠뚠이는 내 앞에 나타났다. 날 보며 야옹 야옹 말을 거는 뚠뚠이. 감격스러웠다. 내가 뚠뚠이를 잊지 않았듯이 나의 길 친구 뚠뚠이도 일 년이 넘는 시간 동안 나를 잊지 않았던 것이다. 우리가 다시 매일 만날 수 있는 날까지, 조금은 위험하고 조금은 냉혹한 길 위에서 뚠뚠이의 삶이 무탈히 이어지기를 바란다. 글·사진 황류리아에디터 이혜수해당 글은 MAGAZINE P 2020년 11월호에 수록된 것입니다.불법 복제 및 사용을 금합니다.
- STORY | 2021-08-17 09:3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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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AGAZINE C. 기억 속 희미한 방울 소리처럼
- 우리 마을은 열 가구가 채 되지 않는 작은 마을입니다. 이곳의 주민들은 대부분 제가 태어나기도 전부터 이곳에 터전을 잡은 어르신들이죠. 이 아늑한 마을에서 고양이를 좋아하는 가구는 우리 집을 포함해 딱 세 가구뿐인데, 오늘은 그중 한 가구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이름이 많은 고양이 수십 년간 알고 지냈지만 아직 성함조차 모르는 건, 정이 없기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식구처럼 더 친숙하기 때문일 겁니다. 제가 초등학교에 들어갈 무렵, 할머니 한 분, 할아버지 한 분이 동네에 이사를 오셨습니다. 당시 누군가가 이사를 오는 현장을 처음 목격한 저는 이삿짐 사이에서 낑낑거리는 고양이 한 마리와 강아지 한 마리를 발견하고 두 분을 ‘개 좋아하는 할머니, 할아버지’로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두 분은 제가 초등학교, 중학교 그리고 고등학교를 마칠 때까지 고양이 한 마리를 기르셨는데, 녀석은 아마 세상에서 이름이 가장 많은 고양이 중 하나였을 겁니다. 할머니는 그날의 기분에 따라 방울이, 야옹이, 가끔은 이놈, 하고 녀석을 부르시곤 했습니다. 너희는 나를 기억해 주겠지 많은 이름만큼 특별했던, 그 고양이를 떠나보내고 한동안 할머니는 적적하셨나 봅니다. 몇 해 전부터 고등어 무늬의 고양이 한 마리를 다시 키우기 시작하셨습니다. 이번에도 이름이 없을까 싶었는데 다행히 할머니는 녀석에게 딸랑이라는 이름을 지어 주셨습니다. 그렇게 딸랑이와 함께 수년을 지낸 할머니는 어느덧 80세를 넘기셨고 지금은 왜소해진 체구만큼 생각도 마음도 어린아이처럼 변하셨지요.“딸랑이 주인이 누구예요?” 저와 마주칠 때마다 할머니는 재차 묻습니다. 희미한 기억 속에서도 딸랑이의 모습이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매번 마음을 빼앗기시는 게 아닌지. “할머니가 키우시는 고양이가 딸랑이예요” 하고 알려드리면 잠시 기억이 나신 듯 고개를 끄덕이지만 다 음 날 여전히 딸랑이의 주인을 찾으시는 할머니.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지만 다행인 건, 할머니가 딸랑이를 못 알아보더라도 딸랑이는 늘 할머니 곁으로 쪼르르 달려와 볼을 비벼댄다는 겁니다. 그런 딸랑이의 모습을 보며, 언젠가 내가 세상을 잊어가도 아이들만은 날 기억해 주겠지, 하는 안도감이 들기도 합니다. 제가 할 수 있는 건 이렇게 글을 쓰고 사진을 찍으며 낡은 기억을 다시금 색칠하는 게 전부인데 말이지요. 작가로서 2020년의 마지막 원고를 작성하고 있습니다. 조용할 날이 없었던 한 해도 이렇게 끝나가네요. 2년 조금 안 되는 시간 동안 매거진 C를 작업하면서 변한 게 있다면 이야깃거리를 찾기 위해 작가의 관점으로 주변을 둘러보는 습관이 생긴 것입니다. 사료를 먹는 모습, 물을 마시는 모습, 영역 다툼을 하는 모습, 어디선가 나타난 새끼 고양이가 밥을 먹는 모습 등 흔하고 사소하지만, 그 작은 이야기들이 뭉쳐 큰 이야기보따리가 되도록 꾸준히 관찰하고 지켜보는 게 일상이 되었습니다.독자로서 어쩌면 저는 고양이들의 삶을 자세히 들여다보는 한 명의 독자가 아닐까 싶습니다. 어디선가 나타난 이름 모를 고양이들의 삶을 오랫동안 지켜보고, 제 나름대로 느낀 고양이들의 삶을 글과 사진으로 옮겨 독자분께 전하는 것이지요. 비단 저뿐만이 아니라 잡지에 이야기를 보내주시는 많은 작가님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합니다. 아파트 단지의 길고양이, 시골 돌담을 거니는 시골 고양이, 가정에서 집사님의 사랑을 받고 자라는 집고양이. 그렇게 모두가 각자의 고양이들의 삶을 읽는 독자가 되고, 그 이야기를 쓰는 작가가 되어 마침내 매거진을 읽는 독자분께 가닿는 것이라고 생각 합니다. 어쩌면 영영 몰랐을 한 고양이의 삶을 이렇게 종이를 통해 만날 수 있다는 것, 새삼 참 행복하고 또 고마운 일입니다. 글·사진 안진환에디터 신동혁해당 글은 MAGAZINE P 2020년 11월호에 수록된 것입니다.불법 복제 및 사용을 금합니다.
- STORY | 2021-08-17 08:5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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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AGAZINE C. 울보 고양이, 그리고 안녕
- 보통 때와 다름없던 따사로운 가을날, 집에 새로운 ‘냄새’가 들어왔다. 그 낯선 냄새는 너무 시끄러웠는데도 엄만 그저 그 냄새를 안아 주기 바빴다. 분명 내가 배가 고프다고, 심심하다고 울었는데 말이다. 시끄럽고 이상한 냄새 ‘내 울음이 들리지 않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들 즈음. 나는 슬슬 졸리기 시작했다. 어느새 해가 져 있었다. 나는 이미 잘 준비를 끝마쳤는데, 왜 아직 아무도 자리에 눕지 않는 거지? 매일 밤이면 조용히 엄마의 향기를 맡으며 잠들곤 했는데 오늘은 그저 시끄러운 울음소리만 가득하다. 그 소리가 너무 크고 정신이 없어 나는 가까이 가고 싶은 마음도, 냄새를 맡고 싶은 마음도 들지 않았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아빠는 해님이 고개를 내밀면 나에게 와, 배가 고프냐고 묻고 내가 좋아하는 간식과 사료를 엄마 몰래 주고는 했다. 음, 지금은 이미 해가 중천인 거 같은데. 아빠는 나에게 오기는커녕 눈코 뜰 새 없이 바빠 보인다. 100일 된 사이 자몽이에게 동생이 생겼다. 그리고 동생이 집에 온 지 어느덧 100일이 다 되어간다. 아기를 집에 들이기 전부터 주변 사람들은 이런저런 걱정을 했다. 신생아를 고양이랑 어떻게 같이 키울 수가 있냐고, 아기한테 해코지라도 하면 어쩌려고 그러냐고. 다른 곳에 맡기라며 무책임한 소리를 하는 이도 있었다. 하지만 우리 부부는 자몽이가 더 걱정이었다. 자몽이는 호기심이 많고 활발한 편이다. 그런 자몽이에게 아기의 존재가 큰 스트레스가 되면 어떻게 하나 싶었다. 처음에는 아기와 자몽이 둘 다 눈을 뗄 수가 없었다. 혹 서로에게 자극이 될까, 또 한편으론 꿈에서 바라던 귀여운 아기와 귀여운 고양이의 조합을 언제쯤 볼 수 있을까 하는 기대감으로. ‘집사’에 이어 ‘부모’라는 새로운 이름을 얻어서일까? 우리의 눈길은 어느새 조금씩 아기에게 쏠리고 있었다. 엄마 아빠를 애타게 찾는 자몽이에게 예전만큼 사랑을 주고 싶었지만, 우리의 체력은 생각보다 금방 바닥을 보이고 말았다. 육아=육묘 나와 남편은 그동안 자몽이의 울음소리와 발걸음에 담긴 의미를 조금은 이해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요즘은 달랐다. 서로 마음이 통한다고 느꼈던 것은 어쩌면 그땐 우리의 하루가 자몽이 중심으로 돌아갔기 때문은 아닐까. 요즘에는 자몽이가 울어도 달려가지 못하고, 매달려도 안아주지 못한다. 이미 품에는 아기가 안겨 있기 때문이다. 자몽이는 ‘자몽아 미안해’라며 연신 사과만 하는 엄마가 안쓰러운 건지 아니면 기대가 없어진 건지, 이제 아빠가 집에만 돌아오면 울곤 한다. 눈치 빠른 남편은 나 대신 자몽이를 더 많이 안아주기로 했다. 자몽이도 이제는 그걸 잘 아는지, 내 앞에선 잘 울지 않는다. 대신 아빠만 보면 온종일 운다. 설령 방금 밥도 먹고 화장실도 갔다 오고 신나게 논 직후여도 말이다. 자몽이의 아양을 받아줄 사람이 이 집안에 아빠뿐이란 걸 아는 걸까. 미안한 마음이 가득하다. 자몽이의 양보로 또 나의 미안함으로, 그렇게 우리의 육아와 육묘는 한 단어가 되어가는 중이다. 다시, 새로운 시작 연재를 시작한 지 1년 4개월이 지났다. 덕분에 자몽이와 우리에게는 활자로 새겨진 선명한 추억이 생겼다. 신기하게도 잡지를 보고 자몽이와 우리를 알아봐 준 지인도 있었다. 그걸 보면서 ‘우리의 이야기가 많은 사람에게 읽히고 있구나’ 하는 생각에 더욱 신중히 글을 썼다. 창작의 고통이란 게 이런 걸까? 잡지 속 자몽이 사진이 예쁘게 나와 행복했던 기쁨도 있었고, 보낸 글이 마음에 들지 않아 아쉬웠던 기억도 있었다. 짧지 않은, 하지만 그렇게 길지도 않던 자몽이 가족의 이야기는 여기서 잠깐 멈추려 한다. 집사로서 그리고 부모로서 아직 미숙하지만, 그래도 우리는 더 나은 부모, 더 훌륭한 집사가 되기 위해 오늘도 노력하고 있다. 그동안 부족한 글을 다듬어주신 에디터님, 자몽이의 안부를 물어주던 지인분들 그리고 매거진 C의 작가를 자청하신 모든 집사님, 그리고 독자님께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다양한 고양이 이야기로 가득한 매거진 C 덕분에 자몽이네 책장에는 행복한 추억이 가득해졌습니다. 고맙습니다. 글·사진 김성은에디터 이혜수해당 글은 MAGAZINE P 2020년 11월호에 수록된 것입니다.불법 복제 및 사용을 금합니다.
- STORY | 2021-08-10 09:28: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