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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ORY | 2021-05-17 09:5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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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ORY | 2021-05-14 10:0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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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ORY | 2021-05-12 10:0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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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ORY | 2021-05-10 10:1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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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ORY | 2021-05-07 10:3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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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ORY | 2021-05-06 09:5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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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ORY | 2021-04-02 10: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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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AGAZINE C. 인연은 우연히
- 처음부터 우리 학교 학생들이 길고양이에 관심이 많았던 건 아니다. 또한 길고양이들 역시 우리에게 큰 관심이 없었다. 그렇게 묘한 균형을 이루며 지내던 2017년의 봄, 새로운 고양이 한 마리가 학교에 반향을 일으켰다.포스텍 직진묘 칠팔이 ‘칠팔이’. 우리 학교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78계단’ 주변에 상주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칠팔이는 등하교하는 학생들에게 다가가 길을 막고 다짜고짜 애교를 부렸다. 낯선 고양이의 애정 공세에 학생들의 마음은 금세 활짝 열렸다. 지나가다 칠팔이를 만나면 주저앉아 쓰다듬어 주기도 하고, 어디선가 츄르를 구해와 하나씩 먹이기도 했다. 혹 칠팔이가 굶지는 않을까, 소금기를 뺀 참치 통조림과 물을 주고 가는 이도 있었다. 식빵을 굽고 있다가도 필자를 보면 달려와 애교를 부리며 늦은 밤 공부로 지친 심신을 달래주기도 했다. 어쩌면 칠팔이는 단지 먹을 게 필요했을지도 모르겠지만. 어느 날부터 칠팔이는 새끼 고양이 ‘오륙이’를 마치 자기 자식처럼 데리고 다니기 시작했다. 오륙이는 일찍 엄마 고양이로부터 떨어진 녀석이었는데, 칠팔이에 새끼 고양이까지 나타나자 학생들의 관심은 더욱 커졌다. 하지만 학생들의 서툰 관심이 오히려 독이 되어서일까, 칠팔이는 어느새 사람들을 피하기 시작했고, 건강까지 악화하여 결국 한 대학원생분께서 칠팔이와 오륙이를 함께 입양하기로 하셨다.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아쉬운 안녕을 고할 수밖에 없었다.등장! 뉴페이스 그렇게 고양이에 대한 학생들의 관심도 잦아드는 듯했다. 하지만 작년 봄, 또 다른 길고양이 한 마리가 우리 앞에 나타났다. 국제관 앞에 항상 엎드려서 사람들에게 애교를 부리며 먹을 것을 내놓으라던 냥아치의 이름은 ‘노벨이’. 이름의 유래는 명확지 않다. 칠팔이의 부재를 아쉬워하던 많은 학생은 노벨이에 열광하기 시작했다. 한층 성숙해진 학생들 덕분일까? 노벨이에 이어서 더 많은 고양이의 사람들의 눈에 띄기 시작했다. 자반이, 고등어 듀오가 그중 대표적이다. 사람을 마주쳐도 도망가지 않고, 둘이 매일 치고받고 까불면서 노는 것이 특징이다. 노벨이를 잃을 뻔한 적도 있었다. 한 직원분께서 검은 헬멧을 쓴 한 괴한이 국제관 앞의 노벨이를 발로 차고 괴롭히는 것을 목격했다. 깜짝 놀란 직원분이 노벨이를 부르며 달려가자, 그 괴한은 노벨이에게 스프레이를 뿌리고 도망갔다고 했다. 노벨이를 진찰한 수의사는 그 스프레이 성분이 몸에 굉장히 해로운 ‘시너’라고 전했다. 천만다행으로 노벨이는 금세 나아 우리 곁으로 돌아왔다. 혹시나 사람에게 큰 트라우마를 얻은 건 아닐까 걱정했지만, 다행히도 노벨이는 여전히 사람을 좋아한다. 언제나 지금처럼만 최근 노벨이는 길고양이의 숙명과 다름없는 구내염으로 고통받고 있다. 진찰 결과, 무지막지 큰돈은 아니지만 학생 혼자 내기에는 다소 부담스러운 금액이 청구되었다. 그렇게 노벨이의 진료비를 충당하기 위해 소액의 모금을 받기 시작했다. 감사하게도 생각보다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십시일반 도움을 보태 주었다. 덕분에 노벨이의 병원비는 물론, 사료도 더욱 좋은 것으로 바꿔줄 수 있게 됐고 행여나 다른 고양이가 병원 신세를 지더라도 감당할 수 있게 됐다. 수많은 포스텍 구성원의 마음을 따뜻하게 만들어주는 우리 고양이들. 오랫동안 학교 안에서 지금처럼 건강한 모습으로 만날 수 있으면 좋겠다.글.사진 박종현에디터 이혜수해당 글은 MAGAZINE C 2020년 9월호에 수록된 것입니다.불법 복제 및 사용을 금합니다.
- STORY | 2021-05-17 09:5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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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AGAZINE C. 온기를 담는 렌즈
- 30대의 젊은 나이에 다가온 죽음의 그림자. 한창 폭염이 기승을 부리던 2013년 8월, 갑작스레 뇌출혈이 왔다. 응급실에서 빠른 대처를 받지 못한 나는 무려 3번의 뇌 수술을 견뎌내야 했다. 6개월 뒤 후유 장애 없이 무사히 퇴원했지만 몸과 마음은 결코 전과 같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남자친구가 조심스레 내게 고양이를 키워보는 건 어떻겠느냐는 말을 꺼냈다.변수 길냥이들 밥을 챙겨주는 것과 가족이 되는 것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었다. 잘 키울 수 있다는 확신이 없었기에 당연히 고민이 됐다. 그런데 얼마 뒤, 지인이 집사가 되어달라는 부탁을 해왔다. 지인이 교통사고로 어미를 잃은 새끼 고양이 네 마리를 구조했는데 입양자가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캐논이는 그렇게 내게 왔다. 하지만 길냥이들 밥만 챙겨줄 줄 알았지, 사실상 고양이에 대해 아는 전문 지식은 하나도 없었다. 결국 나는 책을 사 읽거나 인터넷으로 찾아보기 시작했고, 그래도 부족한 부분은 지인에게 물어보기까지 했다. 한동안은 캐논이를 잘 돌보는 데 필요한 것들을 준비하며 정말 바쁘게 살았다. 그 과정에서 우울했던 지난 시간을 잊고, 자신감을 얻을 수 있었다. 물론 우여곡절도 많았다. 캐논이를 잃어버렸다가 일주일 만에 극적으로 다시 찾기도 했고, 그 후 의기소침해진 캐논이를 위해 둘째 니콘이를 데려오기도 했다. 사실 캐논이와 니콘이의 합사는 마냥 성공적이지는 않았다. 사전에 충분히 합사 공부를 하지 않아 벌어진 결과였다. 그래서인지 캐논이와 니콘이는 지금까지도 서로 하악질을 하고, 가까이 있는 걸 싫어한다. 뭐, 물고 할퀴면서 싸우지는 않지만, 서로 그루밍을 해주거나 안고 자는 모습을 보고 싶었던 나로서는 안타까움을 감출 수가 없는 게 사실이다.변화 책임져야 할 식구가 많아진 만큼, 두 어깨도 당연히 무거워졌다. 하지만 온전치 않은 몸으로는 원래 직업으로 돌아가기 힘들었다. 마침 그 시기에 나는 취미로 사진을 한창 찍고 있었다. 그렇게 ‘찾아가는 고양이 사진관’이라는 타이틀로 새로운 일을 시작했다. 반려인의 집으로 직접 찾아가 고양이를 찍어주는 일이었다. 하지만 얼마 가지 않아 일을 그만둘 수 밖에 없었다. 시간이 갈수록 들어오는 일의 수도 줄었고, 들이는 노력에 비해 수입은 터무니없이 낮았다. 돈을 받고 촬영하는 일 자체가 스트레스로 다가오자, 그제야 순수하게 기쁜 마음으로 아이들을 찍어줄 때가 가장 행복했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얼마 뒤, 나는 부산시 반려동물 문화복지센터에서 재능기부로 고양이들의 사진을 찍어주는 사진가로 활동하게 됐다. 그리고 현재는 해운대 유기동물 입양센터에서 재능기부 촬영을 하고 있다. 센터에는 고양이뿐만 아니라 강아지도 많기에, 자연스레 모든 아이를 촬영하고 있다. 아이들의 순간들을 찍다 보면 정말 그렇게 기쁠 수가 없다. 특히 내 사진으로 좋은 가정에 입양을 간 아이들의 소식을 들을 때는 더욱 그렇다. 만남을 기대하는 이유 요즘 나는 이웃 캣맘과 함께 새끼 고양이들을 구조한 뒤 입양 보내는 일을 하고 있다. 그렇게 새 가족을 만난 새끼 고양이만 무려 네 마리나 된다. 얼마 전에는 고양이를 키워본 적이 없다는 사람의 첫 입양을 도와준 적도 있었는데, 그분을 보며 반려동물 문화가 점점 더 긍정적으로 변화하고 있다는 걸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 인생은 언제나 내가 계획한 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하지만 이미 흘러가 버린 시간을 후회 하지는 않으려 한다. 현재 내 삶은 캐논이와 니콘이, 그리고 누군가에게 새로운 인연을 선물해주는 기쁨으로 충만하기 때문이다. 집사도, 사진가도 처음이지만 나는 앞으로도 꾸준히 재능기부 촬영을 통해 반려동물 입양에 도움을 주고 싶다. 그리고 감히 바라본다. 많은 이들이 사진 속 아이들의 작고 따뜻한 영혼을 포착할 수 있기를. 더불어 나 또한 누군가에게 새로운 인연, 운명 같은 변수를 만들어 줄 수 있기를 하고 말이다.글.사진 신희정에디터 한소원해당 글은 MAGAZINE C 2020년 9월호에 수록된 것입니다.불법 복제 및 사용을 금합니다.
- STORY | 2021-05-14 10:0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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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AGAZINE C. 전생 엿보기
- 낮부터 쏟아지던 비가 그친 것 같다. 시선을 밖으로 옮겼다. 미대생이 유화물감을 쏟기라도 했는지 거리의 색감이 짙고 선명하다. 전봇대의 주황 불빛이 방안으로 새어 들어온다. 냉장고 돌아가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리고 그 위에서 하맹이가 평온하게 잠들어 있다. 시간은 어느덧 자정을 향하고 있다. 모든 조건이 갖춰졌다. 지금이다. 과거로 갈 기회다. 지금부터 난 유튜브를 통해 나의 전생을 들여다볼 것이다. 과거를 들여다보다 얼마 전 카페에 친구가 왔다. 시시콜콜한 얘기를 나누던 중 친구는 나에게 ‘유튜브로 전생 체험을 할 수 있다’는 말을 해 줬다. 나는 냉소적인 표정을 지으며 헛소리하지 말라고 했다. 하지만 이야기를 들은 순간 속으로 나는 ‘한번 해 봐야겠다’ 하고 생각했다. 바로 오늘이다. 직감한 나는 유튜브 검색창에 ‘전생 체험’이라는 단어를 검색했다. 그리고 개중 조회 수가 가장 높은 동영상을 눌렀다. 영상에서 시키는 데로 눈꺼풀에 힘을 풀고 천천히 눈을 감았고, 심호흡을 여러 번 반복했다. 10분쯤 호흡을 하며 몸을 이완시키는 데 집중하니 신기하게 정신이 몽롱해졌다. 현실과 꿈의 중간 정도의 단계에 들어선 것 같았다. 무튼 지금은 방 안에 있지 않았다. 주변을 돌아봤다. 맨발이 보였고 고개를 들어 시선을 옮기자 나는 내가 넓은 초원 한가운데 서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른 아침인지 하늘은 회색빛이었고 풀 내음이 진동하며 안개가 자욱하게 내려앉아 있었다. 잠시 뒤 멀리서 선명한 목소리가 들렸다.하맹이가 아닌 “목소리가 당신을 전생으로 인도할 겁니다.” 유튜버의 목소리가 들린다. 목소리가 시키는 데로 초원을 걷다 보니 동굴 앞에 다다랐다. 동굴로 들어가기 전 유튜버는 ‘당신을 인도해 줄 동물을 상상하세요’라고 말했다. 하맹이를 떠올릴지, 아니면 전에 키웠던 까만 강아지를 생각할지 고민했다. 전생으로 가는 거니 현생에 있는 하맹이보다 과거에 키웠던 까만 강아지를 떠올리는 게 나은 선택인 것 같았다. 잠시 뒤 눈앞에 검은 형체가 보였다. 강아지와 함께 동굴에 들어갔다. 저 멀리 티끌만 한 불빛이 보였다. 강아지와 함께 더디게 커지는 불빛을 향해 하염없이 걸었다. 얼마나 지났는지 가늠할 수 없지만, 한껏 커다래진 불빛이 꽤나 눈이 부셨다. 눈이 시려 미간을 찡그리려고 할 때쯤 다시 목소리가 들렸다. “이제 빛을 향해 나가면 전생의 장면들이 눈앞에 펼쳐질 것입니다.” 나는 다시 한번 크게 심호흡을 하고 빛을 향해 조심스레 발을 내디뎠다. 그런데 그 순간 머리에 무언가 강한 충격이 느껴졌다. 되돌아오다 눈을 떴다. 이마에 희미하게 누군가의 체온이 느껴졌다. 전생에 돌입한 건지 확인하기 위해 주변을 둘러봤다. 주황 불빛이 도는 방안이 보인다. 창밖 건물 모서리에 맺힌 굵은 물방울이 벽을 타고 하나가 되어 바닥으로 천천히 떨어진다. 내 방이다. 냉장고 위에서 곤히 잠들어 있던 하맹이가 보이지 않았다. 몸을 일으키니 하맹이는 침대 끝에 앉아 날 노려보고 있다. 내가 저 대신 전에 키우던 검은 강아지를 떠올린 걸 추궁하는 듯한 눈빛이다. 하맹이는 내 이마를 후려친 앞발을 혀로 몇 번 핥고 다시 나를 보며 눈을 깜박인다. 아마도 이런 의미가 담겨 있을 것이다. “현생에나 집중하며 살아.” 글.사진 양세호에디터 이혜수해당 글은 MAGAZINE C 2020년 9월호에 수록된 것입니다.불법 복제 및 사용을 금합니다.
- STORY | 2021-05-12 10:0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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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AGAZINE C. 고양이와 함께 이사하기
- 그 시절, 우리는 여섯 마리 고양이의 반려인이 되어 지금의 집에 정착하기까지, 참 많은 일이 있었다. 어린 나이에 독립을 시작한 탓에 1~2년마다 여기저기로 이사를 하곤 했던 나는 항상 고양이들을 위한 집을 선택했다. 8년째 동거 중인 첫째 고양이 ‘생강이’는 과거 나와 함께 작고 좁은 원룸을 전전했다. 지금 나는 맘껏 오르내릴 수 있는 계단과 큰 창이 있는 넓은 이층집에 살고 있지만, 가끔 예전 생각에 잠길 때마다 생강이에게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이 든다. 그래도 그 시절, 우리는 함께 있어 너무나 행복했다.우연한 만남 길 생활이 꽤나 고되었는지 나 좀 데려가라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따라오던 고양이. 나는 녀석을 얼떨결에 덥석 안아 들고 집안에 데려와 버렸다. 아무런 준비도 되어있지 않은 작은 원룸이 답답할 만도 한데 당시의 생강이는 누구보다 정말 행복해 보였다. 당시 나는 가스레인지 밑에 세탁기가 있고, 빨래 건조대를 펴면 방이 꽉 차는 원룸에 살고 있었다. 하지만 걱정과 달리 생강이는 좁고 좁은 창문 틈을 비집고 들어가 풍경을 구경할 줄 아는 의젓하고 기특한 고양이었다. 그렇게 원룸 생활을 한 지 두 어달 지났을 무렵, 나는 생강이에게 좀 더 좋은 환경을 만들어주고 싶은 마음에 더 큰 원룸으로 이사 계획을 세웠다. 발품을 팔아 고양이를 반려하기에 최적의 조건을 갖춘 집을 찾았고 이사를 했다. 이사와 동시에 캣타워와 캣워크를 설치해 생강이가 수직 운동을 할 수 있도록 집안 환경에 많은 신경을 썼다. 그리고 변화 아뿔싸. 고양이는 고양이를 불러온다고 했던가. 이사를 한 동네에는 길고양이가 정말 많았다. 길고양이들의 밥을 챙겨주며 사비로 중성화를 시키기 시작한 후부터 다친 고양이들을 치료해주는 일도 함께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다리가 부러진 아이, 길에서 살기 힘든 아이를 한 마리씩 집에서 돌보게 되었고 어느새 4마리의 고양이를 반려하게 되었다. 그렇게 나는 다시 한번 이사를 해야 했다. 네 마리 고양이와 사람 한 명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곳. 서울에서 내가 가진 보증금으로는 절대 찾을 수 없었다. 한 번도 서울을 떠나 살아보지 못했던 내가 4마리의 고양이들을 위해 선택한 곳은 남양주의 외진 호숫가 마을이었다. 창밖에 오리들이 헤엄치는 호수가 보이는 그림 같은 집. 원래 펜션으로 운영하던 곳을 세놓았다고 했다. 고양이들을 데리고 이사할 때에는 크게 두 가지 옵션이 있다. 고양이 호텔에 맡기는 방법과 고양이들을 이사할 집에 미리 데려다 놓고 이사를 끝내는 방법. 나는 늘 후자를 선택했다. 고양이들과 함께 새로운 집에 도착해 작은방을 대충 청소한 뒤 화장실과 밥그릇 물그릇을 놓아두고 고양이들을 풀어둔다. 그러고 나서 나머지 이삿짐들을 거실에 풀고 차근차근 이사하는 것이 제일 편했다.다시 시작된 인연 남양주의 집은 정말 넓었다. 창밖 호숫가의 무지개와 낚시하는 사람들, 오리와 철새들을 구경하며 나와 고양이들은 정말 행복하게 살았다. 도시만큼은 아니었지만 그곳에도 길고양이가 있었기에 창밖에 급식소를 만들어 사료를 함께 나눠 먹으며 조용한 호숫가 라이프를 즐겼다. 그렇지만 운전면허가 없었던 내겐 외진 곳에 있었던 집은 꽤 불편했다. 주변에 마땅한 동물병원 역시 찾기가 어려웠고, 외부와 고립된 삶을 사는 것에 조금씩 지쳐갔다. 결국 나는 남양주 생활을 청산하고 홍대로 이사를 결심했다. 고양이들을 생각해가며 차곡차곡 열심히 모았던 돈으로 서교동의 작은 투룸을 얻을 수 있었고 그곳에서 지금의 남편을 만났다.그곳에서도 행복할 거야 과거의 나는 부족하지만 그래도 가진 것에 기뻐하며 살 수 있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지금 되돌아보면 ‘그때의 나는 무슨 마음으로 그리 무모하게 살았던 것일까’ 싶기도 하다. 그래도 나는 언제나 고양이들에게만큼은 항상 내 전부를 쏟았다. 지금도 여전히 그렇게 살고 있지만. 이사를 하며 찍어두었던 사진을 보고 있노라면 예전의 내가 기특하기도 하고 짠하기도 하다. 사회생활을 하며 다치고 움츠러들었던 나의 마음을 토닥여주고, 살아갈 힘을 얻게 해주었던 내 고양이들. 나는 이전에도 지금도 그 고마움을 잊지 않고 있다. 우리는 그렇게 인연을 쌓아 고양이 여섯에 사람 둘, 여덟 식구가 되어 따뜻한 이 집에 정착했다. 특별할 것 없었던 나를 믿어주고 함께 살아줘서 고마운 내 고양이들. 앞으로 또 어디로 가게 될지는 모르지만 우리는 분명히 그곳에서도 행복할 거야.글.사진 장경아에디터 조문주해당 글은 MAGAZINE C 2020년 9월호에 수록된 것입니다.불법 복제 및 사용을 금합니다.
- STORY | 2021-05-10 10:1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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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AGAZINE C. 하루, 그리고 또 하루
- 이른 아침. 잠에서 채 깨기도 전, 어디선가 아이들이 웅얼대는 소리가 들린다. ‘엄마, 일어날 시간이야’ 하고 나를 부르는 소리. 조니와 데비는 이내 침대 위로 올라와 내 얼굴 위에 발을 올린다. 그러다 내 배 위로 풀썩 올라타 본격적으로 나를 깨우기 시작한다. 그 무게에 조금 숨이 막혀 깊은 한숨을 뱉는다. 나의 하루는, 그렇게 시작된다.Morning 나는 글을 쓰고, 물건을 만들고, 그림을 그린다. 그러느라 아이들과 놀아주는 시간은 하루 중 얼마 채 되지 않는다. 그 사실이 언제나 마음이 쓰이면서도, 아이들의 하루 속에, 그리고 나의 하루 속에 서로가 존재가 우뚝 자리를 지키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한 위안이 된다. 조니와 데비에겐 엄마를 깨우고 움직이게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하루 일과 중 하나인 듯하다. 그렇게 생각하면 피식 웃음이 난다. 그리고 동시에 드는 생각이 있다. 조니와 데비는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황당한 일로, 귀여운 일로, 엉뚱한 일로 나를 웃게 만드는 존재라는 것. 이 조그만 아이들이 없었다면 나의 하루는 어땠을지 쉽사리 상상되지 않는다. 물을 한 모금씩 홀짝거리며 이런저런 생각을 한다. 창문 너머 드넓게 펼쳐진 바다를 한참 동안 바라보다 ‘읏차!’ 하는 소리와 함께 몸을 일으킨다. 그리곤 아이들이 좋아하는 캔을 하나씩 따준 뒤, 맛있게 먹는 조니와 데비를 또 멍하니 바라본다. 우리의 느릿느릿 소소한 아침의 시작이 나는 참 좋다. Afternoon 해가 머리 위로 완전히 떠오르면, 나는 모든 잠 부스러기들을 옷자락에서 훌훌 털어버리고 제법 생기를 되찾는다. 반면 같은 시각 우리 집 꼬맹이들의 눈꺼풀은 무척이나 무거워진다. 조니와 데비는 곧 편안하게 한 자리씩 차지하고선 세상에서 가장 행복해 보이는 얼굴로 낮잠을 잔다. 어느새 봄은 완전히 가고, 공기 중엔 습한 기운이 가득하다. 뜨거운 햇빛이 창문 안으로 쏟아져 들어온다. 하지만 창밖을 가득 채운 하늘과 바다가 너무 예뻐, 나는 커튼을 칠 생각을 차마 하지 못한다. 그다음엔 일하다가도 수십 번이고 조니와 데비에게 다가가 얼굴을 비비고, 입을 맞추고, 쓰다듬고를 반복한다. 천사 같은 얼굴을 하고선 곤히 잠든 아이들을 볼 때면 도저히 가만 놔둘 수가 없다. 얼마의 시간이 지난 뒤, 부스스 아이들이 몸을 일으킨다. 간식을 먹을 시간이 되었다는 뜻이다. 간식을 꺼내자 아이들이 주변으로 옹기종기 모여든다. 데비는 한입이라도 더 먹으려 내 머리 위까지 기어오를 기세고, 순둥이 조니는 엄마가 줄 때까지 꼿꼿하게 앉아 기다린다. 특별할 것 없는 하루지만 아이들이 주는 행복은 엄청나다. 큰 웃음, 작은 웃음, 귀여움에 몸이 간질간질한 기분. 꼭 조니와 데비가 날마다 새로운 선물 꾸러미를 내 품에 한 아름 안겨주는 것 같다.Every Seconds 사람들은 저녁을 더러 하루의 끝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조니와 데비에게 저녁 시간은 이제 막 새로운 하루가 시작되었다는 뜻과 같다. ‘고양이들은 아무래도 야행성이라서 그런 거겠지?’ 싶다가도, ‘아닌데, 내가 잠자리에 들 때는 함께 자고, 곧 조용해지는데?’라는 의심이 들었다. 그럼 어째서 그렇게까지 한껏 신이 나 하는 걸까 곰곰이 생각해봤다. 작업을 하다 보면 시간은 새벽 3, 4시를 훌쩍 넘는다. 어쩌면 아이들은 늦은 시간까지 엄마가 깨어 있다는 사실이 그저 좋았던 것은 아닐까. 설령 말은 통하지 않더라도 마음만은 서로 통하는 우리들이니까 말이다. 내일은 또 어떤 행복을 아이들은 내게 맛보여 줄까? 얼른 일어나 또 아이들 등에 얼굴을 비비고, 코를 맞대고, 이야기를 나눠야지. 그런 기분 좋은 생각을 하며 나는 스르르 잠에 든다. 하루 온종일 변함없이 아이들을 쓰다듬어 줄 수 있음에, 그리고 조니와 데비가 언제나 내 곁에 있음에 마음 깊이 감사한다. 도담도담 하우스는 매일, 매시간, 매 순간이 행복으로 가득하다.글.사진 김보미에디터 이혜수해당 글은 MAGAZINE C 2020년 9월호에 수록된 것입니다.불법 복제 및 사용을 금합니다.
- STORY | 2021-05-07 10:3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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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AGAZINE C. 엄마도 엄마가 필요해
- 결혼을 했다. 그간 내게 신경을 쏟느라 고생한 엄마를 자유롭게 해주고 싶다는 생각에, 내 나름의 선을 정해 엄마와 일정한 거리를 두고 지내왔었다. 그렇게 나는 조금씩 ‘용복이, 또복이, 행복이, 금복이 엄마’ 또는 ‘때때 엄마’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게 익숙해졌다. 하지만 몇 년 뒤, 내게도 다시 ‘엄마’가 필요한 순간이 찾아왔다.몸만 어른인 우리 어느 날, 또복이를 안고 있는데 또복이와 앙숙인 용복이가 성큼성큼 다가왔다. 그러자 겁이 많은 또복이는 발버둥을 쳤고, 또복이의 날카로운 발톱은 내 새끼손가락에 꽤나 깊은 상처를 남겼다. 시간이 갈수록 심해지는 통증에 가장 먼저 찾게 되는 건 엄마였다. 남편의 말에 의하면 내가 잠시 엄마 곁에서 휴식을 취하는 동안, 용복이, 또복이, 행복이, 금복이는 마치 엄마 잃은 고양이마냥 축 처져 있었다고 한다. 겨우 이틀 동안이었지만 나는 엄마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몸도 마음도 많이 안정되었다. 반면 우리 네 마리 고양이는 갑자기 사라진 엄마 때문에 불안한 이틀을 보냈을 거다. 집에 돌아오니 용복이, 또복이, 행복이, 금복이는 나를 졸졸 쫓아다니며 ‘앵앵, 앙앙’ 투정을 부렸다. 커다란 눈을 끔뻑거리는 모습이 꼭 ‘왜 이제야 온 거야?’ 하고 서운함을 표시하는 것만 같았다. 녀석들은 이제 나이로 치면 모두 어른 고양이인데, 알고 보니 몸만 어른인 아기 고양이였나 보다. 우리 엄마도 다 큰 딸 병간호와 천방지축 손자 때문에 많이 힘들었을 터다. 하지만 조금도 힘들지 않았다고, 자신도 오랜만에 ‘엄마’일 수 있어서 행복했다는 말에 울컥 눈물이 났다. 엄마 앞에서는 언제든 철부지 어린아이로 있어도 된다고 생각하니 맘속 케케묵은 휴지통을 비워낸 것처럼 후련해졌다. 그러고보면 나 역시 마찬가지다. 24시간 오직 나만을 바라보는 아이들 때문에 몸은 힘들지만, 그래도 나를 엄마로 여기고 엄마로 살게 해 주는 아이들 덕분에 삶을 살아갈 힘을 되찾는다.보석 같은 금복이 막내딸 금복이는 온 가족의 사랑을 한 몸에 받는 보석 같은 아이다. ‘반짝반짝’이라는 단어가 찰떡처럼 잘 어울린달까. 아직도 금복이에게 젖을 물리는 행복이의 사랑은 말하자면 입이 아프고, 아기 집사 때때도 먼저 다가와 애교를 부리는 여동생 금복이를 사랑한다. 말문이 조금씩 트이고 있는 때때는 곁에 누운 금복이를 고사리 같은 손으로 매만지며 재워주기도 한다. 서툰 발음으로 “누운(눈), 코오(코), 이입(입), 꼬디(꼬리)” 또는 “토닥토닥, 코오~자” 하고 속삭이면서 말이다. 아직은 손길이 거친 세 살배기 남자 아기가 겁도 나고 불편할 텐데, 기꺼이 곁에 머물러주는 금복이의마음이 참 곱다. 또복이는 요즘 용복이와 행복이의 갑작스러운 경계 태세로 홀로 안방 생활을 하는 중인데, 먼저 다가가 ‘우다다’를 하며 함께 놀아주고 안정을 주는 것도 언제나 금복이다. 금복이는 온종일 총총총 바쁘게 움직이는데, 바라보고 있으면 아주 그냥 절로 피식피식 웃음이 새어 나온다. ‘요즘같이 힘든 시기에는 1가구 1금복이 도입이 시급하다’고 남편과 진지한 농담을 주고받을 정도로, 얼굴도 마음도 모두다 예쁜 막내딸 금복이는 우리 집의 피로회복제다.육아 육묘 졸업을 꿈꾸며 아기 집사가 신생아일 적엔 아기 집사에게만 집중해야 했으므로 고양이에게 늘 미안했고, 아기 집사가 기어 다닐 때쯤엔 털 뭉치 속 조금은 청결하지 못한 환경에서 자라게 해 때때에게 미안했다. 그리고 아기 집사가 걷기 시작하면서, 이리저리 피하기 바빠진 고양이들에게 미안한 시기가 다시 찾아왔었다. 때때는 걸핏하면 고양이 밥을 뺏어 먹고 화장실 모래로 장난을 쳤다. 그땐 고양이도 나도 완전히 신경이 곤두서, 날마다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그렇게 2년이 지났다. 이제 나는 때때가 어린이집에 가 있는 동안 조용한 집에서 잠시 휴식을 취할 수도 있다. 적당한 거리를 유지할 줄 알게 된 아기 집사 덕분에 고양이들도 한결 편안해졌다. 언제나 그렇다. 결코 지나가지 않을 것 같던 시간도 반드시 지나가고야 만다. 때때와 의사소통이 원활해질 내년 즈음에는, 어쩌면 나도 육아 육묘 졸업장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본다.글.사진 강은영에디터 이혜수해당 글은 MAGAZINE C 2020년 9월호에 수록된 것입니다.불법 복제 및 사용을 금합니다.
- STORY | 2021-05-06 09:5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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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AGAZINE C. 서로의 위안이 되어
지난겨울 중국에서 시작된 코로나 바이러스는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를 거쳐 전 세계를 덮쳤다. 평화롭기 그지없던 스위스 또한 코로나의 영향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창살 없는 감옥 850만 가량의 인구가 살고 있는 작은 나라 스위스의 확진자 수가 가파르게 치솟았다. 코로나의 도래에 국경을 넘나들기 쉬운 유럽 국가들은 혼돈 그 자체였다. 결국 스위스는 3월 중순 국경을 닫고, 필수 시설을 제외한 모든 학교와 상점을 닫는 ‘셧다운(폐쇄)’ 정책을 실시했다. 약국마다 손 소독제가 품절이었고 마스크는 구할 수조차 없었다. 자연스레 사람들은 바깥출입을 꺼리게 됐다. 장을 보러 갔더니 사재기로 인해 식료품 칸이 텅텅 비어 있었다. 스위스에 살면서 처음 보는 풍경이었다.나 또한 당시 듣고 있던 프랑스어 수업이 잠정 중지되며 학교 역시 휴교에 들어갔다. 남편도 재택근무를 시작했다. 내 의지로 집에 머무르는 것과 강제로 밖에 나갈 수 없게 된 것은 천지차이였다. 얼마나 답답하면 오백 번 저어 만드는 달고나 커피 레시피가 한국을 넘어 전 세계를 강타했을까. 창살 없는 감옥에 갇힌 기분이었다.곁을 지켜준 너희들 그런 내게 위로가 되어준 건 언제나 말없이 곁을 지켜준 노아와 폼폼이었다. 평소 가족도 친구도 없이 낯선 외국에 살면서 노아와 폼폼이 내게 준 마음의 안정감이 참 컸는데, 이번 코로나 사태까지 겪으면서 정말이지 아이들이 없었다면 하루하루 버티는 것이 정말 힘들었겠구나 싶었다. 노아와 폼폼도 나와 남편이 하루 종일 집에 있어서 훨씬 좋았을 것이다. 일반적인 오해와는 달리 고양이들도 외로움을 느낀다. 한국에 다녀오느라 몇 주 동안 집을 비웠다 돌아온 날이면 평소보다 더 반겨주고 애교를 부리는 노아와 폼폼. 그런데 우리가 하루 종일 집에서 때맞춰 밥 챙겨주고, 틈틈이 놀아주고, 침대에 누워 함께 낮잠도 자는 생활이 이어졌으니 아이들 기분이 얼마나 좋고 들떴을까. 조금 더 가깝고 선명하게 나 또한 노아와 폼폼과 함께하는 그 시간이 참 좋았다. 바쁘게 살다 보면 아이들과 교감하는 데 소홀해질 수 있는데, 셧다운 기간 동안은 온전히 노아와 폼폼에게 집중할 수 있었다. 경계심이 강하고 겁이 많은 성격의 폼폼은 원래 사람의 손길을 그다지 즐기지 않는 편이었다. 초인종 소리만 들려도 화들짝 놀라 안방으로 도망가는 아이인데, 이 시기를 함께 보내면서 나와 남편에게 이전보다 더 큰 친밀감을 느끼는 듯하다. 어느 날부터 손을 내밀면 스스로 다가와 힘껏 박치기를 하며 애교를 부리는 폼폼의 모습에 우리는 그저 감격할 수밖에 없었다. 원체 성격이 순한 노아 또한 함께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내가 침대 위에 누워 있으면 어느새 노아가 내 곁에 스르르 다가온다. 노아의 까맣고 부드러운 털을 가만히 쓰다듬어 주면 노아는 기분이 좋아진 듯 골골송을 부르며 이리 뒹굴 저리 뒹굴 애교를 부리다가 스르르 잠에 들곤 했다. 부드럽고 따스한 고양이와 함께하는 한낮의 오후는 사람의 심신을 평안하게 만들어준다.그럼에도 우리는 여전히 전 세계적으로 코로나 시대가 종식될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혹자는 더 이상 코로나 이전의 세상은 오지 않는다고 한다. 그럼에도 우리는 일상을 살아가야 한다. 코로나로 인해 겪는 모든 불편함과 우울함 속에서 천진난만한 노아와 폼폼의 눈망울은 우리에게 큰 힘이 되어 준다. 존재만으로도 사랑스러운 노아와 폼폼이 우리 곁에 있어서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글.사진 이지혜에디터 이혜수해당 글은 MAGAZINE C 2020년 7월호에 수록된 것입니다.불법 복제 및 사용을 금합니다.- STORY | 2021-04-02 10:12: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