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녀, 이사 가는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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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녀, 이사 가는 날
조회36,068회   댓글1건   작성일2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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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이용녀, 이사 가는 날


경기도 하남. 배우 이용녀의 집 근처에 다다르니 개 짖는 소리가 먼저 마중 나왔다. 의아했다. 두어 마리의 소리밖에 들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수십 마리의 개들과 살고 있다는 그의 집에 들어가 보니 학교 교실 두 배쯤 되는 마당엔 개들 대신 집기들과 잡동사니가 나뒹굴고 있었다. 이삿날이었다. 개들은 대부분 이동된 상태였다. 이사는 대개 호사이건만 집과 마당을 분주히 오가는 이용녀의 표정은 썩 밝지 않았다. 인터뷰는 마당 한 가운데 간이 의자를 펼쳐놓고 진행됐다. 그에게 몇 개의 질문을 던지자 유기견과 동물 보호에 관한 생각을 군더더기 없이 풀어냈는데 그 식견의 수준이 전문가 못지않았다. 반평생을 투신한 영화나 연극에 관한 얘기는 없었다. 오늘의 인터뷰이는 배우가 아닌, 동물 운동가 이용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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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쁘신데 방문했네요. 이전 작업은 잘 되고 있나요?

맨 땅에 헤딩이에요. 포천 쪽에 땅을 얻어서 시설들 다 짓고 있는 중인데, 땅만 사면 잘 풀릴 줄 알았거든요. 근데 수도도 만들어야 하고 도랑도 내야 하고 펜스 쳐야지 견사도 만들어야지… 보통 일이 아닌 거예요. 저희야 전문 보호소도 아니고 나 살 곳 옆에 애들 사는 데 만드는 수준이니까 대충 창고처럼 지으면 될 줄 알았는데 아니더라고요. 집 내부인데도 설계도를 만들어야 허가가 난다네요. 집 안에 길 하나 내는 것도 절차가 복잡해요. 인건비도 만만치 않아서 요새 정신이 하나도 없어요. 


조금 천천히 하시지 너무 서두르는 거 아니에요?

이제 겨우 창고 하나 지었어요. 준공이 떨어져야 전체적인 공사가 착수된대요. 그런데 이곳 땅 주인이 자꾸 나가라고 재촉해서 일단 아이들만 먼저 옮기게 된 거예요. 집주인이 아까도 감시하듯이 돌아보고 가더라고요. 개가 많다 보니 민원도 들어오고 소음이 심하다고 불만이 많았나 봐요. 준공이 이번 주에 나면 애들 들어갈 견사부터 빨리 만들어야죠.  

 

여기는 자택을 개조해서 지었다고 들었어요.

제 집이 아니고 월세예요. 개들이랑은 같이 사는 것뿐이고요. 집 살 여유가 없죠. 처음 연극할 때는 그래도 돈 많은 연극쟁이였어요. 흔히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고 포스터 붙이며 생계를 유지한다는 연극계의 어려운 이야기는 저와는 거리가 있었어요. 그런데 얘네 만나면서 금세 돈이 사라지더니 일 년에 천만 원씩 빚이 쌓이는 거예요. 사료 값은 어떻게 해결해 보겠는데 병원비는 감당하기 힘들어요. 한 마리 아프면 몇 백 만원씩 나가니 목돈이 생길 수 없죠. 이번에 이사하는 것도 엄청난 짓을 저지른 거예요.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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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매스컴을 통해 꽤 알려진 곳인데 지원이 들어오지는 않고요?

사료를 주려는 곳이 있긴 했어요. 근데 못 받는다고 했죠. 여기도 묘하게 어떤 그룹이 있더라고요. 이를테면 어느 사료와 어느 회사, 거기에 어느 유명한 훈련사가 엮인 그룹이요. 그래서 어떤 사료를 받게 되면 저는 그쪽에서 하는 나쁜 짓을 봐도 뭐라고 할 수 없는 상황이 돼요. 비즈니스를 위해 접촉하고, 자기들 배 채우려는 순수하지 못한 제안에 동참하기 어렵더라고요. 힘들 게 운영하면서 왜 지원 안 받느냐고 주위에서 계속 묻긴 하는데요. 우리 애 몇 마리 먹여 살리자고 더 많은 애들이 피해 보면 안 되는 거잖아요. 힘들어도 지원 받을 수 없었어요.  

 

이 일을 하게 된 건 언제부터였어요?

유기견이란 존재를 처음 접하게 된 건 11년 전인데요. 그 후로 하나 둘씩 입양해서 돌보다가 다시 입양 보내는 일을 반복해 왔어요. 그러다 이렇게 대가족이 된 거고요. 그런데 한 5년 전부터 이 일에 한계를 느꼈어요.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이런 끔찍한 일이 늘어나기만 할 거라는 생각이 든 거죠. 유기견은 계속 늘어나는데 저 같은 사람이 개들 한 마리씩 구하는 게 제대로 된 해결책이라고 보기 어렵잖아요. 일단 다 같이 모여서 방법을 강구하자 싶어서 큰 동물 보호 단체들과 접촉하고 유력한 사람들을 만나기 시작했어요. 이후엔 개인적으로 동물 보호 운동하는 사람부터 크고 작은 유기견 카페 운영하는 사람까지 포함해 방법을 논했어요. 결국은 동물법 자체를 바꾸는 게 우선이라는 생각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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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체들끼리 힘을 합치는 데 구심점 역할을 하신 거군요.

카라나 동사실(동물사랑실천협회) 같은 규모 있는 단체들한테 말했어요. 동물법 시위할 때마다 서른 명, 마흔 명씩 각자 모여서 영향력 없이 끝내지 말고, 한날한시에 힘을 합쳐서 전국적으로 메시지를 전하자고요. 그래야 나라에서도 눈치를 보지 않겠어요? 단체들도 처음엔 좀 미지근한 태도였어요. 저마다 모란 시장, 경동 시장 같은 스팟을 정해놓고 운동할 계획들을 세워놨으니까요. 그래, 각자 살림은 살림대로 하되 우리 딱 한 문제만 다 같이 만나서 해결하자. 그렇게 설득을 거듭했고 ‘동단협’(동물유관단체대표자협의회)이라는 이름 아래에 여러 단체들이 모이게 됐어요. 동물과 관련한 이슈마다 따로 의견을 내기보다, 다른 단체가 마음에 들든 안 들든 힘을 합쳐서 진행하면 분명히 더욱 큰 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믿어요. 


동단협에서 하고 있는 일은 어떤 게 있나요? 

요즘엔 서울, 부산, 대구, 대전 등 네 군데서 매주 수요일에 촛불 집회를 열고 있어요. 서울에선 상암 MBC 앞에서 진행하고 있고요. 처음엔 국회 앞에서 하다가 MBC가 길고양이가 살인진드기를 옮긴다는 잘못된 보도를 한 이후 이쪽으로 옮기게 되었어요. 지금 한정애 의원과 표창원 의원이 동물보호법 개정안을 발의한 상태잖아요. 통과되기까지 마냥 기다릴 수만은 없었어요. 큰 보호단체에서 10년 넘도록 목소리 높여서 법 개정을 주장해도 통과가 안 됐으니까. 더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고 행동하게 하는 것이 관건이라고 생각했죠. (이후 이용녀는 스마트폰을 꺼내 노래 한 곡을 재생하며 따라 불렀다.)  

 

 

이제는 그 고통에서 벗어나게 해줄게 우리가 너희들을 지켜줄게 

힘든 시간으로 돌아가지 않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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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회에서 사용되는 노래인 것 같네요.

‘동물운동가’라는 노래예요. MC스나이퍼한테 곡을 부탁했더니 흔쾌히 만들어 줬어요. (그는 최근 JTBC <힙합의 민족>에 출연해 래퍼들과 인연을 맺었다.) 이걸 일반적인 운동가처럼 만들지 않은 건, 노래의 내용이 곧 천만 명 이상의 반려인들의 마음이잖아요. 더 많은 사람들의 공감이 필요한 일이거든요. 지금 들려드린 건 데모버전인데 다음 주쯤 완성해서 지방 집회에 보내주고 같은 시간에 노래할 거예요. 사람들이 밥 먹고 동네 산책 나오듯 편안하게 집회에 참석했으면 좋겠어요. 

 

대대적인 집회를 준비하고 계신다고 들었어요. 

11월 26일 토요일에 여는 집회는 처음으로 큰 동물 단체들이 모여 진행하게 돼요. 카라, 동자연(동물자유연대)뿐 아니라 여러 작은 단체들까지 참여할 예정이고요. 집회를 열려면 규모만큼 비용이 드는데 다행히 많은 사람들이 후원해주고 계세요. 직접 참여하지 못하고 서로 본 적도 없지만 저희 뜻에 기꺼이 동참해 주시는 거죠. 한 번은 100만원을 한 번에 후원하겠다는 분이 있어서 소액을 달라고 말렸어요. 목표한 액수가 있지만 한 명이 그렇게 많이 채우게 되면 다른 사람들이 참여할 여지가 줄어드니까요. 금액을 모으는 일보다 더 많은 사람들을 동참하게 하는 게 중요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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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를 마칠 때 즈음 줄곧 이용녀의 옆을 떠나지 않고 따라다니는 대형견 한 마리에 시선이 갔다. 인터뷰가 길어지자 아예 자리를 깔고 누워 옆을 지키는 녀석의 이름을 물었다. 

 

이 아이는 옆에 꼭 달라붙어 있네요. 

윌리엄이에요. 믹스견이지만 주눅 들지 말라고 멋있는 이름을 지어줬어요. (웃음) 얘 엄마는 삽살개인데 임시 보호 맡긴 집에 있던 진돗개의 새끼를 낳게 됐어요. 그 8마리를 제가 거둬서 다른 곳으로 입양 보내게 됐고 마지막 남은 강아지가 이 친구예요. 나만 아는 껌딱지라서 결국 분양을 포기했고요. 훈련도 전혀 안 시켰는데 말귀도 어찌나 잘 알아듣는지. 이번에 이사할 때도 다른 개들을 차에 싣는데, 다들 트라우마가 있어서 나쁜 곳에 가는 줄 알고 안 올라가려고 버티더라고요. 그럴 때마다 윌리엄이 와서 주둥이로 치면서 들어가라고 혼내줘요. 윌리엄 때문에 매번 손을 많이 덜어요. 월급 줘야 돼요 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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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일을 하기 위에 자리를 털고 일어난 이용녀. 윌리엄은 그새 잠에서 깨 이용녀의 뒤를 쫓았다. 윌리엄의 친구들은 무사히 새 집에 도착했을까. 취재진은 다음날 포천으로 넘어가 이들의 새로운 터전을 살폈다. 비로소 만나게 된 강아지들은 명랑히 흙밭을 뛰어 놀며 적응을 끝마친 상태였다. 장기간 이사 준비와 동물 보호 운동에 힘쓰느라 다소 지쳐보였던 이용녀의 얼굴도 강아지들 사이에서 다시 따뜻하게 피어났다. 

 

이용녀의 마음은 모순적이다. 수십 마리의 아이들에게 아낌없는 사랑을 주지만, 이들이 자신 곁에 더 이상 존재하지 않기를 빈다. 이는 유기견 문제와 동물 복지에 골몰하는 모든 사람들의 것이기도 할 것이다. 각지에서 움직이던 이 작은 바람들이 점차 한 데로 모이고 있다. 그리고 머지않아 여느 때보다 강하게, 불어 닥칠 것이다. ​ 

 

 

CREDIT

김기웅 

사진 엄기태​

 

 

본 기사는 <매거진P>에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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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려인의 의견   총 1
홍홍  
잘봤습니다. 오늘은 저녁 종일 이용녀씨  유기견만 봤네요  대단하십니다. 몹시 지쳐보이시던데..  저도 언니를 본받아서  지금 키우는 냥이  둘보다 더 늘려야 될텐데요  저도 열심히 반려묘를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정말  이  아이들은 용녀님 만나서 행운아라고 생각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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