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을 미루지 말아요, 금속공예가 배동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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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을 미루지 말아요, 금속공예가 배동준
조회3,163회   댓글0건   작성일2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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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틀리에의 고양이

행복을 미루지 말아요 

금속공예가 배동준  

 

어떤 고양이는 한 사람의 인생을 바꾸기도 한다. 내가 고양이를 구조했다고 믿었지만, 돌이켜보면 고양이가 나를 구원했던 순간들. 금속공예가 배동준은 그 순간이 사라질세라 얼른 붙잡아 장신구에 담는다. 아파트 방 한 칸에 마련한 작업실에서 조물조물 빚은 고양이의 모습은 반지로, 팔찌로, 목걸이로, 모빌로 다시 태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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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은 일, 행복해지는 일을 미래로 미루다 보면 그 날은 영영 오지 않을지도 모른다. 요즘 대세로 떠오른 욜로(YOLO) 족도, 단 한 번뿐인 인생에서 ‘미래’보다 ‘현재’를 중시하겠다는 뜻을 담고 있다. 배동준은 욜로족이 화제가 되기 한참 전인 2008년에 그 깨달음을 얻었다. 결혼 직후 전신마취를 하고 큰 수술을 받은 것이 계기였다. ‘내게 주어진 건강한 삶은 생각보다 짧을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문득 들자, 절실히 하고 싶은 일이 금속공예였다. 무작정 미술학원에서 연필 깎는 법부터 다시 배웠다. 회사도 그만두고 금속공예과로 편입하기 위해 입시학원에 등록했고 29살에 편입에 성공했다.

 

아내가 금속공예디자인학과에 갓 편입해 공부하랴, 작업하라 집을 비우는 시간이 길어진 동안, 독수공방 신세가 된 남편은 외로움을 호소했다. 퇴근하고 빈집에 혼자 있으니 고양이를 키우고 싶다는 거였다. 작가는 단칼에 거절했다. 냄새 나고 털 빠지는 동물을 키우는 게 싫었다. 하지만 남편은 기어이 새끼고양이를 데려왔다. 첫째 크크(7)였다. “밤늦게 집 문을 열자마자 회색 쥐 같은 게 후다닥 도망가는 거예요. 되게 작은 회색 고양이였어요. 크크가 펫숍에 엄마랑 둘만 남아 있었다는데, 추측해보면 순종 러시안블루와 다르게 가슴에 하얀 털이 있어서 팔리지 않았던 것 같아요.”

 

처음엔 반대했지만 막상 키워보니 그렇게 사랑스러울 수 없었다. 편입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아직 생경한 금속공예 도구와 씨름하며 매일 밤샘하던 시절, 크크는 든든한 야간작업 동료가 되어줬다. “원룸에서 신혼살림을 하던 무렵이라 남편은 옆에 자고 있고, 전 스탠드 하나만 켜놓고 앉아서 작업했어요. 그럼 크크가 ‘다 할 때까지 지켜보고 있을게’ 하는 눈빛으로 저를 보는데, 큰 위로가 됐어요. 힘든 게 다 녹아내리는 것 같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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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동준씨의 반려묘, 첫째 크크)

 

 

크크를 외동 고양이로 4년쯤 키우다가 혼자는 외로울 것 같아 문득 둘째를 생각했다. 자주 가던 카페 옆 펫숍에서 본 하얀 장모 고양이가 눈에 밟혔다. 그렇게 2014년 11월 데려온 게 둘째 로크(3)다. 그의 작품 브랜드인 ‘로크멜린’도 둘째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그전까진 학교에 적응하느라 바빠 집에 서는 그저 ‘밥 주고 놀아주는 사람’일 뿐이었지만 로크를 입양하면서 고양이 커뮤니티에 가입하고 공부를 시작했다. 그제야 고양이를 ‘사는’ 게 아니라 ‘입양’한다는 것도, 유기묘와 캣맘의 존재도 알게 되었다. 길고양이였던 셋째 밀크(1)를 입양하게 된 것도 그 즈음이다. 

 

20대 후반에 겪은 큰 수술 이후로 두 번이나 더 수술을 받아야 했던 그는 체력 회복을 위해 집 근처 한강 둔치를 산책하곤 했다. 그때 젖소무늬 새끼 고양이가 다가왔다. 길고양인데 경계심이 없었다. “집에 오니 자꾸 그 고양이 생각이 나서 매일매일 산책을 갔어요. 한번은 지방 결혼식 참석으로 5일을 못 만났는데, 상사병 난 것처럼 못 견디겠더라고요. 그렇게 매일 찾아가다가 그곳에서 3년째 밥을 주는 캣맘을 만났어요. 그 고양이를 삐삐라고 부르시더라고요. 사람을 너무 좋아 해서 해코지당할까 걱정이라고 하셨어요.”

 

그 말에 바로 그 고양이를 키워야겠다고 생각했다. 혼자 힘들어하던 그에겐, 매일 살갑게 맞아주는 삐삐가 마치 “난 네가 필요해”라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삐삐는 단지 길고양이가 아니라 ‘나도 할 수 있는 일이 있고, 날 필요로 하는 누군가가 있다’는 희망의 증거였다. 입양을 결심한 2016년 11월, 다음날 케이지 들고 남편까지 데리고 고양이를 찾으러 갔다. 간식을 주면서 “오늘부터 나랑 같이 살아야 돼. 엄마랑 형제랑 인사하고 가” 했더니 삐삐는 무릎에 안겨 있다가 얌전히 케이지로 들어갔다. 삐삐가 그의 집으로 와서 밀크라는 새 이름을 얻으면서 로크, 크크, 밀크의 ‘세크’ 가족이 완성됐다. 배동준 작가가 고양이 작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것도 이 무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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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크, 로크만 키울 때는 주된 작업을 고양이로 하진 않았지만, 밀크를 만나면서 비중이 커졌어요. 움츠러들었던 제가 세상으로 나올 수 있게 용기를 준 것도 밀크였거든요. 생활하다 느끼는 걸 작품으로 많이 만들어요. 프레첼을 먹다가 갑자기 고양이 얼굴로 보여서 귀를 달아 펜던트를 만든 적도 있어요. 크크가 요가하는 자세로 티스푼 장식을 만들기도 하고, 로크가 요상한 자세로 자는 걸 보고 하늘을 나는 로크도 만들고요.” 

 

작품마다 얽힌 사연을 들으며 가장 애틋했던 건 밀크 캔들 홀더와 꽃길 티스푼이었다. “밀크가 길고양이 시절 제 무릎에 앉으면 조는 거예요. 제 무릎이 따뜻하니까 세 시간씩 앉아있고 그랬어요. 완전히 인간 핫팩이었죠. 이제 춥지 말라고 따뜻하게 불 쬐는 모습으로 캔들 홀더를 만들었어요. 밀크와 꽃 장식 을 같이 빚은 티스푼은, 이제 집고양이가 되었으니까 꽃길만 걸으라고, 밀크가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담았죠.” 

 

고양이 모양으로 만든 소품은 짬짬이 판매하는 대로 수익금 일부를 기부한다. 정기적으로 한 단체에 기부하기보다는, SNS에서 다친 고양이나 구조 고양이 후원 모금 글을 보면 계좌로 보낸다. 최근 작업 중인 ‘고양이잠’ 시리즈 중 유기묘를 모델로 한 작품은 재료비를 제한 수익금 전액을 기부할 예정이다. 아픔을 겪으며 행복을 미루지 않는 법을 배웠던 작가는, 이제 나눔을 미루지 않는 삶을 실천해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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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동준씨와 반려묘 밀크)

 


CREDIT

글·사진 고경원

 

 

본 기사는 <매거진C>에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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