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견은 아장아장 아가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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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견은 아장아장 아가로 돌아왔다
조회870회   댓글0건   작성일4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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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 랑 노 견 생 활 기



노견은 아장아장 아가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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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온 절도범과 귤껍질 잔치


17세 노견 이뿌니가 일으킨 사건 사고의 죄목 대부분은 식품 절도죄다. 방금도 거실 테이블 위에 펼쳐 놓고 말리던 고구마를 습격해 한 개 물고 갔다. 남편이 알아채고 절도범을 검거해 고구마를 압수하려 했으나 이빨도 몇 개 없는 개가 악착같이 물고 버텼 다. 예전부터 이뿌니는 먹고 있던 것을 억지로 뺏으려 하면 다급 하게 꿀꺽하고 나서 후에 토하곤 했다. 때문에 우리는 고구마 되찾기를 포기하고 급히 삼키지는 않는지 멀찍이 떨어져 지켜봐 주었다. 절도범이 범행 후 안전하게 집에 돌아가는지 망을 봐주는 공범이 된 기분이다. 이왕 입에 들어간 거 끝까지 꼭꼭 씹어 먹기를. 몇 달 전만 해도 밥을 안 먹어 애태우게 하던 이뿌니였기에 허겁지겁 급히 먹는 것만 걱정될 뿐 현행범으로 잡혀 온 고구마 도둑놈이 맛있게 먹고 있는 것이 하나도 괘씸치 않고 사실은 그저 예쁘기만 하다.

겨울이 되고부터 우리 집 식구들은 귤을 입에 달고 산다. 덕분에 곁에서 침을 뚝뚝 흘리던 이뿌니도 몇 개씩 맛보곤 했는데, 모아둔 귤껍질을 덮친 적은 맹세코 한 번도 없었다. 생각보다 똘똘한 녀석이다. 알맹이만 먹고 껍질은 버린다는 것을 한낱 개가 알게 뭐람. ‘반은 사람이다’싶은 녀석을 믿고 외출했다가 돌아와보니 귤껍질로 난장판이 된 거실을 마주했다. 귤껍질을 건드린 적은 좀처럼 없는 일이었기에 치우지도 않고 현장 사진부터 찍었다.

솔직히 나이 들면서 말썽이라곤 1년에 한 번쯤 될까 말까 한 시시한 개가 돼버렸기 때문에 오랜만에 저질러준 말썽이 매우 반가 웠었다.

 

바구니 안에 버젓이 살아있는 귤을 두 개나 놔두고 쓸데없이 껍질만 물었다가 퉤퉤- 뱉어 두었나보다. 증거품이 된 귤껍질 중일부가 주방 입구에도 놓여 있었다. 껍질만 물고 튀다가 그 맛이 아니다 싶으니 뱉어내고 다시 돌아와 바구니 안의 또 다른 껍질을 물었겠지. 이뿌니의 동선이 눈에 선히 보이는 것만 같다. 사건 현장에서 범행 당시의 상황을 추리하는 형사가 된 것만 같다. 어쨌거나 멀쩡한 귤을 놔두고 껍질만 물어다 죄 흩뜨려 놓았으니 똘똘한 개라는 좀 전의 말은 취소하기로 하자. 귤을 앙- 물어 과육에 이빨만 닿았어도 성공했을 텐데 바보같이 애꿎은 귤껍질만 수십 번 물고 헛짓만 했다. 수고에 비해 보상은 없었던 작은 노동이 깜찍해서 기쁜 날이었다. 귤껍질 테러도 처음이지만 나이 먹고는 말썽이 없어 심심하던 차에 아직 코카 기질은 죽지 않았노라 일깨워준 것만 같았다. 기념한다. 과거에 비하면 아주 많이 소박해진 오늘의 귤껍질 잔치를.



찰나의 순간


그때도 말썽이 잠잠한 몇 년 전이었다. 읽고 있던 책 커버 사진을 찍기 위해 테이블 위에 책 세 권을 나란히 세워두었다. 물이 가득 담긴 유리컵은 아마도 내가 마시려 거기 두었던 것 같다. 한 발짝 떨어져 사진을 찍고 있는데 갑자기 어디선가 시커먼 짐승이 나타나 테이블에 난입했다. 가까이 있었더라면 손부터 뻗어 짐승을 막거나 컵을 잡았을 텐데 나는 카메라를 들고 뒤에 물러나 있었 기에 그 순간을 기록할 수 있었다. 순전히 사진을 위해 방치한 건아니고 마침 사진을 찍고 있던 중이라 저절로 손가락에 힘이 들어갔던 것일 게다. 아슬아슬해 보이는 유리컵은 예상대로 굴러떨 어졌고 물이 바닥에 쏟아졌다. 내가 컵을 왜 거기에 두었을까 자책하며 바닥을 치우는 동안 폭주했던 시커먼 짐승은 제정신으로 돌아와 얌전히 자리를 잡았다. 보통은 강아지가 말썽을 피운 뒤에야 목격하지, 말썽 당시의 찰나와 같은 순간을 사진으로 남기 기가 어려운 법인데 광기 어린 개의 습격 장면이 우연찮게 제대로 담긴 소중한 사진이 되었다.​ 

 

노견은 아가로 돌아왔다 

 

몇 해를 더 거슬러 올라가면 그야말로 광란의 시절, 전깃줄을 씹어 먹어 실제로 불꽃이 튀는 것을 목격하고 놀랐던 일까지 생생 하게 다 기억난다. 내가 데려온 이 개가 우리 집을 박살 내는 것이 아닐까, 부모님이 내쫓지는 않을까 매일 밤 어지럽혀진 방안을 수습하며 후회를 했었다. 훗날 이 개가 저절로 철이 들어 저지 르는 말썽이라곤 고작 귤껍질이나 씹다 뱉는 게 전부인 양반이 되리라곤 상상도 못 했었다. 강아지들이 이갈이 시절에 벽지와 문지방 뜯는 일쯤은 일반적인 일인데 이뿌니는 아예 벽지 뒤의 시멘트까지도 갉아먹곤 했다. 플라스틱 칫솔은 뭐가 그리 맛있 는지 그렇게 뜯고도 병원 한번 실려 가지 않은 게 놀라울 뿐이다.

 

전기장판의 코드를 씹어 먹고 컴퓨터 스피커를 부수던 미치광이 개는 어느 순간에 그 모든 악행을 끊고 오로지 식탐으로만 에너 지를 발산했다. 엄마가 내 방으로 배달해주던 과일 접시 높이에 맞춰 두 발로 점프! 머리통으로 접시 바닥면을 콩- 받아쳐 과일을 떨어뜨린 다음에 의기양양하게 먹어 치우는 게 이뿌니의 전술 이었다. 같은 전술에 몇 번이고 방어할 수 있었으련만 엄마는 번번이 이뿌니에게 패배했고 그 때문에 엄마와 내가 많이도 싸웠 다. 내가 결혼하고부터 이제는 노련한 나와 남편에겐 그 방법이 통하진 않지만 역시나 다른 경로를 통한 음식 절도는 오늘까지도 종종 일어나는 일이다. 최근엔 또 다른 종류의 말썽거리를 만들고 있다. 노견들에게 흔히 일어나는 일인 듯한데, 몸이 따라주지 않는 것인지 아니면 개념이 없어진 것인지 좋은 길을 두고도 위험한 길로만 향하려는게 그것이다.

 

밑에 개울이 흐르는 약간 높은 언덕에선 아슬아슬한 절벽 끝으로만 가 있는가 하면, 넓은 반려견 운동장에서는 굳이 구석진 비탈길에 가서 삐뚜름하게 서 있곤 한다. 평지에 내려 놓아도 본인 의지와 상관없이 가속도가 붙는 내리막길을 두두두 달려가는 일도 있었다. 아무리 봐도 저 개가 뛰려고 뛰는 건 아닌것 같은데 몇 번이고 비슷한 짓을 반복했다.

눈이 많이 오던 날은 동네 운동장을 전세 내고도 하수구 구멍이 있는 가장자리로 걸어가 기어이 발을 한번 빠뜨렸다. 안아서 운동장 한가운데 내려놓았는데도 다시 또 하수구 구멍 근처로 다가가 멀뚱히 서 있는 모습, 왜 이러나 싶어 사진에 담아 두었다. 무슨 생각으로 이러는 거니. 혹시 이게 무슨 노견들의 익스트림 스포츠라도 되는 걸까. 노견은 십수 년을 지나 다시 아장아장 첫걸 음마를 떼는 아가로 돌아왔다. 옛날과는 다르게 말썽을 피워도혼 한번 날일 없는 평화로운 노후니 18세의 늙은 아가야, 자나 깨나 그저 너의 장수 하나만을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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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글·사진 한진

에디터 이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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