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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ORY | 2021-11-26 11:3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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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ORY | 2021-11-26 11:3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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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ORY | 2021-11-22 14:4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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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ORY | 2021-11-22 14:3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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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ORY | 2021-11-16 16:5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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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ORY | 2021-11-16 16:4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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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ORY | 2021-11-10 12: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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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AGAZINE P. 마지막 가족
- 갈 곳 없는 아이들을 다섯 마리나 품게 되면서, 더 이상의 입양은 없다고 다짐하고 또 다짐해왔다. 약 3년 동안 아이들과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을 즈음, 회사 동료가 어디선가 주먹만 한 새끼 강아지 한 마리를 데리고 출근했다. 열악한 상황에 있던 강아지들을 한 아주머니가 구조했는데, 형제가 무려 다섯이라고 했다. 여건이 되지 않아 한 녀석밖에 데리고 오지 못했는데, 열악한 상황이라 언제 어떻게 잘못될지 모르는 상황이라고 했다. 일부러 외면하고 있었는데 아직 눈도 다 못 뜬 다섯 마리가 박스 안에 서로의 체온을 의지한 채 뒤섞여 있었다고 했다. 모두 보호소로 이동했으나 세심한 손길이 필요한 새끼들에게 보호소 생활은 쉽지 않을 것임이 분명했다. 다행히 남은 네 마리 중 두 녀석은 임시 보호처나 입양처를 찾았는데, 유독 까맣던 두 아이만 임시 보호처도, 입양처도 구하지 못해 여전히 그 보호소에 남아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평소 그런 소식을 들으면 그냥 지나치지를 못하는 성격이기에 일부러 입양 커뮤니티도 안 들어가고 SNS에 입양 공고 글이 올라와도 애써 외면해왔는데, 회사 동료가 강아지를 데려올 줄이야…. 사진 속 까만 아이를 다시 한 번 봤다. 똘망똘망한 눈으로 카메라를 보고 있었다. 순간 눈이 마주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역시나 너무 어린 강아지들이다. 게다가 보호소에서 파보 바이러스가 한차례 유행이 돌았다고 했다. 더는 망설일 시간이 없었다. 결심이 선 나는 곧바로 구조자분께 연락했고, 남은 두 마리 모두는 어렵지만 한 마리는 입양하고 싶다고 했다. 그렇게 연탄이(탄이)는 나의 여섯 번째, 마지막 가족이 되었다. 네가 내게 오지 않았다면 탄이는 열악한 상황에서 구조되었다고는 믿기 힘들 만큼 활력이 대단했다. 동배 형제들보다도 월등히 큰 몸집에, 잠시도 쉬지 않고 돌아다니는 모습이 무척 건강해 보였다. 괜히 지레 걱정했던 게 머쓱할 정도였다. 먼저 물과 사료를 준비해 주니 아이는 벌컥벌컥 물을 마셨다. 혹시 사레라도 들리면 어떡하나, 탈이라도 나면 어떡하나 싶어 먹던 물그릇을 치울 정도였다. 하루 정도 지났을까? 연탄이는 설사를 하기 시작했다. 설사는 파보 바이러스의 대표적인 증상이다. ‘올 것이 왔구나.’ 하지만 검사 결과 파보 바이러스는 발견되지 않았고, 다만 회충이 좀 심하다고 하셨다. 놀란 가슴을 쓸어 내렸다. 어미로부터 옮은 것인지, 보호소에서 옮은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내게 와서 정말 다행이다 싶었다. 만약 구조되지 못했다면, 그대로 보호소에 남아있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생각하니 다시 마음이 아려왔다. 너는 우리의 마지막 가족이야 다가오는 2월이면 탄이도 한 살이 된다. 까맣던 털은 이제 예쁜 갈색빛으로 물들었고, 덩치는 얼마나 커졌는지 품에 안으면 따뜻하고 폭신한 것이 하루의 피로가 모두 풀린다. 어렸을 적 기억이 깊이 박히지는 않은 듯 순하고 푸근한 성격에 조금은 멍충한(?) 백치미까지 두루 갖춘 팔방미인 연탄이. 덕분에 다른 고양이, 강아지 아이들과의 합사도 내가 딱히 노력하지 않았는데 순조롭게 이루어졌다. 큰 행운이었다. 처음에는 내가 탄이를 구할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돌아보니 그게 아니었다. 내가 탄이를 만날 수 있어서, 우리 가족이 탄이를 만날 수 있어서 오히려 더 다행이었다. 그렇게 까맣고 작았던 이 아이가 커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게 얼마나 즐겁고 행복한지. “탄이야~” 하고 저를 부르는 소리가 들리면 탄이는 함박웃음을 지으며 날 바라본다. 그때는 정말 세상 모든 걸 다 가진 기분이 든다. 예상치 못했던 입양이지만, 그게 핑계가 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내가 책임지기로 한 내 가족이니만큼, 한 녀석 한 녀석의 행복도 내게 달려 있기 때문이다. 여전히 부족한 보호자지만 주어진 책임을 다하기 위해서라도 탄이를 정말 우리의 마지막 가족으로 남겨두려 한다.글·사진 김서연에디터 이혜수해당 글은 MAGAZINE C 2021년 2월호에 수록된 것입니다.불법 복제 및 사용을 금합니다.
- STORY | 2021-11-26 11:3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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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AGAZINE P. ALPHA WOLF
- 바라가 집을 나갔다. 함께 마당에서 놀다가 내가 잠깐 집에 들어갔을 때였다. 집을 좋아하고 바깥 세상을 두려워하던 바라였지만, 생후 6개월이 지나서부터는 조금 달라졌다. 담 너머에는 무엇이 있는지 궁금해하기 시작했다. 나는 급히 바라를 찾으러 뛰어나갔지만 그 어디에서도 바라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바라는 사라졌다. 늑대개 바라 할 수 있는 모든 걸 했다. 119 신고도 했고, 전단지도 붙여놓았 다. 휴가도 내서 3일 밤낮을 돌아다녔다. 함께 산책하고 놀던 산과 들, 집에서 가까운 여러 야산을 돌고 또 돌았다. 밤에도 산에 올라 바라를 찾았다. 평소 바라는 사람을 두려워했기에 인적이 드문 곳에 숨었으리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일주일이 지나 서도 바라는 돌아오지 않았다.늑대개인 바라는 놀라울 정도로 늑대와 무척 닮았다. 보통 개보다 청각과 후각이 뛰어난 것은 물론이고, 기억력도 비상했다. 아주 작은 소리나 기척에도 민감하게 반응했다. 집 주변이니까, 바라가 근처에 있다면 내 냄새를 맡을 수 있겠지. 나는 대문을 열어놓고 근처에 먹이와 물을 그릇 가득 담아두었다. 그렇게 열흘쯤 지났을까? 기다림에 지쳐갈 무렵, 현관 앞에 놓아둔 먹이가 사라진 것을 발견했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혹시나 싶어 CCTV를 확인했다. 그곳에 바라가 있었다. 무사했구나! 바라는 얌전히 밥을 먹고 잠시 자리를 지키다가 이내 사라졌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바라는 마당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바라를 껴안고 소리를 질렀다. 잠들어 있던 바라는 그때서야 일어나 나를 보고 낑낑거렸다. 얼굴과 다리에 조금 상처가 나 있었지만 그래도 건강해 보였다. 어디서 무얼 했는지 왜 나갔는지 바라에게 묻고 또 물었다. 그리고 다시는 내 곁에서 떠나지 말아 달라고 부탁했다. 바라가 집을 떠나고 꼭 보름 뒤에 일어난 내 생애 가장 기적같은 일이었다. 그렇게 보내는 게 아니었는데 2018년 6월 23일. 삶이 무너지는 것을 처음으로 느꼈다. 바라, 그 아이가 떠났다. 그 무렵 나는 꽤나 힘든 시기를 견뎌내고 있었다. 그럼에도 버틸 수 있었던 건 바라 덕분이었다. 일이 끝나면 바라와 모든 시간을 함께 보내며 피로도 걱정도 잊었다. 앞서 말했듯 바라는 보통의 개와는 많이 달랐다. 낯선 환경을 극도로 두려워했으며, 소리에도 민감했다. 늑대와 개의 교배종인 늑대개. 늑대는 개와 다르다. 주관이 훨씬 뚜렷하고, 자신의 감정을 숨기지 않고 행동으로 보여준다. 바라는 늑대의 성향을 많이 지니고 태어났다. 고맙게도 바라는 나를 부모로 여기는지 나를 보면 꼬리를 흔들며 온갖 애교를 부렸다. 바라가 내게 보여주는 사랑이 나를 참 행복하게 했다. 그런 바라가 더욱 행복할 수 있도록 보다 좋은 환경을 제공해 주고 싶었다. 그래서 이사를 마음먹었고, 준비 기간 동안 바라를 훈련소에 보내게 됐다. 고민도 많았다. 보통의 개와는 달라 바라의 훈련소 생활이 힘들 것이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을 이겨내야 현대 사회에서 사람들과 어우러져 지낼 수 있다고, 나와 바라도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나는 일주일에도 몇 번씩 바라를 보러 가서 산책도 하고 좋아하는 고기도 잔뜩 줬다. 다행히 바라는 잘 이겨내는 듯 보였다. 헤어질 시간이 다가오면 싫은 기색이 역력한데도 “금방 다시 올게” 하고 다독거리면 터벅터벅 제 발로 훈련소로 들어가 내 맘을 짠하게 했다. 그런 아이가 떠났다. 훈련소에선 돌연사라고 했고, 병원에서도 사인을 알 수가 없었다. 그 누구의 탓을 하지도, 더 묻지도 않았다. 모두 나의 잘못이었다. 그렇게 나는 펫로스 증후군을 앓게 되었다. 호랑, 끝까지 너를 지킬게 바라 없이 의미 없는 이사를 했고, 그렇게 1년이 지났다. 어느 날 메일 한 통을 받았다. 바라를 키우는 동안 늑대에 무지했던 나에게 많은 정보를 공유해 주고 힘이 되어 주던 이탈리아 친구였다. 자신의 늑대개가 새끼를 낳았다며 내가 키워주길 바란다고 했다. 고민이 됐지만 한편으론 마음이 동했던 것도 사실이다. 바라를 위해 만들어둔 넓은 잔디밭과 오랜 시간 주인 없이 비어 있던 견사를 보면 항상 마음이 아팠었다. ‘견사에 주인을 찾아 주자.’ 그렇게 마음먹었지만, 코로나로 막힌 하늘길을 뚫기는 쉽지 않았다. 몇 달 동안 밤낮으로 비행 편을 검색한 끝에야 녀석을 한국으로 데려올 수 있었다. 첫 만남. 녀석이 호랑이를 닮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름을 ‘호랑이’로 지었다. 신기하게도 호랑이는 바라가 하던 행동을 그대로 한다. 가끔은 2년 전으로 돌아가 다시 바라를 만난 듯한 기분이 들 때도 있다. 그럴수록 나는 두 번 다시는 바라가 겪었을 아픔을 알게 하고 싶지 않아 더 냉정하게 훈련에 임한다. 훈련, 대회 준비, 여행 등 우리는 많은 시간을 함께하며 추억도 많이 쌓았다. 점차 펫로스 증후군도 정도가 덜해져 갔고 이제 바라와 함께한 시간은 내게 아프고도 아름다운 추억이 됐다. 호랑이가 내 상처를 낫게 하는 치료제 역할을 해 준 것이다. 늑대 무리에는 우두머리 늑대(Alpha Wolf)가 있다. 우두머리 늑대는 위험이 닥치면 목숨을 바쳐 무리를 지킨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으면 문득 마음 한구석이 다시 쓰려와 여러 감정이 뒤섞인다. 하지만 현재로서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할 뿐이다. 호랑이는 분명한 내 무리의 일원이다. 그리고 나는 끝까지 호랑이를 지킬 것이다.글·사진 이우철에디터 이혜수해당 글은 MAGAZINE C 2021년 2월호에 수록된 것입니다.불법 복제 및 사용을 금합니다.
- STORY | 2021-11-26 11:3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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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AGAZINE P. 우도는 처음이지? 댕댕이와 함께한 우도 백패킹
- 어릴 때 가장 기억에 남는 여행을 꼽자면 단연 부모님과 함께한 제주도 여행이다. 바람 부는 언덕에서 바닷가를 내려다보던 기억, 해녀가 주는 산오징어를 먹었다가 유치가 빠졌던 기억, 빠진 이를 바닷가에 던져 물고기 밥으로 돌려주자던 아빠의 말씀이 아직도 생생하다. 쉽게 떠나기 어려운 제주지만, 어릴 적 기억처럼 내 강아지들에게도 즐거운 추억을 선물해 주고 싶어 제주행을 계획했다. 이번 행선지는 지금껏 한 번도 못 가본 우도다. 제주 여행 어떻게 가지? 가장 고민된 건 교통이었다. 비행기를 선택할 경우, 강아지 몸무게에 따라 기내 또는 화물칸 탑승으로 나눠진다. 라임, 탱탱인 모두 항공사 규정 몸무게 초과로 화물칸이 다. 켄넬 훈련이 안된 강아지라면 갇혀있는 그 짧은 시간조차 큰 스트레스가 된다. 시간은 조금 더 걸려도 함께 있을 수 있는 배로 결정! 반려견 구역이 있는 여수-제주행 ‘골드스텔라’ 호를 이용해 편하게 쉬고 바다 구경도 하면서 가기로 했다. 여수발 제주행 골드스텔라호는 하루 1편만 운행을 하고 새벽 1시 20분에 출발한다. 차량 선적을 할 경우 출발 시각보다 1시간 먼저 도착해서 수속을 밟아야 하므로 여유 있게 여수에 도착했다. 차량을 선적하고 강아지를 모두 어부바 가방에 넣은 후 승선했다. 승선 규정상 강아지는 일단 켄넬에 넣어 탑승해야 하지만, 미리 본사에 연락해 허락을 받아둔 터라 현장 승무원과의 마찰없이 무사히 펫존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짐을 풀고 강아지들과 갑판으로 나와 제주 여행을 즐겼다.제주행 선박 이용 Tip배를 이용할 때는 미리 선사에 연락하거나 인터넷으로 차량 선적 가능 여부를 확인한 후 예매를 해야 낭패 없이 제주도로 여행을 갈 수 있다. 한일고속 : http://www.hanilexpress.co.kr / 1688-2100 에메랄드빛 바다, 드디어 우도! 설레는 마음에 잠을 자는 둥 마는 둥 하다 눈을 떴다. 창문 밖이 어느새 밝아 온다. 얘들아! 일출 보자! 문을 여니 기다렸다는 듯 붉은 태양이 수평선 위로 얼굴을 막 내밀고 있었다. 출발부터 운이 아주 좋은 것 같아 앞으로 여정이 더욱 기대된다. 배에 탄 사람들 대부분이 일출을 보러 갑판 위로 나왔다. 여행 기분이 물씬 난다. 제주에 내리니 아침 7시다. 밤에 타서 아침 일찍 제주에 도착하니 시간을 좀 더 풍족하게 쓸 수 있는 것 같아 마음에 든다. 오전에는 우도행 배를 탈 수 있는 성산항까지 강아지와 함께 자전거를 타고 가기로 한다. 쌀쌀한 서울 날씨만 생각하고 두꺼운 옷을 입고 왔더니 늦여름처럼 덥다. 역시 제주도구나! 에메랄드빛 바다를 옆에 두고 자전거를 타는 기분은 하늘을 달리는 것만 같다. 어느새 성산항에서 도착해 우도행 배를 기다린다. 탑승한 지 얼마 안 됐는데 다 왔다는 신호음이 울린다. 이렇게 가까운 곳이었구나! 라임아 탱탱아, 여기가 우도란다. 보물 같은 하루, 비양도 백패킹 우도에서 비양도까지 들어가는 교통 수단은 전기차, 버스, 도보 중 선택할 수 있다. 우리는 백패킹이 목적이라 배낭 부피가 커 걷기로 한다. 따뜻한 햇볕과 멋진 풍경, 좋은 사람들과 강아지들이 함께 있으니 즐겁다. 걷다 지치면 쉬어가면 되니 마음도 편하다. 우도 도착 후 두 시간가량 걸어 마침내 비양도에 도착한다. 해가 뉘엿뉘엿 저물어간다. 일출은 제주로 오는 바다에서 보고 일몰은 우도에서 보니 오늘 하루를 알차게 잘 논 듯한 느낌이다. 길면서도 짧은 하루였다. 바람이 많이 불어 돌담을 벽 삼아 텐트를 치기로 한다. 뚝딱뚝딱 텐트를 치다 보니 해가 넘어간다. 멋진 일몰 덕분에 어디에서 사진을 찍어도 영화처럼 나온다. 종일 걸으면서 이동을 한 탓인지 저녁을 먹고 나니 졸음이 쏟아진다. 졸리면 자고, 배고프면 먹고, 생각 없이 있고 싶을 땐 바닷가를 보면 된다. 아이들과 산책 한 바퀴를 돌고 바로 침낭 안으로 들어가 잠을 청한다. 아침이 밝았다. 간단하게 커피 한 잔을 하고 햇살 아래서 드론도 날리고 강아지들 산책도 시키며 오전 나절을 보낸다. ‘여행은 살아보는 거’라는 광고 문구처럼 비양도에서 느리게 여행하며 누려본 1박 백패킹은 유독 인상에 깊게 남았다. 여행 내내 햇볕이 따뜻해서 자리 깔고 누우면 그곳이 내 침대요 앉으면 내 의자가 된다. 1박을 더 하고 싶었지만 이미 제주에 펜션을 2박 예약한 상태라 아쉬운 맘을 달래본다. 비양도 백패킹 여행 Tip1. 화장실은 근처에 있어 무료로 이용할 수 있어요.2. 바람이 많이 부는 곳이라 텐트 안에서만 취사 가능해요.3. 주변에 들개들이 있으니 주의가 필요합니다. 물림 사고가 있을 수 있어요.4. 먹고 남은 쓰레기는 하나도 남김없이 가져와야 합니다. 화장실 근처에 재활용만 따로 버리는 곳은 준비되어 있어요.우도 여행을 마치며 우도는 느린 템포로 여행하기에 딱인 곳이다. 우도를 빠르고 편리하게 관광하는 전기차가 있지만 걷는 여행을 추천한다. 그래야 자세히 볼 수 있고 느낄 수 있다. 우르르 지나가는 소 떼도 보고 흙 냄새와 바다 냄새도 맡아야 제대로 우도를 즐겼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군데군데 아기자기한 마을 풍경은 덤이다. 강아지와 함께하는 여행. 조금 불편할지도 모르지만 대신 당신은 세상 가장 빛나는 추억을 얻을 것이다.글·사진 신채민에디터 이혜수해당 글은 MAGAZINE C 2021년 2월호에 수록된 것입니다.불법 복제 및 사용을 금합니다.
- STORY | 2021-11-22 14:4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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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AGAZINE P. 2021, NEW JOURNEY
- 이른 아침. 이불을 한껏 들어 올리며 감은 눈을 억지로 뜨면 녀석들은 귀를 쫑긋거리며 내게로 다가온다. 프리랜서가 되고서부턴 알람이 울리는 것도 아닌데, 대체 어떻게 알았을까? 특별한 감지 센서라도 있는 건가? 너희도 마찬가지겠지 “일어났어요? 밖에 나가요!” “밥 주세요. 밥그릇이 텅 비었어요.” 한 녀석은 나가자고 하고, 한 녀석은 밥 달라고 하고. 눈을 반쯤 뜨고선 녀석들을 바라보면 각자 어떤 요구를 하는지 훤히 알 것만 같다. 비슷한 표정이지만, 분명 다르다. 녀석들을 보필(?) 한 지 어느덧 7년 차, 발 하나만 들었다 내려도 무슨 생각인지, 기분이 좋은지 나쁜지 정도는 척하면 척이다. 2020년은 누구에게나 힘든 시기였을 것이다. 여행도 못 가고 외출을 자제하며 답답하게 지냈다. 숨막히는 뉴스가 하루에도 수십 건씩 쏟아졌다. 씁쓸히 텔레비전 화면을 바라보다 밤바와 요다 쪽으로 시선을 옮기면, 녀석들은 마치 ‘맞아…나도 그래….’ 하는 표정으로 한숨을 푹푹 쉬며 나를 쳐다본다. 잠깐 콧바람 쐬러 안 가나요 그동안 적어도 일주일에 한 번씩은 새로운 여행지를 다니며 뛰놀던 녀석들이다. 그런데 요 몇 달간 집 근처만 뺑뺑 돌아다니다 보니 산책을 해도 영 시큰둥했다. 녀석들을 위해 날마다 뉴스를 확인하며 계획을 짜기를 한참. 고민하고 고민한 끝에 조금 시기가 괜찮을 때를 골라 서울을 벗어나 보기로 했다. 오랜만에 꺼낸 여행 가방을 보고 신이 난 녀석들은 거실 이곳저곳을 뛰어다녔다. 빼놓은 물건 없이 잘 챙겼는지 확인하듯 가방 냄새도 한 번 맡고는 다시 방방 뛰기 시작했다. 그동안 우리는 산, 바다 등 자연을 즐길 수 있는 곳 위주로 여행을 다녔다. 이번에는 평소의 여행 스타일에서 벗어나 색다른 추억을 만들어보면 어떨까 싶었다. 그렇게 전 주 한옥 마을로 출발! 한복도 꼼꼼하게 챙겨 차에 올랐다. 평소엔 차 안에서 쿨쿨 잠 만 자던 녀석들이었는데, 간만의 나들이에 자는 것도 아까웠는지 스쳐가는 서울 풍경 을 내다보며 코를 빼꼼 내밀고 킁킁 바람 냄새를 맡았다. 새로운 한 해를 향해! 예년에는 발 디딜 틈 없이 붐비던 전주 한옥 마을인데, 이번에는 거리가 휑하게 비어있었다. 오가는 사람도 거의 없고, 빈 상가도 드문드문 보였다. 조금은 어색한 풍경이었다. “안녕하세요. 반려견이랑 촬영 예약하고 왔어요.” 반갑게도 반려견 동반 촬영이 가능한 스튜디오를 찾아 예약한 뒤 떠나온 여행이었다. 안전사항을 체크하며 사람 없는 곳에서 즐겁게 촬영을 했다. 꽤나 추운 날이었는데, 모처럼 카메라 앞에서 함께 사진을 찍는 게 기뻐 추운 줄도 몰랐다. 밤바랑 요다가 조금은 웃었으면 좋았을 텐데, 촬영 내내 멍한 표정이길래 조금 속상했다. 그때 “애들이 엄마 예쁘게 나오라고 몰아주기 하나 보다” 하는 사진사님의 말에 웃음이 터졌다. 우리 아이들이라면 왠지 정말 그랬을 것 같았다. 그동안 녀석들과 많은 곳에 가고 많은 것을 봤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못 가본 곳, 못 본 곳이 많았다. 전주 콧바람 쐬기 여행을 시작으로, 우리 가족은 2021년이라는 새로운 행선지를 향한 첫 걸음을 내딛었다.글·사진 최소희에디터 이혜수해당 글은 MAGAZINE C 2021년 2월호에 수록된 것입니다.불법 복제 및 사용을 금합니다.
- STORY | 2021-11-22 14:3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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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AGAZINE P. 큰녹고메오름, 롤남매와 함께 제주 눈꽃 트레킹
- 강아지들은 왜 그렇게도 눈을 좋아하는 걸까? 코르키와 에코는 바다에서도, 산에서도 신나게 뛰며 즐거워한다. 하지만 눈밭에서만큼은 그 정도가 조금 남다르다. 세상을 다 가진 어린아이처럼 행복한 얼굴로 폴짝폴짝 뛰며 새하얀 눈을 만끽한다. 펑펑 내리는 눈을 맞는 일은, 겨울을 맞이한 아이들에게 가장 큰 즐거움이 아닐까? 새하얀 눈이 주는 특별함 평소 제주도에는 눈이 잘 내리지 않는다. 그런데 웬일인지 최근 일주일 내내 많은 눈이 내렸다. 한라산이 있는 중산간뿐만 아니라 오름에도 눈이 덮였다. 그 소식을 듣고 우리는 ‘녹고메오름’으로 향했다. 노꼬메라고 불리기도 하는 녹고메오름은 큰녹고메, 작은녹고메 그리고 궷물오름이 함께 있는 오름이다. 한라산부터 제주시, 산방산까지 한눈에 볼 수 있도록 조망이 확 트인 점이 특징이다. 트레킹을 시작하며 입구에서 바라본 큰녹고메오름. 맑은 날씨가 아니었음에도 주차장에 꽤 많은 차가 세워져 있었다. 코르키와 에코에게도 트레킹용 리드 줄을 채운 뒤 함께 걷기 시작했다. 올해 처음으로 눈을 접하는 댕댕이들을 위해 초입의 눈밭에서 잠시 자유시간을 가지기로 했다. 리드 줄을 풀자마자 자축행사라도 하듯 눈밭을 전력 질주하는 코르키와 에코. 트레킹을 시작한 지 채 30분이 안 되었는데 코르키와 에코의 얼굴에서 행복이 마구마구 뿜어져 나온다. 얘들아, 이제 시작이야! 너무 에너지 빼면 안 돼! 눈이 온 지 꽤 시간이 지났는데도 가는 길목에 눈이 녹지 않고 쌓여있었다. 길이 그늘에 가려져 있었기 때문인 듯했다. 눈길이 익숙하지 않다면 등산화를 신거나 아이젠을 챙기는 것이 좋다. 그간 트레킹 경력이 꽤 쌓인 코르키와 에코는 미끄러운 길도 익숙하게 척척 올라갔다. 이게 네 발의 장점인가? 나는 계속 주르륵주르륵 미끄러지는데. 자랑이라도 하듯 저 멀리 먼저 뛰어가 버리는 에코. 제주에 담긴 겨울의 참모습 제주도의 날씨는 변화무쌍하다. 곳곳에 꾸미지 않은 겨 울의 모습이 보인다. 녹고메오름은 많은 사람이 찾는 것에 비하면 자연 그대로 아름다운 모습을 간직하고 있었다. 정상까지 가파른 계단이 이어졌다. 다행히 눈이 쌓여 오르막길을 오르듯 편히 올라갈 수 있었다. 하지만 눈이 녹았을 땐 다리가 좋지 않은 반려견에게는 벅찬 길이 될 수도 있겠다 싶었다. 웰시코기 코르키는 곧 7살이 된다. 코르키도 다리가 좋지 않던 시절이 있어 혹시나 다리를 절지는 않을까 계속 지켜보며 쉬엄쉬엄 올라갔다. 간만의 눈꽃 트레킹이라 그런지 좋은 컨디션을 보여주어서 다행이었다. 한 시간 반 정도 걸었을까? 계단이 끝나고 능선이 시작되는 구간에 이르렀다. 순간 내 눈을 의심했다. 탄성이 절로 나왔다. 작년에 반려견과 외국으로 여행을 떠나고 싶어서 알아봤던 적이 있다. SNS 사진 속 광활한 풍경을 꼭 아이들과 함께 눈에 직접 담고 싶어서였다. 허나 그럴 필요가 없었다. 그 이상의 풍경이 바로 눈앞에 나타났으니까. 감탄사가 쏟아져 나왔다. 앞에는 한라산이, 뒤에는 광활한 바다가 펼쳐졌다. 서로의 시선에 맞춰 코르키, 에코와 함께 여행을 다니는 가장 큰 이유는 아름다운 광경, 아름다운 순간을 아이들과 공유하고 싶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강아지가 그걸 어떻게 공감할 수 있냐”고 반문할지 모른다. 하지만 매년, 셀 수 없이 많은 곳을 함께 다니다 보면 느낄 수 있다. 아이들이 새로운 곳에 갈 때, 새로운 냄새를 맡을 때 얼마나 행복해하는지를. 또 코르키와 에코는 내가 힘들어하면 속도를 늦춰주고, 내가 풍경에 감동해 말을 잃고 산의 능선이나 지평선을 한없이 바라보고 있노라면 꼭 옆에 앉아 나를 기다려준다. 내가 아이들에게 시선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이 나에게 시선을 맞춰 준다. 한라산은 국립공원이기 때문에 반려견과 함께 갈 수 없어 아쉬웠는데, 깜짝 눈 선물 덕분에 녹고메오름에서 눈을 마음껏 즐길 수 있어 감사했다. 이번 겨울이 가기 전에 더도 말고 딱 한 번만 더 눈이 펑펑 와서 코르키, 에코와 함께 눈을 마음껏 즐길 수 있기를 바란다. 오늘도 나와 함께 걸어줘서 고마워!글·사진 서민정에디터 이혜수해당 글은 MAGAZINE C 2021년 2월호에 수록된 것입니다.불법 복제 및 사용을 금합니다.
- STORY | 2021-11-16 16:5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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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AGAZINE P. 우주를 줄게
- 생명을 받아들이는 건 쉽게 결정할 일이 아님을, 가족 모두 잘 알고 있었다. 그런 내 생각에 변화가 생긴 건 대학 시절 우연히 한 애견 유치원에서 일하면서였다. 여러 강아지를 돌보며 내가 몰랐던 기쁨과 지식을 얻을 수 있었다. 그러면서 ‘우리도 새로운 가족을 맞이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품게 됐다. 대학 졸업 후, 유치원 일을 정리한 나는 본가로 향했다. 그리고 가족과 진지한 상의 끝에 가정 분양으로 반려견을 데려오자고 의견을 모았다. 그렇게 만난 아이가 바로 뿌꾸다.털 뭉치 그 녀석 우리가 만난 건 2019년 3월 9일의 일이었다. 말티즈 믹스견인 뿌꾸는 이미 한 번 파양 경험이 있다고 했다. 아마 순수한(?) 말티즈가 아닌 게 이유인 것 같다고. 입양 전이었지만 사진 속 뿌꾸는 작고 사랑스럽고 예쁘기만 했다. 믹스인 게 뭐가 그리 중요하다고, 이 작은 애를 돌려보냈을까? 그런데 한 가지 이상한 점이 있었다. 지금 뿌꾸를 데리고 있다는 사람의 말 한마디가 걸렸다. “파양하실 거면 꼭 저한테 다시 주세요.” 직접 만난 그 사람은 에코백에 넣어 온 뿌꾸를 보여줬다. 사진 속에서 본 강아지가 아닌 줄 알았다. 몸집은 훨씬 컸고 얼굴엔 붉은 눈물 자국이 선명했다. 알고 보니 뿌꾸가 훨씬 어릴 때 찍은 사진을 게시판에 올린 것이었다. 분양 사기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에코백에서 나와 내 손 위에서 불안에 떠는 그 강아지를 보자 마음이 울컥했다. 알고 보니 뿌꾸를 데려온 분은 강아지와 고양이 총 12마리를 혼자 돌보고 있으시다고 했다. 그곳보다는 우리 집에서 막내로 듬뿍 사랑받으면서 지내는 게 좋지 않을까 싶었다. 그렇게 뿌꾸는 우리 가족이 되었다. 너를 위해서라면 뭔들 온 정성을 다해 뿌꾸를 돌봤다. 피부가 원래 예민한 탓인지, 아니면 전 주인의 관리 소홀 탓인지 피부염과 식이 알레르기 반응으로 인해 몸을 긁었던 너. 얼굴 전체가 눈물 자국으로 붉었던 너. 병원에 가서 약도 먹고, 주사도 맞고, 약용 샴푸로 목욕도, 눈 마사지도 꾸준히 해 주다 보니 예전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그러다 사건이 터졌다. 뿌꾸가 두 번째로 미용을 받은 날이었다. 나는 다른 약속이 있어 외출 중이었는데, 전화가 걸려왔다. 뿌꾸가 미용을 받고 집에 돌아온 뒤 꼬리는 축 늘어뜨리고 구석에 숨어서 나오지 않는다고 했다. 그 말을 듣자마자 한달음에 돌아와 뿌꾸의 몸 이곳저곳을 살펴봤다. 큰 상처는 없었지만 군데군데 작은 생채기가 나 있었다. 미용사로부터 아무런 말도 전해 듣지 못했던 터라 화가 났다. 전화기 너머 미용사는 오히려 다소 높은 목소리로 “애가 예민하다” “상처가 난 줄은 몰랐다”라는 말을 했다. 내가 강아지 미용을 배우기 시작한 건 그때부터였다. 처음에는 서툴렀지만, 이제는 꽤나 익숙해지고 손놀림도 부드러워져 뿌꾸도 맘 놓고 미용을 받고 있다. 심지어 클리퍼 날을 갖다 대도 꾸벅꾸벅 졸기까지 한다. 뿌꾸야. 너를 위해서라면 배우는 것도 즐겁단다. 새하얀 눈 속 새하얀 너 두 번째 맞는 겨울이다. 얼마 전엔 눈도 꽤 예쁘게 쌓였다. 덕분에 뿌꾸도 눈 속에 폭 파묻혀 재미있게 놀았다. 네가 펑펑 내리는 눈을 그렇게 좋아할 줄이야. 얼음처럼 차가운 눈을 그 작은 젤리로 밟으면 시려울 법도 한데 지치지도 않고 아주 신나게 뛰어놀았다. 같이 눈사람도 만들고, 눈으로 공도 만들어 놀기도 하고, 웃음이 끊이지 않는 날이었다. 다음 겨울에도, 그다음, 또 그다음 겨울에도 이렇게 눈이 내리면 좋겠다. 그렇게 매해 겨울 눈 속에서 행복해하는 뿌꾸를 보고 싶다. 떴다! 동네 인기스타 뿌꾸 어릴 때 12마리의 다견 다묘 가정에서 지냈기 때문일까? 뿌꾸는 사람보다 강아지 친구들을 더 좋아한다. 뿌꾸가 애견 카페나 애견 운동장에 떴다 하면 곧바로 친구들에게 둘러싸여 인사를 하기 바쁘다. 서로 장난도 치고 잡기 놀이도 하며 금세 인기스타가 된다. 한 번은 스튜디오에서 사진 촬영을 한 적이 있다. 스튜디오 사장님네 강아지가 뿌꾸와 장난치며 뛰어다니자, 그 모습을 본 사장님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얘가 나이도 있어서 이렇게 뛰어다니는 애가 아닌데… 뿌꾸가 정말 좋은가 봐요.” 어딜 가든 자신감 뿜뿜, 역시 우리 뿌꾸, 친화력만큼은 최고구나! 나도 그런 뿌꾸가 좋다. 견종이나 성격에 관계없이, 그냥 뿌꾸가 뿌꾸라서 좋다. 조금은 진부하게 느껴질 수도 있는 사랑한다는 말도 뿌꾸에게는 하루에도 수십 번씩 하고 또 하게 된다. 뿌꾸야, 앞으로도 많은 추억을 만들어줄게. 우리 가족이 너만을 위한 보디가드가 되어 줄 테니까, 앞으로도 쭉 행복하기만 하자. 너에게 우리밖에 없듯이, 우리에게도 오직 너뿐이니까.글·사진 서민정에디터 이혜수해당 글은 MAGAZINE C 2021년 2월호에 수록된 것입니다.불법 복제 및 사용을 금합니다.
- STORY | 2021-11-16 16:4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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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AGAZINE P. 고요한 행복
- 여전히 아름다운 너, 몽이 몽이는 2002년 6월 18일에 태어났어요. 한일 월드컵으로 온 대한민국이 열기에 휩싸여 있을 때였지요. 몽이는 이웃집 강아지였어요. 다른 동배 아이들과는 달리 사과만큼 작은 크기로 태어났고요. 모유조차 먹기 버거워하던 조그만 생명은 사람들의 관심 밖에서 죽어가고 있었죠. 세상 물정을 몰랐던 대학 시절, 안쓰럽다는 이유 하나로 저는 태어난 지 2주밖에 되지 않은 몽이를 품게 되었습니다. 처음 건강검진을 받으러 병원에 갔을 때 뜻밖의 말을 들었어요. 선천적으로 소화 호흡기 장애가 있어, 조금 일찍 세상과 이별을 할 수도 있다는, 시한부 선고였 지요. 그때 저는 맘속으로 다짐했습니다. 이 아이에게 숨이 붙어 있는 동안에는, 제 힘이 닿는 한 다채롭고 아름다운 세상을 보여줘야겠다고 말입니다. 5차 접종이 채 끝나지도 않았을 무렵, 그렇게 몽이는 저와 함께 대한민국 탐험을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이제 그 아이는 19세 생일을 기다리는 나이가 되어, 여전히 제 곁에서 꼬리를 흔들어주고 있네요. 누구보다 잘 뛸 수 있어, 송이 송이는 2003년 11월 13일, 전라남도의 ‘진도’라는 섬에서 태어난 진돗개였어요. 모견은 대전에서부터 진도까지 주인을 찾아 돌아온 그 유명한 백구의 후손으로 장래가 밝았던 아이였지요. 호기심이 많은 송이는 눈이 펑펑 온 어느 날, 엄마품을 빠져나와 마당 탐험을 했다고 해요. 다른 사람들은 그 사실을 몰랐고요. 아침에 발견된 송이는 다행히 목숨은 건졌지만, 동상에 걸려 왼발을 잃었고, 오른쪽 발가락을 모두 잃고 말았습니다. 당시 진도에서는 천연기념물 보존 차원에서 온전한 상태의 진돗개만을 키우고 있었고, 우여곡절 끝에 고작 2개월 된 강아지 송이는 저에게 오게 되었습니다. 송이의 왼발 상처는 지금까지도 쉽사리 아물지 않습니다. 땅에 닿을 때마다 살이 쓸리기 때문이지요. 그래도 송이는 기특하게 뛰어노는 것을 가장 좋아해요. 늘 씩씩하게 걸음을 내디디고, 높은 산도 거침없이 척척 올라가는 강아지랍니다. 나를 어루만지는 너희의 몸짓 어느덧 몽이와 송이도 노견이 되었습니다. 몸이 불편한 아이들이다 보니, 첫 만남 때부터 이별을 조금씩 준비하고 있었기에 마지막이 두렵지 않을 줄 알았어요. 허나 이별은 준비할 수 있는 게 아니더군요. 함께한 시간이 깊고 진할수록, 나눈 사랑의 크기가 더해갈수록 더 어렵고 막막해지는 게 이별 같습니다. 그래도 그날은 오겠죠. 그 누구도 막을 수 없는 일일 테니까요. 그래도 적어도 지금, 그 순간이 오기 전까진 몽이와 송이가 늘 곁에서 평범한 산책을 즐겨주면 좋겠습니다. 노견의 일상은 잔잔한 호수 같기도 하고 너울이 일렁이는 바다 같기도 합니다. 외출 후 집에 돌아와도 꼬리를 반갑게 흔드는 일은 더 이상 없습니다. 큰 소리를 내며 들어와도 잘 알아차리지 못하든요. 서운하지는 않아요. 그동안 한없이 받은 환대를 이제 돌려줄 때가 된 것일 뿐인걸요. 아이들의 귓가에 대고 고요히 사랑을 속삭이면, 아이들은 스르륵 눈을 뜨곤 잔잔한 속도로 꼬리를 톡톡톡, 가볍게 흔들어줍니다. 하지만 때로는 시간이 늦었는데도 아이들이 세상모르고 꿈나라에 가 있을 때면 제 심장은 크게 요동칩니다. 코에 손을 대보기도 하고 가슴에 귀를 대고 콩닥콩닥 심장이 뛰는 소리를 듣기도 합니다. 그러면 몽이와 송이는 이내 눈을 뜨곤 엄마 왜 그러냐며 발갛게 상기된 제 얼굴을 핥아 줍니다. 세상에 참사랑이 있다면, 그건 바로 몽이와 송이의 마음이 아닐까요. 똑같이 사랑받을 수 있어요 대한민국에서 진돗개의 삶은 그리 따뜻하지 않습니다. 1미터 남짓 되는 줄에 묶여 평생 외로이 살다 떠나는 게 대부분입니다. 묶여있는 풍경이 너무 당연하게 받아들여져서, 진돗개도 사랑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마땅히 사랑을 주어야 할 생명이라는 사실을 잊고 살아갑니다. 하지만 몽이와 송이를 마음에 들이고 살다 보니 견종이나 혈통 같은 건 중요한 게 아니었습니다. 내가 존중해 주는 만큼, 이 아이들은 얼마나 큰 사랑을 보내주는지요. 동물을 반려하는 가정이 늘고있지만, 아직 우리의 인식 수준은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게 현실 같습니다. 언젠가 이 존재들도 편견 없이 사랑받겠죠? 진돗개면서 노견인 몽이와 송이의 이야기를 궁금해하는 이 잡지처럼요. 그날이 조금만 서둘러 다가오길 기대해 봅니다.글 조미선사진 이응찬에디터 이혜수해당 글은 MAGAZINE C 2021년 2월호에 수록된 것입니다.불법 복제 및 사용을 금합니다.
- STORY | 2021-11-10 12:06: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