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초의 인묘(人猫) 공용 육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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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초의 인묘(人猫) 공용 육교
조회 2053   2년전
고경원 길고양이 통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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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여행자의 일상여행기                      

#005 세계 최초의 인묘(人猫) 공용 육교​

 

2007년 '세계 고양이 여행' 프로젝트를 시작하면서 두 가지 패턴의 여행을 병행하고 있다. 하나는 제한된 기간 내에 주요 고양이 명소를 훑는 여행이고, 다른 하나는 오랜 시간에 걸쳐 한 지역의 변천사를 관찰하면서 기록으로 남기는 여행이다. 전자의 경우 여러 곳에서 다양한 자료를 모을 수 있다는 게 장점이지만, 아무래도 마음에 오래 남는 여행은 후자 쪽이다. 같은 장소에서 작년에 만났던 고양이를 다시 만났을 때 찡한 반가움도 있고, 한편으로는 고양이로 인해 좀 더 나은 모습으로 변화하는 마을을 지켜보는 보람도 있기 때문이다. 일본에서는 고양이 관련 가게와 카페, 수공예품 등이 밀집한 도쿄의 야나카가 그랬고, 타이완에서는 고양이 마을로 유명한 신베이 시의 허우통이 그랬다. 특히 허우통은 2012년 여름 처음 방문한 뒤로 매년 찾아가 변천사를 기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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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년 6월 촬영한 허름한 육교(위). 2013년 11월 촬영한 인묘 공용 육교. 역사와 이어진 부분은 고양이 귀 모양으로 만든 것이 이채롭다(아래).

 

 

허우통을 처음 알게 된 건 일본의 고양이 섬 다시로지마에 대한 사례를 수집할 무렵이었다. 2008년 가을 거문도 고양이 살처분 문제가 불거진 뒤로 섬 고양이와 인간의 공존 사례를 모으던 중에, 다시로지마를 거쳐 간 타이완의 길고양이 블로거를 알게 됐다. 그녀의 이름은 첸 페이링. 타이완에서 ‘마오푸렌(猫婦人)’이라는 닉네임으로 유명한 블로거였다. 뉴스를 찾아보니 다시로지마에서 열린 고양이 촬영 경연대회에 참석해 금고양이상(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고. 오직 고양이를 만나기 위해 일본의 외딴 섬까지 찾아갈 정도라니 어쩐지 내 모습을 보는 것 같아 동질감이 느껴졌다. 

 

알고 보니 '고양이 마을'로 유명해진 허우통을 세상에 널리 알린 사람도 그녀였다. 허우통에는 고양이가 많았지만 처음부터 애묘인으로 북적이는 명소는 아니었다고 한다. 재개발 구역이나 산동네가 대개 그렇듯, 탄광업이 쇠퇴하면서 마을도 쇠락해가는 현실에서 방치된 채 살아가는 고양이들이 대부분인 곳이었다. 하지만 첸 페이링이 블로그에 허우통 사진들을 올리면서 고양이 마을 이야기가 입소문을 타고 퍼졌고, 고양이와 사람이 무심히 함께 살아가는 풍경에 홀린 타이완 애묘인들이 마을을 찾기 시작했다고.

 

첸 페이링의 활약은 단순히 마을 홍보에만 그치지 않았다. 고양이가 밀집된 장소에 사는 길고양이는 전염병에 취약해지기 쉽다. 고양이 마을이 오래 지속되려면 건강하고 행복한 고양이들이 마을을 지켜줘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지속적인 의료 봉사가 필수였다. 마침 첸 페이링의 남편은 동물병원 수의사로 일했기에 의료봉사단을 조직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그녀는 의료봉사뿐 아니라 환경미화에 참여할 자원봉사단을 모집해 '고양이 손바닥의 날'이라는 자원봉사 행사를 추진하는 등 마을 정비에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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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낡은 철망과 녹슨 철골 지붕, 좁은 너비로 불편했던 기존 육교(위). 고양이를 보러온 관광객이 늘면서 확장공사를 거친 고양이 육교 내부. 고양이가 뛰어노는 캣워커와 밥그릇이 눈에 띈다(아래).

 ​ 

 

사진 한 장의 힘은 강했다. 단순히 자원봉사의 당위성만 외쳤다면 사람들이 그처럼 동조하긴 어려웠겠지만, 허우통 고양이들의 모습을 사진으로 접한 사람들은 자연히 녀석들에게 마음을 줄 수밖에 없었다. 공기처럼 곁에 존재하고 있을 뿐이었던 고양이가 관광객을 불러오는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하니 마을도 점차 변하기 시작했다. 그 변화를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공간이 바로 허우통 역사와 고양이 마을을 잇는 육교다. 2012년 여름 처음 허우통을 방문했을 때만 해도 육교가 무척 좁아서 두 사람이 나란히 지나가기도 힘들 정도였다. 관광객을 위해 육교 벽에 고양이 사대천왕을 그려놓기는 했지만 답답함이 느껴졌다.

 

이 육교는 확장 공사를 거쳐 2013년 3월 재개통되면서 사람과 고양이를 위한 놀이공간으로 바뀌었다. 너비는 서너 명이 나란히 지나가도 끄떡없을 만큼 넓어졌고, 육교 한쪽 벽면에는 고양이를 위한 캣워커와 밥그릇이, 반대쪽 벽면에는 관광객용 벤치가 들어섰다. 적지 않은 돈을 들여 확장 공사를 마친 신베이 시에서는 '세계 최초의 인묘(人猫) 공용 육교'라며 홍보에 열을 올렸다. 실제로 고양이 머리와 몸통을 본떠 만든 기하학적인 육교는 관광객을 위한 것이지만 동시에 이 시설을 가장 오래 쓸 현지 주민을 위한 것이기도 하다. 쇠락했던 마을이 단기간에 관광지로 변모할 때 현지 주민들에게는 오히려 득보다 실이 큰 경우가 많다지만, 고양이로 인해 조금씩 살기 좋은 환경으로 변해가고 있으니 허우통에서는 길고양이가 복고양이 노릇을 톡톡히 할 모양이다. 

 

 

CREDIT

글·사진 고경원

 

 

본 기사는 <매거진C>에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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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 소개

고경원 길고양이 통신
2002년부터 길고양이의 삶을 사진과 글로 전하면서 출판, 전시, 강연을 통해 고양이에 대한 이해를 돕고 있습니다. 블로그 ‘길고양이 통신’(catstory.kr)에서 다양한 지역의 고양이 여행기를 읽어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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