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파르나스 묘지의 고양이 기념비

칼럼 전문가에게 듣는 동물 이야기
몽파르나스 묘지의 고양이 기념비
조회 1228   1년전
고경원 길고양이 통신
프린트 리스트보기


고양이 여행자의 일상여행기                      

#017 몽파르나스 묘지의 고양이 기념비

 

고양이를 만나러 가는 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게 묘지 산책이다. 특히 머물 곳이 마땅치 않은 대도시에서, 넓은 대지를 갖추고 인적도 드문 편인 공원묘지는 길고양이에게 좋은 은신처가 되어준다. 프랑스 고양이 여행에서 가장 많은 고양이를 만난 것도 공원묘지에서였다. 

 

프랑스 파리 3대 묘지로 흔히 페르라셰즈 묘지, 몽파르나스 묘지, 몽마르트르 묘지를 꼽는다. 몽마르트르 묘지에서 십여 마리 고양이를 만나 반나절 이상을 보낸 덕에, 몽파르나스 묘지를  들렀을 때도 적잖게 기대했지만 아쉽게도 길고양이를 만나진 못했다. 대신,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작가의 작품을 발견할 수 있었다. 


63b5ccc041c1b7ca6ba906701106200e_1433730

몽파르나스 묘지의 잿빛 비석들 사이로 우뚝 서 있는 고양이 기념비.


묘지 입구에서 명사들의 무덤 위치를 표기한 지도를 나눠줄 만큼, 몽파르나스 묘지는 여러 명사들이 잠들어 있는 곳으로 유명하다. 세기의 커플로 불리던 사르트르와 보봐르를 비롯해 시인 보들레르, 조각가 브랑쿠시, 가수 세르주 갱스부르 등…. 하지만 내 눈을 잡아끈 것은 명사들의 무덤이 아니라, 잿빛 비석들 사이에 서 있는 고양이 조각상이었다. 을씨년스러워 보이는 비석 사이로, 뚱뚱한 뱃살을 드러낸 채 두 발로 우뚝 선 고양이의 익살스런 모습에 그만 발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처음에는 누구의 무덤인지도 모르고 다가갔지만, 화려한 원색 모자이크 타일, 비석에 적힌 꼬불꼬불한 글씨체는 분명 니키 드 생팔(Niki de Saint Phalle)의 솜씨였다. 몽파르나스에는 그의 무덤이 없는 걸로 알고 있는데 누구의 무덤일까 싶어 가만히 들여다보니, 친구 리카르도에게 바치는 기념비였다. 리카르도라면 1977년부터 10년간 니키 드 생팔의 어시스턴트로 함께 했던 리카르도 메농(Ricardo Menon)을 말한다. 1986년 니키 드 생팔이 이탈리아에서 자신의 꿈을 실현한 조각공원 <타로 정원>에 전념할 무렵, 리카르도 메농은 숙원이던 연극 공부를 계속하기 위해 니키 드 생팔과 작별하고 파리로 돌아온다. 그리고 3년 뒤인 1989년 에이즈로 세상을 떠나고 만다.

 

친구의 죽음을 몹시 슬퍼한 니키 드 생팔은 애도의 마음을 담아, 또한 에이즈에 대한 편견을 깨뜨리기 위해 <AIDS: You can't catch it holding hands?>를 공동집필했고, 책의 일러스트레이션 작업에도 참여했다. 그만큼 자신을 오랫동안 보필했던 리카르도 메농에 대한 우정은 깊었다. 그 친구와의 인연을 오랫동안 기리기 위해 이렇게 고양이 모양의 기념비까지 만들어준 것이다.

 

 

63b5ccc041c1b7ca6ba906701106200e_1433730


​무덤의 주인 리카르도의 이름을 새긴 배불뚝이 기념비. 비석에는 니키 드 생팔의 글씨체가 뚜렷하다.

 

 

63b5ccc041c1b7ca6ba906701106200e_1433730


​고양이 기념비의 뒷모습. 줄무늬 고양이가 아니라 꽃무늬 고양이인 셈이다. 

 

 

니키 드 생팔은 자신에게 소중했던 사람이 다른 이에게도 오래오래 기억되길 바라며 이 고양이 기념비를 세웠을 것이다. 넉살 좋게 잔잔한 미소를 띤 고양이와 얼굴을 마주 대하면, 숙연했던 무덤가에서도 슬며시 웃음을 짓게 된다. 사연 없는 무덤은 없다지만, 그 속에 숨은 의미를 알고 보면 더욱 오래 기억하게 되는 법. 내게도 언젠가 세상을 떠나는 날이 올 테고, 그때는 우리 집 고양이 스밀라를 닮은 조그만 고양이 조각상과 함께 잠들었으면 싶다. 죽음으로 인해 영원히 기억되는 역설을, 몽파르나스의 고양이 기념비에서 배운다.

 

 

CREDIT

글·사진 고경원

 

 

본 기사는 <매거진C>에 게재되었습니다.  

콘텐츠의 무단 도용, 전재 및 복제, 배포를 금합니다. 이를 어길 시 민, 형사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좋아요 0
http://www.petzzi.com/bbs/board.php?bo_table=opinion&wr_id=357&sca=%EC%B9%BC%EB%9F%BC
URL을 길게 누르시면 복사하실 수 있습니다.
복사되었습니다. 원하시는 곳에 붙여넣어 주세요.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네이버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url복사

칼럼니스트 소개

고경원 길고양이 통신
2002년부터 길고양이의 삶을 사진과 글로 전하면서 출판, 전시, 강연을 통해 고양이에 대한 이해를 돕고 있습니다. 블로그 ‘길고양이 통신’(catstory.kr)에서 다양한 지역의 고양이 여행기를 읽어볼 수 있습니다.
반려인의 의견   총 0

이 글에 첫 번째 의견을 남겨 주세요. 여러분의 생각이 궁금합니다.

행사 더보기

이벤트 더보기

공지사항  
서울특별시 금천구 가산디지털2로 98, 2동 1109호(가산동,IT캐슬) | 대표전화 : 1544-8054 | 팩스 : 0303-0433-9971
회사명 : 펫러브(petlove) | 대표자 : 황규형 | 개인정보관리책임자 : 김병준
사업자등록번호 : 131-12-50700 | 통신판매업 신고번호 : 제 2011-서울금천-0770호
(c) 2002-2017 petlove. All Rights Reserved
e-mail 문의하기
기사 : edit@petzzi.com
광고/제휴문의 : ad@petzz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