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히 만난 길고양이

칼럼 전문가에게 듣는 동물 이야기
우연히 만난 길고양이
조회 7279   1년전
고경원 길고양이 통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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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여행자의 일상여행기                      

#025 우연히 만난 길고양이

 

우연히 만난 길고양이와는 다음을 기약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 언젠가 그곳에 다시 들렀을 때 그 자리에 그대로 있으리라는 보장도 없고, 팍팍한 거리의 삶 때문에 일찍 생을 마감하는 일도 부지기수이기 때문이다. 특히 재개발이 진행 중인 지역의 길고양이에겐 더욱 그렇다.

 

오래된 삶터를 버리고 떠나야 하는 막막함은 철거민이나 길고양이 모두에게 똑같이 닥치지만, 사람은 철거예고장을 받으면 어떻게든 살 길을 찾아 떠날 수 있지만, 길고양이는 영문도 모른 채 철거를 맞닥뜨려야 하니 그 황망함이란 사람에 견줄 수 없을 것이다. 어느 순간 깃들어 살던 보금자리가 무너지고, 이주를 대비할 틈도 없이 모든 것이 급박하게 파괴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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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끼를 밴 삼색이는 폐허 속에서도 먹이를 찾아 분주히 다니고 있었다.

 

 

고양이가 살고 있던 작은 세계는 오래된 건물들이 철거되면서 속절없이 무너진다. 그 과정에서 겁을 먹고 주차장이나 지하실처럼 사람들 눈에 잘 띄지 않는 구석으로 깊이 숨어든 길고양이는, 집을 허무는 과정에서 건물 잔해와 함께 매몰되기도 한다고 들었다. 어른 고양이는 그나마 적응력이 나은 편이어서 영역을 조금씩 옮겨 가며 살 길을 찾지만, 살아온 경험이 짧아 위기 상황에서 판단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어린 길고양이들의 피해가 크다.

 

이렇게 위기 상황에 놓인 어린 고양이들의 임시 보호를 추진하는 캣맘들도 있지만, 밥 주는 것만으로도 힘에 부치는 상황에서 임시 보호처를 새롭게 구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이미 입양이며 임시 보호로 신세 진 적 있는 사람들이 많아 주변에선 더는 사람을 찾기 어렵고, 고양이는 영역동물이기에 이주방사를 하기도 쉽지 않다. 자칫하다간 새로 옮겨간 영역에서 기존 세력에 치여 해코지를 당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밥그릇 놓는 자리를 지금보다 좀 더 안전한 곳으로 옮겨가며 살아남을 수 있도록 적응을 도와주는 것이 대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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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빈 집으로 들어가다 원망스러운 듯한 눈으로 나를 돌아보는 고양이.

 

 

재개발 지역 고양이들의 임시 보호처를 찾는 캣맘 분과 인연이 닿아, 현재 재개발 공사가 진행 중인 서울 모처를 찾아갔다. 대규모 아파트가 지어진다는 재개발 지구 곳곳에는 고양이들이 뿔뿔이 흩어져 살고 있었다. 파헤쳐진 폐허 사이를 누비며 먹을 것을 구하고, 새끼를 밴 몸으로 한 발 한 발 뚜벅뚜벅 걸어가는 녀석들. 어느 고양이는 빈 집으로 들어가다 원망스러운 듯한 눈으로 나를 돌아보았다.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영문이냐고 묻는 것만 같았다.

 

개인적으로도 최근 이사 준비를 하면서 집을 알아보느라 한참 진을 뺐는데, 얼마간의 돈과 시간을 갖고 있으면서도 미친 듯이 오른 집값에 ‘이 돈으론 갈 수 있는 데가 없구나’ 하고 낙망했던 적이 있었다. 사람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사람의 돈도, 사람의 말도 할 수 없는 고양이들은 그렇게 한결 힘든 가을을 보내고 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녀석들이 여기 한때 살았다는 걸, 그리고 지금도 살아가고 있다는 걸 사진으로 기록하는 일밖엔.

 

 

CREDIT

글·사진 고경원

 

 

본 기사는 <매거진C>에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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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 소개

고경원 길고양이 통신
2002년부터 길고양이의 삶을 사진과 글로 전하면서 출판, 전시, 강연을 통해 고양이에 대한 이해를 돕고 있습니다. 블로그 ‘길고양이 통신’(catstory.kr)에서 다양한 지역의 고양이 여행기를 읽어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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