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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그들을 허공에 띄웠는가

  • 승인 2019-11-29 10:5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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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 이 지 에 서

누가 그들을 허공에 띄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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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들이 선호하는 견종인 래브라도 리트리버도 뜬장에 갇히면 그저 뜬장에 갇힌 개에 불과하다.



개의 고소공포증

내가 어릴 적 놀이터에서 제일 싫어했던 건 바로 조금만 올라가도 다리가 후들거리던 정글짐이었다. 좀 더 시간이 지나서 야 정글짐을 싫어했던 이유가 고소공포증 때문이었다는 걸 깨달았다. 그즈음 학교 끝나고 오는 길에 개를 잡는 아저씨들을 보았는데 한 아저씨가 몸부림치는 개를 제압하려 뒤에서 번쩍 안아 들었고, 땅에서 발이 떨어진 개는 겁을 먹은 듯 꼬리를 안으로 말고 귀를 접었다. 허공에서 떨고 있는 개를 보며 개에게도 고소공포증이 있을까 생각했다. 훗날 동물행동학에 관한 책을 읽으며 개에게도 고소공포증이 있다는 걸 알았다.

발 딛고 선 곳이 안전하지 않다는 생각이 극도의 불안을 불러 일으키는 것이 바로 고소공포증이다. 직립보행을 하는 인간도 고소공포증이 있는데 네발로 땅을 딛는 동물들은 오죽하겠는가. 몇 년 전 건축학자 이상현 교수의 저서 『길들이는 건축, 길들여진 인간』을 편집하면서 공간이 존재를 어떻게 길들이고 효과적으로 목표를 달성해내는지 그 원리와 과정을 자세히 들여다볼 기회가 있었다. 모든 건축과 공간은 의도를 감추고 있고, 그것의 길들임은 무의식중에 교묘하게 이루어진다고 했다. 아무리 다양하고 뛰어난 기능을 가진 뜬장들도 결국엔 인간의 편의를 위해 고안된 장치일 뿐이다. 뜬장에서의 높이가 주는 공포를 동물들이 느낄 때 어떤 동물도 그 안에서 안정적일 수 없을 것이다. 반려동물 사육공간의 기본 요건을 제시하고 있는 우리나라 현행 동물보호법 제4조 제5항에는 동물의 발이 빠지는 재질로 바닥을 하지 말라고 명시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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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철망 바닥을 덮은 분변을 바라본다. 날마다 벼랑 끝에 서는 심정으로 개는 아래를 보지 않으려 다리를 떨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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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금이라 했지만 사실 표현이 틀렸다. 아무도 미워하지 않고, 아무 죄도 짓지 않은 그들을 누가 함부로 허공에 띄웠는가.


허공에 뜬 그들의 자유

작년 가을 전북 김제에서 슬픈 얼굴을 한 래브라도 리트리버를 보았다. 자유를 잃어버린 시골 개들은 대체로 감정표현에 서툴다. 물론 논과 밭을 자유롭게 누비는 개들도 있지만, 대부분의 시골 개들은 1m도 안 되는 목줄에 묶여 1미터의 삶을 산다. 낯선 존재에 격한 감정표현을 하는 그들은 본능적으로 사람들에게 호감인지 불쾌인지 알기 힘든 메시지를 강하게 보낸다. 하지만 눈앞의 리트리버는 다른 시골 개들과 달리 꼬리를 흔들기는커녕 내 존재를 궁금해하지도 않았다. 얼마나 오랫동안 뜬장에 갇혀있던 걸까 땅에서 발이 떼어짐으로써 현실을 잃어버린 개처럼 보였다. 몸이 뜬장에 길들여지자 마음마저 거기에 길들어져 버린 듯했다. 나는 뜬장 앞에 한참을 앉아 철망 밑바닥에 덮힌 분변을 바라보았다. 얼마나 오래됐는지 냄새조차 말라버린 듯했다. 개는 날마다 벼랑 끝에 서는 심정으로 아래를 보지 않으려 다리를 떨었을 것이고, 겨우 오줌을 누고 똥을 쌌으리라.
뜬장은 배설물을 쉽게 처리하기 위해 밑면에 구멍을 뚫어 만든 철장이다. 인간의 이기심으로 가득한 사육공간인 것이다. 오랜 시간 뜬장에 감금된 개는 운동량이 거의 없어 근육이 현저히 쇠퇴하고 상시적인 불안 상태가 된다. 또한, 무기력과 우울증에 빠지게 되며 균형 감각마저 잃게 된다. 뜬장이 있던 곳은 개농장도 번식장도 아닌 엄연한 동물 학대의 현장이었다. 개를 사랑한다는 주인이 배려랍시고 뜬장에 넣어준 널판 하나가 그렇게 커 보일 수 없었다. 누가 그들을 허공에 띄웠는가.

CREDIT

글·사진 헤르츠티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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