펫찌로고

MAGAZINE P. ALPHA WOLF

  • 승인 2021-11-26 11:3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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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라가 집을 나갔다. 함께 마당에서 놀다가 내가 잠깐 집에 들어갔을 때였다. 집을 좋아하고 바깥 세상을 두려워하던 바라였지만, 생후 6개월이 지나서부터는 조금 달라졌다. 담 너머에는 무엇이 있는지 궁금해하기 시작했다. 나는 급히 바라를 찾으러 뛰어나갔지만 그 어디에서도 바라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바라는 사라졌다.

 

늑대개 바라

  할 수 있는 모든 걸 했다. 119 신고도 했고, 전단지도 붙여놓았 다. 휴가도 내서 3일 밤낮을 돌아다녔다. 함께 산책하고 놀던 산과 들, 집에서 가까운 여러 야산을 돌고 또 돌았다. 밤에도 산에 올라 바라를 찾았다. 평소 바라는 사람을 두려워했기에 인적이 드문 곳에 숨었으리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일주일이 지나 서도 바라는 돌아오지 않았다.

늑대개인 바라는 놀라울 정도로 늑대와 무척 닮았다. 보통 개보다 청각과 후각이 뛰어난 것은 물론이고, 기억력도 비상했다. 아주 작은 소리나 기척에도 민감하게 반응했다. 집 주변이니까, 바라가 근처에 있다면 내 냄새를 맡을 수 있겠지. 나는 대문을 열어놓고 근처에 먹이와 물을 그릇 가득 담아두었다. 그렇게 열흘쯤 지났을까? 기다림에 지쳐갈 무렵, 현관 앞에 놓아둔 먹이가 사라진 것을 발견했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혹시나 싶어 CCTV를 확인했다. 그곳에 바라가 있었다. 무사했구나! 바라는 얌전히 밥을 먹고 잠시 자리를 지키다가 이내 사라졌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바라는 마당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바라를 껴안고 소리를 질렀다. 잠들어 있던 바라는 그때서야 일어나 나를 보고 낑낑거렸다. 얼굴과 다리에 조금 상처가 나 있었지만 그래도 건강해 보였다. 어디서 무얼 했는지 왜 나갔는지 바라에게 묻고 또 물었다. 그리고 다시는 내 곁에서 떠나지 말아 달라고 부탁했다. 바라가 집을 떠나고 꼭 보름 뒤에 일어난 내 생애 가장 기적같은 일이었다.

 

그렇게 보내는 게 아니었는데

  2018년 6월 23일. 삶이 무너지는 것을 처음으로 느꼈다. 바라, 그 아이가 떠났다. 그 무렵 나는 꽤나 힘든 시기를 견뎌내고 있었다. 그럼에도 버틸 수 있었던 건 바라 덕분이었다. 일이 끝나면 바라와 모든 시간을 함께 보내며 피로도 걱정도 잊었다. 앞서 말했듯 바라는 보통의 개와는 많이 달랐다. 낯선 환경을 극도로 두려워했으며, 소리에도 민감했다. 늑대와 개의 교배종인 늑대개. 늑대는 개와 다르다. 주관이 훨씬 뚜렷하고, 자신의 감정을 숨기지 않고 행동으로 보여준다.

  바라는 늑대의 성향을 많이 지니고 태어났다. 고맙게도 바라는 나를 부모로 여기는지 나를 보면 꼬리를 흔들며 온갖 애교를 부렸다. 바라가 내게 보여주는 사랑이 나를 참 행복하게 했다. 그런 바라가 더욱 행복할 수 있도록 보다 좋은 환경을 제공해 주고 싶었다. 그래서 이사를 마음먹었고, 준비 기간 동안 바라를 훈련소에 보내게 됐다. 고민도 많았다. 보통의 개와는 달라 바라의 훈련소 생활이 힘들 것이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을 이겨내야 현대 사회에서 사람들과 어우러져 지낼 수 있다고, 나와 바라도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나는 일주일에도 몇 번씩 바라를 보러 가서 산책도 하고 좋아하는 고기도 잔뜩 줬다. 다행히 바라는 잘 이겨내는 듯 보였다. 헤어질 시간이 다가오면 싫은 기색이 역력한데도 “금방 다시 올게” 하고 다독거리면 터벅터벅 제 발로 훈련소로 들어가 내 맘을 짠하게 했다. 그런 아이가 떠났다. 훈련소에선 돌연사라고 했고, 병원에서도 사인을 알 수가 없었다. 그 누구의 탓을 하지도, 더 묻지도 않았다. 모두 나의 잘못이었다. 그렇게 나는 펫로스 증후군을 앓게 되었다.

 

호랑, 끝까지 너를 지킬게

  바라 없이 의미 없는 이사를 했고, 그렇게 1년이 지났다. 어느 날 메일 한 통을 받았다. 바라를 키우는 동안 늑대에 무지했던 나에게 많은 정보를 공유해 주고 힘이 되어 주던 이탈리아 친구였다. 자신의 늑대개가 새끼를 낳았다며 내가 키워주길 바란다고 했다. 고민이 됐지만 한편으론 마음이 동했던 것도 사실이다. 바라를 위해 만들어둔 넓은 잔디밭과 오랜 시간 주인 없이 비어 있던 견사를 보면 항상 마음이 아팠었다. ‘견사에 주인을 찾아 주자.’ 그렇게 마음먹었지만, 코로나로 막힌 하늘길을 뚫기는 쉽지 않았다. 몇 달 동안 밤낮으로 비행 편을 검색한 끝에야 녀석을 한국으로 데려올 수 있었다.

  첫 만남. 녀석이 호랑이를 닮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름을 ‘호랑이’로 지었다. 신기하게도 호랑이는 바라가 하던 행동을 그대로 한다. 가끔은 2년 전으로 돌아가 다시 바라를 만난 듯한 기분이 들 때도 있다. 그럴수록 나는 두 번 다시는 바라가 겪었을 아픔을 알게 하고 싶지 않아 더 냉정하게 훈련에 임한다. 훈련, 대회 준비, 여행 등 우리는 많은 시간을 함께하며 추억도 많이 쌓았다. 점차 펫로스 증후군도 정도가 덜해져 갔고 이제 바라와 함께한 시간은 내게 아프고도 아름다운 추억이 됐다. 호랑이가 내 상처를 낫게 하는 치료제 역할을 해 준 것이다.

  늑대 무리에는 우두머리 늑대(Alpha Wolf)가 있다. 우두머리 늑대는 위험이 닥치면 목숨을 바쳐 무리를 지킨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으면 문득 마음 한구석이 다시 쓰려와 여러 감정이 뒤섞인다. 하지만 현재로서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할 뿐이다. 호랑이는 분명한 내 무리의 일원이다. 그리고 나는 끝까지 호랑이를 지킬 것이다.


글·사진 이우철
에디터 이혜수


해당 글은 MAGAZINE C 2021년 2월호에 수록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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