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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을 내요, 명랑 노견!

  • 승인 2018-11-05 11:4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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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랑 노견 생활기

힘을 내요, 명랑 노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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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이제 감출 수 없어

언젠가부터 산책하러 나갈 때마다 ‘이 개는 나이가 많은가 봐요’ 소리를 자주 듣게 되었다. 세상에 둘도 없는 동안이라 그런지 처음 본 사람들은 나이를 밝히지 않는 한 이뿌니가 노견이라는 것을 잘 모르곤 했다. 그 때문에 나는 나이를 알게 된 후 나오는 그들의 감탄사와 놀라움의 반응을 은근히 즐겨왔다. 어깨가 으쓱으쓱, 나이든 개가 나이든 티가 나지 않는다는 것에 자부심을 느꼈다. 그만큼 활력 넘치고 건강해 보인다는 뜻이니까. 하지만 이런 즐거움도 올해 초까지 만이었다.

털이 희끗희끗해진 건 이미 한참 전이지만 다른 노견들에 비하면 아직도 진한 모색을 유지하고 있다. 이것만으론 노견 티가 나질 않는다. 이윽고 동안의 상징이던 빵빵한 볼살이 빠지면서 턱선이 갸름해졌다. 사람으로 치면 브이라인을 갖게 되었으니 환영할 일이지만 퉁퉁함이 미덕인 강아지들에게는 그리 환영할 일은 못 된다. 얼굴 살이 빠지니 확실히 동안이라 할 수는 없겠다. 무엇보다 나이 많음을 감출 수 없게 된 것은 역시 둔탁해진 걸음걸이다. 가끔은 절룩이기도 하고 가끔은 가만히 멈춰있기도 한다. 산책 자체에 흥미를 보이지 않는 날도 많아졌다. 굳이 가까이 와서 색소가 빠진 회색 코나 뿌연 눈동자를 확인하지 않더라도 이 개는 이제 정말 나이가 많은 티가 나는 것이다.

워워. 희망찬 말을 부탁해요

그런데 노견이라는 것을 확인한 후에 들리는 뒷 문장들은 안 들어도 될 소리가 더 많았다. 평균 수명 운운하며 기한이 다 되었다는 듯한 뉘앙스의 문장들이 대부분이었다. 워워, 넣어 두세요 그런 말들은. 결코 짧지 않은 십여 년 우리가 얼마나 훌륭한 한 팀으로서 단단하고 견고한 시간을 쌓아왔는지 모르는 사람들이 하는 말이다. 그렇게 짠한 시선으로 바라볼 필요도 없다. 젊고 생기 있는 것만이 아름답다 치부하지 말아 주오. 색 바랜 털은 노견이 지내온 세월의 훈장이고 뿌연 안개가 낀 눈동자 안에는 아직도 인간에 대한 사랑이 가득하다. 오래 된 고목에 새겨진 나이테처럼, 세월이 내려앉은 이대로 우리 노견들은 여전히 아름다운 것이다. 무심한 사람들의 말대로 우리에게 남은 시간이 많지 않은 걸 안다면 좀 더 희망찬 말들로 응원해주길. 등을 떠밀어주는 가벼운 바람처럼 우리 둘의 산책길이 좀 더 가뿐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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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을 내요. 명랑 노견


늙었으니 당연히 아프다는 뻔한 소리는 하고 싶지 않았다.‘이렇게 젊어 보이지만 사실은 되게 늙은 개라든가(그마저도 이젠 못하는 말)’,‘조상님 급으로 대단히 늙은 개지만 아직도 서슬 퍼렇게 쌩쌩해요’같은 반전 있는 이야기들만 하고 싶었다. 명색이 ‘명랑노견’이기도 하니까. 하지만 이뿌니라고 별수 있나, 올 봄부터 여름까지 줄곧 아팠다. 동물병원에 기백만 원을 쏟아붓고 얼추 진정이 되었다. 밥 잘 먹고 잠 잘 자는 일상적인 생활로 돌아온 지금에서야 말이지만 이번 가을을 함께 보낼 수 있을지 당시엔 몇 달 후가 그려지지 않았다. 2002년부터 시작해 월드컵을 무려 다섯 번이나 보고 있는 개와 살다 보니 매해의 계절이 늘 마지막인 것처럼 유난스러워질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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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보가 따로 없군!

차가운 겨울 끝에 선물처럼 주어진 봄에도 그러했지만, 지독히도 뜨거웠던 이번 여름을 견뎌내고 맞이하는 가을이라 이 계절이 참으로 달디 달다. 이렇게 좋은 날은 사랑하는 우리 강아지들과 함께 나누는 게 제일이다. 제각기 자신만의 색깔로 가을을 뽐내는 색 색깔 꽃들 앞에서 지구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노견인 냥 폼을 잡았다. 셀카 찍는 연인들 사이에서도 당당히 제 혼자 이 늙은 개가, 사진 찍는 집의 개로서 응당 해야 할 일을 한다. 내 개라 하는 말이지만 화보가 따로 없군. 나는 아직 콩깍지를 벗어던질 마음이 없다.

추억은 차곡차곡


지난해 이맘때엔 노견 말년의 절친들을 만나 이리도 환하게 웃으며 노오란 가을빛을 두 눈에 가득 담아 왔다. 괜히 기분 좋아 낄낄거리던 이 날의 선명한 기억들로부터 고작 1년도 못 되어 함께했던 친구는 먼저 떠나고 없다. 사랑한 마음이 길었기에 보낸 이의 슬픔 끝도 길다. 그렇지만 슬픔이 차갑기만 한 것은 아니다. 우리들의 즐거웠던 하루가 그 안에 녹아있고 그 덕분에 마음이 조금 훈훈하게 데워지기도 한다. 추억의 힘이라는 게 이것일까. 친구가 떠난 자리에 이뿌니 혼자라도 이번 가을에 다시 가보려 한다. 새로운 하루를 덧입히고 추억을 차곡차곡 저축해야만 한다. 잔고가 빵빵하게 채워져야 내년 가을에,혹은 운이 좋다면 내후년 가을에 이뿌니가 떠난 자리를 나 혼자 감당해낼 수 있을 것이다. 쿰쿰한 발 냄새 풍기는 이 털북숭이가 뭐라고 이다지도 준비를 단단히 해야 한단 말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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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한진

에디터 이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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