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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를 입양하는 이에게 아무도 알려주지…

  • 승인 2018-10-29 12:5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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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개 네트워크

개를 입양하는 이에게

아무도 알려주지 않는, 가장 불편한 이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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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를 키우기로 결심했을 때 어떤 개를 데려다 키울 것인지 고민하는 시간은 길수록 좋다. 시장 조사를 하고 관련 책을 읽고 방송을 보면서 끊임없이 의심하고 갈등해서 선택하는 게 그렇지 않은 선택보다 현명할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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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임져야 할 시간의 무게

개의 평균 수명은 15년이다. 팻숍에 들러 적당한 돈을 지불한 뒤 인형처럼 귀여운 강아지를 품에 안고 나서는 순간 책임져야 하는 시간의 무게가 자그마치 15년이다. 꽃개 나이는 만 3세, 이제 겨우 3년을 같이 살았을 뿐인데 그 책임의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았다. 아내가 20년 다닌 회사를 은퇴하면서 개를 키우기로 결심 했을 때 나 역시 후회 없는 선택을 하려고 최선을 다했다. 1년 가까이 시장 조사를 하고 인터넷에 올라온 경험담을 읽고 전문가가 쓴 책도 봤다.

개의 품종은 웰시코기로 일찌감치 정했다. 아내는 개를 좋아하지만 나는 개를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에 개를 키울 권리와 고를 권리를 공평하게 교환한 것이다. (아들은 개에 대해 아무 생각이 없었기 때문에 이러한 정치적 판단에 끼어들지 않았다. 지금도 아들은 자전거에 미쳐있기 때문에 웰시코기가 아닌 래브라도나 셔틀랜드 쉽독하고 살았어야 한다고 툴툴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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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만 불짜리 조언

우리는 운이 좋아 아내의 지인의 지인을 통해 일반 가정견을 분양받았지만 팻숍에 들러 웰시코기를 문의할 때마다 우리는 털 때문에 파양하는 경우가 많다는 경고를 들어야 했다. 엄살이 아니라 백만 불짜리 조언이 맞다.

웰시코기 이슈는 단연 털이다. 이중모 품종의 특성인 털 빠지는 문제만 없었어도 웰시코기는 지금보다 더 많은 사랑을 받았을 것이다. 아내가 꽃개 털 빠짐에 대응하기 위해 사들인 장비만 5종 이상이다. (독일에서 생산된 7만 원 상당의 명품 빗도 있다) 이때만 해도 웰시코기는 그렇게 알려진 품종이 아니었다. 주병진의 대중소가 방송되기 전이었으니까. 매스컴을 타면서 웰시코기가 부쩍 늘었고, 유행이 끝나버린 지금은 버려지는 웰시코기가 많다는 소문이 심심찮게 들리는 게 현실이다.

하지만 꽃개랑 3년을 살아온 내가 반려견 입양을 고민 중인 누군가에게 해줄 첫 번째 경고는 ‘털’이 아니다. 웰시코기뿐 아니라 400종에 달하는 모든 반려견 입양을 앞둔 우리나라 사람이 고민해봐야 하는 첫 번째 문제는 ‘털’도, ‘배변 활동’도, ‘헛짖음’도, ‘공격성’도 아닌 바로 이것 ― ‘출입금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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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려견 문화와 ‘출입금지’

꽃개랑 살면서 가장 힘든 점은 어딜 갈 때 같이 갈 수 있는 데가 거의 없다는 점이었다. 이동의 자유가 극도로 제한된다. 개를 데리고 살기 전에는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는 문제였다.

외식을 한 번 하려 해도 꽃개의 상황을 고려해야 한다. 하루에 5회, 배변 활동을 겸한 산책을 하기 때문에 꽃개가 집에서 혼자 버틸 수 있는 시간을 따져보는 것이다. 영화 한 편을 보기 위해 멀티플렉스가 입점한 백화점에 가도 꽃개가 버틸 수 있는 최대치인 5시간 안에 돌아와야 한다. 외식이나 쇼핑 같은 소비 행위는 우리가 즐기는 거니까 양보하면 그만이라 쳐도 병원이나 친척 집 방문 등 반드시 가야 할 데가 생기면 꽤 난처하다.

가장 불편한 항목은 여행. 어디 잠깐 바람 쐬러 가려 해도 꽃개가 걸린다. 1박을 하지 않는 국내 여행은 그래도 하면 된다는 정신으로 어디든 다녀올 수 있다. 1박 이상은 생각하기 어렵다. 거의 모든 숙박 시설에 개 출입은 금지니까. 해외여행은 말할 것도 없다.

비행기에 탈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소형견은 캐리어에 담아 발밑에 두는 것으로 동반 탑승이 가능하다. 웰시코기 같은 중형견 이상은 캐리어에 담아 화물칸에 싣는다. 보수적이면서 환경 변화에 민감한 동물의 특성상 우리 좋으라고 할 짓이 못 된다.

1시간, 2시간 거리는 그나마 큰 문제가 안 되겠지만 10시간 이상을 굉음으로 가득 찬, 캄캄하면서 추운 곳에 갇혀있다고 생각해보라. 사람이라면 10시간 뒤 벗어날 수 있다는 신념으로 버티겠지만(여객기 일반석 이용자가 그러하듯) 개는 그런 이해 속에 갇혀있는 게 아니다. 개는 주인한테 버림받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공포와 좌절감 속에 10시간을 벌벌 떨다 나오는 수가 있다.

여름 휴가철 때 버려지는 개가 많다는 건 빈말이 아니다. 물론 해결 방법이 없는 건 아니다. 반려견과 동반 투숙이 가능한 숙박 시설도 어딘가에는 있다. 굉장히 제한된 지역에 눈이 튀어나올 가격으로. 하와이 여행을 갈 때 우리는 꽃개를 애견 호텔에 맡겼다. 호텔에 맡긴 비용을 전해 들은 이들은 아주 그냥 돈을 길바닥에 뿌렸다는 식으로 반응했다.

이런 불편함에 지불하는 비용에 비하면 털은 정말 별거 아닐 수 있다. 수시로 빗기고 부지런히 청소하고 그래도 돌아다니는 털들은 참으면 그만이다(털은 개의 정체를 말해주는 본질적 요소 중 하나다. 내 옷에 묻어 하와이까지 쫓아온 꽃개의 털은 사랑이다).

반려견 문화와 ‘출입금지’는 애견인들에게 모순으로 다가온다. 애완이 아닌 삶의 동반자로 하자면서도 여전히 개는 함께 다니기 힘든 가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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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속의 땅

하남에 있는 별땅 쇼핑몰은 그런 의미에서 애견인들에게 약속의 땅이라 할 만하다. 백화점은 여전히 출입금지이지만 나머지 쇼핑 구역에선 사람만큼 자연스럽게 돌아다닐 수 있다. 매장 입구마다 출입 가능함을 알리는 스티커가 있어 같이 들어가서 둘러보거나 캐리어에 싣고 들어가는 게 가능하다. 출입이 안 되는 매장도 있지만 불편하다고 느껴질 정도는 아니다.

꽃개는 복잡하고 거대한 쇼핑몰에서 한 사람 몫을 해냈다. 걷는 데서는 걷고 기다려야 하는 데서는 기다렸다. 짖지 않았으며 타인과의 간격을 유지해 불편을 초래하지 않았다. 난생처음 그렇게 많은 사람을 접한 것에 긴장했지만 흥분하지는 않았다.

아무도 꽃개를 보고 혐오스러워하지 않았다. 개가 이런 델 오면 어떡하느냐면서 치워달라고 요구하는 사람도 없었다. 여기서 만큼은 꽃개도 우리 가족의 일원이라는 인정을 받았다. 그것은 생각보다 놀라운 경험이었다.

CREDIT

글 사진 BACON

에디터 이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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