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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도 나도, 어쩌면 우리 모두

  • 승인 2018-08-29 13:5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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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요한 것은 사랑뿐

크리스도 나도,

어쩌면 우리 모두

살아있는 생명이라면 무릇 관심을 필요로 한다. 그저 컵에 담긴 물 한 컵에도 매일 ‘사랑한다’는 말을 해주면 예쁜 모양으로 얼음이 얼고, 미움과 저주를 퍼부으면 아무렇게나 갈라져 버린다는 글을 읽었던 기억도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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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받으려는 열망

“넌 어릴 때부터 엄마한테 미움받으면 감기에 걸리곤 했어.”

엄마가 해준 어릴적 나에 대한 에피소드이다. 내가 엄마에게 이런저런 이유로 미움을 받으면 몸이 아파졌다는 것이다. 어릴 때부터 나는 누군가에게 미움받지 않으려는 마음과 사랑받으려는 열망이 강한 편이었다. 그건 종종 이상한 형태로 발현되곤 했다는 걸 스스로도 잘 안다. 관심종자가 되어 주위의 관심을 독차지하려고 한다거나, 미움받으면 과도하게 웅크리고 자책하고 했다.

그랬던 나는, 언제부턴가 감기에 걸리지 않게 됐다. 마지막으로 감기에 걸린 일이 언제인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기억을 거슬러 보면, 아무래도 딸을 낳은 이후로 이렇게 된 것 같다. 어린 딸을 키우면서 ‘사양하고 싶을 정도로’ 큰 관심과 사랑을 독차지해서인지, 서서히 나의 애정결핍 같은 증세들은 치유된 것 같다. 물론 나이가 들면서 무뎌진 탓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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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나, 크리스

예민해 보이는 모습, 앙상하고 상처받은 얼굴. 유기견을 입양하기 위해 아이들의 사진을 살펴보던 중 눈에 띈 크리스의 첫인상은 딱 그랬다. 크리스의 첫인상은 과거의 나와 같았다. 나처럼 예민해 보이는 크리스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좀 더 명랑하고 무던해 보이는 개를 키우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결국, 내가 선택한 건 나의 내면을 닮은 크리스였다. 크리스가 있던 보호소의 담당자분께 크리스에 대해 묻자, 대번에 크리스는 ‘무릎견’이라고 했다. 종일 사람의 품에 안겨 있으려고 하고 끊임없이 사랑을 갈구한다고. 그 말을 들은 이상 크리스 입양을 결정할 수밖에 없었다. 과거의 나처럼 마르지 않는 애정의 샘을 갈구하는 크리스에게 그 샘을 채우고도 남을 사랑을 주리라, 그래서 다시는 감기에 걸리지 않는 생을 만들어주겠노라 다짐했다.

크리스가 처음 집에 왔을 때, 크리스가 늘 내 무릎에 앉아있던 탓에 나는 일주일 동안 화장실도 제대로 못 갔다. 겨우 내 딸아이를 혼자 화장실에 갈만큼 키워놨는데 개 때문에 다시 이 고생이라니 헛웃음이 나기도 했다. 크리스는 내 품에 안겨 일어나지 않았다. 덕분에 내 눈에 익은 거라곤 녀석의 뒤통수뿐이었다. 난 한동안 내가 기르는 개의 얼굴도 익히지 못해 애를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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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도 나도, 필요한 것은 사랑뿐

‘무릎견’으로 유명했던 크리스는 더 이상 사람의 무릎을 향해 맹렬하게 파고드는 행동을 즐겨하지 않는다. 가끔은 크리스를 찾아서 집 안 구석구석을 찾아 헤매는 일까지 종종 벌어진다. 전업주부인 나는 크리스와 단둘이 집에 있는 시간이 많다. 그래서 어린 딸이 집에 없을 때를 틈타 정신없이 집안일을 하거나, 넋 놓고 영화를 보기도 한다. 그러다 문득 ‘크리스가 어디 갔지’라는 생각에 등줄기가 서늘해질 때가 있다.

그도 그럴 것이 크리스는 종종 내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져 어디론가 숨어버린다. 크리스가 일부러 숨은 것 같지는 않다. 크리스가 가 있는 장소는 그저 안방 책상 밑이라 거나, 아니면 서재방 자전거 옆에 둔 방석 위 같은, 그냥 혼자 조용히 쉴 수 있는 장소들이다. 이런 에피소드를 전해 들은 친구는 ‘걔는 무슨 개가 고양이 같냐’는 말을 했는데 이건 처음 크리스를 만났을 때를 생각해보면 상상도 할 수 없는 평가다.

늘 누군가의 사랑을 갈구했던 내가 이제는 ‘혼자 있는 시간’을 갈망하듯, 크리스 역시도 혼자서도 행복할 수 있는 상태가 된 것으로 생각한다. 누군가와 마음으로 온전히 함께할 수 있을 때, 우리는 더 이상 혼자 있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게 된다. 나의 얼굴은 마른 편으로, 살이 찌면 더 얼굴이 좋아졌다는 평을 받는다. 그래서 아직까지는 나이가 들어서 오히려 낫다는 평도 듣는다.

애정결핍이 사라지면서 마음이 편해지고 예뻐지고 있는 셈이다. 그리고 이건 크리스의 경우도 완전 마찬가지다. 처음의 앙상한 몸에 짙은 눈물 자국으로 결코 예쁘다고 하기 어려웠던 크리스는, 이제는 완전한 미견으로 거듭났다. 처음 산책 시 “어우 노견같다.”는 핀잔까지 들었던 크리스는, 이제 나가기만 하면 사람들의 비명을 자아낸다. “개가 정말 인형같이 생겼어요.”는 말을 들을 때면 마음이 뿌듯해지고 가슴이 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사랑으로 서로를 더 아름답게 만드는 크리스와 나, 어쩌면 우리에게 필요한 건 사랑이 전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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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글 사진 이영주

에디터 이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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