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만 안녕
내 이름은 개곱단
반려동물과의 갑작스러운 이별은 어른뿐만 아니라 어린 아이에게도 당황스러운 일이다. 어린 아이가 있는 가정에서 반려동물과의 이별을 맞이하게 된다면 어떤 마음을 갖고 어떻게 극복해 나가야 할지 이 글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길 바란다.
나는 길거리를 떠돌던 강아지였어요.
하루 종일 이 곳 저곳을 돌아다니다 지치면 아무 곳에서나 잠들고 배가 고프면 길에 버려진 음식 찌꺼기들을 먹으며 살았어요. 굶는 것쯤이야 괜찮았지만 정말 힘든 건 길을 지나던 아이들이 이유 없이 나에게 돌을 던지거나 술에 취한 사람들이 가끔 발로 걷어차려 할 때 재빨리 숨어야 하는 일이었어요. 그래서 가끔 늦은 밤 비틀거리며 걷는 사람을 보면 심장이 쿵쾅쿵쾅 뛰기도 했어요. 얼마 전에도 그런 사람에게 아주 놀랄 일을 당할 뻔했거든요.
그 후론 사람 그림자만 보여도 큰 숨을 몰아 쉬고 나도 모르게 몸을 웅크리게 돼요. 사람들은 나를 보면 인상을 찌푸리거나, ‘저리 가!’라고 큰소리를 쳤어요. 난 그들에게 아무 잘못도 하지 않았는데, 내가 옆에 있기라도 하면 기겁을 했지요. 내가 예쁘지 않다는 걸, 나도 잘 알지만...그런 일을 당하면 그 날은 하루 종일 기운이 없었어요. 그래도 밤이 되면 풀벌레들과 나뭇가지 사이에 작은 새들은 내 친구가 되어주었어요. 나뭇잎들도 바스락 소리를 내며 내 귀에 ‘괜찮다, 괜찮다..’ 토닥토닥 나를 위로해주었어요. 가끔 새로 지은 아파트 단지에서 나오는 사람들 품에 안긴 예쁜 강아지들을 보면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나오기도 했지만 어차피 내게는 그럴 일이 없다는 걸 잘 아니까 그냥 고개를 돌려버리곤 했지요.
목소리가 따듯했던 그 사람
그 날도 나는 사람을 피해 몸을 숨기던 곳에 앉아 있었어요. 며칠 동안 눈이 내리고 찬바람이 쌩쌩 불어 몹시 추웠어요. 그런데 갑자기 낯선 사람 하나가 걸어오더니 내 앞에 앉아 물끄러미 쳐다봤어요. 나는 순간 움찔하며 몸을 더 동그랗게 말아 덤불 속에 숨겼어요. 한동안 말없이 안경 너머로 물끄러미 저를 쳐다보는 사람의 눈에 반짝이는 이슬 같은 게 보였어요. 그리고는 무슨 생각이 난 듯 갑자기 어디론가 후닥닥 뛰어갔어요. 그리고 잠시 후 길고 말랑말랑한 뭔가를 조심스럽게 제 앞에 놓아 주었어요. 바들바들 떨고 있는 내게 그 사람은 손을 내밀며 부드럽게 말했어요.
"괜찮아, 널 다치게 하지 않아. 그리고 이건 먹어도 되는 거란다...”
그 사람의 목소리는 굉장히 따뜻했어요. 지금까지 들어 본 적 없는 그런 목소리였어요. 그리고 천천히 한 발자국씩 내 곁으로 다가왔어요. 나는 어쩔 줄 몰라 뒷걸음질 쳤지만, 이윽고, 담벼락의 끝에 닿았다는 걸 알았어요. ‘이제 끝일지도 몰라.’ 그런 생각을 하며, 눈을 꾹 감았는데. 그 사람은 아주 조심스럽게 팔을 뻗어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어요. 가만가만 쓰다듬는 그 사람의 손도 살짝 떨리고 있었어요. 처음이었어요. 아니 어쩌면 그런 날들이 나에게도 있었을지 모르지만 내가 기억할 수도 없는 먼 옛날의 얘기일지도 몰라요.
기분이 썩 괜찮았어요. 심장도 콩닥콩닥 뛰었고요. 그 사람이 내게 준 건 처음 먹어보는 정말 훌륭한 맛이었어요. 이제껏 내가 길에서 먹었던 것들과는 냄새부터 달랐어요. 먹는 데 정신이 팔려 그 사람이 가는 줄도 몰랐어요. 다 먹고 나서 고개를 드니 마치 꿈처럼 그 사람은 제 곁에 없었어요. 이리저리 두리번거려봤지만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어요.
그날 밤 나는 낮은 담벼락이 있는 창고 곁에 몸을 누이고 별님이랑 달님에게 그 사람 얘길 했어요. 어쩌면 날 또 봐주러 올지 모른다고 꼭 그랬으면 좋겠다는 얘기도 했어요. 달님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여주는 것 같았어요. 바람은 그런 제 머리를 가만히 쓰다듬어 주었어요.
저 여기 있어요!
다음날부터 나는 혹시 또 그 사람을 만날지 모른다는 생각에 매일 매일 그곳을 들려보았지만, 그 사람은 보이지 않았어요. 며칠이나 지났을까요. 가끔 몸을 숨기던 아파트 건너편 작은 마당이 있는 집에 사람들이 북적북적 모였어요. 나는 그날도 마당 가장자리 나무 아래 몸을 숨기고 북적대는 사람들을 바라보고 있었지요. 어쩌면 저 사람들 속에 나를 따뜻하게 쓰다듬어주던 그 사람도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날은 추웠고 발도 시렸지만, 꾹꾹 참고 그렇게 한참을 앉아 있었어요.
설령 그 사람이 없다고 해도 나는 실망하거나 슬프지 않았어요. 늘 그랬으니까요. 내가 헛된 꿈을 꾸는 것일 테니까요. 얼마나 지났을까요? 슬슬 기지개를 켜고 언 발을 녹일 수 있는 곳을 찾아가려고 하던 그때였어요. 그 집 문이 열리더니 제가 기다리던 그 사람이 걸어오는 게 아니겠어요? 나는 반가움에 순간 ‘저, 여기 있어요~!’ 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어요. 왜냐고요? 어쩌면 그 사람은 나를 잊었을 수도 있잖아요. 그런데 그 사람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내가 있는 쪽을 향해 걸어왔어요. 나는 온몸이 떨려 움직일 수 없었어요. 그 사람은 그때처럼 제 옆에 가만히 앉더니 눈을 맞추며 내게 말했어요.
"어때? 나랑 같이 가지 않을래? 네가 원한다면 말이야.”
그리고 내 몸을 가만 가만 쓰다듬었어요. 그리고 조심스럽게 저를 품에 안았어요. 그 사이 그사람과 같이 있던 또 한 사람이 다가와 목을 감고 있던 답답한 목줄을 끊고 나를 작은 담요로 감싸주었어요. 둘은 담요에 감싼 저를 토닥였어요. 나는 그렇게 따뜻한 품이 있다는 걸 처음 알았어요. 추운 날이면 잔뜩 웅크리고 빨리 아침이 되길 기다리며 밤새 견디거나 너무 더운 날은 풀밭에 누워 잠들려면 왠지 허전함을 느꼈지만, 왜 그런지 몰랐거든요. 나도 모르게 그 따뜻한 품에서 잠시도 떨어지고 싶지 않다는 생각에 그 팔을 꽉 잡았어요. 그리고 가만히 그 품에 얼굴을 묻었어요. 그러자, 그 사람은 저를 폭 안으며 이렇게 말했어요.
“가자, 이제 더 이상 밖에서 살지 않아도 돼....”
내 이름은 개곱단
그 후 어떻게 되었냐고요? 그 사람이 우리 엄마가 되었어요. 추운 날도 더운 날도 나는 엄마 품에서 잠을 자요. 우리 집에는 맛있는 밥과 깨끗한 물이 항상 나를 위해 준비 돼 있어요. 나를 보며 미소 지어주는 엄마를 보면 자꾸 어리광을 부리고 싶어져요. 눈에 남은 하얀 상처를 보며 안쓰러워하는 엄마를 보며 품에 안겨 낮게 그르릉거리기도 해요. 이제 엄마가 내 이름을 부르며 폭 안아주면 세상 어떤 것도 부럽지 않아요. 하얀 털을 가진 오빠도 둘이나 생겼어요. 개구쟁이 오빠들은 가끔 엄마한테 혼나기도 하지만 전 오빠들이 있어서 좋아요.
엄마는 집에 돌아오면 항상 나부터 안아주세요. 그러면 나는 엄마 코에 살짝 뽀뽀를 해준답니다. 저 이만하면 이제 행복한 거지요? 제가 죽을 때까지 엄마는 절 지켜 준대요. 언제까지나 함께 살 거래요. 참, 이제 이름도 생겼어요. 제 이름은 곱단이에요. 곱고 단아하게 살라고 울 엄마가 지어준 내 이름이요. 난 내 이름이 무척 맘에 들어요. 나는 이제 누구도 부럽지 않은 행복한 강아지랍니다.
-곱단이는 2006년 겨울에 구조해 1년 9개월을 살다가 급성 빈혈로 떠난 아이입니다. 제가 처음 구조한 아이였고, 제게는 첫 딸과 같은 아이였습니다. 아마 천국에서 별처럼 빛나는 모습으로 저를 지켜주고 바라보고 그리워하고 있을 거에요. 저도 그렇거든요. ^^
CREDIT
글 사진 이유성
에디터 이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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