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연대기
서로 닮는다는 것
전혀 다른 우리
우리 가족은 모두 말이 많고 활발하다. 목소리도 우렁차고 맛있는 것을 보면 사족을 못 쓴다. 그래서였을까? 우리 집에 왔던 모든 강아지들은 식탐, 목청, 활동량이 엄청났다.
그러나 1살 먹은 수컷 장모 치와와, 제리는 우리가 키워 온 강아지들과 달라도 너무 달랐다. 제리는 소리 내어 짖은 적이 없다. 활발하지도 않아 장난감 하나도 갖고 놀지 않았다. 생후 3개월에 나타나는 이갈이 증상도 조용히 넘어갔다. 또한, 식탐도 없다. 사료를 산더미처럼 쌓아 놓아도 한 알씩 손으로 굴려서 생존에 필요한 몇 알 정도만 겨우 먹을 뿐이었다. 각종 간식으로 유혹해보았지만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심지어 산책도 싫어했다. 아니, 몸을 움직이는 것 자체를 귀찮아했다. 우리는 놀아달라고 조르고, 제리는 귀찮다고 고개를 돌려 잠을 청했다. 제리는 우리 가족과 달리 표정도 우울했다. 눈은 큰데 눈꼬리가 쳐져있어 좋게 말해 우수에 찬 듯 했고 현실은 울상이다.
우리는 제리에게 효도하고 있는 판이었다. 제발 밥 드셔주세요. 산책 한 번만 해주시겠어요? 이 간식은 마음에 드시나요? 제리는 불러도 쳐다보지 않고 사람이 집에 들어와도 나오지 않는 상전이었다. 이전 강아지들은 만지면 좋아서 오줌을 지리기도 했었는데 이녀석은 콧물을 한바가지 뿜어내곤 만지지 말라는 티를 팍팍 내며 고개를 돌렸다.
닮아가는 우리
제리는 강아지다운 구석이 별로 없었다. 재롱을 부리지도, 사람을 좋아하지도, 싫어하지도 않으면서 감정을 표현하지도 않는다. 제리는 문 앞까지 마중도 나오지 않는다. 고개만 빼꼼 내밀고 ‘가냐? 잘 가라!’ 하고는 자기 볼일을 보러 방에 들어간다. 다행히도 최근 우리 가족은 바쁘다보니 녀석의 이런 시크함이 우리에게 힘이 되었다. 홀로 두고 갈 때 느껴야하는 죄책감과 걱정도 없다.
대신 제리는 우리에게 활동성과 웃음, 먹성을 배워가고 있었다. 한 달 여쯤 지났을까. 제리는 조금 변해있었다. 우거지상에서 눈이 수평을 좀 찾았다. 큰 눈이 청승맞지 않고 앙증맞아졌다. 사료도 한 알씩 굴려먹지 않고 제법 먹는 횟수도 늘어 오도독 맛있게 먹었다. 제일 신기한 것은 제리가 집에서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걷기에서 조금 뛰기도 했다. 슬슬 뒷다리를 들더니 마킹도 신나게 해댔다. 늘 쿠션 위에서 잠만 자던 녀석이 나와서 움직이니 처음에는 신기하다 했는데 이제는 영역 표시를 해대며 사고를 치니 골치가 아프다. 감사하게도 식탁만 공격해서 그나마 치우기는 수월했다.
처음에는 뭐 이렇게 시크하고 우울한 강아지가 있나 생각했지만 1년여가 지난 지금 우리와 제리는 조금씩 닮아가고 있었다. 이제 제리는 더 이상 울상이 아니다. 영상통화를 하면 반갑게 꼬리를 흔들어주고 전화기를 향해 돌진할 만큼 우리에게 적극적이다. 우리는 제리가 원하는 만큼 넘치지도 부족하지도 않게 애정을 쏟는다. 처음에는 뭐 이렇게 시크하고 우울한 강아지가 있나 생각했지만 1년여가 지난 지금 우리와 제리는 조금씩 닮아가고 있었다.
가족이란, 서로 닮는다는 것
얼마 전, 놀라운 소식을 들었다. 제리가 의자에서 점프해서 내려오다가 다리가 부러졌다는 것이다. 그동안 제리가 얼마나 활동적으로 변했는지 느낄 수 있었지만 뼈가 너무 가늘어 붙기 힘들다는 소식은 마음이 아팠다. 마침 엄마의 해외 출장이 잡혀있어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우리 집 가족들은 뼈대도 굵고 다들 운동을 하는 몸이라 회복력이 엄청난데 제리는 평소 운동으로 근육이 다져진 몸이 아닌지라 동강 난 뼈를 잇는 수술이 불가피한 상황이었다.
그로부터 일주일 후, 우리는 병원으로부터 기적 같은 소식을 듣게 되었다. 뼈가 붙을 수가 없는 상황이었는데 붙었다는 것이다. 병원에서도 깜짝 놀랐다. 엄마는 제리가 너무 너무 기특하다며 엄마 걱정하는 거 알고 잘 다녀오라고 나은 것이라 했다. 물론 말이 안 되는 이야기이다. 하지만 나도 모르게 제리가 점점 우리 가족과 깊이 연결되어 가고 있다, 닮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와 남편은 휴가 일정을 제리 병간호에 쓰기로 하고 당분간 집에 머무르기로 했다. 다리가 붙었다곤 해도 나은 것은 아니니 산책을 시킬 수는 없겠지만 콧바람이라도 쐬어줄 수 있을 것 같아 평소 제리가 쏙 들어가는 슬링백도 하나 챙겨두었다. 항상 내가, 내 스케줄이 우선이었는데 나도 참 많이 달라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족이라는 것은 그런 것일까. 전혀 다른 생활 습관, 성격을 가지고 있어도 어느새 서로 필요하거나 부족한 부분들을 채워주고 있었다. 혼자였을 때 완전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함께할 때 우리는 완전함을 누릴 수 있는 것이다. 이 작은 생명이 우리에게 생각이라는 것을 하게 해 주고, 대화의 공통점이 되어주고, 기쁨과 슬픔 또는 감동을 선물해주기도 한다.
제리에게 우리는 어떤 의미일까? 우리가 함께한다는 것이 어떤 가치가 있길래 우리를 닮아가는 것일까? 비록 서로 같은 언어로 대화할 수는 없지만 우리는 함께하며 서로 없었던 부분들을 나눠주고 채워주며 살고 있다.
첫 만남으로부터 1년
이제는 제리의 성격과 생활 패턴이 고맙고 기쁘다. 제리가 우리의 노력과 애정을 기뻐해주는 것 같아 행복하다. 서로의 다름과 닮음이 주는 화목함은 처음에 겪었던 당혹스러움과 이질감을 깨끗이 녹여주었다. 첫 만남이 앞으로의 모든 시간을 결정할 수는 없다. 함께 한다는 건 끊임없는 쌍방의 노력이라는 영양분을 필요로 한다. 제리를 선택한 우리와 우리를 받아들여준 제리가 함께 만든 오늘이라는 귀한 시간들과 서로의 최선이 쌓여서 미래의 어느 날 또 다른 기분 좋은 닮음을 발견하길 기대해 본다.
CREDIT
글 사진 이재원
에디터 이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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