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 E A R M Y F A T H E R
아빠가 긴 여행을 떠나고
여전히 찾아온 6월

피리 부는 사나이
나는 아빠를 ‘피리 부는 사나이’라고 부르곤 했다. 15살 노령견 보름이와 4살 보리는 유독 아빠를 잘 따랐다. 집안 곳곳 아빠가 발 닿는 곳을 졸졸 따라다녔다. 아이들이 아빠를 잘 따라 다니는 이유 중 하나는 아빠가 간식을 잘 주셨기 때문이다. 아빠가 외출을 할 때면 둘은 현관문 앞에서 아빠가 돌아오실 때 까지 기다리곤 했다. 나는 그런 모습이 꼭 피리 부는 사나이 같아 아빠를 놀리곤 했다.
아빠는 캣대디가 되기도 했다. 16년 겨울, 임신한 고양이를 그냥 지나칠 수 없었던 아빠는 엄마 몰래 고양이를 챙겨주기 시작하셨다. 고양이가 출산한 이후에도 아빠의 캣대디는 계속 되었다. 하지만 봄이 오기 전, 시리고 추운 겨울을 버티기 힘들었던 고양이들은 애석하게도 동사했다. 냉장고에는 아빠가 챙겨주지 못한 고양이들을 위한 것들이 남아있었고 아빠는 한동안 고양이 이야기를 하지 않으셨다. 아빠는 강아지 고양이를 좋아하셨고 예뻐하셨다. 그런 아빠였다.
둘은 함께 늙어갔다
내가 중학교 2학년 때, 기분 좋게 술에 취한 아빠가 흥얼거리며 강아지 한 마리가 담긴 박스를 들고 비틀비틀 집으로 오셨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아빠가 술김에 사 오신 박스 속 강아지는 ‘보름’이가 되었고, 지금 보름이는 15살의 노령견이 되었다. 노령견이 된 보름이는 백내장으로 시력을 잃어갔고, 아빠는 암으로 시력을 잃어갔다. 시간은 지체 없이 흘러 둘의 시간을 잡아먹는 것처럼 아빠와 보름이는 그렇게 함께 늙어갔다.
지난해 유난히 더웠던 여름이 지나고 가을 무렵부터 아빠는 집보다 병원에 계시는 시간이 많아졌다. 망할 놈의 암세포가 아빠를 다시 잡아먹기 시작했다. 아빠는 병원에 있는 동안 흐릿해진 시야로 보름이의 사진을 보시곤 했다. 보름이는 현관 앞에서 언제 돌아올지 모르는 아빠를 망부석처럼 기다리다가 아빠의 체취가 남은 베개에서 눈을 붙이곤 했다.
아빠가 긴 여행을 떠나다
지난해 10월 추석을 며칠 앞두고 아빠는 긴 여행을 떠나셨다. 아빠가 떠난 후 집은 적막하기 그지없었다. 아빠는 여전히 거실 소파에서 보름이와 보리를 양옆에 앉힌 채 TV를 보고 계실 것 같았다. 이별이 실감나지 않은 엄마와 나는 내내 울기만 했고, 보름이는 그 옆에 멀뚱히 앉아 있었다. 아빠가 긴 여행을 떠나신 지 8개월이 지났다.
아빠가 긴 여행을 떠났다는 것을 보름이가 아는지 모르는지 나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보름이는 오늘도 엄마가 아직도 버리지 못한 아빠의 베개 위에서 잠을 청한다.
분홍 철쭉이 가득 피고 초록 잎이 가득한 6월. 작년 이맘때 보름이와 산책 중이시라며 사진을 잔뜩 보냈던 우리 아빠. 자고 일어나 눈을 뜨면 모든 것이 꿈일 것만 같은 날들이 지나고, 아빠가 긴 여행을 떠난 후에도 여전히 6월은 찾아왔다.
“아빠 잘 있지? 엄마도 나도 그리고 보름이도 아주 잘 지내고 있어.”
CREDIT
글 조푸름 사진 구현회
에디터 김지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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