펫찌 X 네이버 포스트1
단순한 일상에서 벗어난
밤요 가족의 여행기
몽롱한 여행길에 오르다
SNS를 자주 들여다보게 된 것은 밤요(밤바와 요다) 남매를 키우면서다. SNS는 또 다른 세상이었다. 수많은 사진 중 유독 눈에 띈 건 단연 아이들과 떠난 여행 사진들이었다. 사진 속 친구들의 얼굴에서 평소보다 더 멋진 미소와 행복감이 느껴졌고, 나는 왜인지 자주 챙겨 보게 되었다.
남편은 줄곧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며 내 옆에서 TV만 멍하게 보고 있었다. 타인의 사진들을 남몰래 간직했던 나는 마침내 속내를 거침없이 꺼냈다. 남편한테 핸드폰을 들이밀며, 그동안 저장했던 여행후기 사진을 보여줬다. 그리고 말했다.
“이번 주, 애들이랑 바다 놀러 갈래!”
행동은 생각보다 추진력이 있었다. 남편은 흘러가는 대로 나를 따라와 줬다. 우리는 SNS에서 알려주는 정보 그대로 해보자는 식으로, 기상시간부터 철저하게 따라했다. 아침잠이 너무 많은 나는 생애 처음으로 새벽 4시에 일어났다. 두 손으로 꼬-옥 쥔 핸드폰 안에는 우리가 벤치마킹할 정보들이 저장되어 있었다.
주머니에는 지갑과 밤요남매의 리드줄, 배변봉투뿐 이었다. 준비물을 챙기면서 나는 '이거면 되지 않아?'라는 표정으로 남편을 쳐다봤고, 남편도 '편의점 있겠지, 뭐'라는 표정으로 나를 보았다. 그렇게 우리는 몽롱했지만 기분만은 들뜬 상태로 당일치기 바다 여행길에 나섰다.
무계획 당일치기 여행에 닿다
서울에서 출발해 2시간 만에 도착한 첫 동해바다. 첫 인상은 매우 한적했다. 밤바와 요다는 왕왕 짖으며, 리드줄을 풀어달라고 했다. 리드 줄을 놓자 아이들은 기다렸다는 듯 리드줄이 바닥에 떨어지기도 전에 바다로 뛰어들었다. 그 모습에 덩달아 나와 남편도 아이들 뒤를 따라 뛰었다.
밤바는 겁도 없이 다가오는 파도에 몸을 맡겼다. 첫 주자로 바다에 입수한 밤바와는 달리 요다 녀석은 난생 처음 보는 파도에 짖느라 바빴다.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파도가 정말 살아 움직이는 무엇으로 인식한 모양이었다. 백사장에 앉은 요다는 파도가 높을수록 목소리가 더 커졌다. 한동안 우리 가족은 옷이 다 젖는 줄도 모르고 해변을 뛰어다녔다.
빈손으로 부딪힌 난관
마음만큼 내 체력은 괜찮지 않았다. 신나게 더 놀고 싶은데 정도를 넘은 사람처럼 몸은 지쳐갔다. 본격적인 물장난을 한 것도 아닌데 허기가 졌고, 젖은 옷자락과 바람이 만나면서 으슬으슬 춥기까지 했다. 주위를 둘러보니 그 흔한 슈퍼, 편의점 하나 없었다. ‘당연히 가게 하나는 있겠지’란 낙관이 문제였다. 그때 내 머릿속에 스쳐 지나간 생각은 하나였다.
“망했다!”
집에서는 흔하디흔한 수건이 너무도 절실했다. 차 안을 아무리 뒤져봐도 수건 한 장 찾을 수 없었다. 여벌옷을 챙기지 않아 젖은 옷을 입고, 식당을 가야했다. 하지만 허기고 뭐고 추위에 벌벌 떨고, 체력이 급격히 떨어져 어디든 갈 수 없었다.
털이 젖은 밤바와 요다는 힘겹게 차에 올랐다. 아이들의 몸에서 뚝뚝 떨어지는 물 때문에 차안은 금세 더러워졌다. 벌벌 떠는 나, 더러워진 시트를 보던 남편의 표정을 아직까지 잊지 못한다. 천하태평 했던 생각을 반성하며, 나는 남편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에둘러 얘기했다.
없던 경험으로 하나하나 채워가다
무계획 당일치기 바다여행이 준 여파가 지나갈 때쯤, 나는 다시 용기를 냈다. 이번에는 계획을 촘촘히 세워서 여행을 떠나보기로 한 것이다. 그렇게 작성한 계획 일정을 남편에게 보여줬다. 피식 웃던 남편은 “그래, 한 번 더 가보자”며 긍정적으로 대답했다. 드디어 그날이 다가왔고, 두 번의 실패는 없다고 되뇌며 준비물을 챙겼다.
우선, 수건을 챙겼다. 여벌옷을 배낭에 넣고, 밤요남매의 차량용 켄넬도 준비했다. 일단 이렇게 챙긴 것만으로도 차 안이 더럽혀지는 불상사를 막을 수 있었다. 그리고 바다에서 안전하게 놀기 위해 아이들의 구명조끼를 챙겼다. 더불어 물에 뜨는 장난감도.
한참동안 주섬주섬 챙기는 모습을 본 남편은 갑자기 가스레인지에 냄비를 올려놓더니 달걀을 삶기 시작했다. 내 눈빛을 읽은 남편이 이렇게 말했다. “저번에 너무 배고프더라, 간식도 챙기자!” 남편과 나는 이전의 경험을 토대로 부족한 부분을 하나씩 하나씩 맞춰갔다.
항시 대기하는 에코백, 우리
그렇게 떠난 두 번째 여행. 실패했던 첫 번째 여행을 통해 배운 것들을 계획, 준비한 덕에 별 탈 없이 즐겁게 다녀왔다. 밤바와 요다도 두 번째 경험이어서 그런지 이전보다 훨씬 자연스럽게 바다를 마주했다. 그리고 우리는 세 번째, 네번째 여행을 떠났다.
여행 경험만큼 우리의 여행 준비도 능숙해졌다. 이전에는 손에 쥐어진 거라고는 핸드폰이 전부였던 나는 이제 우리 가족이 정말 필요한 물품이 무엇인지, 여행 가방에 무엇을 넣어야하는지 알게 되었다. 어디를 가든 편의점에 의지하려던 남편도 이제는 우리 가족을 위한 음식을 챙기는 법을 알았다.
밤요남매는 꼭두새벽에 일어나 여행 가방을 챙기는 나와 남편을 보면 곧 떠날 여행길에 누구보다 신나서 어쩔 줄 모른다. 여행은 우리 가족에게 활력을 불어넣는 삶의 중요 계획이다. 지금 우리 집에는 두 개의 큰 여행용 에코백이 항시 대기하고 있다.
본 기사는 <매거진P>에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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