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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몬드, 좋아하세요?

  • 승인 2018-04-23 15:2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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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NKPET

다들 나를 위해서 낳으라고 한다.
“애가 있어야 부부관계가 돈독해진다”, “늙으면 외롭다”...
왜 애를 위해서 낳으라는 사람은 없는 걸까. 나 대신 걱정이 많은 이들에게 말한다.
“난 지금 너무 행복해요. 그러니 내 인생 걱정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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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요, 우리 딩펫족입니다

딩펫. 자녀 계획이 없는 맞벌이 부부를 뜻하는 딩크(DINK: Double Income No Kids)와 반려동물을 뜻하는 펫(Pet)이 합쳐진 말이다. 한 마디로 아이를 낳지 않고 반려동물과 함께하는 삶을 선택한 맞벌이 부부. 맞벌이는 아니지만 골자는 맞다. 이현아 씨 부부 이야기다.

2015년 4월 16일. 개에 미친 여자, 일명 ‘개미녀’와 까칠 털털한 군인이 함께 살기로 했다. 이현아 씨와 한상욱 씨 부부는 처음엔 딱히 “절대 애는 낳지 말자”는 건 아니었다. 다만 부부는 둘 다 아이라면 질색이었다. 맛있는 식당을 가도 아이가 있으면 나올 정도였다면 설명이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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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고 싶은 곳 가고, 먹고 싶은 것 먹고, 취미도 즐기면서. 지금도 하루하루 행복한데 아이를 꼭 낳아야 할까? 꼭 그렇게 정해진 듯 살아야 하나? 대화의 끝에는 자연스레 그냥 우리끼리 살아도 행복하겠다는 생각이 맺혔다.

양가 부모님이 반대하진 않으셨냐고? 지하철에 파김치마냥 앉아 있는 젊은 부모들이 안쓰러우셨는지, 오히려 아이 없이 술술 살라고 하셨다. 너희 인생이니 편할 대로 하라고. 참 쿨한 부모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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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니핀 아롱이, 믹스견 몬드. 둘이 합쳐 아몬드!


아들딸 낳지 않기로 한 현아 씨 부부지만 사실 딸을 둘이나 키우고 있다. 첫째 딸은 올해로 벌써 열다섯. 2004년, 현아 씨가 스물한 살이던 해에 길에서 만나 서른다섯이 된 올해까지 함께하고 있는 미니핀 아롱이다.


그녀는 아롱이와 함께하며 ‘더는 강아지 못 키우겠다’고 생각했다. 아이들의 삶은 턱없이 짧다. 인생의 3분의 1을 함께해 이제는 내 일부가 된 아이를 어느 날 도려내야 한다니. 헤어짐을 도저히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았다. 무엇보다 그 어떤 아이도 아롱이만큼 사랑할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둘째를 들이는 대신 길 위의 천사들을 만나러 다녔다.


시흥 엔젤홈에서 봉사를 하던 어느 날, 소장님이 꽃도장 하는 아이가 있다며 세면실에 격리해달라고 했다. 말이 세면실이지 농수가 흐르고 곰팡이가 핀 데다 쥐와 지네까지 기어 다니는 열악한 환경. 걸레 빨러 다녀갈 때면 아이들이 자기 좀 꺼내달라고 야단치는 곳에 한 아이만 가만히 앉아있었다. 그 습한 바닥 위에, 다 체념한 눈빛으로.


강아지가 150마리도 넘게 있는 보호소에서 왜 그 아이만 그리 눈에 밟히던지. 그 모습이 기억에 남아 집에 와서 꿈까지 꿀 정도였다. 신랑 상욱 씨와 상의한 후 임시 보호만 맡자고 다음 날 데려왔는데, 정신 차려 보니 입양 계약서를 쓰고 있었다. 그렇게 2015년 8월 31일, 몬드는 이 집 둘째 딸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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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이 변했다. 아내는 원래 그랬고


원래 상욱 씨는 ‘개는 개처럼’ 주의였다. 개는 절대 침대에 올리면 안 돼. 개한테 유난 떨지 마. 그런데 둘째 몬드가 온 후로 사람이 180도 바뀌었다. 이제 눈을 감으면 속눈썹 끝에 두 딸이 어른거리고, 아몬드라는 단어만 들어도 밋밋한 입가에 웃음이 번지는 그다.


급기야는 퇴근하면 아내보다 몬드를 먼저 찾기 시작했다. “몬드야 아빠한테 와”하고 아빠 소리까지 한다. 몬드 얼굴에 뽀뽀를 퍼붓는 건 덤이다. 아롱이와 몬드에게 소홀해질까 봐 “원래 아이를 안 낳으려고 했지만, 더욱 격하게 낳지 말아야겠다”는 상욱 씨. 그가 이렇게 변하리라고 누가 감히 예상했을까.


현아 씨도 아이들 사랑은 남편 못지않다. 아이들 건강을 위해 닭발, 오리 목뼈 등 생식 재료로 정성껏 간식을 만들고, 영양제도 부부보다 더 많이 챙겨 먹인다. 하루 24시간을 몽땅 아이들로 채워 보내는 그녀. 오히려 자신이 분리불안인 듯하다며 눈꼬리를 접는 것이, 정말 어쩔 수 없는 개미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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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몬드, 우린 없으면 못 살아요


여름에는 애견수영장에 가거나 해변에서 캠핑하고, 가을에는 애견 동반 글램핑도 가고. 아롱이가 노견이라 이제 장거리는 무리지만, 함께라면 소소하게 동네 한 바퀴 도는 것도 행복하다. 지금이 더없이 만족스럽다는 부부.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없냐 물으니 이렇게 답했다. “두 아이 모두 유기견을 입양했는데 어찌나 예쁜지 몰라요. 유기견에 대한 인식이 바뀌었으면 좋겠어요. 이렇게 사랑스럽다는 걸 다들 알아줬으면 해요. 어때요? 우리 아몬드. 정말 사랑스럽죠?”

작은 생명에게 한껏 물든 마음, 끝이 아득한 그 사랑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아몬드 가족을 인터뷰하는 내내 필자의 머릿속에는 이런 생각이 맴돌았다. 어찌 배 아파 낳은 자식만 자식일까. 가족을 구성하는 데에 종의 구별이 정말 중요할까? 그리고 종내는 이런 결론에 닿았다. 이들이 ‘전통적인’ 가족은 아닐지라도, 어쩌면 이들이야말로 ‘이상적인’ 가족일지도 모른다고.


CREDIT
자료?협조 이현아
에디터 강한별


본 기사는 <매거진P>에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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