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RI IN NEWYORK
어느 추운 날 센트럴파크에서 빚은
반짝이는 구슬 하나
길에서 반려동물 촬영을 하다 보니 아무래도 손이 시린 날보다는 따뜻한 날에 카메라를 들고 돌아다니는 게 훨씬 좋다. ‘나도 개들처럼 털이 북슬북슬하면 더 자주 야외촬영을 할 수 있을까’라는 웃긴 상상을 하며 길을 나섰다.?
무미건조한 하루. 거리를 터벅터벅 걷다가도, 우연히 마주치는 개들의 살랑이는 발걸음을 보고 있자면 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어제는 눈이 펑펑 오더니 주말인 오늘은 날이 따뜻하다. 모두가 산책을 즐기러 나올 거라는 생각에 낡은 필름 카메라를 들고 밖으로 나가기로 했다. 길에서 반려동물 촬영을 하다 보니 아무래도 손이 시린 날보다는 따뜻한 날에 카메라를 들고 돌아다니는 게 훨씬 좋다. ‘나도 개들처럼 털이 북슬북슬하면 더 자주 야외촬영을 할 수 있을까’라는 웃긴 상상을 하며 길을 나섰다.
카메라를 목에 건 채 향한 곳은 센트럴 파크. 회색빛 아스팔트 길이 온통 새하얀 눈으로 뒤덮인 모습을 보고 있자면, 이곳이 왜 그토록 많은 로맨스 영화의 촬영지가 되었는지 단번에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멋진 센트럴 파크라도 추운 겨울은 못 이기는 걸까. 차가운 눈을 밟으며 한참을 거닐어도 산책하는 개들을 찾을 수 없었다.
허탕을 치고 돌아갈까 봐 조금 염려되기 시작하려는 찰나, 저 멀리 눈만큼이나 북슬북슬해 보이는 연갈색 빛 털들이 뭉텅이로 이리저리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터벅터벅 걷던 발걸음을 잽싸게 옮겨 털 뭉치를 향해 다가갔다. 가까이서 보니 그 정체는 역시나 개들. 런웨이의 모델을 연상시키는 네 마리의 롱다리 푸들이 맵시를 뽐내며 일렬로 서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내가 촬영하는 동안 지나가던 사람들 모두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그냥 지나칠 수 없었던 모양이다. 어린아이의 덩치보다 큰 이 푸들들이 유난히 눈에 띈 것은, 아마도 잘 뻗은 자태와 대조적인 양처럼 곱슬거리는 귀여운 털 덕분이 아닐까. 이곳에서 거대한 푸들이 인기가 많은 이유를 조금이나마 알 것 같았다.?
만나서 영광이라는 생각이 들 만큼 멋진 친구들을 만나 내 발걸음도 산책하는 개들처럼 가벼워졌다. 푸들들을 뒤로 한 채 공원을 천천히 걸으며 필름을 갈고 있는데, 골든래트리버 한 마리가 꼬리를 살랑이며 공원 한구석을 뛰어다니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한국에 있는 나의 골든래트리버 몽이가 겹쳐 보였다.
목줄이 없는 개를 보기 쉽지 않은 뉴욕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골든래트리버가 혼자 신나게 뛰어놀고 있다니! 마음이 다급해졌다. 필름을 채 다 감기도 전에 내 발은 이미 그 아이에게 다가가고 있었다. 계단 위를 보니 혼자인 줄 알았던 개는 여성분과 함께였다. 사진 촬영 허락을 구하고 사진을 찍으려는데 위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 친구 이름은 맥스에요. 간식 한번 줘볼래요?”
영어에 “(You) made my day”라는 말이 있다. 어떤 사건이나 무언가가 하루를 멋지게 만들어줬다는 뜻이다. 오늘은 여성분이 건네준 아주 조그마한 간식 덩어리가 내 하루를 멋지게 만들어줬다. 센트럴 파크를 나가 다시 거리로 돌아갈 때까지 나는 여성분과 맥스와 함께 걸었다. ‘어제 눈이 왔으니까’, ‘센트럴 파크는 멀어서’라는 이유로 촬영을 나오지 않을 뻔했던 내게 “거 봐, 나오길 잘했지?”라고 누군가 속삭이는 것 같았다.
나에게 반려동물 사진을 한 장 한 장 찍어나가는 일은 영화 인사이드 아웃에서처럼 기억 구슬을 하나하나 모으는 것과 같다. 주말 동안 내가 모은 구슬 속에는 나와 개들이 함께 밟았던 뽀득이는 새하얀 눈, 사진기를 호기심 어린 눈으로 바라보던 그들의 얼굴, 망울망울한 눈동자, 그리고 내 손에 쥐어졌던 자그마한 간식 덩어리가 담겨 있다.
봄이 코앞에 다가온 오늘. 아직은 발아래 눈이 차갑게 느껴지지만, 곧 찬란한 색상들로 가득한 봄이 올 것이다. 2018년 봄이라는 구슬들에는 어떤 반려동물의 이야기가 담길지 벌써 설렌다.?
CREDIT
글 사진 박모리
에디터 강한별
본 기사는 <매거진P>에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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