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CUS
진료비 '정'해드릴게요
Based On True Story
하나.
예상지 못한 사고가 일어난 건 어둠이 짙어지던 초저녁이었다. 두 마리 푸들과 함께 지내는 조용한 집은 한 녀석의 짖음으로 가득 찼다. 평소와 달랐던 짖음은 다른 녀석의 상태를 급히 알렸다. 푸들 한 마리는 제 몸을 거두지 못해 그대로 바닥에 곤두박질쳤다. 가까이 다가가자 아이는 눈을 깜빡거리며 침을 질질 흘리고 있었고, 몸이 점점 경직되고 있었다. 나는 아이를 품에 안고, 굳은 다리를 부드럽게 주물렀다.
사실, 아이의 증상은 이번이 세 번째였다. 몇 달 전에도 똑같은 증상을 보였던 푸들은 부드럽게 마사지를 받고, 20분이 지나자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정상적인 상태로 돌아왔었다. 몇 달 간격으로 이상 반응을 보였지만 이번에는 그 간격이 불과 한 달 정도여서 아무래도 안 되겠다 싶었다. 녀석을 안고 인근 동물병원으로 뛰어갔다. 그러나 수의사 앞에 서서 진료를 하려하자 아이는 이미 본래의 정상적인 모습으로 돌아와 있었다.
이전에 보였던 증상들과 불과 몇 분전까지의 아이의 상태를 상세하게 설명했다. 진료는 15분간 이어졌다. 결론은 피검사와 MRI검사를 통해 아이의 뇌에 이상이 있는지, 있다면 그 원인이 무엇인지 알 수는 있지만 치료법이 아직 발달하지 않아 치료가 불가능하다는 것이었다. 반려인이 할 수 있는 건 발작을 예방하는 약을 매일 먹이는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카운터에서 진료비 계산을 하려는데, 직원이 얼마를 받아야하냐고 수의사에게 물었다. 진료비는 그 자리에서 정해졌다.
둘.
얼마 전, 아이의 스케일링이 필요하다는 소견을 받았다. 거주지 근처에 위치한 몇몇 동물병원에 전화 걸어 스케일링 비용을 문의했다. 가격은 천차만별이었다. 마취를 포함한 스케일링은 크게 10만원까지 차이 났다. 비교적 저렴한 가격을 불렀던 동물병원. 그곳은 지인의 추천으로 알게 된 곳이었다. 나는 마취에 쓰이는 약품과 스케일링을 하는 수의사의 자질이 그렇게 큰 가격 차이를 불러오는 것인지 문득 의아스러웠다. (실제 경험을 토대로 재구성 된 이야기)
어긋난 방향, 또 다른 상황
동물병원마다 운영하는데 들어가는 비용은 가지각색이다. 진료비는 건물 임대비나 인건비 등에 의해 적용된다. 이러한 이유는 마치 동물병원의 진료비를 합리화시키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는 동물병원 진료비를 결정하는 근본적인 원인이 아니다.
1999년 정부는 자율 경쟁을 유도하기 위한 방편으로 의료수가를 낮추겠다는 취지의 기존 ‘동물 의료수가 제도’를 폐지했다. 이후, 동물병원의 자율에 맡겨진 진료비는 지금에 이르게 되었다. 똑같은 진료 항목이 병원마다 다른 것은 제도의 폐지에서 비롯된 것이다.
미흡한 제도는 반려인뿐 아니라 일부 동물병원 수의사의 골머리도 앓게 만들었다. 최근 한 온라인 매체(이하 뉴스타파)는 지역 수의사회에서 지정한 의료표준수가에 따르지 않는 동물병원이 수도 없이 제재를 당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그들이 제재를 당한 이유는 다른 동물병원들의 수익을 뺏는 진료 유인행위라는 명목에서였다. 정부에서 의료수가를 낮추겠다는 취지의 제도폐지가 또 다른 상황을 유인한 셈이 되어버린 것이다.
멈추지 않을 흐름
반려동물 진료비에 대한 논의가 본격화 되는 분위기가 이렀던 시기가 있었다. 작년, 민경욱 의원(자유한국당, 인천 연수구을)이 동물의료비용체계 개선을 위한 동물보호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법안에는 반려동물 등 동물의료비 부담 해소를 위해 농림축산식품부 소속의 동물복지위원회에서 동물의료에 소요되는 표준비용을 연구·조사하고, 동물의료비 절감을 위한 보험제도를 활성화하는 등 동물의료비용체계를 개선하도록 하는 내용이 담겼다.
대선 기간에는 문재인 대통령이 반려동물에 대한 공약을 걸었다. 그 중 첫 번째 공약이 ‘동물병원 진료비’에 대한 내용이었다. 1. 동물병원 치료비에 자율적 표준 진료제를 도입하며 시민의 알 권리 보장 2. 동물의료협동조합 등 반려동물 주치의 사업 활성화 지원 이라는 두 개의 공약을 발표했다. 또한 중성화수술, 백신접종 등 일부 진료항목에 대해서는 수의계에서 먼저 표준수가를 제시하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다는 의견까지 공개적으로 피력했다.
반려동물 담당 부처인 농림축산식품부는 ‘반려동물 산업 활성화를 위한 소비자 진료비 부담 완화 방안 연구용역’을 시행중이다. 연구용역을 수행중인 한국수의임상포럼(KBVP)은 동물병원 표준진료수가제, 반려동물 보험 활성화 방안, 진료비 공시제 등을 연구하고 있다. 작년 연말에는 「반려동물 진료비 소비자 부담 완화 방안」 정책 수립을 위해 반려인들을 초청해 토론을 열기도 했다.
부정할 수 없는 현실
반려인들의 관심은 ‘반려동물 진료비가 비싸고 이 때문에 보호자들의 부담이 크다’는 전제에서 시작됐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다. 사실, 국내 반려동물 진료비는 해외 동물병원 진료비와 비교했을 때 비싸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세계 최고 수준의 의료보험제도 때문에 상대적으로 비싸게 느껴지는 측면이 강하다.
외국의 경우는 진료비를 결정하는 두 가지 제도적 체계를 갖고 있다. 각각 ‘공시제’와 ‘수가제’다.
미국, 캐나다, 중국의 경우는 공시제를 시행하고 있다. 공시제는 정부와 수의사회가 각 동물병원 진료비를 수집해 진료비용을 소비자에게 공시한다. 일본의 경우는 민간 보험사에서 일부 진료비를 공시하고 있다.
독일의 경우에는 진료비의 상·하한가가 정해져있는 표준수가제를 시행하고 있다. 정해져있는 정도 안에서 동물병원들끼리 자율경쟁을 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은 어떨까? 한국은 두 가지 제도 중 어느 제도도 갖추지 않고, 수의사회가 동물 진료비를 책정하게 만들었다.
제도가 없어 가이드라인을 잡아 질서를 바로 세우려는 수의사의 입장에서는 다소 억울할 수 도 있다. 하지만 반려동물 진료비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인식이 그렇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다. 대통령의 공약에도 걸릴 만큼 진료비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은 높다. 국내외적으로 이슈가 연이어 터지는 지금.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동물 복지에, 무엇보다 동물과 공존하는 우리 사회의 복지에 대해 관심을 갖고 있다. 하루 빨리 제도적으로 보완되어 복지가 개선되길 기대한다.
CREDIT
에디터 박고운
본 기사는 <매거진P>에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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