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BY & DOG
나의 육아 동반자, 까노
아기가 4개월에 접어들었을 때는 창가로 들어오는 햇살에서 따스함이 느껴질 정도로 봄이 부쩍 다가와 있었다. 우리는 처음으로 집 앞으로 산책을 나가보기로 했다.?
나름 패턴이 생긴 육아 생활
아기가 신생아일 때에는 혼란스러움의 연속이었다. 이제 좀 안정이 되었나 싶으면 예상지도 못한 일들이 생겼다. 새로운 식구가 생긴 환경에 까노뿐 아니라 나 역시 적응해가는 시기였다. 두 달쯤 지나자 정신없던 육아 생활에 나름 패턴이 생기게 되었다.
우리의 아침은 아기의 울음소리로 시작된다. 전에는 아기, 아기와 있는 나를 피하던 까노는 이제 수유할 때 내 곁에 앉아서 조용히 기다린다. 의자나 바닥에 앉을 때면 발밑이나 다리 옆에 딱 붙어있다. 내 신체 일부에 붙어있지 않으면 까노는 침대 위에서 조용히 두 눈을 감고 있다. 가끔 내가 수유하느라 손을 쓸 수 없을 때 자신도 쓰다듬으라며 낑낑거릴 때도 있지만. 어쨌든 우리는 각자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가고 있었다.
아기의 낮잠 시간이 다가오고, 방안에 자장가가 울려 퍼지면 신기하게도 까노는 방에 들어오지 않았다. 방안에 들어와도 엎드려서 아기가 잠들 때까지 조용히 있었다. 조곤조곤 아기가 잠들 때까지 나와 까노는 무언의 응원을 보냈다.
아기가 잠들면 나는 소리 없는 춤을 추며 방 밖으로 나왔다. 그러면 덩달아 기분 좋아진 까노는 거실을 뛰어다녔다.(까노와 나는 오늘도 아기 재우기를 성공했다.) 한번은 아기를 재우고 방에서 나오자마자, 소파에 앉아있던 까노가 나를 보고 마치 ‘이번에도 성공했어?’하는 눈빛을 보내 웃음이 터진 적이 있었다.
아기의 낮잠 시간은 내가 까노에게 집중적으로 관심을 쏟을 수 있는 주요 일과 중 하나다. 나는 까노의 눈곱을 떼어주고, 빗질을 해주면서 눈을 더 많이 맞추려고 노력한다. 장난감을 던져주면 까노의 가라앉은 활기를 금세 찾을 수 있다. 까노는 이 시간을 위해서 아기가 잠들기를 응원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아기의 낮잠시간은 아기뿐 아니라 까노, 나의 활력을 충전하는 중요한 일과다.
어색함이 조금씩 허물어지다
이전보다는 아주 조금 나아지기는 했지만 아기에 대한 까노의 질투는 여전했다. 거실에서 아기와 놀아주면 까노는 어디선가 자신의 장난감을 물고와 나에게 던지라고 손에 놓아둔다. 까노는 이러한 행동을 나에게만 하지 않았다. 집을 방문한 모든 사람에게 그랬다. 정확히 말하면 아기 앞에 앉아 관심을 쏟고 있는 사람에게. 까노는 장난감을 물어와 그들의 관심을 끌었다.
나는 까노와 아기가 좀 더 가까워지길 바라며 아기의 손에 까노의 간식을 쥐게 한 적도 있었다. 처음에 아기는 어리둥절했고, 까노는 거부감을 보였다. 하지만 간식의 유혹에 까노는 점점 아기 곁을 떠나지 않았다. 아직 친해지기에는 시간이 필요해보이지만 그래도 까노는 아기와 나와 함께하는 셋의 시간을 조금씩 받아들였다. 처음에는 까노를 보고 울었던 아기도 웃기 시작했다. 털 촉감이 좋은지 아기는 까노의 몸에 손이 닿는 것을 좋아했고, 만지고 싶어 했다. 요즘 아기의 시선은 까노의 행선을 좇기 바쁘다.?
좀처럼 시선을 거두지 못한 것들
까노가 아기에게서 시선을 거두지 못한 것이 있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아기의 치발기였다. 사온 날부터 관심을 보이던 까노는 그것을 갖고 싶어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아기를 재우고 지친 남편과 내가 한 숨 돌리는 틈에 까노가 치발기를 갖고 신나게 놀다 걸렸다. 남편과 내가 한눈팔기를 노렸던 것일까. 뺏는 척을 하니 까노는 그것을 꼭 붙들어 맨 채 소파 밑으로 들어가서 한동안 나오지 않았다. 그렇게 까노는 치발기를 사수했다.
또 어느 날은 아기를 재우고 샤워하는 중에 자꾸 딸랑이 소리가 들리는 게 아닌가. ‘이상하다, 잘못 들었겠지?’하고 샤워를 마치고 나왔다. 그때까지도 소리는 멈추지 않았고, 까노의 입에는 딸랑이가 물려있었다. 그렇게 까노는 아기의 딸랑이도 사수했다. 나는 까노의 행동이 웃기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아기랑 같이 있을 때는 까노도 참고 있는 게 많을 테니까 이렇게라도 자기 나름의 스트레스를 해소한다고 생각했다.
따스함이 느껴지던 날
아기가 4개월에 접어들었을 때는 창가로 들어오는 햇살에서 따스함이 느껴질 정도로 봄이 부쩍 다가와 있었다. 우리는 처음으로 집 앞으로 산책을 나가보기로 했다.
먼저, 아기를 유모차에 태웠다. 평소 남편과 내가 현관 쪽에 있으면 거리를 두고 멀뚱히 쳐다보고만 있던 까노는 다 같이 산책 가는 것을 알았는지 격하게 점프했다. 목줄까지 챙기고, 네 가족의 첫 동반 산책을 위한 준비를 끝냈다.
남편은 유모차를, 나는 까노의 목줄을 잡았다. 우리의 첫 산책이어서 그런지 까노 못지않게 흥분한 나는 마구 뛰어다녔다. 고스란히 앉은 햇살은 우리 가족만큼이나 포근했다. 다만, 오랜 시간을 보내지 못한 게 아쉬웠다. 그때 남편과 나는 좀 더 따뜻해지면 본격적으로 우리 가족의 시간을 갖자고, 잔디에서 나뒹굴자고 약속했다.
나의 육아 동반자, 까노
한때 나는 육아 생활을 하다 어느 순간 아기에게 모든 애정을 쏟아 까노에 대한 애정이 줄어들면 어떡하지 하는 걱정이 앞선 적이 있었다. 당연히 그러지 않을 거라고 믿었지만, 그래도 문득 들었던 생각은 좀처럼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잠시나마 걱정했던 내가 우습게 느껴진다. 내 배로 낳은 아기와 까노와 함께하는 시간이 가장 행복함을 느끼게 해주기 때문이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사랑스러운 까노. 곤히 자고 있는 모습을 보면 절로 미소가 지어지는 아기. 이런 아이들이 지금 내 앞에 나란히 앉아 나를 바라보고 있다.
육아를 하다보면 복잡한 감정이 들 때가 있다. 아기를 낳기 전에는 내 위주의 삶을 살다가 아기가 태어나는 순간부터 엄마라는 존재로서 살아가는 것. 자연스럽고, 당연한 것처럼 받아들여야 하지만 많은 생각이 들었던 건 사실이다. 지인들이 나에게 “괜찮아, 넌 엄마니까”, “엄마가 된 행복도 큰 거야”, “역시 엄마는 대단해”, “엄마니까”라는 말을 많이 한다. 그럴 때면 간혹 거부감이 생기기도 한다. ‘내가 정말 이 상황을 받아들인 것일까?’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하지만 내가 엄마이기 전에 온전한 나를 그리워해주는 유일한 존재가 있다. 바로 까노다. 까노는 아기를 보고 있는 나보다 그냥 나 자신을 좋아해준다. 그래서 나는 까노와 눈을 마주할 때면 큰 위로를 받는다. 내가 어떤 사람이었고, 어떤 사람인지를 생각하게 해주는 까노. 그래서 육아는 나 혼자 하지 않는다. 내 옆에는 육아동반자, 까노가 있다.?
CREDIT
글 사진 주은희
에디터 박고운
본 기사는 <매거진P>에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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