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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털을 남길 때 나는 디지털을 남긴…

  • 승인 2018-04-04 09:5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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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개 네트워크

네가 털을 남길 때

나는 디지털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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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꽁꽁 묶어놓고 채찍으로 후려치는 듯한 겨울도 지나고 어느덧 봄이다. 겨우내 묻어두었던 마음을 꺼내 햇빛에 말리기 좋은 계절. 만물의 소생을 알리는 꽃을 배경으로 털 날리기 바쁜 친구들의 사진을 남겨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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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개, 수상하다

내가 보유한 카메라 업체에서 사진 공모전을 열었다. 인스타에 사진을 올리고 업체가 요구한 해시태그만 달면 되는 간단한 방식이었다. 응모할만한 사진을 찾는데, 꽃개밖에 없었다. 녀석이 사자처럼 크왕하는 사진을 올리고 반응을 살피니 좋아요10에서 그쳤다. 이럴 줄 알았으면 내 누드 사진이라도 올려 팔로워 숫자를 늘릴 걸 그랬…….

워낙 잘 찍은 사람들이 많아 잊고 지냈는데 어느 날 인스타에 메시지가 떴다. 사진 공모전에 당선된 걸 축하한다며 DM(인스타 다이렉트 메시지)으로 성함과 이메일 주소를 남기라는 내용이었다.

1(단 한 명)은 놓쳤지만 2등 그룹에 포함돼 3만 원 상당의 스트랩(카메라에 연결해 어깨에 메는 끈)을 받게 됐다. 아들은 인형이 자기 것이니 상품엔 자기 지분도 있다고 주장했다. 아내는 촬영 당시 인형을 던져준 사람이 자기니까 상품의 절반을 가질 권리가 있다고 주장했다. 모델이 되어준 꽃개한테도 스트랩을 물어뜯을 권리가 반 이상은 있어 보였다. 그렇다면 나는 단지 셔터를 누른 것뿐이란 말인가.

카메라 업체는 이메일로 10장의 사진을 보내달라고 했다. 스트랩은 떡밥이었던 것이다. 중고 시장에 내놔도 2만 원에 팔릴지 의문인 스트랩 하나 받자고 10장의 사진을 제공해야 하나 자괴감도 들었다. 허나 꽃개를 홍보하는 차원에서 응하기로 했다. 2년 넘게 찍어와 낙엽처럼 수북이 쌓인 사진 파일 앞에 앉아 10장의 사진을 고르는데... 이런, 꽃을 배경으로 찍은 사진이 없다. 명색이 꽃개인데! 4월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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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찍는대, 네가 좀 맞자!

날씨가 터프해지면서 봄가을이 부쩍 짧아진 느낌이다. 미세먼지 이슈까지 감안하면 꽃을 배경으로 한 예쁜 사진을 맘 편히 찍을 수 있는 날은 손을 꼽는다. 멋진 사진을 남기려면 부지런해야 한다. 꽃개를 찍겠다며 카메라까지 바꿨지만 게으른 천성은 어쩌지 못해 아파트 단지 인근을 배회하는 데 그쳤다. 벚꽃이 흐드러지게 핀 날을 골랐다는 게 그나마 다행이었다.

하지만 꽃개는 카메라를 싫어한다(개들은, 아니 동물은 대개 그러할 것이다). 시커먼 외눈박이 DSLR이야 말할 것도 없고 스마트폰의 찰칵소리도 싫단다. 애써 구도를 잡고 셔터를 누르는 찰나 고개를 돌리기 일쑤. 아내가 안지 않으면 원하는 배경에 위치시킬 수도 없다. 그런데 워낙 자유분방한 성격이라 우리 품에 안기는 것도 싫어한다. 꽃개를 본 훈련사는 어질리티(개의 장애물 경주)를 시키면 잘할 것 같다고 했지만 우리는 동의하지 않는다. 같은 동작을 반복하는 이유를 납득하지 못해 우울증에 빠질 게 뻔하다.

그에 반해 형제견인 둥이는 포토제닉이다. 촬영에 임하는 자세가 판이하다. “사진을 찍는 중이군요. 얼마든지 찍으세요. 웃어드릴까요?”라는 듯한 포즈를 취한다. 심지어는 꽃개랑 막 개슬링(뒤엉켜 싸우듯이 노는 행동)을 하다가도 카메라를 들이대면 눈을 맞추며 웃는다. 위 사진을 봐도 꽃개한테 어퍼컷을 날리는 둥이가 이렇게 말하는 것 같다. “아저씨가 사진 찍는다고 하네? 네가 좀 맞자.” 천차만별인 개들의 성격을 파악하는 건 개를 사랑하는 좋은 출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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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개는 사랑을 싣고

핸드폰 바탕화면으로 저장되기도 한 이 사진은 아내가 골랐다. 육교에서 하이 앵글로 내려다보면서 찍었다. 좀 더 풍성한 벚꽃 나무를 찾을 수 있다면 그 안에 푹 파묻힌 듯한 연출도 가능할 것이다. 다만 이러한 숏을 구성할 때는 사진을 찍어줄 사람이 필요하다.

가족이나 친구, 아니면 사랑하는 사람을 불러낼 좋은 명분이다. 당신에게 개가 있고 마음에 드는 사람이 있다면 개를 사랑의 메신저로 동원하는 데 주저할 필요 없다. (하지만 그 사람을 물 수도 있으니 광견병 주사는 꼭 맞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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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직 인생 샷을 찍지 못헀다

스트랩을 카메라에 연결해 메고 다녀야 할 때가 됐는지 모른다. 주의력결핍 과다행동장애인 녀석을 1초라도 빨리 포착하려면 말이다. 더 나은 사진을 찍기 위해선 더 노력해야 한다. 요즘은 스마트폰 카메라가 워낙 잘 나와 어깨를 짓누르는 DSLR 카메라를 고집할 필요도 없다.

약동하는 흙냄새에 취한 녀석의 겨드랑이를 쿡 찔러 조커처럼 웃게 만든 뒤 찰칵누르면 그것은 영원히 저장될 것이다. 메모리 칩이 파괴되지 않고 전기 공급이 계속되는 한. 우리가 인생이라고 부르는 프레임 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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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글 사진 BACON

에디터 강한별

본 기사는 <매거진P>에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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