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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실을 다독여준 조금 먼 누군가의 위로

  • 승인 2018-02-23 16:0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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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실을 다독여준 조금 먼 누군가의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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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반려견 달래를 보내고 부서진 일상

2살쯤 우리 집으로 와 14살 생을 마감할 때까지 십여 년이 넘는 세월 동안 지친 나의 마음에 단비가 되어준 생명이 있었다. 내가 줄 수 있는 모든 마음을 내주었다 해도 과언이 아닌 나의 첫 반려견 ‘달래’다.

달래를 지난해 9월 강아지 나라로 떠나보내고 이튿날, 덩그런 서점 안을 청소하던 중 흰색 나비 한 마리가 서점 안으로 날아들었다. 나도 모르게 “달래니?”라면서 이틀 만에 그 아이의 이름을 불렀다. 나비는 물음에 답이라도 하듯 내 주변에서 날갯짓을 한 후 홀연히 밖으로 나갔다. 슬픔에 젖어 있는 내가 안쓰러워 달래가 잠시 와준 것 아닐까? 달래의 몸은 떠났지만 빛으로 눈으로 비로 바람으로 늘 주변에 머무를 것을 나는 안다.

친구가 죽은 것도 아니고 개 한 마리 죽었다고 뭘 그리 슬퍼하냐며 옆에 있는 사람이나 잘 돌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대상이 사람이건, 동물이건 죽음 자체는 남겨진 자들에게 고통이다. 십년이 넘는 세월 동안 늘 곁에 있던 생명이 떠난 상실과 슬픔을 이해해주는 사람은 많지 않다. 이 슬픔은 반려동물을 떠나보낸, 혹은 반려동물을 키우는 이들만 아는 외로움이다. 달래의 소식을 sns와 주변에 알린 후 많은 위로의 메시지를 받았는데 나를 위로해준 사람들은 적어도 동물의 죽음에 대해 함께 슬퍼할 줄 아는 사람이며 반려동물을 키우다 잃게 된 반려인의 마음을 보듬어줄 줄 아는 사람들이다.

때로는 주변에 가까운 사람의 위로보다 조금 먼 누군가의 위로가 마음에 와닿기도 한다. 내게는 책방의 한 손님이 그런 존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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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을 수 없을 것 같았는데

달래도 없는 적막한 책방에 혼자 있는데 그녀와 그녀의 반려견 ‘미래’가 들어왔다. 그녀와 함께 찾아온 미래는 ‘나나’,’라파엘’ 모자(母子)보다 먼저 그녀의 반려견이 된 개다. 7살 캐벌리어 킹 찰스 스파니엘 강아지에게 반려인은 아름다운 미래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미래’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고 한다. 우아하면서 애교도 많은 강아지였다. 나를 보자마자 뽀뽀를 마구 퍼부으며 지친 기색도 없이 얼굴을 핥아주었다.

눈물자국을 핥아 주려는 듯 미래는 싫은 내색도 힘든 내색도 하지 않고 나를 위로해주었다. 그 모습이 너무 사랑스러워 나도 모르게 무장해제되어 웃고 있었다. 얼마 만에 웃어보는 거지? 아침까지만 해도 떠난 보낸 개를 그리며 울고 있었는데 오늘 처음 본 개를 통해 웃고 있다. 미래의 위로는 달래가 보내준 선물 같았다. “사장님이 슬퍼하고 계실까 봐 미래랑 위로하러 왔어요”라고 말하는 그녀의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그녀는 반려견과 산책 도중 서점을 첫 방문한 이후로 혼자 와서 책을 사기도 하고 주변 사람들에게도 책을 선물할 만큼 마음 씀씀이도 예쁜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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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우리를 변화시킨 털친구들

비 내리는 식목일, 아파트 화단에서 홀로 있던 고양이 한 마리를 그녀의 아버지가 집으로 데려오셨다. 집안에 첫 반려동물을 들인 셈이다. 이름은 ‘마루’라 지었고 벌써 19살이 되었다. 고양이를 무서워하던 그녀였지만 마루로 인해 아파트 지하주차장에 들어온 고양이도 구조할 만큼 열혈 애묘인이 되었다.

바뀐 건 그뿐만이 아니다. 모르는 사람과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머뭇거렸다면 이제는 털친구 덕분에 모르는 사람과도 스스럼없이 말을 주고받을 수 있을 만큼 성격도 바뀌었다. 반려동물을 키운다는 이유만으로 상대방의 반려동물에게 먼저 관심을 가졌고 같은 공감대를 형성하며 편히 대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아마추어로 도그런에 출전하여 프로 못지않은 실력으로 1등을 한 적도 있고 넓은 운동장과 잔디가 있는 곳을 찾아다니며 반려견과 일상을 즐길 만큼 활동적으로 변했다. 개와 고양이를 만나 오랜 시간 함께 지내다 보니 그녀도 자연스레 변했으리라.

예쁜 컬러와 따뜻한 소재의 니트를 좋아하던 과거를 지나 털에도 끄떡없는 아웃도어를 예찬하는 사람이 되었다 해도 그녀는 지금의 자신이 좋다고 말한다. 가족여행은 꿈도 꿀 수 없다며 휴가를 갈 때도 가족끼리 순번을 정해 돌아가며 다녀온다. 반려동물을 위해 당연한 일이라며 누구도 불평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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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아지를 차례로 산책시키는 이유

그녀는 반려견 3마리를 두 번에 나눠 산책 시킨다. 아파트 주민의 시선 때문에 3마리를 한꺼번에 데리고 나와 산책을 시킬 수가 없단다. ‘아파트에서 개 한두 마리는 키워도 되지만 세 마리는 불법이다’라고 말도 안 되는 주장을 펼친 주민도 있었다. 유독 여자 혼자 개를 산책시킬 때 쏟아지는 잔소리도 많다. 사람을 보고 달려들거나 짖는 것도 아니고 배변처리도 깔끔히 하는데 곱지 않은 시선은 피할 수가 없다.

혹여 반려동물에 대한 인식이 더 안 좋아질까 남의 개똥도 수거하는 그녀지만 어느 한쪽만 잘한다고 되는 건 아닌 것 같다고 말한다. 반려동물을 키우는 사람들 스스로 펫티켓도 잘 지켜 반려견을 목줄 없이 산책시키거나 산책로에서 개똥을 마주하게 되는 일 따위는 없길 바란다. 아울러 반려동물에 대한 선입견과 시선도 함께 개선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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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아이가 개를 만지거나 개에 물릴 것이 걱정되는 마음은 이해한다. 하지만 아이에게 개를 가리키며 ‘지지’라고 말하는 건 아이들에게 동물은 더러운 것, 나쁜 것이라고 가리키는 것이니 그건 아이에게도 안 좋은 영향을 끼치는 것이라고 그녀는 차근히 설명한다. 그녀처럼 일상에서 예기치 못한 상황이 와도 당황하지 않고 똑부러지게 대처할 수 있는 대비책도 알아두면 반려동물을 향한 선입견과 인식 변화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야무진데다 동네의 책방지기를 위로할 아량까지 가진 손님이 내게는 있다.

CREDIT

?글·사진 심선화 ?

에디터 이은혜

본 기사는 <매거진P>에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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