펫찌로고

교감의 순간을 믿어요

  • 승인 2018-02-20 10:05:54
  •  
  • 댓글 0


MORI IN NEWYORK

교감의 순간을 믿어요

9dc3a80a15e5d4bbdff6554d891aed69_1519088

Zadie(제이디)와 Levi(레바이)를 만난 건 작년 이맘때쯤 오늘같이 눈이 펄펄 내리는 어느 날이었다. 친구의 소개를 받아 반려동물 촬영을 부탁받아 찾아간 곳은 집에서 한 시간가량 떨어진 브루클린. 무거운 카메라와 장비를 등져 매고 혹한 추위를 헤쳐가며 그들을 만나러 갔다.

띵동. 두 마리의 개가 왈왈 짖는 소리가 문 너머로 겹쳐 들렸다. 문이 열리고 나를 반긴 건 두 쌍둥이 개의 주인인 Ilona(일로나)와 그의 남편이었다. 짧은 인사말이 오가고 거실에서 촬영 준비를 하는데 덩치 큰 두 마리의 핏불이 나를 향해 걸어왔다. 아니, 정확히는 나에게 온 것이 아니라 내가 설치하고 있던 조명에게 왔다고 해야 할까.

9dc3a80a15e5d4bbdff6554d891aed69_1519088

9dc3a80a15e5d4bbdff6554d891aed69_1519088

아직 3살밖에 안된 어린 친구들이라기에 발랄하고 장난기 많은 어린 개들의 모습을 예상했는데, 막상 직접 만나보니 키가 큰 신사 둘이 점잖게 서있는 모습에 조금 놀랐다. 하지만 어색함도 잠시, 얘기를 나누는 일로나와 나의 옆에 얌전히 앉아 우리의 대화를 엿듣는 듯한 두 쌍둥이의 모습이 꽤 귀엽게 느껴졌다.

“반려동물 촬영을 하기로 마음먹은 이유가 뭐예요?”

“결혼하고 제이디와 레바이를 입양한 지 벌써 3년이 다 되어 가요. 근데 아직도 얘네랑 같이 찍은 사진들이 없어서 촬영 모델을 모집한단 얘기를 듣고 바로 찍기로 결정했어요.”

“좋네요. 오늘 촬영 사진들은 언젠가 책이나 잡지에 실릴 수도 있는데, 괜찮나요?”

“오, 그럼요! 신나는데요? 출간되면 꼭 알려주세요.”

9dc3a80a15e5d4bbdff6554d891aed69_1519088

그렇게 시작된 촬영은 일층 거실에서 시작해서 부엌을 지나 이층의 침실, 그리고 뒷마당을 마지막으로 무사히 끝이 났다. 이 날 진행된 다양한 콘셉트의 촬영 중 가장 긴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했던 “Tea Time(티타임)” 콘셉트의 촬영은 의외로 점잖은 레바이 신사 덕에 꽤나 수월하게 촬영할 수 있었다.

“자, 레바이. 너도 차 한잔 할래?”

“원래 저렇게 얌전해요? 너무 말을 잘 따라줘서, 제가 촬영하다이렇게 속으로 감탄을 해보긴 또 처음이에요.”

“저도 이런 촬영은 처음 해봐서, 이렇게 잘 해줄 줄은 미처 몰랐네요. 대견스러워라.”

9dc3a80a15e5d4bbdff6554d891aed69_1519088

장난기가 많던 제다이와, 카메라를 들면 모두가 실소를 터트릴만큼 요지부동이던 레바이는 촬영이 끝나자 신나게 마당을 뛰어다녔다. 모두가 녹초가 되어있어야 할 만큼 긴 촬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고맙게도 상당히 협조적이었던 두 친구 덕에 나는 맑은 정신을 유지하며 마지막 셔터를 누를 수 있었다. 촬영이 끝나고 장비를 정리하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런 게 바로 반려동물들과 사람이 교류할 때에 발생하는 어떤 마법 같은 효과인 걸까.’

스튜디오에서 전문모델과 하는 촬영보다 반려동물 촬영이 오히려 더 많은 에너지가 소요된다. 하지만 놀랍게도 촬영 후 기진맥진하는 쪽은 오히려 전자이다. 그렇기 때문에 반려동물과의 교감을 통해 긍정적인 에너지를 얻을 수 있다는 말을 나는 믿는다. 이날 나에게 마법 같은 긍정적인 에너지를 전달해 준 레바이와 제이디에게 무척이나 고마웠다.

9dc3a80a15e5d4bbdff6554d891aed69_1519088

조금 더 있다 가라는 일로나의 말에 장난스레 뛰노는 두 친구들을 보고 하마터면 거의 오케이를 외칠 뻔했지만, 점점 매서워지는 눈바람에 서둘러 집을 향해 나서야 했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눈보라를 지나 집으로 돌아와 오늘 찍었던 사진들을 다시 살펴보았다. 편집을 하는 내내 한국에서 반려동물 촬영을 하던 날들이 계속 떠올랐다. 기르던 강아지 아롱이가 떠나고 난 뒤, 나와 아롱이가 함께한 모습을 담은 사진이 없어 그때부터 찍기 시작했던 반려동물과 주인들의 사진들.

나처럼 소중한 친구를 떠나보내고 뒤늦게 후회하는 사람들이 없도록 그들의 행복한 시간을 대신 담아주는 역할을 자처한 이후로, 이날처럼 이 일이 즐겁게 느껴진 날이 없었다. 일로나와 제이디, 레바이 간의 따뜻한 유대감을 사진에 담기 위해 보낸 시간들은 나에게도, 그들에게도 영원히 소중한 추억으로 남을 것이다.

CREDIT

글ㆍ사진 박모리

에디터 이은혜?

본 기사는 <매거진P>에 게재되었습니다.

콘텐츠의 무단 도용, 전재 및 복제, 배포를 금합니다. 이를 어길 시 민, 형사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Tag #펫찌
저작권자 ⓒ 펫찌(Petzz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0

추천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