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 COMPANIONS
재개발지역에 버려진
푸들들의 비밀
몸집 작은 푸들 녀석의, 몇 번째 출산이었는지 모를 출산이었다. 일곱 마리 새끼 중 여섯 마리가 죽은 채 세상에 나왔다. 어미는 살아남은 한 마리에게 젖을 물리지 못했다. 새끼는 얼마 전 출산한 다른 푸들의 젖을 물었다. 그리고 며칠 지나지 않아, 살아남은 새끼 한 마리는 형제들의 곁으로 떠났다.
황량한 재개발지역 허허벌판에 서있던 푸들
일곱 마리 새끼를 차례로 떠나보낸 푸들, 한라는 황량한 재개발지역 허허벌판에서 왔다. 중장비가 위험하게 오가던 땅이었다. 한라는 그곳에서 다른 푸들들과 함께 버려져 있었다. 최초 목격자의 말에 따르면 버려진 푸들들은 20여 마리에 달했다. 개들을 본 주민들은 근처 사설보호소 소장님에게 연락을 취했다. 소장님이 갔을 때는 여덟 마리의 푸들들만 남아 있었다. 나머지는 뿔뿔이 흩어진 모양이었다. 소장님은 버려진 푸들들을 데리고 와, 카라에게 어떻게 하면 좋겠냐고 물어오셨다.
개들의 첫인상은 끔찍했다. 아이들은 앞다퉈 온 몸을 긁고 있었다. 고통이 짐작도 되지 않았다. 가장 상태가 심한 녀석, 후에 소리라 이름 붙인 개는 푸들인지 알아보기도 힘들었다. 푸들의 상징 중 하나인 곱슬 털은 벗겨지거나 뭉치거나, 각질이 끼어있었다. 피부병과 함께 눈이 가는 것은 개들의 늘어진 뱃가죽이었다. 퉁퉁 불어 뒤틀린 젖꼭지와 함께 개들의 거듭된 출산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더군다나 여덟 마리 푸들 중 두 마리의 배는 빵빵하게 불러 있었다.
병원에서는 개들의 피부를 엉망으로 만든 원인으로 옴 진드기를 진단했다. 치료하기 힘든 진드기다. 배가 부른 두 푸들은 임신 중이었다. 여덟 마리 중 일곱 마리는 암컷이고 한 마리는 수컷인데, 모두 중성화 수술은 되어 있지 않았다. 이런 단서들은 개들이 재개발지역에 버려지기 전에 어디서 왔는지 알려준다. 바로 번식장이다. 다만 뜬장에서 번식을 하는 개들은 발바닥에 염증이 생기기 마련인데 우리가 구조한 개들의 발바닥에는 흙먼지만 좀 묻었을 뿐 다른 상처는 없었다. 그래도 평지에서 살았을 것이 그나마의 위안이었다.

푸른 산과 흐르는 강처럼, 더 자유롭게 살기를
푸들들은 치료를 받고 있다. 우리나라의 산과 강에서 딴 이름도 붙여졌다. 영산이, 소백이, 한라, 가야, 마니, 오서, 소리, 사라… 우리는 여덟 마리의 푸들이 항상 굳건하게 자리한 산처럼 상처받지 않는 삶을 살길, 멈추지 않고 흐르는 강처럼 힘차고 아름다운 삶을 살길 희망한다. 개들은 치료가 완료되는 대로 평생 가족을 찾아 입양을 갈 것이다. 임신 중이었던 소백이는 출산한 아기들이 충분히 클 때까지 카라가 보호하고 있을 예정이지만.
네 마리를 임신한 소백이의 출산은 카라 활동가들의 축복 속에 이루어졌다. 때문에 한라의 조산과 일곱 마리 새끼의 죽음은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한라가 번식장이 아닌 좋은 가정에서 임신해 제대로 된 돌봄을 받았더라면 이런 일이 없었을까. 한라는 이것으로 몇 마리째의 새끼를 보낸 걸까. 수많은 물음표가 머리 속에 떠올랐지만, 우리가 아는 것은 새끼들은 떠났고 한라는 또다시 남았다는 사실뿐이다.
우리는 번식장을 안다. 소수의 수컷과 다수의 암컷으로 구성된 번식장에서 개들은 타의에 의해 교미를 하게 된다. 그 행위는 인간에 의한 강간에 가깝다. 암컷들은 예쁜 품종견을 생산하는 번식 기계로만 존재한다. 새끼들은 제대로 된 영양 공급도 못 받고, 사회화 시기도 놓친 채 펫샵에 진열되어 인형처럼 팔린다. 출산능력이 저하된, 혹은 옴 진드기 등으로 인해 피부병을 겪는 번식장의 푸들들은 유기되거나 폐기된다.
최근 몇 년 사이, 번식장의 끔찍하고 처참한 현실이 알려지며 많은 사람들이 분노했다. 그들의 염원을 담아 ‘동물 생산’에 대한 규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생산업은 신고제에서 허가제로 바뀌었다. 사지 말고 입양하라는 인식도 더 넓게 퍼졌다. 이 시점에서 우리는 새로운 과제를 맞이했다. 체계의 변화로 인해 번식업자가 더 감당 못하고 떼로 버릴 번식장의 개들을 마주하는 것이다. 개들이 생명으로서의 권리를 오롯이 누리도록 연대하는 것이다. 그 어려운 여정 너머에서는 상품처럼 취급되거나 버려지는 생명이 없길 간절히 바란다.?
CREDIT
글·사진 동물보호시민단체 카라 김나연
본 기사는 <매거진P>에 게재되었습니다.
콘텐츠의 무단 도용, 전재 및 복제, 배포를 금합니다. 이를 어길 시 민, 형사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