견생 2막
아픔을 안기에는
더없이 여린 포근이와 햇살이


한 박자 쉬고 들어가는 센터
서울 화곡동에 위치한 팅커벨 프로젝트의 출입구에는 ‘강아지들이 놀랄 수 있으니 전화를 해달라’는 문구가 걸려있다. 전화를 걸자 곧 문이 열렸다. 취재진을 맞이한 이들은 황동열 대표와 두 간사, 그리고 격하게 반기는 15마리의 강아지들과 고양이였다. 센터에 있는 강아지들은 외부인인 취재진에게도 적극적으로 다가와 냄새를 맡고 손을 핥으며 애정을 퍼부었다. 짧은 인사 이후 이동한 방에는 전날 구조해온 새끼 길고양이와 시야가 불편한 노령견이 자리하고 있었다. 인터뷰 중에도 두 아이는 전혀 우는 법이 없었다.
고양이는 눈앞에 벌어진 상황이 새삼 신기한 듯 사람들을 번갈아 보고, 노령견은 연신 목이 타는지 물을 홀짝였다. 저마다의 아픈 사연으로 센터에 들어온 녀석들이지만, 하나같이 천진난만했다. 그곳에 머무는 짧은 시간 동안, 취재진은 강아지들을 대하는 황 대표와 간사들의 태도를 보고 아이들의 친근함과 다정다감함이 어디서 비롯되었는지 알 수 있었다. 이런 센터에도 유독 ‘아픈 손가락’두 녀석이 존재한다. 창을 통해 들어오는 노란 햇빛처럼, 온기를 안겨주는 포근이와 햇살이 이야기다.

시린 바람을 맞았던 날들
황 대표가 포근이와 햇살이를 만난 때는 추운 겨울이었다. 한파로 전국이 꽁꽁 언 날, 팅커벨 프로젝트에 도움을 요청한 이가 있었다. 긴 실직생활을 마치고 이제 막 운송업계 뛰어든 중년 남성이었다. 그는 며칠 동안 서울의 수색동과 서오릉이 이어지는 야산에서 강아지 두 마리가 추위에 벌벌 떨고 있다며 도움을 요청했다. 상황은 심각했다. 제보를 받고 곧장 찾아간 그곳은 가시덤불로 가득했다.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강아지들에게는 더없이 위험한 환경이었다. 가시덤불 한쪽에서 떨고 있는 포근이와 햇살이를 발견했다.
하얀 털을 갖고 있어야 할 몰티즈는 누더기를 입은 듯 새까만 털로 뒤덮인 처참한 모습이었다. 두 눈을 가린 무거운 털은 시린 바람을 맞고 젖은 흙바닥을 오갔던 수많은 아픈 날들을 짐작하게 했다. 강아지들을 구출할 당시에는 마땅한 포획장비가 없었다. 이동장 하나만 있었다.
하지만 가시덤불로 가득한 위험지대에 아이들을 놓고 올 수가 없었다. 하루라도 빨리 아이들을 구출해야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날은 날씨가 무섭게 추웠다. 하루빨리 강아지들을 그곳에서 구출해내야겠다는 일념으로 황 대표와 중년 남성은 천천히, 조심스럽게 가시덤불 속으로 들어갔다.
다행히 햇살이는 금방 잡을 수 있었다. 하지만 포근이는 가시덤불을 밟는 고통을 무릅쓰고 도망가 버렸다. 두 사람은 강아지가 놀라지 않도록 천천히 가시덤불 속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그들의 시야에 철조망과 구덩이 사이의 좁은 공간에 우두커니 서있는 포근이가 들어왔다. 지금 놓치면 영영 포근이를 볼 수 없을 것 같은 직감을 느낀 황 대표는 입고 있던 겉옷을 벗었다. 그리고 온몸을 던져 포근이를 덮쳤다.
변수 안의 변수
팅커벨 프로젝트의 회원들이 애정을 담아 지어준 이름, 포근이와 햇살이. 두 아이의 시련은 외진 야산에서의 피폐한 생활이 끝이 아니었다. 임시보호 중이던 시기에 포근이와 햇살이는 홍역을 앓았다. 식욕이 감퇴하고 기운이 다 빠진 상태였다. 특히 포근이는 몸을 가누지 못할 정도로 그 증상이 심각했다. 아이들의 옆을 내내 지키던 황 대표는 포근이의 눈을 보며 “포근아, 일어나야지. 포근아, 밥 먹자. 포근아, 힘내”라는 말을 백 번이고 해주면서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그의 간절함이 통했을까.
좀처럼 기운을 내지 못했던 포근이의 눈동자에 초점이 맞춰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가 건네는 음식을 조금씩 받아먹었다. 2014년 5월경, 포근이와 햇살이는 두 사내아이가 있는 한 가정에 입양됐다. 이제 아이들의 행복한 나날이 시작되는 줄 알았다는 황대표. 하지만 한 달 뒤, 포근이는 병원을 오가야 했다. 홍역 후유증으로 뒷다리가 마비되었기 때문이었다.
포근이는 서울 서초동을 오가며 한방 치료를 받았다. 신경과 관련해서 과학적인 의료보다는 한방 치료가 더 적합할 것 같다는 판단에서였다. 그렇게 두 달 동안 꾸준히 한방치료를 받은 포근이는 다행히도 후유증을 잘 견뎌내었다. 건강을 회복한 포근이는 다시 입양가정으로 돌아가 햇살이와 재회할 수 있었다.
따뜻하고 반짝일 나날들
2017년 6월, 포근이와 햇살이는 팅커벨 프로젝트 입양 센터에 재입소했다. 아이들을 입양한 가정에서 파양을 결정한 것이다. 한때 가족이었던 이는 두 아들 중 하나가 뇌염에 걸렸는데, 주치의가 뇌염의 여러 가지 원인을 나열하면서 강아지와 함께 생활하는 것에 대해 부정적인 소견을 내어놓았다고 전했다.
주눅 들었을 거라 예상했던 포근이와 햇살이는 신기하게도 몇 년만에 만난 황 대표를 보고는 무척이나 반가워했다. 아이들은 몇 년전의 기억을 잊지 않고 있었다. 센터에 다시 들어온 그날부터 포근이와 햇살이는 줄곧 낯가림 없이 넘치는 애교로 모두를 기쁘게 해주고 있다.
매월 둘째, 넷째 주 토요일 상암동에 있는 공원에는 센터의 주최로 행사가 열린다. 포근이와 햇살이는 이 행사에 꼭 참석한다. 모두에게 무척이나 인기가 좋은 두 친구는 많은 사람들과 신나게 뛰어놀면서 행복한 시간을 보낸다. 신나게 잔디 위를 뛰어노는 포근이와햇살이는 그 많은 아픔을 안기에는 버거운, 마냥 천진난만한 아이들이다.
사연 없는 유기견이란 존재하지 않지만, 유독 아픈 손가락도 있기 마련이다. 황 대표는 두 아이가 꼭 한 가정에 같이 입양되었으면 한다는 소망을 내비쳤다. 포근한 햇살 같은 두 녀석은 이미 운명공동체이기에.?
CREDIT
사진 엄기태
에디터 박고운
본 기사는 <매거진P>에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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