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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당하고 유쾌하게, 푸딩이가 알려준 …

  • 승인 2018-02-12 16:2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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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의사 S씨의 일일

당당하고 유쾌하게,

푸딩이가 알려준 카르페디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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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아이들보다 곱절의 사건을 겪고도 슬픔이라고는 한 구석도 없는 녀석이 있다. 바로 ‘푸딩’이라는 우리 집 말썽꾸러기이자 귀염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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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글빙글 돌아 나에게 온 달콤한 푸딩

우리 집은 다견 가정이다. 모두 유기견 출신으로 마음에 상처 한두 군데씩은 있는 가슴 아픈 아이들이다. 하지만 다른 아이들보다 곱절의 사건을 겪고도 슬픔이라고는 한 구석도 없는 녀석이 있다. 바로 ‘푸딩’이라는 우리 집 말썽꾸러기이자 귀염둥이다. 푸딩이는 푸들이라고는 하지만 머리가 크고 털도 직모인 것으로 보아 ‘말푸’라고 불리는 말티즈와 푸들 사이의 혼종견이다. 이런 외모 덕분에 하는 짓이 전부 말썽이어도 우스꽝스럽게 비춰져서 혼나는 상황을 모면하기도 한다.

푸딩이의 사연도 우리 집의 다른 개들과 마찬가지로 구구절절하다. 학생 시절, 엄마 친구의 지인이 개를 한 마리 입양하고 싶다고 했다. 나는 보호소 중 시설이 가장 열악한 곳을 찾아가 푸딩이를 데리고 나왔다. 하지만 결과는 암담했다. 아이가 파양당한 것이다. 그리고 다른 곳으로 입양되었지만 다시 파양당했다. 그 짧은 시간 동안 집을 두 번이나 옮긴 아이는 결국 본가로 오게 되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엄마도 감당할 수 없다며 푸딩이를 내 자취방으로 데리고 왔다. 그러니까 푸딩이는 도합 세 번을 파양당한 셈이다.

무거운 마음을 안고 푸딩이를 맞이했지만 푸딩이는 전혀 구김이 없었다. 언제 그랬냐는 듯 나에게 냉큼 안기는 것이 아닌가. 그때 이 녀석의 진짜 성격을 짐작했어야 했다. 푸딩이는 집에 오자마자 강아지 숑이를 가뿐히 무시하고 온갖 애교를 떨며 내 무릎을 차지했다. 그 모습이 워낙 위풍당당하여 오히려 숑이가 더부살이로 온 아이처럼 느껴졌다. 나의 사랑을 혼자서 독차지하던 숑이가 받을 충격이 염려되어 푸딩이를 잠시 떼어내려 해도 막무가내였다. 그렇게 나는 껌딱지 둘을 양쪽에 달고 다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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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일과를 모조리 흔들어버린 너

푸딩이를 키우며 이 녀석이 왜 파양을 당했는지 알 수 있었다. 푸딩이는 많이 짖는 개에 속했다. 귀여운 입에서 나오는 소리는 상남자 못지않아 푸딩이가 짖을 때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은 것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또한 고양이처럼 못 올라가는 곳이 없어서 식탁이나 싱크대에 나둔 음식을 감쪽같이 먹어 치운다. 거기에 시치미까지.

한 번은 친구가 온다기에 미리 고기를 굽고 키친타월을 덮어 식탁 위에 준비해 두었다. 친구가 도착하여 같이 밥을 먹으려고 키친타월을 걷었는데 고기가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것이다. 고기를 먹고 키친타월은 또 어떻게 덮어둔 것인지… 그 상황이 너무 황당해서 친구랑 한바탕 웃었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가장 큰 문제는 배변훈련이 되어있지 않았다는 것이다. 매일 푸딩이를 쫓아다니면서 질러놓은 흔적을 치우는 일은 하루 중 주요 일과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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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쪽같이 사라진 녀석이 발견된 곳

푸딩이를 감당하기에는 서울보다는 시골생활이 더 적합했다. 시골로 이사 온 뒤 푸딩이는 열심히 짖었고, 바위나 테이블 위에서 휴식을 취했다. 마당 이곳저곳에 마음껏 쉬도 하고… 그렇게 푸딩이와 해피엔딩을 맞이할 즈음, 이 녀석이 또 다른 말썽을 부리기 시작했다. 시골로 내려와서 푸딩이는 걸핏하면 집 앞에 있는 휴양림으로 놀러 나갔다. 작은 개들은 나와 동행하지 않는 이상 집 밖으로 나가지 않기 때문에 자유롭게 풀어놓는데 유독 푸딩이만 이런 암묵적인 약속을 깼다.

어느 날 푸딩이가 없어진 것을 알고 찾으러 나간 나는 관광객들 틈에 끼어서 같이 관광을 하고 있는 푸딩이를 발견했다. 또 어떤 날은 관광객들과 같이 벤치에 앉아 있다가 차에서 내린 나를 보고는 아무렇지도 않게 차에 올라타는 일도 있었다. 세상 태연한 얼굴로.(물론 푸딩이는 인식표와 외장형 칩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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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를 영위하라, 언제나 당당하고 유쾌하게

한바탕 신나게 흉을 봤지만 푸딩이는 단점보다 장점이 많은 아이다. 특유의 유쾌한 성격 탓에 기분이 좋을 때면 자신만의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추기 시작한다. 가락에 맞춰 침대에 누워 엉덩이를 흔드는 모습은 혼자 보기 아까울 정도다. 유난히 이불 속을 좋아하는 것도 사랑스럽기 짝이 없다. 다른 개들은 이불을 덮어줘야 하지만 푸딩이는 스스로 이불 속으로 들어갈 줄 아는 유일한 개다. 이불 속을 비집고 들어가 자기만의 굴을 만들고 얼굴을 삐죽이 내밀고 있는 모습을 보면 절로 미소를 머금게 된다.

푸딩이는 유난히 쾌활한 성격을 지녔다. 혼이 나도 그때 뿐 금방 내게 안긴다. 푸딩이를 보고 있으면 <죽은 시인의 사회>라는 영화가 연상된다. 이 영화에서 키팅 선생님은 학생들에게 “카르페 디엠(현재를 잡아라)!”을 역설한다. 푸딩이는 과거나 미래에 얽매이지 말고 현재를 영위하라고 말한다. 과거에 연연해하지 않아 3번이나 파양을 당했음에도 언제나 당당하고 유쾌한 푸딩이. 미래를 걱정하지도 않아서 혼이 날 것이 뻔한 일인데도 일단은 저지르고 보는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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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믹하게 생긴 얼굴도, 산책할 때 흔들어대는 통통한 엉덩이도 푸딩이의 매력 중 하나다. 사람도 자신의 가치를 알아볼 수 있는 곳에 가야 인정받는 것처럼 결국 푸딩이도 많은 집을 돌고 돌아 자신의 매력을 알아봐주는 집을 찾게 된 것이다. 우리 집 말썽꾸러기 푸딩이는 지금도 슈퍼맨 로고가 그려진 티를 입고 이불 속에 들어가느긋한 미소를 짓고 있다.?

CREDIT

?글·사진 손서영

에디터 박고운?

본 기사는 <매거진P>에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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