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개 네트워크
내 일상을 망치러 온 나의 구원자, 꽃개?
개에 관심 없던 남자, 정신 차리고 보니 하루 다섯 번 산책하는 짧은 다리의 웰시코기 목줄을 쥐고 있었다.
엄격한 민주주의 절차로 정한 이름, 꽃개
꽃개는 2015년 5월 5일 태어났다. 펨브록 웰시코기 어린이. 사남매 중 몇째로 태어났는지는 모른다. 웰시코기를 고집한 건 나였다. ‘카우보이비밥’에 천재견으로 나오고, 강원래 김송 부부가 똘똘이를 키운 사연도 아름답고, 지능이 11위로 평가되면서 헛짖음도 없다는 설명이 마음에 들었다. 영국 왕실의 개란 점은 딱히 신경 쓰지 않았다.?
1년 넘게 샵을 기웃거리며 가격 동향을 살폈다. 털 때문에 힘들 거란 주의도 충분히 들었다. 충무로 애견 거리까지 찾아가 요즘 강남에서 얼마에 팔리는 (유행) 품종이란 말을 듣고 마음 상하기도 했다. 개까지 강남 사람들 취향에 따라야 하는 거야? 방향을 틀어 일반 가정 분양을 알아보다 아내의 지인이 아는 사람이 분양한다는 말을 듣고 보내준 사진을 보자마자 ‘결정’ 버튼을 눌렀다. 한 회사에 20년 종사한 아내한테 주는 은퇴 선물이었다.
7월 16일 아내 품에 안긴 꽃개는 우리 집 식구가 됐다. 이름은 엄격한 민주주의 절차에 따랐다. 각자 원하는 이름을 적어 표결에 부쳤는데 아내가 제안한 ‘꽃개’가 당선됐다. 꽃개라고 하면 고개를 갸웃거리다 ‘플라워’라고 보충하면 그제야 알아듣고 미소 짓는 이들이 많았다. 아내가 접속한 인스타 월드에는 ‘찌개’와 ‘안개’라는 웰시코기도 돌아다녔다. 우리는 그래도 비교적 건전한 축에 속……. ?
실외 배변만 하는 애로 키워버렸다?.
10월 12일 꽃개는 수술대 위에 누웠다. 잠시 뒤 의사가 내민 스테인리스 쟁반에는 꽃개 내부에서 떨어져 나온 일부가 숨죽인 채 옹크리고 있었다. 중성화는 미화된 말이다. 문명이라는 이름으로 우리는 꽃개가 대를 이을 권리를 빼앗았다. 그날 밤 마취가 풀린 꽃개는 낑낑댔고 나는 죄의식을 느꼈다.
어쩌다 보니 꽃개는 실외 배변만 하게 됐다. 우리는 하루에 다섯 번 산책을 나간다. 새벽 6시는 내 담당. 며칠 전에는 4시 50분에 몸을 털어 졸려 죽겠는 나를 깨우기도 했다. 춥고 배고프니 오줌 누고 와서 밥 내놓으라 이거다. 밤 11시도 주로 내가 맡는다. 아내와 함께 산책 나갔을 때도 똥을 줍는 담당은 나다. 아직 내 똥도 만져본 적 없는데 하루에 세 번 뜨뜻한 개똥을 비닐봉지에 담아 처리한다. 녀석의 컨디션도 그때 점검한다. 똥 상태가 좋으면 만사 오케이.?
“개의 수명이 몇 년이라고?” “12년에서 15년?” “이 짓을 10년 넘게 해야 한다고?”
나는 개에 대해 모르는 게 너무 많은 개 아빠였다. 시골에서 자란 나는 짬밥 문화를 바로 옆에서 지켜본 탓에 개는 뭐든 먹어도 되는 줄 알았다. 땀을 흘리지 않는 개는 염분 배출이 안 돼 짠 음식은 안 된다고 한다. 빵 같은 밀가루 음식도 안 되고 포도를 먹으면 위험하다는 경고문은 거짓말 같다.
꽃개는 말은 못해도 감정은 귀신같이 읽어낸다. 뉴스를 보다 혈압 뻗치면 꼬리 뚜껑을 닫고 피한다. 재채기를 하면 득달같이 달려와 괜찮은지 확인하고 자기가 아프면 숨는다. 무리에 해가 될까봐 하는 행동이라는 설명을 듣고 먹먹해진 적도 있다. ‘꽃개 네트워크’는 개에 관심 없던 남자가 꽃개를 통해 알게 된 세상에 관한 이야기다. 꽃개를 통해 보는 세상은 매일 놀라움으로 가득하다.?
꽃개는 다른 웰시코기에 비해 다리가 길고 배가 높은 편이다. (정말이다) 우리끼리는 믹스일지 모른다고 의심한다. 웰시코기 도그쇼 같은 데 참가하면 의자에서 궁둥이를 떼기도 전에 심사위원이 아니니까 가라고 고개를 내젓지 않을까? 진돗개는 기본이고 시바견이란 말까지 들어봤다. 꽃개랑 유사한 품종을 찾던 아내는 콩고가 고향인 바센지까지 추적해냈다.
왼쪽에 선명하게 나온 친구가 둥이다. 꽃개의 형제견이자 유일한 친구. 둥이네 집이 근처에 있어 일주일에 한 번씩 애견 공원에서 만난다. 격하게 논다. 둥이 얼굴이 젖은 듯 보이는 건 땀이 아니라 꽃개 침이다. 서로를 살짝 물고 깔아뭉개는 개슬링 놀이를 하고 난 직후. 한 배에서 나온 형제인데도 성격은 판이하게 다르다. 둥이가 둥글고 침착하다면 꽃개는 날카롭고 정신사납다.?
꽃개는 공성애자다. 아내가 나뭇가지로 시작했다. 어느 날 무심코 던졌는데 물고 온 것이다. 또 던져달라고 꼬리를 흔들면서. 애견 공원에 갈 때 뼈다귀처럼 잘생긴 나무 작대기를 가방에 챙겨간 적도있다. 훌륭한 애견인들은 척잇 같은 제품을 사용하고 있었다. 오옷!프리스비가 마약처럼 개를 흥분시키는 중독성 강한 놀이라는 데 동의하는 편이다. 아내는 웰시코기 카페에 프리스비 사진을 올렸다 애 허리 나간다는 핀잔을 듣기도 했다. (천둥 번개가 칠 때) 정신 나간적은 있어도 허리 나간 적은 없다.?
4인 가족과 함께 아파트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는데 그 집 엄마가 진지하게 물었다. 개가 눈을 좋아하느냐고. 나는 좋아한다고, 진짜로 좋아한다고 답했다. 다른 개들은 모르겠는데 꽃개가 눈을 좋아하는 건 확실하다. 막 뛰어놀다가 내키는 대로 퍼먹기도 한다. 높이도 낮아 아주 자연스럽게 퍼먹는다. 아내 표현에 따르면 빙수를 먹는 거라고. 이중모라 추위에 강하다. 귀가 떨어져 나갈 듯한 칼바람이 부는 날에도 꽃개는 포부도 당당히 걷는다. 우리끼리는 아웃도어견이라고 부른다?.
CREDIT
글·사진 BACON ?
에디터 이은혜
본 기사는 <매거진P>에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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