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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가운 도시남자와 함께한 티타임

  • 승인 2017-12-20 16:1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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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만 안녕

차가운 도시남자와

함께한 티타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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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이름이 돈이야?

강아지 이름이 머니라니... 충격과 공포였다. 다른 이름을 지어 불렀지만 이미 노령견인 나이에 내게 온 머니는 다른 이름에는 절대 반응해주지 않았다. 그래 너 돈해라. 포기하니 편했다. 병원이라도 한 번 갈라 치면 모든 이들이 머니의 이름을 듣고 웃었다.

머니는 타향에서 만났다. 어쩌다 보니 미국에 취업을 하고 바쁘게 살았다. 반려동물을 키우고 싶다는 생각은 있었지만, 낯선 나라에서의 적응이 먼저였다. 그런데 이방인인 내게도 들려온 소문. 지인의 지인이 키우는 강아지를 학대하고 방치한다는 이야기였다. 그 이야기를 듣고 다른 생각을 할 겨를이 없었다. 바로 머니를 데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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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았다, 상관없다

머니는 파피용과 치와와 믹스로 태어났다. 데려와 보니 장모 치와와처럼 털이 길고 파피용처럼 귀가 쫑긋해서 정말 사랑스러웠다. 그런데 나이가 불분명했다. 전 주인이라는 사람은 6살이라고 했지만, 병원에서는 훨씬 나이가 많은 것으로 추정된다는 소견을 받았다. 노령견이라는 소리였다.

전 주인이라는 사람은 학대도 모자라 새로운 주인이 될 나에게 머니의 나이까지 속였다. 하지만 그 이야길 듣고 머니가 달리 보인 것은 아니다. 괘씸한 것은 사람이지 머니가 아니니까. 그저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이 생각보다 짧은 것이 많이 아쉬웠을 뿐. 하루하루 반짝이는 날들로 채워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함께 집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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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도남이 개로 태어나면

사랑스러운 외모와 달리 머니는 차가운 도시남자였다. 예민하고, 소수의 친밀한 것들에게만 애정을 표현했다. 일례로 겟잇이라 불리는 빨간색 인형은 머니가 강아지 때부터 가지고 논 장난감이었다. 머니는 그 장난감이 없어지면 세상이 두 동강 난 것처럼 시무룩해졌다. 사람에게도 마찬가지였다. 학대의 구렁텅이에서 구해준 사람으로 여기는지, 머니는 내게만 각별한 애정을 보여주었다. 이런 것이 바로 차도남의 매력... 헤어 나올 수가 없다.

차도남이 그렇듯, 머니는 여행을 좋아했다. 우리는 모든 여행을 함께 하기로 마음먹었다. 한 번은 차로 쉬지 않고 10시간을 달려 애리조나로 로드트립을 떠났다. 머니는 아마 그때 견생 처음 눈을 보았던 것 같다. 처음에는 놀라더니 금방 신기해하며 눈밭 곳곳을 뛰었다. 샌프란시스코도, 말리부도 함께였다. 셀 수 없는 추억을 함께 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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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나 갑작스러운

3년을 3개월처럼 보냈다. 머니 덕분에 산책도 매일 하고, 여행도 더 자주 다녔다. 무심코 일상이 지속되리라 생각했는데, 어느 날 아침 눈을 떠보니 머니가 입에서 피를 흘리고 있었다. 이빨은 부러진 상태였다. 병원에 가서 진료를 받고 돌아왔다.

집에 오고 2시간쯤 흘렀을까. 머니가 갑자기 쓰러졌다. 그대로 응급실에 달려갔다. 6시간여에 흐르는 진료를 받고, 의사도 곧 괜찮아질 것이라고 나를 안심시켰다. 보호자는 집에 가도 된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하지만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병실 앞에서 서성거리는데, 갑자기 급하게 나를 불렀다. 머니가 위급하다고.

머니는 그렇게 갑작스럽게 세상과 이별했다. 받아들일 수 없었다. 여러 번의 질문과, 수많은 통화 끝에 머니에게는 피가 잘 멎지 않는 유전병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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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타임을 마치고 돌아간 나의 개

머니가 무지개다리를 건넌 지 벌써 5개월이 지났다. 말도 통하지 않는 낯선 나라에서 외로워하던 시기, 머니가 있어 버틸 수 있었다. 돌이켜보면 생은 찰나와 같아서 더 아름답다. 특히 머니와 함께한 시간은 더 그렇다. 학대받던 나이 든 개를 만난 것은 내 인생의 가장 기쁜 일이다.

머니야. 너와 함께한 3년은 근사한 티타임 같았어. 향긋하고 따스했단다. 함께 좋은 것을 바라보고, 행복을 공유해주어서 정말 고마워. 티타임이 영원할 순 없겠지. 나는 홍차향기처럼 남은 너의 여운으로 살아갈게. 내 티타임이 끝나면, 다시 만나줄래? 영원한 나만의 차도남.

CREDIT

글 사진 어윤미

그림 지오니

에디터 이은혜

본 기사는 <매거진P>에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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