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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무위의 시간

  • 승인 2017-12-11 10:2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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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

하루, 무위의 시간

어렵게 얻게 된 소박한 휴가.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기로 했다. 생각의 회로를 멈추고 가만히 누워 있자니 작년엔 없던 조그만 존재들이 시간을 아기자기하게 꾸며 주려 달려온다. 그러고 보니 이 녀석들도 올 한 해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나날을 보냈다. 그러니 우리 함께, 쉬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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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톰, 어떻게 문을 열고 들어온 걸까. 침대로 껑충 뛰어오르더니 내 얼굴을 열심히 핥는다. 아침이니 일어나라는 모닝 콜이다. 침대 아래엔 펄쩍 뛰며 자기도 침대 위로 올려달라는 단추가 있다. 단추를 침대로 올리고 기지개를 켰다. 창을 통해 들어오는 햇살. 아톰과 단추가 깨워주는 아침. 계획보다 일찍 일어났지만 기분이 나쁘진 않았다. 아이들이 있는 한 휴일의 아침이라고 막연히 게으를 수 없다.

나는 쉬는 날에도 눈 뜨자마자 밥은 꼭 먹어야 한다. 먹을 것을 한 아름 챙겨 TV 앞에 앉아 아침을 때우는데 아톰이 옆에 꼭 붙어 한 입 안 줄까 청승맞은 눈빛을 발사한다. 저 멀리서 소심하게 지켜보는 단추도 목적은 똑같다. 어머니는 그 모습이 귀여우셨는지 깔깔 웃으셨다. 이제 내 배는 채웠으니 아이들 간식을 챙겨주려 일어난다. 주방 구석에서 바스락거리는 소리를 듣고 눈치 빠른 녀석들은 어느새 자기 식기 앞에 앉아서 기다린다. 음식 앞에서만큼은 세계 제일 천재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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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만에 맞은 휴일. 벼르고 있던 취미 중 오늘은 비디오게임을 하기로 했다.(오래 참았다.) 자리를 잡고 시작하려는데 아톰과 단추는 찹쌀떡마냥 달라붙어 집중을 막는다. 휴일의 호사를 방해받고 싶지 않지만 평일에 잘 놀아주지도, 챙겨 주지도 못하기에 미안한 마음이 들어 그냥 두기로 했다. 아이들은 잠깐 비비적거리다 이불의 포근함에 못 이겨 새근새근 잠이 들었다. 이때다 싶어 열심히 비디오 게임에 매진했다.

한 시간쯤 지났을까?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햇살에 노곤하 게 잠든 아이들을 보고 이 순간은 놓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어 재빨리 카메라를 집어 아이들을 향했다. 뷰파인더를 통하여 아이들을 보고 있자니 눈에 띄게 자란 게 느껴졌다. 둘 다 크기가 손바닥만 할 때 데려왔는데 벌써 한 해를 넘겨 이렇게 몸집이 커진 걸 보니 기분이 묘했다. 문득 지인이 해준 말이 생각났다. 어릴 때는 잠깐이라고, 사진 많이 찍어두라던 말이. 사진작가로 살면서 정작 내 가족들은 찍어두지 않은 내가 한심해지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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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을 찍다 보니 처음 만났을 때가 생각났다. 아톰, 단추는 펫숍에서 데려왔다. 아톰은 또래에 비해 큰 덩치와 짧은 다리를 가졌고, 그 외형처럼 활발하고 호기심 많은 성격이었다. 난 무엇보다 그 짧은 다리에 반해버렸다. 그런데 아톰을 데려온 후 한 달 동안 지내보니 아톰 혼자 집 보는 시간이 너무 많았다. 어린 것을 혼자 두고 나오는 것이 마음이 아파 동생을 만들어 주기로 했다. 그래서 만난 단추의 첫 모습은 지저분한 털에 한쪽 귀만 삐쭉 서 있고, 눈은 자그만 게 단추 구멍 같았다. 그래서 이름이 단추다. 그 요다 같이 생긴 얼굴이 귀여워 첫 만남부터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다행히 둘은 한배에서 나온 아이들처럼 잘 지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큰 집을 둘이 꼭 붙어서 지키고, 귀가하는 나를 맞아 줄 땐 눈물이 찔끔 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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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살이 창문을 비켜날 때까지 사진을 찍고, 다시 비디오게임 컨트롤러를 잡았다. 주방에서 나오던 엄마는 어느새 잠에서 깨 구경하는 아톰과 나를 유심히 보더니 그 모습이 나랑 너무 닮았다고 하셨다. 아톰이 우리 집에 왔을 때부터 많이 들은 이야기다. 내 가슴둘레는 유난히 큰데, 아톰도 태어날 때부터 그랬다. 관심사도 비슷해 내가 무언가에 집중하면 옆으로 달려와 뭐라도 배우려는 것처럼 열심히 탐구한다. 단추는 그런 아톰을 짝사랑처럼 좋아한다. 아톰이 하는 행동들을 하나부터 열까지 다 따라한다. 앉아있는 자세, 쉬야 하는 자세, 자는 자세까지 몇 개월 차이 나지 않는 오빠를 졸졸 쫓아다니며 배우고 있다.

하루 종일 아무 일도 하지 않고 뒹굴 생각이었는데, 밤이 되고 돌이켜 보니 제대로 쉬지 못했다. 혹시 휴식하는 법을 잊어버린 것은 아닐까. 잠깐이라도 행동과 생각을 멈추는 건, 바쁨 속에서 나날을 보내는 현대인에게 관성을 거부해야 하는 또 다른 과제다. 나는 아침부터 TV를 보고, 음식을 먹고, 게임을 하며, 사진기까지 들고 말았다. 그런데 아톰과 단추는 주말에만 나타나는 못난 반려인을 넉넉한 베개 삼아, 배를 보이며 온종일을 보냈다. 집 안에 의지하는 사람이 있는 휴일이면 아이들은 이렇게 세상 편히 휴식할 줄 안다. 쉬는 것은 이런 것이라, 알려주기라도 하듯이.


CREDIT

글·사진 엄기태(사진작가, @git_go)

에디터 김기웅?

본 기사는 <매거진P>에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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