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MILY
유전의 법칙,
네가 너를 낳았네
거푸집에서 나온 것처럼 꼭 닮은 대형 인절미 8인방. 할머니부터 엄마, 손자 손녀에 이르는 대가족의 일상은 어떤 맛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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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가족은 사람들을 언제라도 혼란에 빠트릴 수 있다. 산책 한번 나가면 이목 집중에 질문세례를 받는다. 심지어 다 데리고 나가지 않아도. 우리는 골든리트리버 대가족. 할머니와 엄마, 6남매가 모여 산다. 닮기는 또 어찌나 닮았는지, 친분이 있는 이웃도 아이들 이름을 틀리는 것이 부지기수다.
6남매 아빠가 정말 근사해서 은근히 아빠를 닮기를 바랐는데, 모두 엄마와 할머니를 쏙 빼닮았다. 할머니 해리가 규리를 낳고, 엄마 규리는 설리, 설현이, 승리, 지디, 태양, 탑을 낳았는데... 이 골든 리트리버 3대는 주인인 내가 봐도 가끔 무섭도록 닮았다.
저마다의 사연으로 모인 대가족
첫 시작은 규리였다. 일과 육아에 지쳐 강아지는 생각도 못하다가 아이가 유치원 다닐 때 졸라서 키우게 되었다. 처음 대형견을 접하다 보니 아무런 지식도 없었고 그저 어릴 때 키우던 소형견 대하듯 키웠다. 지나다니던 동네 주민들 눈치에 되도록 늦은 밤 사람들을 피해서 산책을 다니곤 했다.
그러다 규리 엄마 해리가 우리 품에 오게 되었다. 원래 해리를 키우던 반려인이 노령인 데다 지병이 악화되셔서 더 이상 해리를 돌볼 수 없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규리가 낳은 베이비들이 추가되면서 빼도 박도 못하는 대가족이 되었다.
왜 입양을 보내지 않느냐고?
규리가 첫 출산에 10마리를 낳았다. 까칠한 규리가 너무 예쁘게 아기들을 물고 빨고 보살피는데 쉽게 입양 보낼 순 없었다. 끝까지 아이들과 함께해 줄 수 있는 사람을 찾고 싶었다. 분양조건이 까다로워도 문의는 많았다. 하지만 파양되는 대형견을 수도 없이 본 터라 신중해야 했다. 고르고 골라 4 마리를 입양시켰다.
그런데 그 가운데서 또 파양이 이뤄졌다. 당시 파양당했던 규리의 아이는 지척의 좋은 이웃이 거둬주셨지만, 남은 6남매는 우리가 키우기로 했다. ‘남은 너희는 엄마랑 할머니랑 살도록 해줄게’생각하니 마음이 편해졌다. 그리고 앞으로 다시는 새끼를 보지않기로 하고 아이들을 중성화시켜 주었다.
목소리도 닮았다
3대가 함께 살다 보니 관찰하게 되는 변화도 있다. 까칠하던 규리가 새끼들에게 지극정성인 것도 재미있지만, 할머니 해리가 유독 손녀 손주들에게 애틋하다. 보고 있으면 세상의 모든 할머니는 다 그런 건가 싶다. 3대 중 손녀 ‘설자매’(설리, 설현)는 우애가 남다르다. 아침이면 밤새 헤어졌다 만났다고 붙들고 껑충껑충 뛰는 모습이 귀엽기도 하고, 웃기기도 하고. 3대가 낮이고 밤이고 붙어 지내는 모습을 보면 만감이 교차한다.
어릴 때도 닮은 3대였지만 커가면서 더 닮는다. 환경이 같아서일까. 기본 성향은 각자 다른데 요즘 점점 성격도, 행동도 비슷해진다. 누구 하나 다치기라도 하면 어찌나 핥아주기 바쁜지... 멀리서 짖는 소리를 듣고 규리였구나 했는데 손주인 승리였던 순간도 있다. 너희, 이제 목소리도 닮아가는 거니.
대형견과 함께 살려고, 공부합니다
공부를 시작했다. 대형견을 잘못 가르치면 사고로 이어질 수 있고, 그렇다고 힘으로 제압하는 것도 옳은 방법은 아니다. 직접 동물매개 심리치료과정을 배우고 요즘은 아이들이 예절 바른 개린이가 되는 그날을 위해 함께 공부하고 있다. 기회가 닿으면 지역 안에서 자원봉사도 진행할 예정이다. 대형견은 무섭다는 편견을 아주 조금이라도 깰 수 있기를 바라고 있다.
최근 우울증이 있는 두 학생이 동물매개활동 일환으로 할머니 해리를 만나러 오곤 한다. 대가족 가운데서도 해리는 순하고 조심성이 많은 성격이라 사람 아이들과도 합이 맞는다. 아이들이 처음 오던 날, 남들 몰래 해리에게 말을 걸었다. ‘설리 설현이처럼사람 아이들도 예뻐해 줄 수 있지?’ 그리고 해리는 그렇게 했다. 요즘 두 학생의 얼굴에서 그늘이 많이 걷힌 것이 보인다.
식탐 많고 공놀이 좋아하는 골든 리트리버 대가족을 모시며 힘이든 적이 없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지. 결정까지 고민도 참 많았고, 고생도 좀 했지만 후회는 한 번도 한적 없다. 리트리버 3대는 내 박카스다.
CREDIT
글 사진 김태준
에디터 이은혜
본 기사는 <매거진P>에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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